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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년 창11강(15:1-16:16) 지극히 큰 상급 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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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19-06-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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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11 강
말씀 | 창세기 15:1-16:16
요절 | 창세기 15:1

지극히 큰 상급되신 하나님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것도 잠시 깊은 두려움과 무기력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찾아오셔서 뭇별을 보도록 하심으로 자손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또한 가나안 땅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남편이 문제를 극복하자 이제는 아내 사래가 어려움에 빠집니다. 자식을 낳지 못해 자책감에 사로잡힌 사래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식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가정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지극히 큰 상급되신 하나님(15:1-6)

  이 후에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후에”란 아브람이 전쟁을 치른 후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리품을 다 되돌려주고 나니 자신은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속자 문제만 생각하면 암담했습니다. 이런 현실 문제 속에서 낙심과 절망과 두려움과 회의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신앙생활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성실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으면 약속의 자녀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고자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자체 보다는 자신의 문제에만 매여 있을 때, 신앙생활을 해도 인생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불신과 손해의식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상태를 잘 아시고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사건을 통해서, 전쟁에서 큰 승리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방패 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브람은 이런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12:3). 방패 되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요 진정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그냥 상급만 되셔도 좋은데 큰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큰 상급만 되어도 좋은데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녀를 주시고 나라를 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나중에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희생적인 사랑을 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전부를 주는 분이십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입니다.

  우리 눈에 당장에 보이는 상급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지극히 큰 상급을 주는 분이십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급을 공급해주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을 주시기를 바라고, 나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라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극히 큰 상급되심을 믿어야 합니다(히11:6). 하나님은 가장 확실한 보증 수표이십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롬8:3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할 때 다른 상급은 다 부수적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를 즐거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믿음이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그와 교제하며 그를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얻어도 사람은 참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얻고 그와 교제하며 그를 즐거워하는 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아직 더 자라야 했습니다. 지극히 큰 상급에 대한 아브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어떻게 다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은 자식 하나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상급을 주신다 해도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자식 하나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니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니 나도 살 궁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입니다. 나중에 야곱도 하나님께서 큰 약속을 주시지만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작은 것에 매여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28:12-22). 사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다 그러합니다. 엄청나게 크고 역사적인 것보다 당장 물질 걱정 하지 않고 평안하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한마디로 근시안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십니다.

  4절은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주신 약속을 계속해서 기억하게 하시고 붙잡도록 도우십니다. 말씀만으로 안 되자 이제 시청각 교육을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방 안에만 있으면 자기 생각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뭇별을 보여주십니다. 그 후에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뭇별이 복수형인데 네 자손도 복수형으로 해야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네 ‘자손’이 여러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단수형입니다. 뭇별을 바라보게 하시고는 그중에 별 하나만을 가리키며 “네 ‘자손’은 이와 같을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뭇별 속에 언약의 한 사람이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뭇별처럼 많은 자손이란 단순히 양적으로 많음을 뜻한 게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를 위하여 아브람을 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사람, 큰 역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좁은 자기 세계 속에서 벗어나 원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보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늘을 볼 때 영롱한 별이 반짝이고 그 무수한 별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광대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아브람은 별을 하나 둘 셋 세다가 아들 하나, 아들 둘, 아들 셋하고 하나님의 세계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현재는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이 없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그 자손들이 뭇별과 같이 많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장 아브람의 자식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자식을 주면 그것을 받고 만족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을 심으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참되고 의지할 수 있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하신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생기자 두려움과 손해의식과 불평이 사라졌습니다. 아브람의 위대한 점은 자기 계획과 생각이 있다가도,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한 위대한 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장 아브람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보다는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브람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신뢰의 관계성을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람의 후손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복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담 이후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양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의로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행동을 할 때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으로는 하나님 앞에 옳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을 만하다, 나도 너의 삶 속에서 약속한 것을 성취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겠다는 것을 인 치신 것입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구속역사를 이어나가십니다.

  둘째,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15:7-21)

  아브람에게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그를 부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장사를 잘 하는 유대인답게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체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습니다.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습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기에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그는 공의로우시기에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기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들의 죄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심판의 도구로 쓰십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시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에는 쪼갠 희생 제물 가운데로 언약의 두 당사자가 지나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만약 언약이 성실하게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위반자는 희생물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지나가지 않고 하나님만 지나가셨습니다. 아브람은 자격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셋째, 하갈과 이스마엘(16장)

  사래는 자식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아브람이 상속자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사래는 여종 하갈을 통해 아브람의 몸에서 자녀를 얻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래의 말을 듣고 아브람이 애굽 사람 하갈을 첩으로 들였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였습니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였습니다. 나오는 배를 더 내밀고 태교를 해야 한다며 설거지와 청소를 거부하였습니다. 자신이 안주인이 다 된 듯이 행동하였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다고 말하니 아브람이 당신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허락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평온하던 집안에 평지풍파가 일어났습니다. 하갈은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사래가 하나님을 불신하여 인간적인 꾀를 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정 문제가 닥친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와 평화가 충만하던 가정이 멸시와 학대, 투기와 미움, 원망과 분쟁,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갈등은 다른 형태로 지금도 이스라엘과 아랍 간에 원한과 대적과 분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불꽃 튀는 가정 문제에 친히 개입하셔서 소방관 역할을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을 만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갈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으니 아브람 86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여종 하갈의 고통을 살피시고 돌봐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외면치 않으시고 돌봐주십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약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아브람의 연약함을 끝까지 감당해 주시며 언약을 지키도록 인도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 문제에 매여 힘들어 할 때 비전을 주시고 언약의 말씀을 붙잡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면서 나의 지극히 큰 상급되신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붙잡고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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