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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년 창23강(37,38장) 꿈꾸는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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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7회 작성일 19-09-22 13:02

본문

2019년 창세기 제 23 강 
말씀 | 창세기 37:1-38:30
요절 | 창세기 37:9

꿈꾸는 요셉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오늘 말씀은 꿈꾸는 요셉입니다. 저도 꿈꾸는 것을 좋아합니다. 꿈을 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꿈은 작은 상상력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제자 양성을 통한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꿈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꿈을 붙잡고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그런 강렬한 꿈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도 아깝지 않은 그런 꿈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요셉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꿈꾸는 자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요셉의 가정은 복잡하고 문제가 많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네 명의 부인을 두고 있었고 형들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요셉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어머니를 잃은 요셉을 더욱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는 형들의 죄를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빠, 형들이 양을 팔아서 게임을 했대요. 아빠 형들이 학원에는 가지 않고 농땡이를 쳤대요.” 그는 형들이 볼 때 재수가 없는 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볼 때 의롭고 순수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17세에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자 그를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그 꿈의 내용은 그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꿈의 해석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자 아버지도 화가 나서 꾸짖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10)?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그의 희망 사항이나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일을 꿈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꿈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꿈 때문에 요셉은 역경을 이겨내고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의 꿈은 단지 역경을 이기고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개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흉년의 때에 야곱의 가족들과 애굽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요셉을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70명의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 내려가서 고센 땅에 정착하여 400년 동안 거주하면서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꿈을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꿈을 주지 않고 요셉에게만 주셨을까요? 흔히 사람들이 꾸는 꿈은 내면에 잠재된 욕망이나 두려움 등이 나타낸다고 합니다. 큰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똥이나 돼지꿈을 꾸고, 헛된 공상을 하는 사람은 개꿈을 꿉니다. 세상 욕심이나 야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때로 악몽을 꿉니다. 그러나 요셉이 꾼 꿈은 욕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었습니다. 꿈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꿈을 주십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꿈을 주십니다. 요엘서 2장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 영에 감동된 사람이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비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슴에 불타는 소원을 말해야 합니다. 내가 꾸는 꿈을 이야기 할 때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혼자서 꿈꾸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꿈을 말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쳤다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처음에 꿈 이야기를 할 때는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 때 그들의 아버지는 절대로 비행기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꿈을 꾸면 “꿈 깨!”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 된다고 설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의 어머니는 그들이 비행기를 만들도록 도와주고 영감을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썰매를 만들어 줄 때도 역학의 원리를 잘 활용해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통찰력을 통해서 두 아들의 꿈이 개발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꿈을 상실시켰지만 어머니는 그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고 그들 안에 있는 가능성을 개발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 모임을 생각하면서 꿈을 꿉니다. 선교사님들과 목자님들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볼 때 기쁩니다. 또 우리가 섬기는 학생들을 보면서 꿈을 꿉니다. 우리는 학생 복음 운동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홍대 캠퍼스와 세계 캠퍼스에 이루어질 꿈을 꿉니다. 다음 세대의 영적 리더들로 자라나서 캠퍼스 복음화를 이끌며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일에 헌신할 꿈을 꿉니다. 통일 한국 제사장 나라의 꿈을 꿉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제자 훈련을 합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꿈을 꾸는 자는 미움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의 마음에 걱정이 생겼습니다. 세겜 성은 시므온과 레위가 디나 문제로 할례를 행한 그곳 남자들을 몰살을 시켰던 곳입니다. 이로 인해 혹시 그들에게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보내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7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홀로 이곳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급히 세겜 땅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참동안 형들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방황하는 요셉을 보고 무엇을 찾는지 물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찾고 있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도단으로 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3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요셉은 충성스럽게 도단까지 찾아갔습니다. 요셉의 이런 충성심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큰일도 맡기십니다. 

  요셉이 형들을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그들이 멀리서 요셉을 보고 죽이기를 꾀하였습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평소에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의 꿈을 깨뜨리고자 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를 죽임으로 그의 꿈을 부수어버리고자 했습니다.

  왜 형들이 이토록 큰 원한에 차 있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꿈을 자랑하는 요셉을 볼 때 그들의 마음에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도단에서 그들은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이 눔의 자식,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채색 옷도 입고 까부는데, 또 꿈까지 자랑했단 말이야. 이런 놈은 죽어야 해!” 요셉에게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고 그에게 피를 흘리지 말고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 구덩이는 물이 없는 빈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 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그들은 유다의 말대로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 미디안 사람들은 요셉을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36).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요셉은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고 깨뜨리고자 해도 하나님이 주신 꿈은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깜깜한 밤에 별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고난 속에서 꿈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꿈이 있을 때 고난을 견디며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꿈꾸는 자는 아래로 떨어지는 시련을 통과합니다. 요셉의 꿈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통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밑바닥까지 낮아졌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채색 옷을 벗김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벗겨 버린 것입니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것이 아니라 요셉의 꿈을 구덩이에 던진 것입니다.

  누가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습니까? 멀리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입니다. 때로 우리의 꿈에 가장 큰 치명타를 날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동료들이 우리 인생의 꿈을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판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룟 유다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며 나갈 때 우리의 꿈을 좌절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에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꿈의 성취를 도와줄지언정 결코 꿈을 좌절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남의 꿈을 찢지 말고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꿈을 성취하도록 돕는 사람이야말로 복된 사람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요셉처럼 구덩이에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구덩이는 고통과 고난의 구덩이입니다. 실패의 구덩이입니다. 질병이라는 구덩이입니다. 배신의 구덩이입니다. 역경과 시련이 한꺼번에 찾아와 꿈꾸는 자들을 당혹하게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하루 아침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사울의 시기심 때문에 광야에서 도망다니는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혹독한 시련을 통해서 지도자의 내면성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고난 없이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연단하십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과 현실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만일 요셉이 언제까지나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과 섬김만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사람도 품을 수 없는 이기적이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편안히 살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큰 인물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몰아내셔서 훈련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살면 그 꿈 때문에 반드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핍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그 연단을 통해서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갖게 된 꿈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시는 과정임을 확신하고 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연약한 사람들을 강하게 하시고 위대한 지도자로 키우십니다. 또한 꿈이 있을 때 고난을 감당하며 겸손과 온유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꿈은 고난의 떡을 먹고 자랍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꿈은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입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할 줄 알았습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준비했고 미움을 받았고 구덩이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인해서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다루겠지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성취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만 성취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꿈을 성취하도록 도왔습니다. 우리가 목자로서 양들이 자기 안에 있는 꿈을 발견하도록 돕고 좌절된 꿈을 회복시켜 주고 그 꿈을 성취하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꿈을 주시고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성취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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