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22강 하나님의 것은 햐나님께(나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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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22강
말씀/마가복음 11:27-12:17(17)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17)’
오늘 말씀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 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주인이 농부에게 세를 줄 때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주인은 두 가지를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누구에게 세를 줄 것인가? 땅이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할 사람에게 줍니다. 다음으로는 세를 잘 낼 사람에게 줍니다. 특히 세를 내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겸손한 사람에게 줍니다. 소작료는 시대마다 주인마다 다르지만 심한 경우에는 소득의 80%를 주인이 갖고 나머지 20%가 소작농의 몫이었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주인을 만나면 주인이 60%을 갖고, 나머지 40%를 소작농이 가졌습니다.
본문의 포도원 주인은 소득의 1/10을 세로 받기로 하였습니다. 1/10은 농부에게 파격적인 특혜입니다. 주인은 왜 농부에게 이런 특혜를 주는 걸까요? 주인은 농부가 주인에게 바쳐야 할 세 때문에 마음이 쪼그라져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대신에 농부가 포도원에서 일하게 된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껏 일하고 소출의 기쁨을 누리길 원하였습니다. (제가 전에 전셋집에 살 때 집주인은 몇 년간 전세금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돈 많이 모아서 좋은 집으로 이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집 주인은 세를 놓아 돈을 벌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당신 집에 전세 살던 사람들이 돈 모아서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때가 이르자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냈습니다.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습니다.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죽였습니다. 보통 주인 같으면 당장에라도 군대를 보내서 진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종들이 얻어 터지고 죽임을 당하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종들을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계속해서 보낸 것은 농부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세를 내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짜르지 않고 계속해서 포도원을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6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주인에게 더 이상 보낼 종이 없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는 농부의 ‘사랑하는 아들’ 이었습니다. 주인은 최후로 아들을 보내며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주인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요?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말 속에는 ‘농부들이 나를 존중하겠지, 나를 존중할거야’ 한마디로 ‘세를 내겠지’ 라는 뜻입니다. 주인은 아들이 가면 종들이 갔던 상황과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을 존중하는데 당연히 아들을 존중하겠지 생각하였습니다.
미국대통령 트럼프의 딸 이방카는 세계 어디를 가나 트럼프와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대와 환영을 받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트럼프 대통령 대신 이방카가 온다는 소문이 한때 떠돌았습니다. 이방카가 오면 누가 공항에 나가서 예방을 하고 의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관심이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 이방카가 왔을 때 국빈급으로 이방카를 예우하였습니다. 왜 이방카가 이렇게 존대와 환영을 받습니까? 어떤 사람은 빼어난 미모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트럼프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트럼프를 존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만약인데요 이방카를 홀대하여 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트럼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주인의 아들이 농부들에게 갔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7, 8절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한 주인의 기대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농부들이 왜 세를 내지 않고자 하는지? 농부들이 무슨 생각으로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는지? 예수님은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농부들이 왜 세를 내지 않고자 할까요?
세는 주인과 농부들 간의 계약입니다. 이 계약에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농부들인가, 내야 할 세를 정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십일조에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물질의 주관자이시다’ 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분이 퇴직금을 2억을 받았습니다. 일시에 큰 돈을 만지게 되니 고민에 빠졌습니다. 소득의 1/10, 2천만 원을 십일조로 내려고 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지금까지 매달 급여에서 꼬박꼬박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퇴직금은 노후자금이니 십일조에서 면제대상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한꺼번에 십일조로 내고 싶지 않았지만, 회개하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아마 농부들도 1/10이라고 하지만 소출이 많은 만큼 비례적으로 십일조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농부는 포도원 소출을 거두기까지 폭염 속에서 뼈빠지게 일하였는데, 주인은 먼 나라에 머물면서 한번이라도 포도원을 돌아봤는가? 도대체 한 것이 뭔가? 자신들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무관심하고 무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부들은 자기들이 수고한 것 만 생각나고 주인으로부터 받은바 특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물질에 대한 욕심과 자기 의로 마음이 높아졌고 결국, 농부들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세를 내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둘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 상속자를 죽인다고 해서 포도원이 농부들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농부들은 누가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엄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상속자만 죽이면 포도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포도원은 농부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본문에 나오는 농부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생각이 다 이렇습니다. 버젓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다윗왕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암몬사람의 칼에 충신 우리야가 죽임을 당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셨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부족하면 아내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내 것이 아닌데 남의 아내를 내 것으로 삼고자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모항공사 회장 일가의 숨은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직원들을 동원해서 자사 항공기로 해외 명품의류와 사치품, 식품, 가구 등을 상주직원통로를 통해 빼돌려 무관세로 반입했습니다. 회장일가는 회사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족들을 위해 직원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명, 시간, 물질, 재능이 나의 것이고, 나에게 주신 자녀나 아내, 남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것을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내 것입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됩니까? 나의 생명, 시간, 물질, 재능, 자녀나 아내, 남편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으로 삼으려고 하면 농부들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깨어지고 살인을 하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은 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가?
9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포도원은 농부의 의도대로 농부의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진멸당하고, 주인은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
12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최고의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포도원에는 ‘율법’,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선지자들을 때마다 보내어 주시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에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율법의 근본정신을 가르치시고 각 사람의 안에 임할 마음의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고, 성전과 제사제도를 파괴하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율법과 성전, 제사제도를 지켜내고자 하였습니다. 율법과 성전, 제사제도는 그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자기의 것이고 기득권이었습니다. 이 기득권을 가지고 하나님과 아들이 받아야 할 존대를 가로채 자신들이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매매하고 돈 바꾸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물질을 챙기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율법, 성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되고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욕심을 내도 포도원이 종교지도자들의 것이 안된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진멸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16,17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 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트집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 세금문제를 끄집어냈습니다. 당시 세금은 토지세(곡물의 1/10, 과일의 1/5), 소득세(1/10), 인두세(남자 14-65세, 여자 12-65세 모두 1데나리온)을 내야 했습니다. 바리새파는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했지만 사두개파와 헤롯당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세금문제에 있어 정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함께 모의한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말라하면 헤롯당은 예수님을 로마정부에 고발할 것입니다. 세금을 내라 하면 바리새파는 예수님을 반민족주의자로 유대공회에 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데나리온에 새겨 있는 형상과 글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데나리온 한 면에는 부조된 황제의 얼굴과 함께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신성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카이저, 최고의 제사장’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새겨 진것은 가이사에게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포도원 비유에 나타난 사상은 ‘주인이 있다’ 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주된 사상이기도 합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인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우주만물, 삼라만상,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가정, 직장, 캠퍼스의 포도원, 인생의 포도원 등 최고의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포도원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포도원 가운데 풍성한 생명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할 렐 루 야
말씀/마가복음 11:27-12:17(17)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17)’
오늘 말씀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 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주인이 농부에게 세를 줄 때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주인은 두 가지를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누구에게 세를 줄 것인가? 땅이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할 사람에게 줍니다. 다음으로는 세를 잘 낼 사람에게 줍니다. 특히 세를 내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겸손한 사람에게 줍니다. 소작료는 시대마다 주인마다 다르지만 심한 경우에는 소득의 80%를 주인이 갖고 나머지 20%가 소작농의 몫이었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주인을 만나면 주인이 60%을 갖고, 나머지 40%를 소작농이 가졌습니다.
본문의 포도원 주인은 소득의 1/10을 세로 받기로 하였습니다. 1/10은 농부에게 파격적인 특혜입니다. 주인은 왜 농부에게 이런 특혜를 주는 걸까요? 주인은 농부가 주인에게 바쳐야 할 세 때문에 마음이 쪼그라져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대신에 농부가 포도원에서 일하게 된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껏 일하고 소출의 기쁨을 누리길 원하였습니다. (제가 전에 전셋집에 살 때 집주인은 몇 년간 전세금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돈 많이 모아서 좋은 집으로 이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집 주인은 세를 놓아 돈을 벌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당신 집에 전세 살던 사람들이 돈 모아서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때가 이르자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냈습니다.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습니다.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죽였습니다. 보통 주인 같으면 당장에라도 군대를 보내서 진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종들이 얻어 터지고 죽임을 당하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종들을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계속해서 보낸 것은 농부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세를 내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짜르지 않고 계속해서 포도원을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6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주인에게 더 이상 보낼 종이 없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는 농부의 ‘사랑하는 아들’ 이었습니다. 주인은 최후로 아들을 보내며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주인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요?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말 속에는 ‘농부들이 나를 존중하겠지, 나를 존중할거야’ 한마디로 ‘세를 내겠지’ 라는 뜻입니다. 주인은 아들이 가면 종들이 갔던 상황과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을 존중하는데 당연히 아들을 존중하겠지 생각하였습니다.
미국대통령 트럼프의 딸 이방카는 세계 어디를 가나 트럼프와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대와 환영을 받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트럼프 대통령 대신 이방카가 온다는 소문이 한때 떠돌았습니다. 이방카가 오면 누가 공항에 나가서 예방을 하고 의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관심이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 이방카가 왔을 때 국빈급으로 이방카를 예우하였습니다. 왜 이방카가 이렇게 존대와 환영을 받습니까? 어떤 사람은 빼어난 미모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트럼프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트럼프를 존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만약인데요 이방카를 홀대하여 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트럼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주인의 아들이 농부들에게 갔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7, 8절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한 주인의 기대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농부들이 왜 세를 내지 않고자 하는지? 농부들이 무슨 생각으로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는지? 예수님은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농부들이 왜 세를 내지 않고자 할까요?
세는 주인과 농부들 간의 계약입니다. 이 계약에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농부들인가, 내야 할 세를 정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십일조에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물질의 주관자이시다’ 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분이 퇴직금을 2억을 받았습니다. 일시에 큰 돈을 만지게 되니 고민에 빠졌습니다. 소득의 1/10, 2천만 원을 십일조로 내려고 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지금까지 매달 급여에서 꼬박꼬박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퇴직금은 노후자금이니 십일조에서 면제대상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한꺼번에 십일조로 내고 싶지 않았지만, 회개하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아마 농부들도 1/10이라고 하지만 소출이 많은 만큼 비례적으로 십일조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농부는 포도원 소출을 거두기까지 폭염 속에서 뼈빠지게 일하였는데, 주인은 먼 나라에 머물면서 한번이라도 포도원을 돌아봤는가? 도대체 한 것이 뭔가? 자신들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무관심하고 무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부들은 자기들이 수고한 것 만 생각나고 주인으로부터 받은바 특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물질에 대한 욕심과 자기 의로 마음이 높아졌고 결국, 농부들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세를 내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둘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 상속자를 죽인다고 해서 포도원이 농부들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농부들은 누가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엄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상속자만 죽이면 포도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포도원은 농부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본문에 나오는 농부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생각이 다 이렇습니다. 버젓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다윗왕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암몬사람의 칼에 충신 우리야가 죽임을 당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셨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부족하면 아내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내 것이 아닌데 남의 아내를 내 것으로 삼고자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모항공사 회장 일가의 숨은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직원들을 동원해서 자사 항공기로 해외 명품의류와 사치품, 식품, 가구 등을 상주직원통로를 통해 빼돌려 무관세로 반입했습니다. 회장일가는 회사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족들을 위해 직원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명, 시간, 물질, 재능이 나의 것이고, 나에게 주신 자녀나 아내, 남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것을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내 것입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됩니까? 나의 생명, 시간, 물질, 재능, 자녀나 아내, 남편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으로 삼으려고 하면 농부들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깨어지고 살인을 하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은 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가?
9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포도원은 농부의 의도대로 농부의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진멸당하고, 주인은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
12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최고의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포도원에는 ‘율법’,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선지자들을 때마다 보내어 주시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에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율법의 근본정신을 가르치시고 각 사람의 안에 임할 마음의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고, 성전과 제사제도를 파괴하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율법과 성전, 제사제도를 지켜내고자 하였습니다. 율법과 성전, 제사제도는 그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자기의 것이고 기득권이었습니다. 이 기득권을 가지고 하나님과 아들이 받아야 할 존대를 가로채 자신들이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매매하고 돈 바꾸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물질을 챙기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율법, 성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되고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욕심을 내도 포도원이 종교지도자들의 것이 안된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진멸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16,17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 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트집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 세금문제를 끄집어냈습니다. 당시 세금은 토지세(곡물의 1/10, 과일의 1/5), 소득세(1/10), 인두세(남자 14-65세, 여자 12-65세 모두 1데나리온)을 내야 했습니다. 바리새파는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했지만 사두개파와 헤롯당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세금문제에 있어 정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함께 모의한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말라하면 헤롯당은 예수님을 로마정부에 고발할 것입니다. 세금을 내라 하면 바리새파는 예수님을 반민족주의자로 유대공회에 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데나리온에 새겨 있는 형상과 글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데나리온 한 면에는 부조된 황제의 얼굴과 함께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신성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카이저, 최고의 제사장’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새겨 진것은 가이사에게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포도원 비유에 나타난 사상은 ‘주인이 있다’ 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주된 사상이기도 합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인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우주만물, 삼라만상,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가정, 직장, 캠퍼스의 포도원, 인생의 포도원 등 최고의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포도원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포도원 가운데 풍성한 생명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할 렐 루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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