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9년 창1강(1:1-25)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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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1 강
말씀 | 창세기 1:1-25
요절 | 창세기 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기원에 관한 책입니다. 우주와 지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사람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역사책인데 일반역사가 아니라 창조 역사와 구원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창세기는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 가정의 기원, 민족과 언어의 기원, 불행과 구원의 기원 등 모든 기원을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우리는 우주와 인간과 죄와 불행의 기원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현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천지가 언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권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혜와 권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1절에서 태초는 영원의 한 시점입니다. 시간이 창조되었고 시간은 역사의 재료입니다. 천지는 하늘들과 지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천지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선언이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입니다.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 토론하지 않습니다. 논증하지 않습니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내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어 태양은 변함없이 뜨고 집니다. 태양을 받아들이고 그 앞으로 나아간 사람은 밝고 빛난 삶을 살며, 태양의 존재를 부정하고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간 사람은 계속 어둠속에 살 듯,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을 때 혼돈과 공허와 슬픔, 무의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밝고 빛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태초에’라는 말은 시간의 시작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영원의 한 시점에서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의 역사관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창조하셨다’는 것은 원어로 ‘바라’라는 동사입니다. 히브리어는 만들다는 동사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 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고 다른 단어는 “아사”로서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는 1000억 개의 별을 가진 은하계가 1000억개 이상이 있습니다. 태양계는 단지 9개의 행성이 있는 우주의 작은 동네입니다. 우주의 크기는 139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주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태양계도 꽤 크고 우리에게 태양계만 있어도 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크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알 때 우리가 가진 문제들이 작아짐을 체험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창세기는 이런 것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원은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행동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창세기의 저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출 3:14)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현재형으로 자존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창세기 1장 1절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천지는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렇게나 살다가 갈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발견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즉 창세기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날 때 나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지 않으셨으면 이 천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천지가 존재하지 않은 적은 있어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 적은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십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원한 경배와 찬양과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우리를 돕는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수단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중심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성경에 나온 모든 기적을 믿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어떤 기적이라도 믿을 수 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기적,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이런 기적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을 믿으므로 성경의 모든 기적을 믿고 우리 삶에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기적입니다.
2절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한 상태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은 텅 비어 있는 상태와 무질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허’는 텅 빔, 공허, 황폐함 등을 뜻합니다. 흑암과 깊음은 빛과 땅과 대조를 이룹니다. ‘깊음’은 깊은 물 곧 심해, 대양, 지하수 등을 뜻합니다. 처음 창조된 세상은 텅 비어 있었으며 어떤 형태도 없었고 생명도 없었고 빛도 없었고 질서도 없는 가운데 무서운 적막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은 창조역사를 통해서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시고 공허가 충만이 되게 하시고 흑암이 빛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운행하다’는 것은 휘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휘돌며 행동할 준비가 된 하나님의 영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 사역의 주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십니다.
첫째 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먼저 빛을 만드셨습니다. 현재 발견된 빛의 종류는 3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빛이 태양보다 먼저 존재하였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첫 작품이었습니다. 빛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볼 수 있게 하고, 생명이 살 수 있게 합니다. 빛이 없으면 세상은 흑암과 혼돈의 세계로 존재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말씀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은 종종 비유적으로 생명, 구원, 축복,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말씀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빛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자신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일 때 진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성령의 빛, 진리의 빛,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날에는 하나님이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에 수분 형태로 존재하였습니다. 궁창은 별똥별과 자외선 등 우주로부터 지구로 떨어지는 유해한 것들을 차단하였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열과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고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홍수 심판 전에 인간의 수명이 1000년에 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거대한 식물들과 동물들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셨습니다. 바다와 육지의 비율은 7:3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물들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비율로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또 바닷물 속에는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즉 해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는 높낮이가 없기 때문에 어디서 어디로 흐를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바닷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닷물이 다 썩어서 고기들이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셔서 바닷물이 고여 있지 않고 흐르도록 만드셨습니다. 바람이 해면위로 불게 되면 해면에 나타나는 응력 때문에 수심 100km 깊이까지 바닷물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가 겉으로 볼 때는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속에서는 거대한 해류가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식물은 30만종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식물은 4천종이 있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사과, 딸기, 배, 감, 파인애플, 바나나, 망고, 밤, 대추, 호두 등등 맛있는 과일과 열매들을 계절마다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인간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푸른 풀과 채소와 과일들을 철마다 때마다 풍성하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하늘의 궁창에 태양과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태양 주위를 지구가 자전하면서 낮과 밤을 만들고 공전을 하면서 일 년과 사계절을 만듭니다. 우리의 행성은 24시간 만에 축을 중심으로 한바퀴 자전하는데 우리는 이 시간을 “하루”로 정하였습니다. 또 지구가 한번 태양을 도는 시간이 정확하게 365.25641일인데 이것이 일 년입니다. 일 년을 단위로 큰 계획을 세우며 살면서 지루하지 않게 4계절을 주셨습니다. 태양계는 이 지상의 어떤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오차가 없는 하나님의 시계입니다. 천체들이 이처럼 정확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물들에 고기들이 충만하게 만드셨고 하늘에는 각종 새가 날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큰 바다 짐승들로는 고래, 상어, 악어, 고래상어는 크기가 18m나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물 반, 고기 반이었습니다.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셨습니다. 독수리, 참새, 비둘기, 까마귀, 부엉이, 딱따구리, 익룡 등등. 새들은 하늘을 잘 날아다닐 수 있도록 몸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뼈 속이 다 비어 있습니다. 또 그 몸의 구조도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도록 방추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새를 본받아서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비행기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며칠 전에 에디오피아에서 사고가 나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하찮은 참새나 뱁새 한 마리도 사고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육축과 각종 곤충류와 짐승들을 만드시고 최후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시베리아에는 맘모스의 화석이 있고 미국과 몽골과 우리나라 여수에는 공룡의 화석과 발자국들이 있습니다. 호랑이, 코끼리, 사자, 토끼, 낙타, 소, 말 등 육축과 짐승들, 벌, 모기, 파리, 나비 등 곤충과 동물이 150만종이나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완벽한 설계 가운데서 세상 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일정한 영역을 구분하셨습니다. 넷째 날, 다섯 째 날, 여섯 째 날에는 그 영역을 채우셨습니다.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넷째 날 해와 달과 별들로 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6일간 철저한 계획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질서와 조직과 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으로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십니다(히1:3). 이 자연법칙을 어길 때 생명을 잃게 됩니다. 새가 하늘을 버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버리고 땅으로 올라오면 또 죽습니다. 하나님 – 인간 – 만물이라는 질서를 유지할 때 생명이 풍성하게 됩니다. 질서는 곧 생명입니다. 인간이 질서를 벗어나서 범죄하게 되었을 때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였을 때 심각한 환경오염이 생기게 되고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창조질서를 인정하고 그 질서 속에 살 때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또한 이 질서 속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개인과 가정과 국가가 파괴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1장 전체에 10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과 동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쌍둥이라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문이 모두 다르고 키가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사람이 있고 외양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시지 않고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다양성 속에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양성 속의 질서와 조화는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요! 시편 기자는 이를 보고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찬양하였습니다(시8:2).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본문에는 ‘이르시되’ 라는 말씀과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씀이 10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3절을 보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종류인데 선포되는 말씀과 기록된 말씀 입니다. 기록된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공부할 때 놀라운 창조의 역사, 빛의 역사, 충만의 역사, 무질서가 정리되는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 분의 행동이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히4:12).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벧전1:23).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은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각 피조물들을 만드시고 “좋았더라”고 소감발표를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하나님 자신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웅장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은 말씀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리는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시고 거듭나게 하실 때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발견하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새가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들립니다. 강물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들에 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조차도 다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 인생이 이처럼 달라지게 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뿐만 아니라 궁창, 뭍, 모인 물의 이름을 지으십니다(5,8,10).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 것은 그것에 대한 소유권, 주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 모든 것의 소유주시오 지배자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온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주시오 나 자신은 피조물이란 사실을 알고 분수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실로 최고의 예술가이시며 그 지혜가 무궁무진하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나를 보내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시다. 전도서 12장 1,2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우리가 자연과 말씀을 연구함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인정하고, 의뢰하며,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성경적인 가치관, 인생관, 결혼관, 역사관, 세계관을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인생기초를 이 창조주 하나님께 놓음으로서, 뿌리 깊은 인생, 의미 있는 인생, 창조적인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1:1-25
요절 | 창세기 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기원에 관한 책입니다. 우주와 지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사람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역사책인데 일반역사가 아니라 창조 역사와 구원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창세기는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 가정의 기원, 민족과 언어의 기원, 불행과 구원의 기원 등 모든 기원을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우리는 우주와 인간과 죄와 불행의 기원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현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천지가 언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권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혜와 권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1절에서 태초는 영원의 한 시점입니다. 시간이 창조되었고 시간은 역사의 재료입니다. 천지는 하늘들과 지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천지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선언이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입니다.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 토론하지 않습니다. 논증하지 않습니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내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어 태양은 변함없이 뜨고 집니다. 태양을 받아들이고 그 앞으로 나아간 사람은 밝고 빛난 삶을 살며, 태양의 존재를 부정하고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간 사람은 계속 어둠속에 살 듯,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을 때 혼돈과 공허와 슬픔, 무의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밝고 빛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태초에’라는 말은 시간의 시작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영원의 한 시점에서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의 역사관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창조하셨다’는 것은 원어로 ‘바라’라는 동사입니다. 히브리어는 만들다는 동사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 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고 다른 단어는 “아사”로서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는 1000억 개의 별을 가진 은하계가 1000억개 이상이 있습니다. 태양계는 단지 9개의 행성이 있는 우주의 작은 동네입니다. 우주의 크기는 139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주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태양계도 꽤 크고 우리에게 태양계만 있어도 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크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알 때 우리가 가진 문제들이 작아짐을 체험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창세기는 이런 것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원은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행동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창세기의 저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출 3:14)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현재형으로 자존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창세기 1장 1절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천지는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렇게나 살다가 갈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발견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즉 창세기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날 때 나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지 않으셨으면 이 천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천지가 존재하지 않은 적은 있어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 적은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십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원한 경배와 찬양과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우리를 돕는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수단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중심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성경에 나온 모든 기적을 믿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어떤 기적이라도 믿을 수 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기적,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이런 기적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을 믿으므로 성경의 모든 기적을 믿고 우리 삶에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기적입니다.
2절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한 상태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은 텅 비어 있는 상태와 무질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허’는 텅 빔, 공허, 황폐함 등을 뜻합니다. 흑암과 깊음은 빛과 땅과 대조를 이룹니다. ‘깊음’은 깊은 물 곧 심해, 대양, 지하수 등을 뜻합니다. 처음 창조된 세상은 텅 비어 있었으며 어떤 형태도 없었고 생명도 없었고 빛도 없었고 질서도 없는 가운데 무서운 적막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은 창조역사를 통해서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시고 공허가 충만이 되게 하시고 흑암이 빛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운행하다’는 것은 휘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휘돌며 행동할 준비가 된 하나님의 영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 사역의 주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십니다.
첫째 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먼저 빛을 만드셨습니다. 현재 발견된 빛의 종류는 3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빛이 태양보다 먼저 존재하였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첫 작품이었습니다. 빛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볼 수 있게 하고, 생명이 살 수 있게 합니다. 빛이 없으면 세상은 흑암과 혼돈의 세계로 존재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말씀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은 종종 비유적으로 생명, 구원, 축복,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말씀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빛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자신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일 때 진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성령의 빛, 진리의 빛,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날에는 하나님이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에 수분 형태로 존재하였습니다. 궁창은 별똥별과 자외선 등 우주로부터 지구로 떨어지는 유해한 것들을 차단하였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열과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고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홍수 심판 전에 인간의 수명이 1000년에 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거대한 식물들과 동물들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셨습니다. 바다와 육지의 비율은 7:3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물들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비율로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또 바닷물 속에는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즉 해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는 높낮이가 없기 때문에 어디서 어디로 흐를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바닷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닷물이 다 썩어서 고기들이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셔서 바닷물이 고여 있지 않고 흐르도록 만드셨습니다. 바람이 해면위로 불게 되면 해면에 나타나는 응력 때문에 수심 100km 깊이까지 바닷물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가 겉으로 볼 때는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속에서는 거대한 해류가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식물은 30만종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식물은 4천종이 있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사과, 딸기, 배, 감, 파인애플, 바나나, 망고, 밤, 대추, 호두 등등 맛있는 과일과 열매들을 계절마다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인간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푸른 풀과 채소와 과일들을 철마다 때마다 풍성하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하늘의 궁창에 태양과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태양 주위를 지구가 자전하면서 낮과 밤을 만들고 공전을 하면서 일 년과 사계절을 만듭니다. 우리의 행성은 24시간 만에 축을 중심으로 한바퀴 자전하는데 우리는 이 시간을 “하루”로 정하였습니다. 또 지구가 한번 태양을 도는 시간이 정확하게 365.25641일인데 이것이 일 년입니다. 일 년을 단위로 큰 계획을 세우며 살면서 지루하지 않게 4계절을 주셨습니다. 태양계는 이 지상의 어떤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오차가 없는 하나님의 시계입니다. 천체들이 이처럼 정확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물들에 고기들이 충만하게 만드셨고 하늘에는 각종 새가 날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큰 바다 짐승들로는 고래, 상어, 악어, 고래상어는 크기가 18m나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물 반, 고기 반이었습니다.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셨습니다. 독수리, 참새, 비둘기, 까마귀, 부엉이, 딱따구리, 익룡 등등. 새들은 하늘을 잘 날아다닐 수 있도록 몸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뼈 속이 다 비어 있습니다. 또 그 몸의 구조도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도록 방추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새를 본받아서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비행기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며칠 전에 에디오피아에서 사고가 나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하찮은 참새나 뱁새 한 마리도 사고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육축과 각종 곤충류와 짐승들을 만드시고 최후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시베리아에는 맘모스의 화석이 있고 미국과 몽골과 우리나라 여수에는 공룡의 화석과 발자국들이 있습니다. 호랑이, 코끼리, 사자, 토끼, 낙타, 소, 말 등 육축과 짐승들, 벌, 모기, 파리, 나비 등 곤충과 동물이 150만종이나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완벽한 설계 가운데서 세상 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일정한 영역을 구분하셨습니다. 넷째 날, 다섯 째 날, 여섯 째 날에는 그 영역을 채우셨습니다.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넷째 날 해와 달과 별들로 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6일간 철저한 계획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질서와 조직과 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으로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십니다(히1:3). 이 자연법칙을 어길 때 생명을 잃게 됩니다. 새가 하늘을 버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버리고 땅으로 올라오면 또 죽습니다. 하나님 – 인간 – 만물이라는 질서를 유지할 때 생명이 풍성하게 됩니다. 질서는 곧 생명입니다. 인간이 질서를 벗어나서 범죄하게 되었을 때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였을 때 심각한 환경오염이 생기게 되고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창조질서를 인정하고 그 질서 속에 살 때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또한 이 질서 속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개인과 가정과 국가가 파괴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1장 전체에 10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과 동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쌍둥이라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문이 모두 다르고 키가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사람이 있고 외양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시지 않고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다양성 속에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양성 속의 질서와 조화는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요! 시편 기자는 이를 보고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찬양하였습니다(시8:2).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본문에는 ‘이르시되’ 라는 말씀과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씀이 10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3절을 보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종류인데 선포되는 말씀과 기록된 말씀 입니다. 기록된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공부할 때 놀라운 창조의 역사, 빛의 역사, 충만의 역사, 무질서가 정리되는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 분의 행동이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히4:12).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벧전1:23).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은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각 피조물들을 만드시고 “좋았더라”고 소감발표를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하나님 자신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웅장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은 말씀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리는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시고 거듭나게 하실 때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발견하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새가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들립니다. 강물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들에 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조차도 다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 인생이 이처럼 달라지게 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뿐만 아니라 궁창, 뭍, 모인 물의 이름을 지으십니다(5,8,10).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 것은 그것에 대한 소유권, 주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 모든 것의 소유주시오 지배자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온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주시오 나 자신은 피조물이란 사실을 알고 분수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실로 최고의 예술가이시며 그 지혜가 무궁무진하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나를 보내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시다. 전도서 12장 1,2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우리가 자연과 말씀을 연구함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인정하고, 의뢰하며,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성경적인 가치관, 인생관, 결혼관, 역사관, 세계관을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인생기초를 이 창조주 하나님께 놓음으로서, 뿌리 깊은 인생, 의미 있는 인생, 창조적인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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