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9년 창20강(29,30장) 야곱에게 열 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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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20 강
말씀 | 창세기 29,30장
요절 | 창세기 30:22,23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알마티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제 옆자리에 알마티 대학생이 앉았습니다. 그와 대화하면서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건축학도로서 경력을 쌓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저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힘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사랑은 불이요 무서운 동력입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의 인생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곱의 인생 열매는 그의 노력과 성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야곱이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합니다. 관계성을 맺으려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해야 합니다.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하란에서 왔다고 대답합니다. 야곱이 그들에게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묻자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는 중이라고 귀뜸을 해 줍니다. 야곱은 처음 본 목동들이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자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고 말을 합니다. 주제넘게 이래라 저래랴 하니 그들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하면서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 놓지 않았다며 핑계를 댑니다. 이때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양들이 왔습니다. 야곱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먼저 먹입니다. 그리고 나서 무엇을 합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습니다. 야곱은 정말 기사도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보는 친척이니 먼저 인사를 하고 그 다음에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주인의식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인사를 하였습니다. 라헬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는 자기감정을 따르기보다 먼저 할 일을 하였습니다.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 라반에게 알렸습니다. 한 달을 같이 지내보니 야곱은 밥값을 하는 대단한 일꾼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동계약을 체결합니다.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15).” 야곱은 품삯보다 무엇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까? 그의 마음은 라헬에게 가 있었습니다. 큰 언니 레아는 시력이 약하였지만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와우! 한 여인을 얻기 위해서 칠 년을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3년 정도면 충분한데 그는 그 두배의 삯을 치루겠다고 합니다. 로맨스도 이런 로맨스가 없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아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합니다. 진실한 사랑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장애물도 뚫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7년 기한이 차자 야곱이 라반에게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달라고 했습니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결혼식을 하고 잔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야곱이 첫날밤을 보내고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았습니다. 그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정말 라반을 죽이고 싶도록 화가 났을 것입니다. 야곱이 핏대를 세우며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우리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칠 일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를 위하여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칠년을 더 일을 해야 한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헬과 7일 후에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라반은 칠 일 후에 라헬을 야곱에게 아내로 주고 여종 빌하도 주어 시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라반은 한꺼번에 네 명의 자매님들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대단한 능력입니다. 야곱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라헬과 결혼을 한 후 다시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습니다. 속이는 자는 언젠가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라반은 깜깜한 밤에 언니 레아를 동생 라헬처럼 꾸며서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전에 형 에서처럼 털옷으로 꾸며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자신이 속였던 방법대로 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은 남을 속이면서 축복을 쟁취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깊이 절감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는데 한 여인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섬김만 받던 야곱이 섬기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오기 전에 야곱은 부자 집 아들로서 큰 고생 없이 섬김 받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삶은 그를 고집이 세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런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종처럼 섬기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특히 20년간 양치는 목자생활을 했습니다. 양 치는 생활은 매우 힘들고 잔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양의 똥 묻은 몸도 씻어주어야 하고 때마다 먹을 것을 공급해야 합니다. 양들의 상태를 살피고 아픈 양들을 섬세하게 돌봐야 합니다. 좋은 목초지를 찾아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힘든 목자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섬기는 것이 몸에 배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양치는 목자생활은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하는데 좋은 훈련이었습니다. 섬기는 생활을 통해서 그는 겸손과 믿음의 조상으로서 내면성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라반과 같은 훈련관들을 준비해 놓고 훈련하십니다. 그들을 통해서 나의 죄문제와 약점을 드러내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시어머니나 직장의 상사나 부하일 때도 있고 믿음의 동역자들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를 통해서도 훈련하십니다. 야곱에게 라반이 피할 수 없는 훈련관이었듯이 우리도 이들을 피해갈 수 없게 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깨질 것은 깨어져야 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 하나님이 쓰실만한 믿음으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원칙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모든 저주가 끝나게 되고 모든 심판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 회복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하고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4:14-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끝까지 인내하셔서 책임있고 정직하고 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까지 붙들어 주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 41:14).”
둘째는, 하나님은 네 명의 아내들을 통해서 야곱을 훈련하시고 열두 아들을 낳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라헬 한 사람만을 위해서 14년간 봉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14년 동안 레아와 라헬과 실바와 빌하 네 아내를 얻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열두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 보낸 14년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이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까? 야곱은 레아와도 결혼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라헬에게 향했습니다. 결혼기념일에는 라헬에게만 야생화 백송이를 꺾어다 주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항상 라헬과 카톡을 하고 그와 찍은 사진만 올렸습니다. 첫 아이도 사랑하는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로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괴로운 밤을 지내야 했던 레아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습니다.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습니다.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습니다. 야곱은 레아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결혼했으니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에게 6명의 아들을 낳게 하셔서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무자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29:31b)
라헬은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하자 언니를 시기하였습니다. 그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야곱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은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하는 라헬에게 성을 내었습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그러자 라헬은 그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 결혼을 시켰습니다. 빌하가 아들을 낳아 주자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습니다. 빌하가 다시 아들을 낳자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라헬의 시기심과 경쟁심이 어떠한지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질투와 불신앙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족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들이 잘 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레아는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 실바가 아들을 낳으니 레아가 “복되도다”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고 하셨습니다. 실바가 둘째 아들을 낳자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습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습니다. 라헬이 레아에게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였습니다. 레아는 순순히 줄 수 없었습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그러자 라헬이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하며 남편을 양보하였습니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말합니다.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야곱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 내가 팔렸구나. 자신이 무슨 상품도 아니고 두 자매가 사고 팔고 하였습니다. 두 아내의 갈등 속에서 야곱은 심신이 피곤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소원을 들으시고 레아가 다섯째 아들을 임신하여 낳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습니다.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였지만 열매가 풍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아들들로 말미암아 큰 위로를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때가 되자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그가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는 뜻으로 더함(요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소망대로 라헬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잉태하여 낳습니다. 낳는 도중에 죽어서 베들레헴에 묻혔습니다. 라헬이 죽은 후에 레아는 남편 야곱과 함께 거하다가 막벨라 굴에 묻혔습니다.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믿음의 조상으로서 막벨라 굴에 야곱과 함께 묻힌 사람은 레아였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을 놓고 “내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끝없이 경쟁하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은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참 남편이 되어 그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참 만족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자녀도 그들의 능력으로 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낳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에 기초해서 이루어집니다.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인 인간들을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저는 이번에 중앙아시아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고 이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양회에 70명 정도 참석하리라 예상했는데 130명이 왔습니다. 수양회 이틀 전에 전체를 책임 진 아브라함 스타스 목자의 부친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소천하셨습니다. 수양회 전날 장례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셔서 이 역사를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양회 숙소 배치와 분반배치, 강사 메시지 훈련, 메시지 번역 및 통역 등등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순발력 있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불평없이 여유롭게 수양회를 동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수양회를 축복하시고 강사들의 메시지와 소감 강사들의 회개의 역사와 회복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수양회 후에는 주일 오후 6시에 게오르기 형제와 릴랴 자매의 결혼 역사를 통해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번 수양회는 하나의 파노라마와 같았습니다.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물과 실수가 많은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물질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25-43).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을 고향으로 가게 허락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자기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품삯을 어떻게 정했습니까? 한마디로 흰 것은 다 외삼촌의 것이고 다른 것은 자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이 원하는 양들이 태어나지 못하게 양들을 분리하고 사흘 길이 뜨게 하였습니다. 라반은 탐심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몫으로 조금이라도 주는 것을 아까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름대로 터득한 유전자 조작을 하여 튼튼하고 실한 것은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하였습니다. 약한 양은 외삼촌의 것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에 야곱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불리한 요구조건을 제시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야곱의 가축들은 늘어났고 라반의 가축들은 줄어들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아서 라헬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또한 불리한 계약 조건 가운데서 6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지만 라반은 열 번이나 품삯을 변경했습니다. 이런 라반으로 인해서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그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네 아내와 열두 아들을 얻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열두 지파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두 떼나 되는 많은 가축을 얻어서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야곱의 사랑과 그를 고난 속에서 연단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을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29,30장
요절 | 창세기 30:22,23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알마티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제 옆자리에 알마티 대학생이 앉았습니다. 그와 대화하면서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건축학도로서 경력을 쌓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저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힘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사랑은 불이요 무서운 동력입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의 인생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곱의 인생 열매는 그의 노력과 성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야곱이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합니다. 관계성을 맺으려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해야 합니다.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하란에서 왔다고 대답합니다. 야곱이 그들에게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묻자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는 중이라고 귀뜸을 해 줍니다. 야곱은 처음 본 목동들이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자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고 말을 합니다. 주제넘게 이래라 저래랴 하니 그들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하면서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 놓지 않았다며 핑계를 댑니다. 이때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양들이 왔습니다. 야곱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먼저 먹입니다. 그리고 나서 무엇을 합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습니다. 야곱은 정말 기사도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보는 친척이니 먼저 인사를 하고 그 다음에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주인의식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인사를 하였습니다. 라헬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는 자기감정을 따르기보다 먼저 할 일을 하였습니다.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 라반에게 알렸습니다. 한 달을 같이 지내보니 야곱은 밥값을 하는 대단한 일꾼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동계약을 체결합니다.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15).” 야곱은 품삯보다 무엇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까? 그의 마음은 라헬에게 가 있었습니다. 큰 언니 레아는 시력이 약하였지만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와우! 한 여인을 얻기 위해서 칠 년을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3년 정도면 충분한데 그는 그 두배의 삯을 치루겠다고 합니다. 로맨스도 이런 로맨스가 없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아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합니다. 진실한 사랑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장애물도 뚫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7년 기한이 차자 야곱이 라반에게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달라고 했습니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결혼식을 하고 잔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야곱이 첫날밤을 보내고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았습니다. 그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정말 라반을 죽이고 싶도록 화가 났을 것입니다. 야곱이 핏대를 세우며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우리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칠 일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를 위하여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칠년을 더 일을 해야 한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헬과 7일 후에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라반은 칠 일 후에 라헬을 야곱에게 아내로 주고 여종 빌하도 주어 시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라반은 한꺼번에 네 명의 자매님들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대단한 능력입니다. 야곱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라헬과 결혼을 한 후 다시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습니다. 속이는 자는 언젠가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라반은 깜깜한 밤에 언니 레아를 동생 라헬처럼 꾸며서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전에 형 에서처럼 털옷으로 꾸며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자신이 속였던 방법대로 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은 남을 속이면서 축복을 쟁취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깊이 절감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는데 한 여인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섬김만 받던 야곱이 섬기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오기 전에 야곱은 부자 집 아들로서 큰 고생 없이 섬김 받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삶은 그를 고집이 세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런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종처럼 섬기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특히 20년간 양치는 목자생활을 했습니다. 양 치는 생활은 매우 힘들고 잔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양의 똥 묻은 몸도 씻어주어야 하고 때마다 먹을 것을 공급해야 합니다. 양들의 상태를 살피고 아픈 양들을 섬세하게 돌봐야 합니다. 좋은 목초지를 찾아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힘든 목자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섬기는 것이 몸에 배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양치는 목자생활은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하는데 좋은 훈련이었습니다. 섬기는 생활을 통해서 그는 겸손과 믿음의 조상으로서 내면성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라반과 같은 훈련관들을 준비해 놓고 훈련하십니다. 그들을 통해서 나의 죄문제와 약점을 드러내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시어머니나 직장의 상사나 부하일 때도 있고 믿음의 동역자들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를 통해서도 훈련하십니다. 야곱에게 라반이 피할 수 없는 훈련관이었듯이 우리도 이들을 피해갈 수 없게 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깨질 것은 깨어져야 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 하나님이 쓰실만한 믿음으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원칙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모든 저주가 끝나게 되고 모든 심판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 회복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하고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4:14-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끝까지 인내하셔서 책임있고 정직하고 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까지 붙들어 주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 41:14).”
둘째는, 하나님은 네 명의 아내들을 통해서 야곱을 훈련하시고 열두 아들을 낳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라헬 한 사람만을 위해서 14년간 봉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14년 동안 레아와 라헬과 실바와 빌하 네 아내를 얻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열두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 보낸 14년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이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까? 야곱은 레아와도 결혼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라헬에게 향했습니다. 결혼기념일에는 라헬에게만 야생화 백송이를 꺾어다 주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항상 라헬과 카톡을 하고 그와 찍은 사진만 올렸습니다. 첫 아이도 사랑하는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로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괴로운 밤을 지내야 했던 레아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습니다.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습니다.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습니다. 야곱은 레아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결혼했으니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에게 6명의 아들을 낳게 하셔서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무자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29:31b)
라헬은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하자 언니를 시기하였습니다. 그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야곱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은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하는 라헬에게 성을 내었습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그러자 라헬은 그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 결혼을 시켰습니다. 빌하가 아들을 낳아 주자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습니다. 빌하가 다시 아들을 낳자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라헬의 시기심과 경쟁심이 어떠한지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질투와 불신앙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족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들이 잘 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레아는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 실바가 아들을 낳으니 레아가 “복되도다”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고 하셨습니다. 실바가 둘째 아들을 낳자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습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습니다. 라헬이 레아에게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였습니다. 레아는 순순히 줄 수 없었습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그러자 라헬이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하며 남편을 양보하였습니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말합니다.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야곱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 내가 팔렸구나. 자신이 무슨 상품도 아니고 두 자매가 사고 팔고 하였습니다. 두 아내의 갈등 속에서 야곱은 심신이 피곤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소원을 들으시고 레아가 다섯째 아들을 임신하여 낳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습니다.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였지만 열매가 풍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아들들로 말미암아 큰 위로를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때가 되자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그가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는 뜻으로 더함(요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소망대로 라헬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잉태하여 낳습니다. 낳는 도중에 죽어서 베들레헴에 묻혔습니다. 라헬이 죽은 후에 레아는 남편 야곱과 함께 거하다가 막벨라 굴에 묻혔습니다.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믿음의 조상으로서 막벨라 굴에 야곱과 함께 묻힌 사람은 레아였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을 놓고 “내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끝없이 경쟁하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은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참 남편이 되어 그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참 만족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자녀도 그들의 능력으로 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낳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에 기초해서 이루어집니다.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인 인간들을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저는 이번에 중앙아시아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고 이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양회에 70명 정도 참석하리라 예상했는데 130명이 왔습니다. 수양회 이틀 전에 전체를 책임 진 아브라함 스타스 목자의 부친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소천하셨습니다. 수양회 전날 장례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셔서 이 역사를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양회 숙소 배치와 분반배치, 강사 메시지 훈련, 메시지 번역 및 통역 등등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순발력 있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불평없이 여유롭게 수양회를 동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수양회를 축복하시고 강사들의 메시지와 소감 강사들의 회개의 역사와 회복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수양회 후에는 주일 오후 6시에 게오르기 형제와 릴랴 자매의 결혼 역사를 통해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번 수양회는 하나의 파노라마와 같았습니다.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물과 실수가 많은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물질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25-43).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을 고향으로 가게 허락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자기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품삯을 어떻게 정했습니까? 한마디로 흰 것은 다 외삼촌의 것이고 다른 것은 자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이 원하는 양들이 태어나지 못하게 양들을 분리하고 사흘 길이 뜨게 하였습니다. 라반은 탐심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몫으로 조금이라도 주는 것을 아까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름대로 터득한 유전자 조작을 하여 튼튼하고 실한 것은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하였습니다. 약한 양은 외삼촌의 것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에 야곱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불리한 요구조건을 제시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야곱의 가축들은 늘어났고 라반의 가축들은 줄어들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아서 라헬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또한 불리한 계약 조건 가운데서 6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지만 라반은 열 번이나 품삯을 변경했습니다. 이런 라반으로 인해서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그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네 아내와 열두 아들을 얻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열두 지파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두 떼나 되는 많은 가축을 얻어서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야곱의 사랑과 그를 고난 속에서 연단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을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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