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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19년 롬2강(1:18-32)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세상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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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9회 작성일 19-11-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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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로마서 제 2 강
말씀 | 로마서 1:18-32
요절 |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세상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로마서 1:18-3:20은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자세히 드러내고 있는 죄악론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말씀은 이방인의 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를 알 때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죄에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말씀 앞에서 자기 발견을 하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면서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보실 때 진노하십니다. 그 진노는 우리가 보통 화를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 노아의 때에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소돔과 고모라는 불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죄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그 백성을 통해서 심판하셨습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가득했을 때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불순종과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에서 ‘막는다’(hinder)는 것은 억누르다, 억압하다는 의미입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악한 마음으로 그 진리를 눌러버리는 것이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이 합당한지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짓눌러버리는 것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진리’는 19,20절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창조 세계에 분명이 나타나 있고, 인간은 이런 창조 세계를 통해서 지각을 통해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과 조화, 사계절의 변화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대해 찬탄하게 됩니다. 인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인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신에게 제사를 지낸 흔적이 있습니다. 인간과 제사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종교적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예배합니다. 원숭이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개척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미개한 종족이라도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전3:11). 이는 사후 세계에 대한 동경과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 표현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의 빈 공간이 있습니다. 돼지는 먹을 것만 주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먹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못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부와 권세를 소유해도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할 때만이 진정으로 영혼의 참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조건 속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나서 사람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살아갈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좋은 땅을 주셨고 알맞은 햇빛과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땅에 씨앗만 심으면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와 동행하시며 생명을 지켜주시고 끊임없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일하시며 천지를 주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살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모든 것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감사함을 예배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기보다는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잠언 9장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할 때 마음이 밝아집니다.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깁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대로 살면 생각이 허망해집니다. 악한 생각 때문에 실속 있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지혜의 근원에서 떠난 이성은 허황된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마음에 총명과 이해력을 잃어 어두움에 덮여집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했기 때문에 스스로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게 되었나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자존자가 아닙니다. 절대자를 의지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불안한 것입니다. 삶 자체가 불안합니다. 장래가 불안합니다. 그래서 뭔가 의지할 대상을 찾아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은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점쟁이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대학가 주변에는 사주팔자를 보는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점쟁이를 찾아가고 부적을 받아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대신에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서 섬깁니다.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들어 경배했습니다. 중국은 용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뱀을 지혜의 신으로 여겨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물고기를 닮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바위나 큰 고목나무를 섬기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큰 고목나무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앞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빌었습니다. 또한 나무가 사람보다 커지면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하고 사람보다 커지기 전에 잘라버렸습니다. 닥터 홀이 쓴 「조선회상」을 보면 큰 나무를 다 잘라서 민둥산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미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것으로 보이는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띄우기 전에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냅니다. 명절 때만 되면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들께 빕니다. 조상님이 드시라고 하고는 자기가 다 먹습니다. 일본에는 우상이 800만개가 넘고 인도에는 3억 3천개의 우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불안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종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지만, 돌이나 금속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이 어떻게 사람의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죽은 돼지 머리가 무슨 신령한 힘이 있다고 인간을 보호해주겠습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지만 어리석고 우둔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썩어질 사람과 짐승과 벌레의 형상으로 바꾸어버립니다.
 
  이상에서 볼 때 인간의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악의 시작이요 원인이며 끝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탁월한 작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동물들과는 다르게 양심 혹은 도덕심이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인간에게는 창조성이 있어서 하나님처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나갑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원인에 대한 진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면 병을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24,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26절은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고 했습니다. 28절은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고 했습니다. ‘내버려 두셨다’는 헬라어로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책임과 권한을 넘겨주셨다는 뜻입니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알아서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적 타락에 대한 형벌로 부도덕한 상태로 방치되는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다’는 것은 이미 더러움이 그들에게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죄가 제재를 받지 않으면 더 악랄해지고 악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하는 자들을 특별한 사랑과 돌봄으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천대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자는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리십니다.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을 통해서 고통당하게 하십니다. 이런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고통을 당하면서도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에는 내버려두십니다. ‘내버려 두는 것’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받는 가장 무서운 형벌은 체벌이 아니라 버림당하는 것입니다. 버림당한 아이는 더 이상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생존하더라도 양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자라서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결국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을 때 어떤 상태가 되었습니까? 26,27절을 보십시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이는 여자들의 동성애, 남자들의 동성애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간이 그 마음의 욕심대로 행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성적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자녀를 낳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진리대로 살지 않고 욕심대로 살면 정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음란한 생각을 하다가 점차 행동으로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성적인 죄를 짓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불륜을 저지릅니다. 점차 더 자극적인 것을 따르다가 결국에는 동성연애자가 됩니다.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도 주로 상류층에서 동성애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동성연애자들이 광화문 광장 등에서 퀴어 축제를 하죠. 동성연애자들이 축제를 벌이고 동성결혼까지 합법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국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성경을 없애버리고자 하는 것이요,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의 지배를 받으면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으며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상실한 마음이란 판단력을 잃어버린 마음, 쓰레기와 같은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게 되었을 때 이성이 없는 짐승처럼 되었습니다. 29-32절에는 21가지의 인간의 부패한 속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불의, 추악, 탐욕, 악의는 인간의 내면적인 성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둘째, 공동체에서 인간관계에서 제기되는 범죄입니다.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우매한 자, 신의가 없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하는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합니다. 죄 짓는 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합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빛보다 어둠을 사랑합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이 내 버려둘 때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1:18-32절에서 설명하는 죄악상은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생소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날마다 접하는 내용들입니다. 인간이 짐승처럼 행하면서 자신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자기만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의 악은 심판의 결과이면서 또한 이들에게 영원한 형벌이 임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 사회의 모든 도덕적 타락의 원인은 하나님을 버린 데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을 때만이 해결이 됩니다. 우리는 때로 육신의 자유를 추구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불신자들이 자유롭고 멋있게 보이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우리들이 어쩐지 매이고 좁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인간은 온 마음을 다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때만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잃어버린 인간 본래의 아름다운 형상을 회복하려면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가을 학기에 우리 각자가 로마서 말씀을 깊이 공부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온전히 회복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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