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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5년 잠14강(30,31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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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63회 작성일 25-02-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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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잠언 14강
말씀 | 잠언 30,31장
요절 | 잠언 31:30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이제 잠언 마지막 강의에 이르렀습니다. 잠언은 시작과 끝이 지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혜로운 아내의 덕을 묘사하고 있는데 현숙한 아내로 번역했습니다. 여기에 묘사된 여인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물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잠언에서 강조해온 모든 지혜를 온 몸으로 체화한 인물입니다. 지혜를 의미하는 호크마라는 히브리어 명사가 여성형이라서 여성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입니다. 지식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기에 이 여인은 지혜 안에서 성장합니다. 우리가 지혜 여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참으로 복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첫째, 아굴의 기도(30:1-9). 아굴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방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새번역 난외주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제가 어떻게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그는 지혜를 찾다가 지친, 인간의 한계를 탄식하는 것으로 본문을 시작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기대에 비해 얻은 지혜가 보잘 것 없기에 이렇게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서 뭔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통해 결국 자신이 무지한 자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했습니다. 깊이 공부를 할수록 정말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 앞에 서게 될 때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혜가 해변의 모래알 몇 개처럼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도 은혜 받고 처음 성경을 공부할 때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달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성경을 읽고 연구할수록 우리의 지혜가 하나님의 무한하고 광대하심 앞에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한계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굴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세 개의 수사적 질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와 생각을 초월하는 전능한 창조주이십니다. 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5,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우리는 겸손히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여 불순물이 없습니다.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했다가는 하나님이 책망하실 것이고 거짓말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신명기4:1,2, 계22:18 등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거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 이러쿵저러쿵 덧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고자 하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바꾸고 내가 그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할 때 그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따지고 불순종하다보면 나만 손해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보다 뛰어납니다.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의 생각을 인간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겸손하게 순종할 뿐입니다. 그럴 때 그 분은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에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저자는 두 가지 청을 주님께 올립니다. 7-9절을 보십시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의 기도는 겸손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여 진실한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둘째로, 삶의 조건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지 말고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달라고 합니다. 물질적으로 부해지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부인하기 쉽고, 곤궁하면 죄를 지어 하나님을 욕되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굴의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기도문 중에 ‘주기도문’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선 사람으로서 마땅히 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유보다 존재가 더 우선이 되고, 환경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삶에 필요한 알맞은 소유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는 이 기도에서 소유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손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굴의 기도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음에 차 있던 헛된 욕심들이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선명해집니다. 내 마음에 있는 덕지덕지 붙은 욕심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인해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둘째, 손으로 입을 가립니다(30:10-33).  저자는 세상사와 인간사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생애를 바쳤습니다. 하지만 평생 연구해 얻은 결론은 하나님의 비밀은 너무 깊고 오묘해서 자신의 머리로는 다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우쳤다 싶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마음이 겸손해지고 입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비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지요. 

  그는 여섯 가지 영역에서 네 가지 예를 들어 격언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로, 올바르지 않은 잘못 네 가지를 말합니다(11-14). 11절은,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천륜을 저버리는 악한 짓이며 십계명을 어기는 죄인가요? 마땅히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12절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않는 무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그랬죠. 사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마음 속에 온갖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의 더러운 죄를 씻어내기를 힘써야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13절은, 눈이 심히 높아서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 남을 깔보는 사람들에 대해 말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대적하시는 죄입니다. 14절에서 ‘군도’는 제물로 짐승을 잡을 때 쓰는 도살용 칼인데 장검과 군도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삼키는 무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며 강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가난한 자들을 제물로 삼아 착취합니다. 이런 무리가 되지 말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만족할 줄 모르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15-16). 스올은 죽음의 세계로서, 바닥이 없는 깊은 구멍을 말합니다. 불임의 태는 아무리 많은 씨앗을 쏟아 부어도 생명을 낳지 못합니다. 메마른 땅은 한없이 물을 흡수하고, 불은 먼지 한 터럭 남기지 않고 모두 태워버립니다. 이 비유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같이 만족할 줄 모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도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합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은 터진 물웅덩이와 같습니다. 마시고 마셔도 다시 목마를 뿐입니다. 오직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만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은 근원적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만족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다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상처를 받고 외로운 인생을 살기보다 절제와 근신을 배우는 데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18-20).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자취,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간 자취, 남녀가 동침한 자취가 그것입니다. 여기다가 음행한 흔적을 더 합니다. 이 예들은 죄를 감추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불륜의 죄가 그렇게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철저히 죄의 흔적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은밀히 행한 죄,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자취를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자취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도 다 감찰하십니다(잠21:2)

  넷째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21-23). 왕위를 찬탈한 노예, 어리석은 사람에게 내린 상, 자신의 치부를 속이고 한 결혼, 안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여종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고통을 합니다. 본문에서 미움 받는 여자를 다투기를 좋아하고, 허영과 사치를 일삼고, 젊은이를 유혹하는 그런 여자로 볼 때, 그런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은 그 집안에 재앙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왕비가 되면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입니다.

  다섯째로, 작지만 지혜로운 네 가지를 말합니다(24-28). 개미와 오소리와 메뚜기와 도마뱀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내 기준으로 그를 판단하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공부를 잘한 사람은 공부 하나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에게 없는 지혜와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지혜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갑니다. 오히려 겸손히 그들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게서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작지만 각자가 가신 은사를 발휘해서 세워져갑니다.

  여섯째로, 아굴은 크고  힘있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 그것은 사자, 사냥개, 숫염소, 강한 임금인데 작은 것들은 그것대로 강점이 있고, 큰 것들은 그것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습니다. 동물들도 이렇게 위풍 있게 걷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낮은 자존감 열등감 두려움으로 인해 위축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를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그 앞에서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롬8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가운데 담대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현숙한 여인(31장). 르무엘 왕은 어떤 인물인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학자들은 아라비아 지역을 다스렸던 왕으로 추정합니다. 이 잠언은 왕위에 오른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가 준 교훈입니다. 그는 왕에게 성적 방종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절대 왕정 시대의 왕은 수많은 처첩을 거느렸습니다. 제국 내의 모든 여성이 왕의 소유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성적 방종과 타락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왕은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게 됩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정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백성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라고 이릅니다. 둘째로는 술을 탐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술을 탐하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쉽게 감정에 치우치게 됩니다. 어머니는 독주는 마취제로 사용하고 포도주는 마음이 아픈 백성들에게 주어 잠시라도 시름을 잊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10-31절은 지혜로운 아내의 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신실하게 주님을 섬깁니다. 이 여인에게는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가득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남편과 자식들만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여인의 덕을 입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여인을 존경하고 높이며 칭송합니다.
   
  13-27절은 현숙한 여인이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며 집안을 돌보고 이웃을 돌보고 남편을 섬기는지 말합니다. 이 여인은 선행으로 남편을 도우며, 해를 입히는 일이 없습니다. 지적질과 판단을 하며 바가지를 긁지 않고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순종합니다.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합니다.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옷을 만듭니다. ‘부지런히’라는 단어는 ‘기쁨으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기쁨으로 옷을 만들고 또 제품을 만들어 장사를 합니다. 그녀의 상업 활동을 ‘상인의 배’에 비유합니다. 이처럼 멀리까지 가서 장사를 하여 먹을 양식을 가져옵니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깁니다. 늦잠 자지 않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온 집안을 돌봅니다. 밭을 살펴보고 밭을 삽니다. 자기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굽니다. 신중한 투자와 경영을 통해 재산을 늘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며,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고 더욱 열심히 일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단지 자기만 잘 먹고 부자 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밉니다. 열심히 일하고 집안을 잘 돌보니, 자기 집 사람들은 다 좋은 옷을 입고, 눈이 와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희생적으로 섬기면서도 자기를 위해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습니다. 자기를 위한 것은 가장 나중에 합니다. 자기를 챙길 줄도 아는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이렇게 하니 그의 남편은 지위가 올라갑니다.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편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이처럼 사람들의 칭송과 인정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능력과 존귀함이 그녀의 옷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말하는 것 또한 훌륭합니다. 입을 열어 지혜의 말을 합니다. 돈만 알고 인색하고 냉정한 것이 아니라, 인애의 법을 말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않습니다. 게으르게 살면서 쉽고 편하게 먹고 살려는 태도를 갖지 않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한마디로 부지런하고, 사랑이 많으며, 지혜롭습니다. 

  28-31절을 보십시오.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오늘 말씀은 어떤 여인이 진정 진주보다 더 값진지, 또 형제들이 찾아야 할 여자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여자들에게 이런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이런 여자를 귀히 여기고 얻고자 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내를 얻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고운 것과 아름다운 것에 혹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아내를 찾아 얻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믿음이 있고 현숙한 여인들을 많이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현숙한 여인들의 희생적인 사랑과 삶은 형제들이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고생하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겨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여인들의 수고와 헌신이 없다면 어떻게 형제들이 잘 자라고 성숙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내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도 현숙한 여인을 모델로 지혜와 사랑을 겸비한 믿음의 사람들도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나라와 국민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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