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25년 사40장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이반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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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이사야 40:26-31
요절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지난 달 초에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아시아 지부장 수양회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시아 대륙 코디네이터로서 매년 개회 메시지를 전해왔는데, 올해는 이사야 40장 하반부 말씀을 영어로 전했습니다. 개회 메시지는 통상 가볍게 짧게 전하는 데, 제가 이 말씀으로 다시 태국에서 주일 메시지를 특강으로 섬겼습니다. 개회메시지보다는 길어야 하니까 다시 처음부터 메시지를 다시 고쳐서 태국어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엘리야 목자님의 요청으로 한국어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한 메시지를 세 나라의 언어로 전하는 것이 드문 일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희 모두 새 힘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사야 40장 1절은 이 구절로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이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일까요? 제가 국민학교 시절에는 매년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국군 장병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생을 했습니다. 그 당시 국군 장병들은 국민학교 학생들에게조차 위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아주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인 1984년까지도 국군장병들의 복무기간이 30개월이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감당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그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나 BY THE RIVERS OF BABYLON 같은 노래를 들으면 포로생활을 하던 그들의 슬픈 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하다가 이제 귀환을 앞두고 있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속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영적인 분노로 매를 대셨지만 이제는 그 상처를 붕대로 싸매주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제가 스리랑카에 갔더니 생각보다는 경제위기가 덜 심하게 보여서 안심이 좀 되었습니다. 몇 년전 뉴스에서는 그 나라가 부도가 나서 주유소에 기름이 없고 전기도 자주 나가고 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보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경제적으로 힘든 선교지에서 아시아 지부장 수양회를 잘 준비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풍성하게 수양회를 잘 준비한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스리랑카 선교사들은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 다시 여행업이 활개를 치면서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스리랑카 사람들의 삶의 질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정차한 버스 정류장 같은 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나라19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곳에서 자비량으로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를 섬기시는 우리 선교사님들을 볼 때 정말 하나님의 위로가 아니면 한 시라도 있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역지를 지키는 그 분들을 보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내는 이전에 방콕의 삶, 태국 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자주 했는데, 스링랑카를 다녀오더니 그런 불평의 말들이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결혼한 신혼부부라면 적어도 1년동안은 남자가 군대에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격적이시고 합리적인 분이십니다. 상식이 통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God is so good! All the time. 아멘.
2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숫자의 별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자 하셨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불평했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7) 어려운 시기를 겪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하나님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새번역) 한마디로 말하면 섭하다는 것입니다. 노예생활이 뭐 편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몰라주시고 아무리 송사해도 오랜 기간 그들을 비천한 자리에 내버려두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희들에게 이렇게까지 하셨는가요? 이스라엘 편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훈련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그 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나의 사정을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했을 지라도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세십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십니다. (29) 우리의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소년이라도 쉬 피곤하고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30) 아모스 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로 인해서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암 8:11-13) 아무리 힘이 펄펄 넘치는 청년의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비전이 없으면 비틀거리고 넘어집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전이 있습니까? 이전보다 선교사로 나가는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 그렇지요? 취직준비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마침내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큰 일입니까? 저는 32년전에 아무런 Job 도 없이 태국에 빈손으로 나아갔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교사는 job을 따라서 대륙을 옮겨다니기도 합니다. 태국에 동역자로 온 분 들도 다 자기 job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간이 만료되면 미련없이 선교지를 떠났습니다. Job 이 없으면 선교를 못합니까? 그런데 왜 저는 job도 없이 태국에 갔고 지금도 job 이 없는데 계속해서 10년째 선교를 하고 있습니까? 그 것은 세계선교가 job의 한계에 갇혀 있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 인도 선교사의 좌우명은 “하나님께 놀라운 것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 입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선교사로 살아온 것이 제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선교사로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직장이 있든 없든 믿음으로 선교지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선교사의 삶을 축복하십니다.
다같이 3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자신을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여기서 ‘새 힘’이란 이전에 젊을 때에 가지고 있던 청춘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힘을 가졌을 지라도 달음박질하면 곤비하고 걸어가면 피곤하다고 말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새 힘은 쉬 피로를 느끼는 젊은 날의 힘과 다릅니다. 그 힘은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듯한 힘이며, 이런 새 힘을 얻은 자는 아무리 뛰어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젊을 때보다 더 파워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목자님들은 이제 바야흐로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100세이상 산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60세에서 75세까지의 삶이 가장 좋을 때라고 합니다. 은퇴해서 손주나 보고 등산이나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황금기에 그렇게 살면 어떡합니까?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력있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들을 시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 위대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새 힘,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주를 앙망하는 자에게 이런 새 힘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게 하십니다.
‘앙망하다’는 말씀은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개역한글 시편 42편 5절 전반부를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put your hope in God)…” 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국어 성경에는 앙망하는 자를 기다리는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지요. 영어 성경은 “those who hope in the LORD…”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둬야 할까요? 나의 도움은 오직 천지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시편 121:1,2)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아멘.
새 힘을 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같은 힘이라고 비유를 했을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이 단지 피로회복이나 회춘같은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파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는 자는 그 큰 힘으로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새가 나는 형태가 4종류인데(flapping, gliding, soaring, diving)오직 독수리과에 속한 새만이 공중으로 수직상승(soaring)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이를 보고 수직으로 다이빙(diving)하는 것도 오직 독수리과에 속한 새만이 취할 수 있는 동작이라고 합니다. 독수리처럼 거대한 몸집이 수직으로 마치 로켓트처럼 솟구쳐 올라가려면(Soaring) 엄청난 힘이 필요합니다. 비행기 무게가 보통 200톤이 넘는데, 이런 무거운 물체가 뜨기 위해서는 일반 수평비행때보다 3배의 연료가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비행기는 바로 공중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고속으로 질주하다가 올라가지요. 수직으로 올라가는 틸트로터라는 비행기도 있지만 이 것도 연료소모량이 엄청난데, 높이 올라갈 수 없고 속도도 느려서 상용화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soaring 즉, 수직으로 날개치며 올라가는데, 비구름위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비행기를 잘 만들어도 독수리처럼 수직상승, 수직강하등의 동작을 원활하게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요즘은 왜 이렇게 사고가 잘 나는지 솔직히 비행기 타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날개치면서 상승기류를 타면서 아주 높은 곳으로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치지 않고 피곤을 느끼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엄청난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니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반드시 이런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독수리 날개침과 같은 힘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한 가지 색다른 연구결과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것은 독수리의 폭풍우에 대한 대처법입니다. 독수리는 폭풍우가 불어오면, 본능적으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터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새들은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그 것을 피하기 위해서 바위틈에 숨습니다. 몸을 최대한 움츠리지요. 날씨가 추우면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듯이 말이죠. 그런데 독수리는 움츠리고 피하는 대신에 비바람을 행해서 날개치며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비구름을 뚫고 올라가서 유유자적하게 비구름 위해서 비행을 합니다.
저는 여기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것은 시련이나 역경에 대한 강자의 자세입니다. 움츠러들고 피하는 것은 약자들의 대처방안입니다. 그러나 독수리처럼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비구름을 뚫고 올라가서 더 이상 비구름의 영향권내에 머물지 않는 비구름위의 삶을 체험하고 누립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얻은 자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 수 있기 원합니다.
작년 태국 UBF 미니스트리는 겨우 현상유지 차원에 머물렀습니다. 새 양은 없고 리더 두 가정이 어려워져서 일년내내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한 가정은 경제문제가 심각해서 이혼근처까지 왔다갔다 했습니다. 한 가정은 와이프가 성령운동 모임에 빠져서 매주 주일예배에 오나 안오나 염려하면서 “제발 주일예배에 꼭 나오게 도와주세요.” 라고 주일 예배 드리러 갈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살얼음위를 걷는 심정으로 한 주, 한 주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도 더 좋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32년간 섬긴 사역이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아시아 지부장 수양회 개회 메시지를 섬기기 위해 기도하던 중 본문 말씀을 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편 42편 5절,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씀처럼 불안해 하는 대신에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저는 환갑을 넘기면서 건강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많이 생겼습니다. 노화방지를 위해서 지난 10월부터 기구를 구매해서 배 근육을 키웠습니다. 머리카락이 다시 나도록 하기 위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값싼 중국산 발모제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새 힘을 얻기 위해서 이런 외적인 항노화노력을 하기 보다 먼저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강자의 내면을 가져야 합니다. 왜나하면 저는 아직도 불안초조, 노심초사, 전전긍긍의 굴레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그 분께 소망을 두기 보다 양들의 현상태만을 바라보고 이러다가 그동안 섬겨왔던 역사가 망하는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해 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저의 고질적인 문제는 좀 어려운 문제다 싶으면 움츠리고 회피하는 데 있습니다. 독수리같은 일개 동물도 비바람이 불면 그 부는 방향으로 향한다고 하는데, 저는 오늘도 무사히 하면서 거저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의 태국어 성경에는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내가 모든 일에 직면할 수 있다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번역이 저의 영적 상태에 아주 적절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저는 새로운 일에 대한 부담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염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태국 미니스트리는 세 목자 가정이 든든히 서고 1년 반 전에 교회까지 구매를 한 상태여서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캠퍼스 역사를 섬기길 바라십니다. 60이 넘었다고 항노화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60부터 75세까지의 인생의 황금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기 원하십니다. 새 힘을 얻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려면 이제까지의 내면상태를 완전히 일소하고 하나님만을 바라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만을 바라보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릴 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에 도전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힘들어 졌던 목자 가정들이 언제 자기들이 힘들게 했느냐며 기적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리더들이 경쟁적으로 캠퍼스 양들을 일대일로 먹이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 2005년에 태국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태국 미니스트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귀하신 동교센타 목자님들, 양떼들과 함께 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저희 모두 우리의 도움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고 기다리게 하소서. 그리해서 저희 모두 새 힘을 얻고 영육간에 승리하는 새해가 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31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26-31
요절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지난 달 초에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아시아 지부장 수양회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시아 대륙 코디네이터로서 매년 개회 메시지를 전해왔는데, 올해는 이사야 40장 하반부 말씀을 영어로 전했습니다. 개회 메시지는 통상 가볍게 짧게 전하는 데, 제가 이 말씀으로 다시 태국에서 주일 메시지를 특강으로 섬겼습니다. 개회메시지보다는 길어야 하니까 다시 처음부터 메시지를 다시 고쳐서 태국어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엘리야 목자님의 요청으로 한국어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한 메시지를 세 나라의 언어로 전하는 것이 드문 일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희 모두 새 힘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사야 40장 1절은 이 구절로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이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일까요? 제가 국민학교 시절에는 매년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국군 장병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생을 했습니다. 그 당시 국군 장병들은 국민학교 학생들에게조차 위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아주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인 1984년까지도 국군장병들의 복무기간이 30개월이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감당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그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나 BY THE RIVERS OF BABYLON 같은 노래를 들으면 포로생활을 하던 그들의 슬픈 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하다가 이제 귀환을 앞두고 있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속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영적인 분노로 매를 대셨지만 이제는 그 상처를 붕대로 싸매주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제가 스리랑카에 갔더니 생각보다는 경제위기가 덜 심하게 보여서 안심이 좀 되었습니다. 몇 년전 뉴스에서는 그 나라가 부도가 나서 주유소에 기름이 없고 전기도 자주 나가고 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보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경제적으로 힘든 선교지에서 아시아 지부장 수양회를 잘 준비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풍성하게 수양회를 잘 준비한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스리랑카 선교사들은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 다시 여행업이 활개를 치면서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스리랑카 사람들의 삶의 질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정차한 버스 정류장 같은 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나라19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곳에서 자비량으로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를 섬기시는 우리 선교사님들을 볼 때 정말 하나님의 위로가 아니면 한 시라도 있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역지를 지키는 그 분들을 보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내는 이전에 방콕의 삶, 태국 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자주 했는데, 스링랑카를 다녀오더니 그런 불평의 말들이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결혼한 신혼부부라면 적어도 1년동안은 남자가 군대에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격적이시고 합리적인 분이십니다. 상식이 통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God is so good! All the time. 아멘.
2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숫자의 별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자 하셨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불평했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7) 어려운 시기를 겪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하나님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새번역) 한마디로 말하면 섭하다는 것입니다. 노예생활이 뭐 편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몰라주시고 아무리 송사해도 오랜 기간 그들을 비천한 자리에 내버려두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희들에게 이렇게까지 하셨는가요? 이스라엘 편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훈련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그 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나의 사정을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했을 지라도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세십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십니다. (29) 우리의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소년이라도 쉬 피곤하고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30) 아모스 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로 인해서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암 8:11-13) 아무리 힘이 펄펄 넘치는 청년의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비전이 없으면 비틀거리고 넘어집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전이 있습니까? 이전보다 선교사로 나가는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 그렇지요? 취직준비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마침내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큰 일입니까? 저는 32년전에 아무런 Job 도 없이 태국에 빈손으로 나아갔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교사는 job을 따라서 대륙을 옮겨다니기도 합니다. 태국에 동역자로 온 분 들도 다 자기 job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간이 만료되면 미련없이 선교지를 떠났습니다. Job 이 없으면 선교를 못합니까? 그런데 왜 저는 job도 없이 태국에 갔고 지금도 job 이 없는데 계속해서 10년째 선교를 하고 있습니까? 그 것은 세계선교가 job의 한계에 갇혀 있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 인도 선교사의 좌우명은 “하나님께 놀라운 것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 입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선교사로 살아온 것이 제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선교사로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직장이 있든 없든 믿음으로 선교지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선교사의 삶을 축복하십니다.
다같이 3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자신을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여기서 ‘새 힘’이란 이전에 젊을 때에 가지고 있던 청춘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힘을 가졌을 지라도 달음박질하면 곤비하고 걸어가면 피곤하다고 말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새 힘은 쉬 피로를 느끼는 젊은 날의 힘과 다릅니다. 그 힘은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듯한 힘이며, 이런 새 힘을 얻은 자는 아무리 뛰어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젊을 때보다 더 파워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목자님들은 이제 바야흐로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100세이상 산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60세에서 75세까지의 삶이 가장 좋을 때라고 합니다. 은퇴해서 손주나 보고 등산이나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황금기에 그렇게 살면 어떡합니까?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력있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들을 시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 위대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새 힘,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주를 앙망하는 자에게 이런 새 힘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게 하십니다.
‘앙망하다’는 말씀은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개역한글 시편 42편 5절 전반부를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put your hope in God)…” 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국어 성경에는 앙망하는 자를 기다리는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지요. 영어 성경은 “those who hope in the LORD…”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둬야 할까요? 나의 도움은 오직 천지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시편 121:1,2)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아멘.
새 힘을 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같은 힘이라고 비유를 했을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이 단지 피로회복이나 회춘같은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파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는 자는 그 큰 힘으로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새가 나는 형태가 4종류인데(flapping, gliding, soaring, diving)오직 독수리과에 속한 새만이 공중으로 수직상승(soaring)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이를 보고 수직으로 다이빙(diving)하는 것도 오직 독수리과에 속한 새만이 취할 수 있는 동작이라고 합니다. 독수리처럼 거대한 몸집이 수직으로 마치 로켓트처럼 솟구쳐 올라가려면(Soaring) 엄청난 힘이 필요합니다. 비행기 무게가 보통 200톤이 넘는데, 이런 무거운 물체가 뜨기 위해서는 일반 수평비행때보다 3배의 연료가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비행기는 바로 공중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고속으로 질주하다가 올라가지요. 수직으로 올라가는 틸트로터라는 비행기도 있지만 이 것도 연료소모량이 엄청난데, 높이 올라갈 수 없고 속도도 느려서 상용화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soaring 즉, 수직으로 날개치며 올라가는데, 비구름위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비행기를 잘 만들어도 독수리처럼 수직상승, 수직강하등의 동작을 원활하게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요즘은 왜 이렇게 사고가 잘 나는지 솔직히 비행기 타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날개치면서 상승기류를 타면서 아주 높은 곳으로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치지 않고 피곤을 느끼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엄청난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니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반드시 이런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독수리 날개침과 같은 힘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한 가지 색다른 연구결과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것은 독수리의 폭풍우에 대한 대처법입니다. 독수리는 폭풍우가 불어오면, 본능적으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터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새들은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그 것을 피하기 위해서 바위틈에 숨습니다. 몸을 최대한 움츠리지요. 날씨가 추우면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듯이 말이죠. 그런데 독수리는 움츠리고 피하는 대신에 비바람을 행해서 날개치며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비구름을 뚫고 올라가서 유유자적하게 비구름 위해서 비행을 합니다.
저는 여기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것은 시련이나 역경에 대한 강자의 자세입니다. 움츠러들고 피하는 것은 약자들의 대처방안입니다. 그러나 독수리처럼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비구름을 뚫고 올라가서 더 이상 비구름의 영향권내에 머물지 않는 비구름위의 삶을 체험하고 누립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얻은 자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 수 있기 원합니다.
작년 태국 UBF 미니스트리는 겨우 현상유지 차원에 머물렀습니다. 새 양은 없고 리더 두 가정이 어려워져서 일년내내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한 가정은 경제문제가 심각해서 이혼근처까지 왔다갔다 했습니다. 한 가정은 와이프가 성령운동 모임에 빠져서 매주 주일예배에 오나 안오나 염려하면서 “제발 주일예배에 꼭 나오게 도와주세요.” 라고 주일 예배 드리러 갈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살얼음위를 걷는 심정으로 한 주, 한 주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도 더 좋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32년간 섬긴 사역이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아시아 지부장 수양회 개회 메시지를 섬기기 위해 기도하던 중 본문 말씀을 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편 42편 5절,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씀처럼 불안해 하는 대신에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저는 환갑을 넘기면서 건강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많이 생겼습니다. 노화방지를 위해서 지난 10월부터 기구를 구매해서 배 근육을 키웠습니다. 머리카락이 다시 나도록 하기 위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값싼 중국산 발모제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새 힘을 얻기 위해서 이런 외적인 항노화노력을 하기 보다 먼저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강자의 내면을 가져야 합니다. 왜나하면 저는 아직도 불안초조, 노심초사, 전전긍긍의 굴레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그 분께 소망을 두기 보다 양들의 현상태만을 바라보고 이러다가 그동안 섬겨왔던 역사가 망하는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해 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저의 고질적인 문제는 좀 어려운 문제다 싶으면 움츠리고 회피하는 데 있습니다. 독수리같은 일개 동물도 비바람이 불면 그 부는 방향으로 향한다고 하는데, 저는 오늘도 무사히 하면서 거저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의 태국어 성경에는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내가 모든 일에 직면할 수 있다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번역이 저의 영적 상태에 아주 적절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저는 새로운 일에 대한 부담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염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태국 미니스트리는 세 목자 가정이 든든히 서고 1년 반 전에 교회까지 구매를 한 상태여서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캠퍼스 역사를 섬기길 바라십니다. 60이 넘었다고 항노화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60부터 75세까지의 인생의 황금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기 원하십니다. 새 힘을 얻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려면 이제까지의 내면상태를 완전히 일소하고 하나님만을 바라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만을 바라보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릴 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에 도전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힘들어 졌던 목자 가정들이 언제 자기들이 힘들게 했느냐며 기적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리더들이 경쟁적으로 캠퍼스 양들을 일대일로 먹이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 2005년에 태국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태국 미니스트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귀하신 동교센타 목자님들, 양떼들과 함께 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저희 모두 우리의 도움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고 기다리게 하소서. 그리해서 저희 모두 새 힘을 얻고 영육간에 승리하는 새해가 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31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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