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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창19강(28:1-22)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나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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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19-08-20 08:29

본문

UBF 주일메시지(2019.08.18.)
말씀/창28:1-22(요절:16절)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본문은 한 장소에서 일어난 한 사건입니다. 야곱은 리브가가 시키는 대로 에서를 피해 도망치고, ‘라반의 집’으로 가서 라반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꿈을 통해 나타나셔서 사닥다리와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 사닥다리 위에 서 있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야곱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세계를 체험케 하시겠다고 말씀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야곱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첫째, ‘여기’는 어떤 곳인가?  둘째,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말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이 뭔가?  셋째,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말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이 뭔가? 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여기는 어떤 곳인가?
      16절을 봅시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어머니 리브가가 시키는 대로 도망쳤습니다. 형은 날렵한 사냥꾼입니다. 사람사냥 정도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형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형의 화살이 야곱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고 말 것입니다. 야곱은 정말 죽어라 도망쳤고, 야곱이 하루 동안 도망친 거리가 무려 80km입니다. 보통 성인 남자가 하루 동안 걷는 거리가 40-50km 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죽기 살기로 도망쳤는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습니다. 야곱은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잤습니다.
11절부터 19절까지 보면 ‘한 곳, 거기서, 이곳, 그곳, 여기, 거기’ 하면서 ‘한 장소’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말한 ‘여기’ 는 어떤 곳일까요? 여기는 낯선 곳입니다. 여기는 야곱이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엄마가 가라고 해서 온 곳입니다. 야곱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의지할 대상이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진 곳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막막하고 막연한 곳입니다. 당장 먹을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뭘 먹고 입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곳이고 현재도 불안하고 미래도 두려운 곳입니다. 복을 받으려고 한 일인데 복도 받기 전에 죽을 판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집을 떠나 왜 여기 있지?’ 돌아오는 답은 한 가지입니다. ‘형을 속이고 잘못해서 여기에 있는 거야’

      둘째,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말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이 뭔가?
      16절을 다시 봅시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영어 성경에는 ’I was not aware of it’으로 ‘I was not know’라고 하지 않고 ‘I was not aware’라고 되어 있습니다. ‘know’는 사실 여부에 대해 안다고 할 때 사용하고 ‘aware’는 존재 여부를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알지 못했다는 일종의 아쉬움을 함께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는데 내가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알지 못했네. 내가 왜 몰랐지?’ 라는 말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하나님을 보여주었을 때 ‘아~~ 하나님이시네’하고 금방 알아챘을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했다’라는 말은 야곱이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할 때까지는 그나마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형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대신에 그 자리에 다른 무엇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대신에 ‘사람’ 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야곱 자신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고 엄마가 도망가라 하니 도망가는 거고 형을 속여 잘못해서 여기까지 왔고, 이 모든 과정에 사람에 의해 일이 벌어지고 자신은 사람에 의해 움직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뭘할려고 한다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하나님이 나타나시니 ‘어~~ 여기 계시네’ 한 것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12-13a절을 봅시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꿈을 통해서 ‘세 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맨 먼저 보여준 것은 ‘사닥다리’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닥다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밑에서 위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사다리’ 가 아닙니다. 이 사닥다리는 큰 빌딩, 큰 집 안에 정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땅 위에 세워진 사닥다리입니다. 이 사닥다리는 집을 의미하고 집을 보여 준 것입니다. 야곱 자신은 벌판에서 잔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잔 곳은 벌판이 아니라 집에서 자고 있었고, 이 집은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었습니다.
두 번째 보여준 것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계단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땅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땅의 사정을 돌아보고 그 형편을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세계와 땅의 세계를 이어줍니다.
세 번째 보여준 것은 사닥다리 위에 서 있는 ‘하나님’ 입니다. 청와대 본관 1층 정중앙에 계단이 있습니다. 1층 전체 바닥과 계단은 빨간 양탄자가 깔려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통령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닥다리 맨 꼭대기 위에 하나님께서 서 있었습니다. 야곱이 잠을 잔 이 집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잠이 깨어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라고 말 한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보여준 세가지를 통해서 야곱에게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셨을까요?
현재 야곱은 에서가 두려워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도망가라고 하니 도망치고 있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과 땅에 것밖에 다른 것은 전혀 생각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벌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가고 있지만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앞날이 막막하고 두렵지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땅에 있는 사람만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있는 것처럼 야곱의 인생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께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이 형에게 쫓겨 도망가는 인생, 사람에게 매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렇게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야곱의 삶에 의미를 두고 있고,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께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언제든 오르락 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이야기할수 있고, 하나님은 야곱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말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인생은 로봇처럼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이어져 있는 야곱의 인생은 야곱 스스로 주도적으로 하나님과 이야기하면서 펼쳐 간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닥다리와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 사닥다리 위에 서 있는 하나님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고백을 좀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께 이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내가 좀더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알았을 것이다는 말입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고백이고 뒤늦은 회개입니다.

      셋째,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말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이 뭔가?
      야곱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창25:23)”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축복하시도록,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기다리지 못하고 이삭을 속여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하여 일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 이삭을 택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택하신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들어가지 직전에 친히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도망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셨고, 자신을 복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13b-15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을 때는 야곱에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시고 또한 야곱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셔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야곱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비록 야곱은 악취를 풍길지라도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20-21절 보십시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야곱에게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림을 못 받아 안달이 난 분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생존문제에 하나님을 끌어들이고 거래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말속에 야곱의 귀한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야곱에게 생존문제는 절박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고 사모하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야곱이 현실문제에 매여 하나님과 거래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야곱이 그렇게 수준 낮은 사람은 아닙니다.
 야곱은 현실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이미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기도는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상황이 사람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면에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 의도가 있음을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기도는 하나님을 막연한 분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삶 속에서 체험하고 싶다는 기도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가는 이 길에서 꿈속에서 본 사닥다리와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들, 사닥다리 위에서 서 있는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이 길에서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과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는 것,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인생 문제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하나님을 순수하게 알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이를 볼 때 야곱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유를 알 듯합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생활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냈으리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창31:40-42)’ 밧단아람에서 20년은 야곱이 기도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깊이 체험한 기간이었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하나님을 ‘나와 함께 계셨다.’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더위와 추위를 겪으셨고 함께 졸린 눈을 비비가며 일하셨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사기를 당할 때, 하나님도 사기를 당하는 고통을 똑같이 당하셨습니다. 야곱의 수고와 헌신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외삼촌의 꿈에 사자를 보내어 책망하시고 보상하여 주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라반의 집으로 라반을 의지하러 갑니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은 꿈을 통해 만나주시고 야곱의 존재가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흔들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연결된 존재임을 발견케 하셨습니다. 사람에 의해 밧단아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계획, 의도 가운데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속에서 나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은 강한 열망가운데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저와 우리 목자님들과 양님들도 사람에게 이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어진 존재들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 의도가 있고 지키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 각자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기꺼이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할 렐 루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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