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18시65 주의 은택ㅇ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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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추수 감사절 특강
말씀 | 시편 65:1-13
요절 | 시편 65: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한 해 동안 돌봐주시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공동체가 드리는 감사 시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큰 제목은 첫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시온의 하나님입니다(1-4). 둘째, 창조와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5-8). 셋째, 땅에 비를 내려 풍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9-1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국의 성공회 성직자였던 존 헨리 뉴먼은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회복제요, 방부제”라고 했고,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는 “감사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말했고, 영국의 수필가 아이작 월튼은 “하나님의 주소는 두 곳에 있다. 한 곳은 하늘나라에, 또 한 곳은 감사하는 성도의 마음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첫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1-4).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1,2).” 시인은 하나님께 찬송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하여 잠잠히 기다립니다. 슬픔과 탄식 가운데 주님께 서원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그로인해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전날에 드린 서원을 갚고자 합니다. 찬송은 의무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기쁨이 충만해서 찬송을 합니다. 사실 이런 마음은 절대로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늘 하나님께 대하여 삐뚤어져 있습니다. 일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께 반항을 하고 대듭니다. 그러다가 환난과 어려움이 닥치는 바람에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들이 없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속에 있는 불신앙을 말씀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에 보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한나는 잉태치 못하는 인생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통곡하며 만일 아들을 주시면 그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젖을 땐 어린 아이 사무엘을 여호와께 바쳤습니다.(삼상1:27,28). 하나님께서는 이 한나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사무엘을 귀히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원을 이행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서원을 이행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원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기 전에는 그렇게 하고자 했는데 그 뒤에 마음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철저하게 회개할 때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됩니다. 일단 한번 말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가 성령에 의하여 통제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지게 되면 성령의 뜻에 따라서 우리의 몸이 움직여지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시작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도를 들으시는 주”라고 부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죄 용서를 기다렸는데 그것이 이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 받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면서도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힘들어하셨다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만은 하나님께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마음대로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신 이후 주의 백성들이 오래 기다리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오랜 기도에 응답하시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연약해서 슬프고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허덕이면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모든 육체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국적, 신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민족의 기도만 들으시지 않고 세계 만민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세계만민이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주 주님께 나아와 간구한다고 해서 귀찮게 여기시거나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끈질긴 과부와 같이 자주 하나님께 나아와 드리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약속하셨습니다. 요1서 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문경새재에는 소원성취 탑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가면서 과거 급제, 자녀 출산, 병 고침 등을 구하면서 돌을 한 개씩 쌓았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엄청난 돌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돌탑을 쌓으며 아무리 빌어도 기도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습니다(빌4:6).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주셨습니까?
3절에서는 죄사함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다윗은 용사였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원수들을 무찔렀습니다. 이런 그도 정욕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뼈가 쇠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죄책감으로 인해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침상을 눈물로 적셔야 했습니다. 그는 죄의 짐을 지고 힘겨워하였습니다. 죄의 짐만큼 무거운 것이 없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서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산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사면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면해주실 때만이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그 죄로 인해 슬퍼하고 진실 되게 고백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요1서 1:9). 다윗은 어떤 것보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시32:1). 그는 죄사함 받은 것을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표현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뜰에는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 나아가서 주님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그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주의 집 곧 주의 아름다운 성전에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4절은 ‘주의 성전에서 온갖 좋은 복으로 만족하렵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복은 영적인 복이라기보다 성전에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을 일차적으로 생각합니다. 성전에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은 영적인 교제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오늘 성만찬을 합니다. 성만찬은 주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과 연합하며 교제를 나눕니다. 우리는 과거 죄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매일 생활 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뜰에 거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피곤한 영혼을 소생시키고 참 쉼을 줍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내면에 잔잔한 평화와 영혼의 기쁨을 줍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는 1차원적인 육신의 기쁨이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누리는 정신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누릴 수 있는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육신의 기쁨과 정신적인 기쁨을 충만히 누린다 할찌라도 무엇인가 빈 것 같이 허전하고 참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영혼의 기쁨을 누릴 때만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축복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입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5-8).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 곧 세상 모든 사람의 의지할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두 가지 방법으로 하십니다. 첫째로, 그의 의를 따라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때 결코 불공정한 방법으로 하지 않으시고 의를 따라 공의롭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역사도 어린 양을 온전히 희생하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이루어 졌습니다(출12:1-4).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때도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그의 의가 만족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로마서 3:25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둘째로, 그의 크신 능력으로 구원하십니다. 5절에서 엄위하신 일이란 놀라운 일, 혹은 두려운 일, 경이로운 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한 바로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그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지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심으로 그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실 뿐 아니라 죄를 짓지 않고 점점 거룩하게 살도록 도우십니다. 죽은 후에는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구원하신 것은 너무나 크고 엄청난 일이어서 일생동안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다윗은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 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울의 시기와 추격, 압살롬의 반란, 세바의 반란으로 인해서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럴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소요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대적들로 인해서 괴로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대적들을 물리치고 그에게 승리와 평안을 주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 끝에 사는 자’란 지금까지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곧 이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어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세상이 유지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시기 위하여 세상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면서 하루하루가 연장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이요 자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오래오래 살 것인가를 걱정하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셋째,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9-13). 9,10절을 보십시오. “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특별 은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특별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적 축복입니다. 다윗은 이제 일반 은총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반 은총은 믿는 자나 불신자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리십니다(마5:45). 그리하여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동일하게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우신 지혜로 섬세하게 만물의 상황을 살피시고 창조하신 것들의 부족함을 보충하시고 번영케 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땅이 열매를 맺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열매를 먹고 살 수 있도록 돌보십니다. 땅에 씨를 심으면 성장할 수 있는 영양분을 주시고 태양 에너지와 비를 주시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씨를 심고 밭을 매고 열심히 일하여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만 내리지 않으셔도 가뭄으로 말미암아 추수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여기서 ‘은택’은 ‘좋은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한 해를 관 씌우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한 해를 넘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라고 했는데 이는 주님께서 가시는 그 길에는 흔적이 남았는데 바로 풍년입니다. 이제 시인은 들과 초원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가신 길에는 기름으로 넘칩니다. 메말랐던 초원이 변하여 푸른 초장이 되었고 벌거벗은 산과 언덕이 기쁨이 넘치며 즐거워합니다. 메말랐던 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변한 후, 그곳에서 양떼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습니다. 초원을 누비는 양떼는 마치 축제의 옷처럼 보입니다.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여 새로운 옷을 입었습니다. 이리하여 자연이 새 생명으로 깨어나며, 소리 지르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봄의 심포니를 듣습니다. 마치 비발디의 사계에서 ‘봄’을 듣는 것 같습니다. 양떼와 곡식도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만물들과 함께 주님의 선하심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여러 모로 풍족하게 살게 하셨지만 상대적인 빈곤감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를 하면 초라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한 가지씩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받았는지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수인 필립 하터가 “세계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100명 중에서 57명이 아시아인이었고 (유럽인 21명, 미주인 14명, 아프리카인 8명), 100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30명이었습니다. 100명 중 80명은 적정 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었고, 70명은 문맹이었습니다. 우리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30% 안에 속한 것입니다. 100명 중에 50명은 영양실조 상태이며, 이 가운데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못하는 사람이 20명이나 되었습니다. 전기와 수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100명 중에 30명이나 되었습니다. 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글을 읽을 줄 알고 컴퓨터가 있고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는 1%에 속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1년 동안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셔서 구원해주시고 천국 소망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한 해 우리 가정과 개인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에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제목을 적어보니 155가지나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감사제목을 쓰면서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우리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인하여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말씀 | 시편 65:1-13
요절 | 시편 65: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한 해 동안 돌봐주시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공동체가 드리는 감사 시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큰 제목은 첫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시온의 하나님입니다(1-4). 둘째, 창조와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5-8). 셋째, 땅에 비를 내려 풍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9-1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국의 성공회 성직자였던 존 헨리 뉴먼은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회복제요, 방부제”라고 했고,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는 “감사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말했고, 영국의 수필가 아이작 월튼은 “하나님의 주소는 두 곳에 있다. 한 곳은 하늘나라에, 또 한 곳은 감사하는 성도의 마음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첫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1-4).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1,2).” 시인은 하나님께 찬송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하여 잠잠히 기다립니다. 슬픔과 탄식 가운데 주님께 서원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그로인해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전날에 드린 서원을 갚고자 합니다. 찬송은 의무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기쁨이 충만해서 찬송을 합니다. 사실 이런 마음은 절대로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늘 하나님께 대하여 삐뚤어져 있습니다. 일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께 반항을 하고 대듭니다. 그러다가 환난과 어려움이 닥치는 바람에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들이 없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속에 있는 불신앙을 말씀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에 보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한나는 잉태치 못하는 인생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통곡하며 만일 아들을 주시면 그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젖을 땐 어린 아이 사무엘을 여호와께 바쳤습니다.(삼상1:27,28). 하나님께서는 이 한나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사무엘을 귀히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원을 이행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서원을 이행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원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기 전에는 그렇게 하고자 했는데 그 뒤에 마음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철저하게 회개할 때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됩니다. 일단 한번 말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가 성령에 의하여 통제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지게 되면 성령의 뜻에 따라서 우리의 몸이 움직여지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시작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도를 들으시는 주”라고 부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죄 용서를 기다렸는데 그것이 이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 받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면서도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힘들어하셨다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만은 하나님께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마음대로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신 이후 주의 백성들이 오래 기다리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오랜 기도에 응답하시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연약해서 슬프고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허덕이면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모든 육체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국적, 신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민족의 기도만 들으시지 않고 세계 만민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세계만민이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주 주님께 나아와 간구한다고 해서 귀찮게 여기시거나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끈질긴 과부와 같이 자주 하나님께 나아와 드리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약속하셨습니다. 요1서 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문경새재에는 소원성취 탑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가면서 과거 급제, 자녀 출산, 병 고침 등을 구하면서 돌을 한 개씩 쌓았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엄청난 돌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돌탑을 쌓으며 아무리 빌어도 기도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습니다(빌4:6).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주셨습니까?
3절에서는 죄사함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다윗은 용사였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원수들을 무찔렀습니다. 이런 그도 정욕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뼈가 쇠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죄책감으로 인해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침상을 눈물로 적셔야 했습니다. 그는 죄의 짐을 지고 힘겨워하였습니다. 죄의 짐만큼 무거운 것이 없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서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산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사면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면해주실 때만이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그 죄로 인해 슬퍼하고 진실 되게 고백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요1서 1:9). 다윗은 어떤 것보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시32:1). 그는 죄사함 받은 것을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표현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뜰에는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 나아가서 주님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그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주의 집 곧 주의 아름다운 성전에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4절은 ‘주의 성전에서 온갖 좋은 복으로 만족하렵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복은 영적인 복이라기보다 성전에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을 일차적으로 생각합니다. 성전에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은 영적인 교제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오늘 성만찬을 합니다. 성만찬은 주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과 연합하며 교제를 나눕니다. 우리는 과거 죄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매일 생활 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뜰에 거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피곤한 영혼을 소생시키고 참 쉼을 줍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내면에 잔잔한 평화와 영혼의 기쁨을 줍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는 1차원적인 육신의 기쁨이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누리는 정신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누릴 수 있는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육신의 기쁨과 정신적인 기쁨을 충만히 누린다 할찌라도 무엇인가 빈 것 같이 허전하고 참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영혼의 기쁨을 누릴 때만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축복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입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5-8).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 곧 세상 모든 사람의 의지할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두 가지 방법으로 하십니다. 첫째로, 그의 의를 따라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때 결코 불공정한 방법으로 하지 않으시고 의를 따라 공의롭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역사도 어린 양을 온전히 희생하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이루어 졌습니다(출12:1-4).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때도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그의 의가 만족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로마서 3:25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둘째로, 그의 크신 능력으로 구원하십니다. 5절에서 엄위하신 일이란 놀라운 일, 혹은 두려운 일, 경이로운 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한 바로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그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지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심으로 그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실 뿐 아니라 죄를 짓지 않고 점점 거룩하게 살도록 도우십니다. 죽은 후에는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구원하신 것은 너무나 크고 엄청난 일이어서 일생동안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다윗은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 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울의 시기와 추격, 압살롬의 반란, 세바의 반란으로 인해서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럴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소요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대적들로 인해서 괴로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대적들을 물리치고 그에게 승리와 평안을 주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 끝에 사는 자’란 지금까지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곧 이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어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세상이 유지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시기 위하여 세상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면서 하루하루가 연장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이요 자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오래오래 살 것인가를 걱정하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셋째,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9-13). 9,10절을 보십시오. “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특별 은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특별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적 축복입니다. 다윗은 이제 일반 은총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반 은총은 믿는 자나 불신자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리십니다(마5:45). 그리하여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동일하게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우신 지혜로 섬세하게 만물의 상황을 살피시고 창조하신 것들의 부족함을 보충하시고 번영케 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땅이 열매를 맺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열매를 먹고 살 수 있도록 돌보십니다. 땅에 씨를 심으면 성장할 수 있는 영양분을 주시고 태양 에너지와 비를 주시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씨를 심고 밭을 매고 열심히 일하여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만 내리지 않으셔도 가뭄으로 말미암아 추수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여기서 ‘은택’은 ‘좋은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한 해를 관 씌우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한 해를 넘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라고 했는데 이는 주님께서 가시는 그 길에는 흔적이 남았는데 바로 풍년입니다. 이제 시인은 들과 초원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가신 길에는 기름으로 넘칩니다. 메말랐던 초원이 변하여 푸른 초장이 되었고 벌거벗은 산과 언덕이 기쁨이 넘치며 즐거워합니다. 메말랐던 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변한 후, 그곳에서 양떼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습니다. 초원을 누비는 양떼는 마치 축제의 옷처럼 보입니다.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여 새로운 옷을 입었습니다. 이리하여 자연이 새 생명으로 깨어나며, 소리 지르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봄의 심포니를 듣습니다. 마치 비발디의 사계에서 ‘봄’을 듣는 것 같습니다. 양떼와 곡식도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만물들과 함께 주님의 선하심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여러 모로 풍족하게 살게 하셨지만 상대적인 빈곤감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를 하면 초라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한 가지씩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받았는지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수인 필립 하터가 “세계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100명 중에서 57명이 아시아인이었고 (유럽인 21명, 미주인 14명, 아프리카인 8명), 100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30명이었습니다. 100명 중 80명은 적정 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었고, 70명은 문맹이었습니다. 우리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30% 안에 속한 것입니다. 100명 중에 50명은 영양실조 상태이며, 이 가운데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못하는 사람이 20명이나 되었습니다. 전기와 수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100명 중에 30명이나 되었습니다. 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글을 읽을 줄 알고 컴퓨터가 있고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는 1%에 속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1년 동안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셔서 구원해주시고 천국 소망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한 해 우리 가정과 개인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에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제목을 적어보니 155가지나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감사제목을 쓰면서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우리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인하여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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