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9년 창24강(39-41장)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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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24 강
말씀 | 창세기 39:1-41:57
요절 | 창세기 39:2,3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열일곱 살부터 서른 살까지 노예 생활과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의 인생 중에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사춘기와 가장 혈기 왕성할 때에 이런 고난을 겪으면 마음이 삐뚤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 했고 상관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때에 그는 형통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 그는 형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노예 생활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39:1-6). 요셉이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친위대장이면 오늘날 대통령 경호실장의 위치입니다. 보디발은 바로의 신임을 받으며 귀족과 장관들을 견제하고 심판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었습니다. 형통하다는 것은 상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가정 총무로서 그가 손을 대는 일들마다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형통한 인생’이란 인생에 아무런 역경이 없이 평탄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많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역경을 뚫고 나아가 결국에는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생에 고난이 닥치고 장애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견디며 전진하고 개척하는 것이 형통한 인생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면에서 형통한 인생을 살았습니까?
요셉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환경을 정복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했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자신이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했습니다. 보통 노예들은 자유가 없고, 소유권도 없고, 열심히 일을 해봤자 다 주인의 것이기에 할 수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웁니다. 시간을 때우기 식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 했습니다. 책임성 있게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듯이 주인에게 충성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주인의 신뢰를 받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사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사 요셉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하셨습니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유혹을 물리침(39:7-19). 요셉은 라헬을 닮아서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꽃미남이었습니다. 보디발 여사는 요셉이 꽃미남에다가 순수하고 일을 잘하는 것을 보고 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요셉에게 눈짓을 하였습니다. 유혹하는 강도가 짙어지더니 나중에는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하였다고 했습니다. 준수한 요셉에게 찾아온 유혹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혹독한 시험은 고난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실패의 순간도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시험은 바로 유혹입니다. 시련을 견디는 사람들도 유혹 앞에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역경의 순간에는 강하지만 번영의 시기에 약합니다.
요셉은 젊고 혈기 왕성한 나이입니다. 더군다나 11절을 보십시오.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아무도 보는 자가 없고 보디발 여사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고 여인에게 잘못 보이면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의 타락상을 볼 때 이것은 너무나 평범한 유혹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유혹을 이기게 만들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의 눈초리를 의식하였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받을 때에 유혹의 현장에 홀로 서야 합니다. 그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고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셉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요셉은 정욕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은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께서 도우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사 11:2)”이십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 시편 34:7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사탄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유혹은 성적인 유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세상 안일의 유혹 등 어떤 것이든지 우리의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생각을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서 모든 악한 생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한 유혹의 때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붙잡을 때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며 헌신할 때 죄의 유혹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요셉은 어떻게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물리쳤습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0절을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인간의 유혹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인의 유혹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며 함께 있지도 아니했습니다. 요셉은 여인이 붙잡고 늘어지자 옷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8a은 말씀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셋째, 감옥 생활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39:20-40:23). 요셉은 유혹을 거절한 결과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순결을 지킨 결과가 무엇입니까? 투옥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드러눕기 쉽습니다. 감옥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죄수들이 강간범, 성추행범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죄수들의 미움을 받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옥에 갇힌 요셉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21-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은 요셉에게서 고난을 없애지 않으시고 고난 가운데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셔서 선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특히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억울함과 사람들의 비난을 참고 견디어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요셉은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요셉이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어 감옥의 제반 사무를 맡아서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집의 모든 일을 맡아서 경영하였습니다. 이제 감옥의 제반 업무를 맡아서 관리하면서 옥사를 경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0장 1-3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는 왕이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왕의 친구와 같이 가장 가까이서 섬기며 왕의 심기를 편안하게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오자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에 하였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수종들면서 감옥에서 왕궁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궁의 법도를 배우고, 왕궁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 바로 왕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장차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합니다. 그로인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복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도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해 나갑니다.
요셉은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을 수종들다가 아침에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민감하게 하게 섬겼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바로의 생일에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습니다. 요셉은 사람을 믿던 데서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요셉은 사람에게 철저히 절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년 동안 기약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때가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요셉으로서는 앞날을 알 수 없으니 견디기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욥기 23:10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때 요셉의 믿음을 순금처럼 빚으셨습니다.
넷째, 총리가 되기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41:1-57).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강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입곱 소를 먹는 꿈이었습니다. 그가 놀라 깨었다가 다시 잠을 자는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한 줄기에 이삭이 나오는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었습니다.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습니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 그 꿈을 말하고 해몽을 요청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요셉을 추천하였습니다. 요셉은 바로 앞에 섰습니다.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15).” 요셉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겸손하게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신으로 추앙 받는 바로 왕 앞에서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요셉은 왕의 꿈을 듣고 해석과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바로의 손에 돌려 각 성읍에 쌓아두게 하소서. 애굽 땅에 임한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38절을 보면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당시 애굽의 법에 의하면 총리가 될 수 있는 나이가 30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법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주무시는 것 같지만 가장 좋은 때를 위하여 기다리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죄수가 하루아침에 총리가 되는 일은 얼마나 드라마틱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드라마를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십니다.
요셉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고난과 장애물을 뚫고 전진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큰 은혜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함께 하셔서 결국에는 우리의 인생이 형통하게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현재의 삶은 고달프지만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는 승리와 영광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통해서 왕의 성품과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어려운 환경과 유혹을 이기며 자신이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지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고 연단하사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 창세기 39:1-41:57
요절 | 창세기 39:2,3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열일곱 살부터 서른 살까지 노예 생활과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의 인생 중에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사춘기와 가장 혈기 왕성할 때에 이런 고난을 겪으면 마음이 삐뚤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 했고 상관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때에 그는 형통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 그는 형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노예 생활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39:1-6). 요셉이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친위대장이면 오늘날 대통령 경호실장의 위치입니다. 보디발은 바로의 신임을 받으며 귀족과 장관들을 견제하고 심판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었습니다. 형통하다는 것은 상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가정 총무로서 그가 손을 대는 일들마다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형통한 인생’이란 인생에 아무런 역경이 없이 평탄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많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역경을 뚫고 나아가 결국에는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생에 고난이 닥치고 장애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견디며 전진하고 개척하는 것이 형통한 인생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면에서 형통한 인생을 살았습니까?
요셉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환경을 정복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했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자신이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했습니다. 보통 노예들은 자유가 없고, 소유권도 없고, 열심히 일을 해봤자 다 주인의 것이기에 할 수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웁니다. 시간을 때우기 식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 했습니다. 책임성 있게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듯이 주인에게 충성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주인의 신뢰를 받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사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사 요셉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하셨습니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유혹을 물리침(39:7-19). 요셉은 라헬을 닮아서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꽃미남이었습니다. 보디발 여사는 요셉이 꽃미남에다가 순수하고 일을 잘하는 것을 보고 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요셉에게 눈짓을 하였습니다. 유혹하는 강도가 짙어지더니 나중에는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하였다고 했습니다. 준수한 요셉에게 찾아온 유혹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혹독한 시험은 고난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실패의 순간도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시험은 바로 유혹입니다. 시련을 견디는 사람들도 유혹 앞에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역경의 순간에는 강하지만 번영의 시기에 약합니다.
요셉은 젊고 혈기 왕성한 나이입니다. 더군다나 11절을 보십시오.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아무도 보는 자가 없고 보디발 여사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고 여인에게 잘못 보이면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의 타락상을 볼 때 이것은 너무나 평범한 유혹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유혹을 이기게 만들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의 눈초리를 의식하였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받을 때에 유혹의 현장에 홀로 서야 합니다. 그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고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셉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요셉은 정욕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은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께서 도우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사 11:2)”이십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 시편 34:7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사탄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유혹은 성적인 유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세상 안일의 유혹 등 어떤 것이든지 우리의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생각을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서 모든 악한 생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한 유혹의 때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붙잡을 때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며 헌신할 때 죄의 유혹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요셉은 어떻게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물리쳤습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0절을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인간의 유혹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인의 유혹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며 함께 있지도 아니했습니다. 요셉은 여인이 붙잡고 늘어지자 옷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8a은 말씀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셋째, 감옥 생활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39:20-40:23). 요셉은 유혹을 거절한 결과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순결을 지킨 결과가 무엇입니까? 투옥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드러눕기 쉽습니다. 감옥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죄수들이 강간범, 성추행범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죄수들의 미움을 받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옥에 갇힌 요셉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21-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은 요셉에게서 고난을 없애지 않으시고 고난 가운데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셔서 선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특히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억울함과 사람들의 비난을 참고 견디어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요셉은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요셉이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어 감옥의 제반 사무를 맡아서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집의 모든 일을 맡아서 경영하였습니다. 이제 감옥의 제반 업무를 맡아서 관리하면서 옥사를 경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0장 1-3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는 왕이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왕의 친구와 같이 가장 가까이서 섬기며 왕의 심기를 편안하게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오자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에 하였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수종들면서 감옥에서 왕궁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궁의 법도를 배우고, 왕궁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 바로 왕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장차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합니다. 그로인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복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도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해 나갑니다.
요셉은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을 수종들다가 아침에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민감하게 하게 섬겼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바로의 생일에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습니다. 요셉은 사람을 믿던 데서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요셉은 사람에게 철저히 절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년 동안 기약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때가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요셉으로서는 앞날을 알 수 없으니 견디기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욥기 23:10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때 요셉의 믿음을 순금처럼 빚으셨습니다.
넷째, 총리가 되기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41:1-57).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강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입곱 소를 먹는 꿈이었습니다. 그가 놀라 깨었다가 다시 잠을 자는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한 줄기에 이삭이 나오는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었습니다.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습니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 그 꿈을 말하고 해몽을 요청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요셉을 추천하였습니다. 요셉은 바로 앞에 섰습니다.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15).” 요셉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겸손하게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신으로 추앙 받는 바로 왕 앞에서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요셉은 왕의 꿈을 듣고 해석과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바로의 손에 돌려 각 성읍에 쌓아두게 하소서. 애굽 땅에 임한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38절을 보면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당시 애굽의 법에 의하면 총리가 될 수 있는 나이가 30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법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주무시는 것 같지만 가장 좋은 때를 위하여 기다리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죄수가 하루아침에 총리가 되는 일은 얼마나 드라마틱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드라마를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십니다.
요셉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고난과 장애물을 뚫고 전진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큰 은혜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함께 하셔서 결국에는 우리의 인생이 형통하게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현재의 삶은 고달프지만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는 승리와 영광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통해서 왕의 성품과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어려운 환경과 유혹을 이기며 자신이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지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고 연단하사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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