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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년 창4강(3:1-24)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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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19-04-07 13:44

본문

2019년 창세기 제 4 강
말씀 | 창세기 3:1-24
요절 | 창세기 3:15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지난 주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진정 행복한 삶을 살도록 좋은 환경과 말씀과 가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파괴하려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관계를 파괴한 인간 불행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가운데서도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아담의 범죄. 아담과 하와는 가정을 이루고 사명을 감당하며 에덴동산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였습니다. 사탄이 뱀을 이용해서 여자에게 접근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뱀은 사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말을 참말 같이 잘 합니다. 계12:9에 보면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서 역사합니다. 사람들은 사탄하면 머리에 뿔이 나고 송곳니가 밖으로 튀어 나와서 피가 질질 흐르는 도깨비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게 무식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아주 우아하고 멋있게 때로는 신사적이고 친절하게 다가옵니다. 사탄은 정말 부드럽게 여자를 위하는 척하며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기 위해서 의심을 심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무한대한 자유를 빼버리고 허락하시지 않는 것만 부각시켜서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말씀은 관계계명입니다. 즉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축복된 에덴동산에서 살 때 그를 제약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무한대한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볼 때마다 자신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서 능란한 기만전술을 씁니다. 먼저 ‘참으로’라는 부사를 의문문에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를 심습니다. 사탄의 어리석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전술을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시는가?’, ‘이렇게 꼭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가?’ 한 번 이런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면 회의가 회의를 낳아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상한 방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회의는 견고한 신앙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각종’, ‘임의로’를 뺐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뜻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적으로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가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여자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하여 대적하셨습니다. 반면에 여자는 사탄의 말을 듣고 대화를 하다가 미혹되었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 대신에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다고 상대화시켰습니다. ‘설마 하나님이 죽이기야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자의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해서 얼마나 함부로 생각하고 죄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하게 될 때, 마음이 풀어져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는 자세가 아주 분명합니다. “주일예배는 반드시 지켜야 해. 기도를 쉬는 죄는 절대로 지으면 안 돼?” 그러나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게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주일 예배 한번 빠지고 죽기야 하겠어? 새벽기도를 꼭 해야 하나”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고 상대적이 될 때 영적으로 빨간 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여자에게 뱀은 어떻게 거짓 확신을 심었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여자 편에서는 어느 것이 더 듣기 좋았을까요? 네,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여자가 좋아할 말을 확신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부추깁니다. 사탄의 미혹하는 말을 듣고 여자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여자가 뱀의 말을 듣고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범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은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과 다를 때 거부하던지 아내를 책망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고 또 죽어도 같이 죽자고 먹었습니다. 아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들고 와서 나 안 죽었다고 안심을 시키나 아담이 넘어갔습니다. 하와는 돕는 배필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여자에게 자기 남편을 하나님과 같이 만들고 싶은 마음을 품게 했습니다. 여자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왔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때 사탄의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하와는 남편을 하나님과 같이 만들려고 하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함께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기 때문에 사탄의 거짓말을 잘라낼 수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 4:12). 사탄은 머리가 일곱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그러므로 사탄과 대화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을 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묵상할 때 사탄의 계략을 분별하고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선악과를 먹은 후에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들은 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의 마음에 수치심이 생겼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옷입니다. 이 옷은 수치를 가리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여러 겹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영혼의 수치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짐승을 희생하여 가죽 옷을 지어 주심으로 사람의 수치를 가리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화과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담을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목자의 음성입니다. 그의 죄를 지적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초청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때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 일에 쫓겨서 말씀을 뒷전으로 미루고 겨우겨우 예배만 보고 지내고 계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회개해야 하는데, 죄악된 생활을 청산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질문하십니다. “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시간 저희들이 우리의 실존을 묻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하겠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에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자세를 새롭게 하고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아담처럼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러나 빨리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면 됩니다. 저희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와 새로운 관계성을 맺기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아가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사람은 평안을 얻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 아담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벗고 있었습니다. 죄를 짓자 수치심과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돕기 위해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변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자기 잘못은 없고 아내 탓, 하나님 탓입니다. 이런 자세로 인해 문제는 꼬이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도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지금도 사람은 죄를 짓고 나서 이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시킵니다. 신문을 보면 정치권은 서로 남의 탓을 합니다. 자기는 죄가 없습니다. 내로남불입니다. 이것이 진전되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속이고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죄는 작게 시작되었지만 자라납니다. 이렇게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인간 문제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문제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실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회개는 자기의 죽음입니다. 이를 통해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셋째,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심.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셨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탄은 회개할 수 없는 영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뱀을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하셨습니다.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비참한 굴욕과 완전한 패배를 나타냅니다(사49:23; 미7:17). 또 여자와 원수를 맺고 결국에는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위해서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심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발꿈치를 상하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자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즉각적인 결정을 하시고 절대적인 희생을 감당하십니다.

  여자와 아담은 각각 어떤 죄벌을 받게 되었습니까? 여자는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게 됩니다. 죄를 짓고 타락으로 인해서 동등한 관계였던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주종관계로 바뀌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으로부터 모든 남자들은 여자의 말을 듣습니다. 솔로몬도 위대한 왕이었지만 아내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삼손도 아내의 말을 듣고 머리털이 잘리고 눈이 뽑히고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아합도 아내 이세벨의 말을 듣고 나라를 망쳤습니다. 남자는 하루 밥 세끼를 먹고 살기위해서 평생에 수고하여야 합니다. 비옥했던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 수고를 더해야 합니다. 씨를 뿌리면 100배의 수확을 하던 데서 겨우 본전을 수확 할 정도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아담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아담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박살내고 그들을 구원한다는 말씀을 듣고 아내의 이름을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하와라고 지었습니다. 그는 구원의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했지만 에덴동산을 회복할 것을 소망하셨고 생명나무도 보존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죄를 짓고 수치심과 도피 심리,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빠지는가 보았습니다. 죄의 결과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을 찾아와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죄사함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의 회복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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