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9년 창22강(43:1-36:43) 벧엘로 올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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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22 강
말씀 | 창세기 34:1-36:43
요절 | 창세기 35:1
벧엘로 올라가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얍복강 가에서 밤새 씨름해 주셨습니다. 허벅지 관절이 상한 야곱은 하나님께 복을 주시도록 울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물으시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평안을 얻고 그의 문제가 해결되자 세겜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외동딸 디나가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도록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영적인 교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이 세겜에 머물 때에 외동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디나에게 연연하며 사랑하여 여러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간청하였습니다. 야곱은 잠잠하였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다가 돌아와 분개하였습니다. 하몰은 그들에게 “디나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우리와 통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수치라고 말하였습니다. 대신에 그들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통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디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이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다 할례를 받고 그들과 통혼하며 매매를 하자고 설득하였습니다. 세겜 성의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도 죽이고 디나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습니다. 그들의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0).” 이에 대해 그들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하면서 대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야곱이 이 세상에서 안정을 누리고자 하다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조상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벧엘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에 이 세상에 안주하고자 밭을 사고 먼저 세상의 복을 누리고자 할 때 원치 않게 환난이 닥쳐오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은 백개를 주고 산 세겜은 팔레스틴 지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땅이 넓고 비옥해서 그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 중에 하나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아버지 집을 떠나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험악한 나그네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자식과 재산을 얻었고 에서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삶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떠돌아다니며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옥하고 풀이 넉넉한 세겜 땅에 정착해서 편히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겜에 땅을 사서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 가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이행해야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디나 사건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훈은 그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그 땅에 남아 있던 가나안 족속과 교류하고 통혼하면서 여호와 신앙이 타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말라기 시대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혼합주의 신앙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간섭하십니다. 세상의 잔재미에 빠져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통해서 경책하십니다. 죄악 되고 안일한 삶에서 깨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일에 푹 빠져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명에 대한 열정이 식어갈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통해서 깨어나게 하십니다. 깨어 믿음의 경주를 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곤경에 처한 야곱에게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35:1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민 중에서 택함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우리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모입니다. 교회는 여러 목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말씀을 받고 교제를 나누고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고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무슨 무슨 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상처를 받고 실망도 하고 지루한 설교를 듣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필요 이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습니까?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세 가지를 준비시켰습니다.
첫째는, 이방 신상을 없애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야곱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방신상을 두고 섬겼습니다. 특히 라헬은 집안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이방 신도 섬겼습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려면 이방 신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제사를 드리거나 점이나 관상이나 운수 같은 것을 보면 안 됩니다. 이방 신상이 아니더라도 하나님보다 돈이나 성공이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한다면 이것 역시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려면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죄악 된 습관들도 벗어버려야 합니다(엡4:22-24).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할 때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준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기를 원하시는데 복을 받을 깨끗한 그릇이 되지 않으면 복을 부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회개하는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으려면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셋째는, 의복을 바꾸어 입도록 했습니다. 의복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해줍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는 것은 새롭고 정결하게 된 생활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이때까지 세상 사람들의 복장을 하고 세상 풍습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3:12-14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만 영적인 신분만은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봄에 나무에 생명의 기운이 돌게 되면 파릇파릇한 잎과 꽃으로 옷입 듯이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면 예수님의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옷을 입은 사람은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야곱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야곱의 방향에 순종하여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빼서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묻었다는 것은 미련 없이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방 신상과 귀고리들을 묻으면서 이방 풍습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던 삶도 함께 묻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영적 각성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엘벧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자신이 처음 만난 하나님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야곱의 신앙여정은 벧엘에서 시작해서 밧단아람과 세겜을 거쳐 다시 벧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 벧엘에 왔을 때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의 조상으로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에 기초해서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벧엘을 떠나서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고달픈 타향살이를 하면서 많은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세겜 땅에 정착했다가 디나 사건을 만났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영적 안일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벧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신앙생활은 벧엘에서 시작해서 다시 벧엘로 돌아오면서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후에 그의 믿음을 인정받은 것처럼, 벧엘로 돌아와서 이때까지 자신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의 제단을 쌓으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야곱의 신앙은 거의 마무리됩니다.
야곱이 처음 벧엘을 출발할 때는 불순물이 많았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벧엘로 돌아왔을 때는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의 신앙도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 문답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허무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야곱은 벧엘로 돌아온 후에 이런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 벧엘로 돌아와 예배하는 야곱에게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첫째, 야곱을 만나 주시고 그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시고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그의 이름이 되리라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름이 바뀐 것은 존재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 주심으로서 언약의 계승자로 굳게 세우셨습니다.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라는 말씀은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는 말씀의 새로운 표현입니다(17:4).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오리라” 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공동체는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지만 그 민족을 다스릴 왕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후손에서 나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다윗의 언약에서 다시 반복됩니다(삼하7:12). 이 약속은 결국 그의 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가족의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야곱 한 사람의 회개가 가족들 전체의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가족이 변화되고 교회가 부흥되고 국가가 부흥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넷째, 가족의 부흥으로 자녀들이 복을 받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요셉이 꿈을 꾸고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구원 역사에 귀히 쓰임을 받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세계 선교에 귀히 쓰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물질로도 축복해 주십니다. 그 물질을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그때 더욱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삭이 블레셋에서 실패했던 것처럼 야곱은 세겜에서 실패했지만 이 실패가 야곱과 그의 가족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겜에서 넘어진 후에 야곱의 가족은 회개하고 벧엘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갱신함으로서 더욱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야곱은 많은 것을 움켜잡고자 경쟁하였지만 결국에는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됩니다. 어머니를 리브가를 잃고 그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심히 통곡했습니다(8). 그 유모 드보라는 야곱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라헬을 떠나보내고 아버지 이삭을 장사 지내고 요셉을 잃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축복을 쟁취하는 사람에서 축복하는 자로 서서히 변모합니다. 야곱은 자기 성실과 의지가 강하여 변화되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시고 불같은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합당한 성품을 덧입게 하십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 | 창세기 34:1-36:43
요절 | 창세기 35:1
벧엘로 올라가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얍복강 가에서 밤새 씨름해 주셨습니다. 허벅지 관절이 상한 야곱은 하나님께 복을 주시도록 울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물으시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평안을 얻고 그의 문제가 해결되자 세겜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외동딸 디나가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도록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영적인 교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이 세겜에 머물 때에 외동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디나에게 연연하며 사랑하여 여러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간청하였습니다. 야곱은 잠잠하였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다가 돌아와 분개하였습니다. 하몰은 그들에게 “디나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우리와 통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수치라고 말하였습니다. 대신에 그들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통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디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이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다 할례를 받고 그들과 통혼하며 매매를 하자고 설득하였습니다. 세겜 성의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도 죽이고 디나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습니다. 그들의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0).” 이에 대해 그들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하면서 대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야곱이 이 세상에서 안정을 누리고자 하다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조상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벧엘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에 이 세상에 안주하고자 밭을 사고 먼저 세상의 복을 누리고자 할 때 원치 않게 환난이 닥쳐오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은 백개를 주고 산 세겜은 팔레스틴 지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땅이 넓고 비옥해서 그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 중에 하나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아버지 집을 떠나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험악한 나그네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자식과 재산을 얻었고 에서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삶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떠돌아다니며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옥하고 풀이 넉넉한 세겜 땅에 정착해서 편히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겜에 땅을 사서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 가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이행해야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디나 사건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훈은 그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그 땅에 남아 있던 가나안 족속과 교류하고 통혼하면서 여호와 신앙이 타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말라기 시대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혼합주의 신앙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간섭하십니다. 세상의 잔재미에 빠져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통해서 경책하십니다. 죄악 되고 안일한 삶에서 깨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일에 푹 빠져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명에 대한 열정이 식어갈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통해서 깨어나게 하십니다. 깨어 믿음의 경주를 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곤경에 처한 야곱에게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35:1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민 중에서 택함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우리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모입니다. 교회는 여러 목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말씀을 받고 교제를 나누고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고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무슨 무슨 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상처를 받고 실망도 하고 지루한 설교를 듣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필요 이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습니까?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세 가지를 준비시켰습니다.
첫째는, 이방 신상을 없애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야곱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방신상을 두고 섬겼습니다. 특히 라헬은 집안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이방 신도 섬겼습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려면 이방 신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제사를 드리거나 점이나 관상이나 운수 같은 것을 보면 안 됩니다. 이방 신상이 아니더라도 하나님보다 돈이나 성공이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한다면 이것 역시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려면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죄악 된 습관들도 벗어버려야 합니다(엡4:22-24).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할 때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준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기를 원하시는데 복을 받을 깨끗한 그릇이 되지 않으면 복을 부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회개하는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으려면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셋째는, 의복을 바꾸어 입도록 했습니다. 의복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해줍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는 것은 새롭고 정결하게 된 생활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이때까지 세상 사람들의 복장을 하고 세상 풍습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3:12-14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만 영적인 신분만은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봄에 나무에 생명의 기운이 돌게 되면 파릇파릇한 잎과 꽃으로 옷입 듯이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면 예수님의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옷을 입은 사람은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야곱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야곱의 방향에 순종하여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빼서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묻었다는 것은 미련 없이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방 신상과 귀고리들을 묻으면서 이방 풍습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던 삶도 함께 묻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영적 각성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엘벧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자신이 처음 만난 하나님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야곱의 신앙여정은 벧엘에서 시작해서 밧단아람과 세겜을 거쳐 다시 벧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 벧엘에 왔을 때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의 조상으로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에 기초해서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벧엘을 떠나서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고달픈 타향살이를 하면서 많은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세겜 땅에 정착했다가 디나 사건을 만났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영적 안일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벧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신앙생활은 벧엘에서 시작해서 다시 벧엘로 돌아오면서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후에 그의 믿음을 인정받은 것처럼, 벧엘로 돌아와서 이때까지 자신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의 제단을 쌓으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야곱의 신앙은 거의 마무리됩니다.
야곱이 처음 벧엘을 출발할 때는 불순물이 많았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벧엘로 돌아왔을 때는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의 신앙도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 문답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허무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야곱은 벧엘로 돌아온 후에 이런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 벧엘로 돌아와 예배하는 야곱에게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첫째, 야곱을 만나 주시고 그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시고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그의 이름이 되리라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름이 바뀐 것은 존재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 주심으로서 언약의 계승자로 굳게 세우셨습니다.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라는 말씀은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는 말씀의 새로운 표현입니다(17:4).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오리라” 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공동체는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지만 그 민족을 다스릴 왕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후손에서 나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다윗의 언약에서 다시 반복됩니다(삼하7:12). 이 약속은 결국 그의 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가족의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야곱 한 사람의 회개가 가족들 전체의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가족이 변화되고 교회가 부흥되고 국가가 부흥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넷째, 가족의 부흥으로 자녀들이 복을 받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요셉이 꿈을 꾸고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구원 역사에 귀히 쓰임을 받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세계 선교에 귀히 쓰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물질로도 축복해 주십니다. 그 물질을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그때 더욱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삭이 블레셋에서 실패했던 것처럼 야곱은 세겜에서 실패했지만 이 실패가 야곱과 그의 가족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겜에서 넘어진 후에 야곱의 가족은 회개하고 벧엘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갱신함으로서 더욱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야곱은 많은 것을 움켜잡고자 경쟁하였지만 결국에는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됩니다. 어머니를 리브가를 잃고 그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심히 통곡했습니다(8). 그 유모 드보라는 야곱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라헬을 떠나보내고 아버지 이삭을 장사 지내고 요셉을 잃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축복을 쟁취하는 사람에서 축복하는 자로 서서히 변모합니다. 야곱은 자기 성실과 의지가 강하여 변화되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시고 불같은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합당한 성품을 덧입게 하십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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