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창2강(1:26-2: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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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2 강
말씀 | 창세기 1:26-2:3
요절 | 창세기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지난 주 동영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시고 창조하신 만물 특히 물고기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최고 걸작인 사람의 창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만물과 구별되고 또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왜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어떤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어떤 특별한 뜻을 두셨습니까? 26,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의논을 하셨습니다. 창조한 만물을 다스릴 존재를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사람도 영적인 존재여야 하고, 하나님은 인격이시기에 사람도 지정의라는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람이 이성이 있기에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을 합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기에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사람은 지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달에서도 거주하고 화성에서도 거주할 수 있도록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은 걸어다니다가 말을 타고 마차를 타고 이제는 자동차와 기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어 여행을 합니다. 법과 윤리 체계, 사상과 지식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인간도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인간도 희생적인 사랑을 할 때 진정한 만족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사람도 의롭고 진실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그를 닮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임을 인식할 때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존감이 높을수록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집니다. 또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눈치를 보거나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귀한 존재임을 알 때 자신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관이 있을 때 사람에게 무시를 받아도 괘념치 않고 넘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볼 때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목자님이 처음부터 존댓말을 써줄 때 자신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귀하게 여기며 섬길 때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녀들에게도 “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야, 왕 같은 제사장이야”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르게 성장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은 여섯째 날 흙으로 지어졌지만 한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다’라고 단순하게 평가는 할 수 있으나 깊이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이면서도 비이성적이고, 사랑이 많은 것 같은데 이기적이고, 온유한 것 같은데 사납고, 강한 것 같은데 약하고, 완전한 경우에는 동물 중에서 가장 훌륭하지만 그 법과 정의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경우에는 최악입니다. 인간이 다른 맹수보다도 극악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도 있고 흙으로 지어진 존재로서 짐승보다 못한 사람으로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데에는 사탄의 꾀에 빠져서 타락한데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성자가 되면 될수록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입니다. 겸손하고 욕심이 없고 해맑아 보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귀신에 사로잡혀 밤낮 무덤 사이에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살았습니다. 그가예수님을 만남으로 귀신이 나가고 온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함께 왕비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심으로 조화와 관계성을 맺으면서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공동체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역동적인 사랑을 하심으로 참된 만족을 누리시며 창조역사와 구원 역사를 위해 함께 일하십니다. 남자만 있는 세상은 얼마나 사납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을 때 즐겁고 부드럽고 더 풍성합니다. 우리도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지만 다른 점이 있음을 알아 서로 배우고 기쁨과 감동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 백성들의 자기 인식은 노예였습니다.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 이용당하고 끝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지음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은 신의 아들이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존귀한 존재는 왕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하나님을 대리해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우리는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개간하고 가꾸는 가운데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의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이 잘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에는 뇌가 많이 상해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타락했을 때 하나님의 형상도 파괴되었습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전적 부패란 구원과 관련하여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는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모델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문제를 다루면서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목자님들의 마음을 볼 때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나의 수준이 어디에 이르렀던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풍성히 누릴 때 삶이 풍성하고 행복합니다. 또 하나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누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복’하면 오복을 생각합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평안하고 덕을 쌓고 부모님이 오래 사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복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벌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지만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로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들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들이 짓지 아니한 집을 주셨고 그들이 심지 아니한 과목을 얻었고 그들이 쌓지 아니한 성벽 있는 도시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은혜로 현재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은 구체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보배입니다.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 웃음을 주는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끄나풀을 놓지 않게 하는 희망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많이 낳아야 합니다. 이 명령이 아브라함에게서 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출애굽기에서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말씀으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세계 각 나라에 개척되지 않은 캠퍼스들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제자 양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2041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선교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명에 충성하려면 먼저 우리가 개척하고 있는 홍대에서부터 제자양성역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청년 일꾼들이 일어나야 세계선교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봄 학기에 한 명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고 제자양성하는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땅을 잘 개간하고 쓸 만한 곳으로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지구는 공해와 미세 먼지와 플라스틱 공해 등으로 사는 것이 힘들게 되었습니다. 바다 쓰레기, 우주의 쓰레기를 청소해야 합니다. 지금 멸종되어 가는 동식물종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보전을 위해서 세계적인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땅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다양하게 있습니다. 정복하라는 말씀은 우리 내면에 있는 열등감, 운명주의, 패배주의도 정복하고 다스려 본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우리가 다스리라고 말씀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생물을 연구하고 지혜롭게 관리해야 합니다.
마오쩌둥은 1958년 벼를 쪼아 먹는 참새를 해로운 새로 규정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인민의 먹거리를 가로채는 참새가 인민의 적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마오의 지시로 참새 소탕전이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참새가 떼죽임을 당했습니다. 천적이 사라지고 먹이사슬이 깨지자 해충이 창궐했습니다. 흉년과 기근이 닥치면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뒤늦게 연해주에서 참새를 공수했지만 ‘새 발의 피’였습니다. 치명적인 실책으로 마오의 정치적 기반이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생태계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문화명령을 잘 감당하여 사람과 만물이 복을 누리고 번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명을 먼저 감당할 때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사람과 짐승이 먹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주셨습니다. 먹을 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핀잔을 주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도 주시고 밥도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돈을 벌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힘과 지혜와 재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입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생긴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는 사명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죽도록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도록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때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보고 생각 좀 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미물들도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신 소감이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여섯째 날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작품입니다. 키가 좀 작건, 크건, 몸이 날씬하건 좀 퍼졌건, 코가 좀 높건 낮건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외모를 중시하기 때문에 화장품과 성형, 옷에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겉모습보다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선행을 힘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선택하고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 천지 만물이 다 이루어진 후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은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기 시작한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그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내가 맡은 모든 일을 행할 것이지만 일곱째 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기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일상적인 일을 쉬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쉼을 통해서 재충전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쉼은 맡은 일을 힘써 행한 다음에 옵니다. 우리가 힘써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주일에 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잘 쉬어야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쉼이 없는 삶은 곧 지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제정하심으로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진정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했을 때 마음에서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한 주가 시작되는 주일에 쉼을 갖고 예배를 드립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것을 상징하는 날이며,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첫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라면, 신약의 주일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주일에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땅에서 누리는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합니다. 신명기 5:15을 보면 애굽에서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를 볼 때 참된 안식은 종되었던 삶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서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 안식은 죄와 죽음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완전히 누리게 됩니다(히4:3). 창조 후에 하나님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사건과 그 이후의 역사를 구분하는 것으로 봅니다. 동시에 영원한 안식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 속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참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로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가운데 쉼을 누리고 한 주를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1:26-2:3
요절 | 창세기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지난 주 동영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시고 창조하신 만물 특히 물고기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최고 걸작인 사람의 창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만물과 구별되고 또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왜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어떤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어떤 특별한 뜻을 두셨습니까? 26,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의논을 하셨습니다. 창조한 만물을 다스릴 존재를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사람도 영적인 존재여야 하고, 하나님은 인격이시기에 사람도 지정의라는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람이 이성이 있기에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을 합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기에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사람은 지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달에서도 거주하고 화성에서도 거주할 수 있도록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은 걸어다니다가 말을 타고 마차를 타고 이제는 자동차와 기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어 여행을 합니다. 법과 윤리 체계, 사상과 지식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인간도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인간도 희생적인 사랑을 할 때 진정한 만족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사람도 의롭고 진실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그를 닮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임을 인식할 때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존감이 높을수록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집니다. 또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눈치를 보거나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귀한 존재임을 알 때 자신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관이 있을 때 사람에게 무시를 받아도 괘념치 않고 넘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볼 때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목자님이 처음부터 존댓말을 써줄 때 자신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귀하게 여기며 섬길 때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녀들에게도 “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야, 왕 같은 제사장이야”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르게 성장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은 여섯째 날 흙으로 지어졌지만 한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다’라고 단순하게 평가는 할 수 있으나 깊이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이면서도 비이성적이고, 사랑이 많은 것 같은데 이기적이고, 온유한 것 같은데 사납고, 강한 것 같은데 약하고, 완전한 경우에는 동물 중에서 가장 훌륭하지만 그 법과 정의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경우에는 최악입니다. 인간이 다른 맹수보다도 극악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도 있고 흙으로 지어진 존재로서 짐승보다 못한 사람으로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데에는 사탄의 꾀에 빠져서 타락한데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성자가 되면 될수록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입니다. 겸손하고 욕심이 없고 해맑아 보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귀신에 사로잡혀 밤낮 무덤 사이에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살았습니다. 그가예수님을 만남으로 귀신이 나가고 온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함께 왕비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심으로 조화와 관계성을 맺으면서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공동체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역동적인 사랑을 하심으로 참된 만족을 누리시며 창조역사와 구원 역사를 위해 함께 일하십니다. 남자만 있는 세상은 얼마나 사납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을 때 즐겁고 부드럽고 더 풍성합니다. 우리도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지만 다른 점이 있음을 알아 서로 배우고 기쁨과 감동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 백성들의 자기 인식은 노예였습니다.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 이용당하고 끝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지음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은 신의 아들이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존귀한 존재는 왕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하나님을 대리해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우리는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개간하고 가꾸는 가운데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의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이 잘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에는 뇌가 많이 상해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타락했을 때 하나님의 형상도 파괴되었습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전적 부패란 구원과 관련하여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는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모델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문제를 다루면서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목자님들의 마음을 볼 때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나의 수준이 어디에 이르렀던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풍성히 누릴 때 삶이 풍성하고 행복합니다. 또 하나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누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복’하면 오복을 생각합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평안하고 덕을 쌓고 부모님이 오래 사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복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벌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지만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로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들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들이 짓지 아니한 집을 주셨고 그들이 심지 아니한 과목을 얻었고 그들이 쌓지 아니한 성벽 있는 도시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은혜로 현재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은 구체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보배입니다.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 웃음을 주는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끄나풀을 놓지 않게 하는 희망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많이 낳아야 합니다. 이 명령이 아브라함에게서 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출애굽기에서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말씀으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세계 각 나라에 개척되지 않은 캠퍼스들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제자 양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2041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선교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명에 충성하려면 먼저 우리가 개척하고 있는 홍대에서부터 제자양성역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청년 일꾼들이 일어나야 세계선교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봄 학기에 한 명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고 제자양성하는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땅을 잘 개간하고 쓸 만한 곳으로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지구는 공해와 미세 먼지와 플라스틱 공해 등으로 사는 것이 힘들게 되었습니다. 바다 쓰레기, 우주의 쓰레기를 청소해야 합니다. 지금 멸종되어 가는 동식물종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보전을 위해서 세계적인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땅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다양하게 있습니다. 정복하라는 말씀은 우리 내면에 있는 열등감, 운명주의, 패배주의도 정복하고 다스려 본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우리가 다스리라고 말씀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생물을 연구하고 지혜롭게 관리해야 합니다.
마오쩌둥은 1958년 벼를 쪼아 먹는 참새를 해로운 새로 규정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인민의 먹거리를 가로채는 참새가 인민의 적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마오의 지시로 참새 소탕전이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참새가 떼죽임을 당했습니다. 천적이 사라지고 먹이사슬이 깨지자 해충이 창궐했습니다. 흉년과 기근이 닥치면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뒤늦게 연해주에서 참새를 공수했지만 ‘새 발의 피’였습니다. 치명적인 실책으로 마오의 정치적 기반이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생태계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문화명령을 잘 감당하여 사람과 만물이 복을 누리고 번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명을 먼저 감당할 때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사람과 짐승이 먹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주셨습니다. 먹을 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핀잔을 주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도 주시고 밥도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돈을 벌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힘과 지혜와 재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입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생긴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는 사명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죽도록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도록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때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보고 생각 좀 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미물들도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신 소감이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여섯째 날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작품입니다. 키가 좀 작건, 크건, 몸이 날씬하건 좀 퍼졌건, 코가 좀 높건 낮건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외모를 중시하기 때문에 화장품과 성형, 옷에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겉모습보다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선행을 힘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선택하고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 천지 만물이 다 이루어진 후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은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기 시작한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그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내가 맡은 모든 일을 행할 것이지만 일곱째 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기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일상적인 일을 쉬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쉼을 통해서 재충전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쉼은 맡은 일을 힘써 행한 다음에 옵니다. 우리가 힘써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주일에 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잘 쉬어야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쉼이 없는 삶은 곧 지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제정하심으로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진정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했을 때 마음에서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한 주가 시작되는 주일에 쉼을 갖고 예배를 드립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것을 상징하는 날이며,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첫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라면, 신약의 주일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주일에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땅에서 누리는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합니다. 신명기 5:15을 보면 애굽에서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를 볼 때 참된 안식은 종되었던 삶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서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 안식은 죄와 죽음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완전히 누리게 됩니다(히4:3). 창조 후에 하나님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사건과 그 이후의 역사를 구분하는 것으로 봅니다. 동시에 영원한 안식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 속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참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로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가운데 쉼을 누리고 한 주를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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