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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년 창13강(18:1-19:33) 아브라함을 동역자로 삼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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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19-06-16 13:38

본문

2019년 창세기 제 13 강
말씀 | 창세기 18:1-19:38
요절 | 창세기 18:18,19

아브라함을 동역자로 삼으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를 알면 인생 목적이 분명해 집니다. 신앙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왜 교회에 와야 하는지, 왜 주일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알 때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그로 큰 민족, 강대한 나라를 이루고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와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요 창조주로서 영광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동역자요 친구로 키우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동역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나그네를 섬김으로 동역을 합니다(18:1-15)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세 사람 중에 한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두 사람은 천사였습니다. 대개 중동 지방은 날이 뜨거울 때 씨에스터라고 해서 낮잠을 잡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깨어 있으면서 사람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자고 있으면 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깨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은 손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물을 조금, 떡을 조금 가져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허락하자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어 급히 요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았지만 청년과 같은 스피릿과 행동으로 뛰어다니면서 섬기고 있습니다. 또 그의 마음은 풍성하였습니다. 송아지는 살이 부드러운 최상의 요리입니다.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웨이터 같이 공손하게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었습니다.

  19:1-3에는 롯의 섬김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그는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자기 집에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나 두 딸이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집안이 냉냉하였습니다. 롯이 내놓은 음식은 무교병이었습니다. 이는 딱딱하고 맛없는 빵이었습니다. 그의 내면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는 분명히 좋은 땅을 차지했고 그 지역에서 재판관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영적인 상태는 황폐하였습니다. 그가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돈이 있다고 해서 잘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해도 메마른 섬김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섬김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고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기러 오셨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하는 식당은 질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또 올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마음을 상쾌하게 쉬도록 정성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그의 섬김에 아내 사라와 하인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섬겼습니다. 그들의 섬김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그네인 줄 알고 섬겼는데 나중에 보니 천사들과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마음껏 먹고 쉼을 가진 후에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장막에 있나이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2).”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3,14).”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였습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라의 대화에 웃음이 번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일이 여호와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어떤 일이 여호와께 있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부르신 소망을 이루심으로 웃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치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섬기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동역자로 구속 역사에 쓰임 받는 길입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친구요 동역자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중보기도를 통해 동역을 합니다(18-19:11)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전송하러 함께 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은 전송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의 이런 진심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자신이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김없이 말씀하십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면 얽매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도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롭기는커녕 우상숭배와 정욕의 노예가 되고 온갖 불의를 자행하게 됩니다(롬1:21-31). 세상이 부정부패와 음란과 강포가 충만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떠난 백성들을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통해서 강대한 나라, 크고 힘이 있는 나라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강대한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인구가 많고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한 나라가 강대한 나라일까요? 강대한 나라는 의와 공도 즉 공평과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강대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나라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선조들은 성서조선을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은 성서한국으로 부릅니다. 나 한 사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가운데 가정이 이 공동체가 나라가 하나님의 도를 지키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이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동역자요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알아도 동참할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친구는 주인이 하는 일을 알 수 있고,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하고 충성스런 자들을 신임하사 그의 동역자로 삼으시고 자기의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 고모라에 대한 심판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무너진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심판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그의 복을 받고,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악을 행하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어떠합니까? 19:4-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한다는 말은 성관계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저녁 때, 해질 무렵에 천사들이 도시에 들어왔는데 잠자리에 들기도 전에 온 도시에 소문이 났습니다. 횃불로 밤을 밝히던 시절에 잠자리에 들려면 두 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그 두어 시간 만에 도시에 소문이 돌았고 노소를 막론하고 남자들이 모두 롯의 집 앞으로 몰려왔습니다. “새로운 남자가 둘이나 왔다는데 어서 내 놓아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 여기서 상관하겠다는 의미는  동성애를 말합니다.

  롯은 나그네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직 처녀인 두 딸을 내어 주려고 했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말이지만 롯이 그 사회 속에서 살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들은 성적인 한계가 없을 정도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천사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천사들은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습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여쭈었습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묻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라며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겉으로 보면 의인을 살려달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의인을 꼬투리로 소돔 성을 살리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인을 살리고자 한다면 의인만 골라내어 성 밖으로 나오게 하고 나머지 악인들을 죽이면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의인을 골라내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인 오십 명이 있으면 소돔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읍에서 50명의 의인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신자가 행해야 할 의와 공도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는 죄가 관영한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악인들을 심판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의와 공도를 행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유황과 불을 내려 심판하시기 전에 죄인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것이 신자가 해야 할 일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흥정하듯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의인 열 명에서 끝났습니다. 왜 열 명에서 멈추었을까요? 조카 롯과 아내, 두 딸과 사위 그러면 최소한 여섯 명이고 그 종들 몇 명만 해도 열 명이 될 것입니다. 열 명은 최소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한 가정만이라도 의롭게 살면 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매우 겸손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겸손히 구합니다. 아브라함은 기도하면서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중심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지만, 그의 마음 중심에는 롯이 있었습니다(19:29). 아브라함의 롯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였습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에게 사로잡혔을 때는 318명을 데리고 가서 구원해 내었습니다. 멸망당할 위기에서는 끈질기게 기도함으로서, 어찌하든지 그를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할 수 있는 특권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서 책임감, 목자의 심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파멸할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생각할 때 견딜 수 없었고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기도, 양들을 위한 기도, 가족을 위한 기도, 캠퍼스와 나라를 위한 기도, 만민 구원을 위한 기도 등 중보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의인의 중보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약 5:16).”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고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시대의 문제, 교회의 문제, 양들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지 말고, 내 문제로 여기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아브라함처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같은 악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죄에 굶주린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기도에 굶주린 그리스도인들이다”라고 레오나드 레이븐 힐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기도에도 굶주린 마음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을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단 맛을 알듯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와 동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는 것은 기억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여 마음에 새기고 롯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12-33)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그러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길 정도라면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딘 사람들인가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딘 것이 저주입니다.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니 죄에 깊이 물들 수밖에 없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고 했지만 롯이 지체하였습니다. 왜 지체했을까요?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롯은 다시 주여 그리 마옵소서.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라면서 작은 성읍으로 가도록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가는 도중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몸은 앞으로 가면서 얼굴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집에 두고 온 보석과 아름다운 옷과 다 먹지 못하고 나온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했을까요? 우리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 두고 떠나야 합니다. 또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쓰지도 못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생명을 잃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를 기도합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고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유황과 비를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에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서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였습니다.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녹아내렸습니다. 심판 후에 동굴에서 롯은 두 딸과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 자손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죄악된지도 모르고 악을 행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시대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선과 악을 구별하도록 돕고 의와 공도를 행하는 백성들이 되도록 섬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에 사랑의 수고를 통한 섬김과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로 동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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