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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19년 롬1강(1:1-17) 복음,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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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19-10-27 14:26

본문

2019년 로마서 제 1 강
말씀 | 로마서 1:1-17
요절 | 로마서 1:16

복음, 하나님의 능력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새롭게 로마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로마서는 복음의 기초를 체계적으로 세워주는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로마서는 어려운 시대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복음 위에 굳게 세우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어거스틴은 방탕한 삶을 살다가 로마서 14장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깊이 회개하고 경건한 삶을 출발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고 구원을 얻고자 하다가 절망하였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을 깨닫고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죤 웨슬레는 루터의 로마서 서론을 듣다가 마음이 뜨거워져서 거듭남을 체험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로마서 말씀을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배움으로 복음의 기초를 견고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바울은 이전에 죄의 종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몸부림쳤지만 양심의 가책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교회를 핍박하고 두려워 떨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발견을 하고 죄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는 구원의 은혜에 기초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를 자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한 국가의 전권대사와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무엇일까요? 2-4절을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창세기 3장 15절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다윗과 이사야와 말라기까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시편118:22; 스가랴 9:9-11,12:10; 말4:1-5 등). 복음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고전 15:3,4). 예수님은 아담의 타락이후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줄기차게 약속해 오신 바로 그 구원자이십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은혜만 누리고 거기서 끝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 귀한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서 그들을 믿어 순종하게 하는 사도의 직분까지 주십니다. 나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구원을 받게 하는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그는 구원의 은혜와 함께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대표해서 하나님 나라 말씀을 전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입니다. 사도는 권위가 있어서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은 넓은 의미로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의 직분은 고난이 따르지만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인하여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강하게 됩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 주님을 위하여 자발적인 충성과 헌신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는 일은 우리와 같이 같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목자의 역할, 타문화권에서 일하는 선교사 역할입니다. 어린이든,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순종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즈음 같이, 놀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바쁜 청년들에게 이게 가능할까요? 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 믿어 순종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을 때, 자기중심적이고, 돈을 중심한 삶,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살던 사람이 양들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목자로 살고자 결단합니다. 학생들이 세계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고, 캠퍼스 복음 역사의 주역들이 됩니다. 그들은 서로를 도우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니면 안 됩니다. 이제는 사명에 매인 자요 양들에게 매인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소수이고 이방인이 다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문안인사를 합니다. 이 은혜는 구원의 방식이기도 하고 복음의 성격 자체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구원과 선한 복을 주십니다. 우리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믿음조차도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발휘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되어졌습니다. 
  평화는 샬롬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이 완전히 성취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은 샬롬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사망과 애통함과 질병 등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단순히 평강이 아닙니다. 모든 안녕과 축복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이 평화야말로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은혜와 평화입니다. 이것은 습관적인 인사말이나, 빈 말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이 은혜와 평강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어서입니다. 로마는 다신교 사회이고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로 인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으로 인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육신적이고 쾌락적인 도시입니다. 극장, 댄스홀이 번창했습니다. 이런 쾌락적인 세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로마 성도들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경건하게 살아가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의 복음 전파와 세상과 구별된 경건한 삶을 통해서 복음은 힘 있게 퍼져나갔습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보지도 못한 로마 성도들을 위해서 항상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울 만큼 중보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로마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신령한 은사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영접할 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음에 평강이 임합니다. 자유와 기쁨과 생명력이 충만하고 넘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열정이 생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꿈꾸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시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로마 교회는 할례와 안식일 준수, 음식법 등으로 인해서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깊이 알지 못했기에 주변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복음을 풍성히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 받기를 원했습니다. 풍성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교제함으로써 힘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 그리할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면서도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의 심령으로 일을 했습니다(14).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그들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왜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까요?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것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형수였습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로마 제국 앞에 예수님은 너무나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어찌하든지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욕을 먹고 돌로 침을 당하고 살해 위협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인데 여기서 다이나마이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얽어 배고 있는 바위보다 크고 강력한 세력을 깨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죄를 단숨에 날려버립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사도 바울은 복음을 통해 눈먼 자들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신이 떠나가고 죄에 결박되어 살던 자들이 자유를 얻고 기뻐 뛰는 모습을 체험해왔습니다. 복음은 죄와 사탄의 결박을 끊고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여기 앉아 있는 우리를 허무와 정죄와 무기력과 교만과 운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복음은 수많은 사형수들을 회개시켜 그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어린아이와 여자들과 약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는 문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거짓과 사기와 폭력과 미신과 비진리가 판을 치던 세상이 바뀌어 진실이 힘을 얻고 평화와 진리가 증진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인권을 높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복음을 통한 영적 부흥이 일어날 때 구제 사업과 의료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영국은 비폭력 문화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우리나라도 미신이 판치던 세상에서 진리가 높임을 받고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사회로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인간의 죄악된 모습, 편파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사회는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믿을 때 현재의 모습에 낙담하지 아니하고 복음 전파에 힘을 쓰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헌신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평와는 죽었다”는 구호가 울려퍼지던 법정이 곧 조용해졌습니다. 구호를 외치던 시민들은 “제가 그를 한 번 안아줄 수 있을까요?” 라는 흑인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울고 있던 피의자가 앞으로 걸어나왔고, 증인석에 앉아 있던 흑인 청년은 그를 포옹했습니다. 청년의 품에 안긴 피의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오열했고, 판사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9월 2일 텍사스주 댈리스 카운티 연방지방법원에는 미국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카리브해 섬나나 세인트루시아 출신 흑인으로 컨설팅 회사에 다니며 촉망받던 젊은 회계사가 자기 집에서 백인 경관의 총네 맞아 숨진 사건의 판결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고 황망한 죽음이었습니다. 지난 해 9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백인 경찰관 앰버 가이거는 집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들어간 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로 TV를 보고 있던 피해자 보탐 진(당시 26세)을 총으로 쐈습니다. 자신의 집은 3층이었는데 남자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4층에 잘못 내린 뒤 보탐을 침입자로 착각해 저지른 끔찍한 실수였습니다. 가이거는 “강도인 줄 알았다”고 항변했지만 그의 휴대전화에서 인종차별적인 문자메시지가 다수 발견돼 비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브랜트는 눈물 머금은 눈으로 형의 원수를 바라보며 “저는 당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 당신이 죽고 썩어 사라지길 원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빌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형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울먹였습니다. 그러면서 남은 삶은 그리스도에게 헌신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국민일보) 저는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통한 사랑과 치유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17절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의는 아무리 쌓고 쌓아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의, 하나님이 완성하신 의, 하나님이 그 아들의 피로 우리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치신 의, 그것이 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 복음을 믿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면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의인이 되는 비결입니다. 나의 의, 나의 공로, 나의 자랑을 주장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가리울 뿐입니다. 루터는 자신의 도덕적 행위와 종교적 열심을 쌓아서 의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죄의식으로 말미암아 숨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7절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만 의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비로소 오랜 번민의 터널을 빠져나와 복음의 빛된 세계, 자유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 경륜이 깊다고 해도 허물을 드러내고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실망하면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 속에서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업적을 남겨도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를 부정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가 복음신앙 위에 굳게 서서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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