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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20롬10강(8:1-17)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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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0-02-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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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제 10 강                     
말씀 / 로마서 8:1-17
요절 / 로마서 8: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삶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7장에서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선을 행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면에서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죄의 소욕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의지적으로 죄의 소욕을 누리고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사도 바울 조차도 이런 현실로 인해서 탄식했습니다(7:24). 그러면 우리는 항상 이런 탄식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요? 오늘 말씀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죄의 소욕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도 포함이 됩니다. 물론 정죄함이 없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내면의 고통과 탄식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양심은 청결해질수록 죄에 대해서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작은 죄에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과거에 지었던 죄들이 떠올라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율법은 여전히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마음에 고통을 주어서 회개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지은 죄에 대해서 정죄하여 심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가 지은 죄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거가 어떻든,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자신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죄가 떠오를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해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생명의 성령의 법이 구원받은 자를 지배하고 이끌어 가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만 잘 지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요구에 충실한 육신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무기력해져서 인간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의 몸에 인간의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받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보내주셔서 죄의 소욕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영적인 환경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내면에 임재하시면서 죄의 소욕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주십니다. 또한 거룩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불같이 일으켜주십니다. 이로 인해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성령을 따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승리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영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5-8)
5-6절을 보십시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을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육체의 본성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지 않고 자기가 있습니다. 늘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구체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활동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일합니다. 성령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더욱 중요한 일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영접하도록 도우십니다. 그 분을 증언하기에 힘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함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의 내면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을 따르는 사람이 오직 영의 일만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자주 육신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부정적이고 불신적이고 운명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이 마음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떨쳐버리고 영적인 생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이며 민감하시고 예민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께 내 자신을 주장하시도록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경건한 생각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거룩한 소원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영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며, 결국에는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마지막으로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육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9-13)
9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거하시면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만일 그 사람의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시는 삶이어야 합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앞에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죄로 말미암아 날이 갈수록 늙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비록 몸은 늙고 쇠하여 가지만 우리의 영은 살아있고 날로 새로워집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내면은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 말과 표정과 행동을 통해서 외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도 아름답지만 노년의 때는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나이가 들어도 겉 사람만 늙고 내면의 성숙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추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삶을 통해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고 아름다워 지길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우리의 육체는 늙고 병들어 죽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죽었던 우리의 몸을 다시 살리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몸의 부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현재의 우리 몸은 죄를 품고 있는 몸이요 연약한 몸이요 늙고 쇠하는 몸입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죽은 몸을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활의 몸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때는 늙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습니다. 물론 죄의 유혹을 받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몸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율법적인 신앙생활은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듭니다. 아무리 수행을 해도 내면의 거룩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의 열매만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생활은 새들이 바람을 타고 비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들이 날개의 힘만으로 날면 얼마 날지 못합니다. 새들도 힘들거든요. 바람을 타야 자유롭게 멀리멀리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성령의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서 살 때 생동감이 있고 즐겁고 행복하며 내면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생활을 할 때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성령을 의지하며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14-17) 
14-15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반드시 내면에 성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양자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심판받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종은 아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종은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잘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늘 주인을 두려워하고 눈치를 살핍니다. 그러나 아들은 잘못해도 용서를 받습니다. ‘이제부턴 넌 내 아들 아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잘못을 해도 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입양하면 처음에는 아빠, 엄마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성이 생기게 되면 그때부터 아빠, 엄마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16-17a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확신 때문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a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그러나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늙으면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사랑으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근본적인 자식의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질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럽습니까?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은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상속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유의 주로서 장차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그 나라의 상속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영적인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17b.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사는 어떤 교민이 한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 가져갔습니다. 자기 집 마당에 심어놓으면 노란 개나리꽃을 볼 수 있겠지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개나리는 가지와 잎만 무성했고, 이상하게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첫해여서 그런가 싶어 2~3년을 기다렸지만 노란 개나리꽃은 볼 수 없었습니다. 개나리는 꺾꽂이로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까지는 좋았지만 나중에야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었습니다.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 자란 개나리는 한국의 개나리와 달리 꽃이 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개나리뿐 아니라 튤립·히야 신스·백합과 같은 구근식물과 라일락 같은 나무도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만 꽃을 피우는 특성을 지녔다고 합니다. 또한 봄보리보다 가을보리가 더 수확량이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전문용어로 춘화현상 (Vernalization)이라고 합니다. 혹독한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해 열매도 많이 열리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면 편하지만,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면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힘이 들고 피곤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반드시 세상에서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고난이 계속되면 피곤한 생각이 들어서 자칫 신앙의 길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은 잠시지만 그에 따른 영광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신앙 생활은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늘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더욱 거룩한 삶을 사모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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