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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서 2025년신년1강(벧전1:1-2:3) 산 소망이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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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24-12-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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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신년 말씀 1강
말씀 | 베드로전서1:1-25
요절 | 베드로전서1:3,4

산 소망이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는 심히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계엄과 대통령 대행 탄핵이라는 국가 초유의 사건과 갈등, 정치적 불안,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황 속에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평화와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을 당하는 수신자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우리의 정체성: 우리는 누구인가(1:1-2).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밝혔습니다. 그가 성도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1).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아, 직장과 집과 나라를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은 낯선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었습니다(1:17; 2:11). 우리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들과 헤어져, 생존을 위해 하찮은, 궂은 일을 해야했습니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적 장벽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지속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편지에 나온 표현들을 보면, 그들이 비방, 부당한 대우, 욕, 해함, 이상하게 여김, 죽음, 치욕, 부끄러움을 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의 상황을 잘 이해했지만, 그들을 동정하기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임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선택해 주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하물며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 때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잠깐만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택하신 것이요, 어쩌다 우연히 우리는 택하신 것이 아니라 만세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택하신 것입니니다. 이 택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우리를 택하셨습니다(요 15:16). 나 같이 부족한 자를 택하신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우리를 부패한 세상에서 건져내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이끄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섬길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뿌림으로 우리는 죄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고 예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습니다. 옛 언약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할 힘이 없어서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수 있는 자발적인 소원과 힘을 주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 성령, 그리고 예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예수님은 모두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하십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이처럼 귀할 뿐만 아니라 확실하고,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존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합니다. 우리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고, 세상의 죄와 불신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회개하는 대신 우리를 비방하고 경멸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의 말처럼 나는 이상하고 어리석고 쓸모없는 사람인가?” 우리는 소외감을 느끼고 마음이 혼란해지기도 합니다. 

  한 선교사님은 한때 자신의 분야에서 장래가 촉망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직장에서 차별을 받았고 정신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에서 힘들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자녀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때, 사는 것이 더욱 버거워집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건한 사람들을 세상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매우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2장 9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 크신 긍휼로,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그의 자녀로 택함 받았습니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자녀는 부모 덕분에 많은 특권을 누립니다.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 등 이런 말들이 그런데서 나오죠. 하물며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 특권입니까! 비교할 수가 없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필요를 돌보시고, 최상의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왕같은 제사장의 위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이 나라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악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애 가져야 할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둘째, 우리의 산소망: 영원한 기업(1:3-5).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상기시킨 후,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선포했습니다. 소망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희망은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벤 카슨은 두 명의 어린이가 서로 연결된 상태로 태어났을 때 양측 두뇌를 분리하는 수술에 성공한 분입니다. 그는 흑인 싱글맘의 막내아들로 가난한 도심 지역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종종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희망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건한 어머니는 그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목사님이 한 의료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벤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희망으로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많은 고난을 통과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소망은 썩고 쇠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불멸의 영혼을 가진 우리에게는 영원한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런 희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선물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는 매우 값비싼 희생이 요구되었습니다. 그의 생명이 온전히 희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통을 겪으시고 마침내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희생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산 소망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긍휼은 이도 저도 못하는 사람들, 특히 버림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로 인해 무력하고 연약했습니다(로마서 5:6-10). 우리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엡 2:12).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이 세상에서 삶을 즐기고 싶어합니다. 젊을 때는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은 천하무적의 기분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연약해지고 죽음의 무서운 현실이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성취와 업적, 소유, 가족 그리고 모든 것을 남겨두고 나 혼자 가야 합니다. 더욱이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입니까! 우리가 가진 것, 행한 것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돈, 교육, 과학, 선행... 그 어느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절망적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탄생이 산 소망을 줍니다. 이 산 소망은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이 소망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이것을 “산” 소망이라고 부를까요? 이 소망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벧전 1:21).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고 그가 살아 계시듯이, 우리의 소망도 확실하고 살아 있습니다. 이 살아 있는 산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산소망은 항상 우리에게 복된 확신을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유업이 하늘에 간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업은 항상 늘어나지만 결코 줄어들지 않는 하나님나라 은행계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유업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반드시 이 유업을 받을 것입니다(5).

  이 산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히 6:19). 닻은 배를 땅에 고정시켜 표류하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길을 잃기 쉽습니다. 세상의 유혹, 건강 문제, 물질 문제, 자녀 문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같은 갑작스러운 비극이 겨울의 바닷바람처럼 불어옵니다. 하지만 산 소망을 닻으로 삼으면 폭풍우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지는 대신, 점점 더 강해집니다. 이 산 소망은 하늘에서 완전히 실현될 때까지 점점 더 자라고 커집니다.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유대인들에게, 유업이란 대대로 계속해서 전해지는 가족의 재산을 말합니다. 이 유업은 그들에게 소속감, 안정감, 평화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졌을 때, 그들은 이 유업을 잃었습니다. 이방 땅에  살면서 그들은 난민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쪼그라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부유한 아버지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유산, 위대한 유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안정감과 존엄성을 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다고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우리의 엄청난 유산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면의 평화와 존엄성을 가지고 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홍콩에 안젤라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그녀는 심한 가정불화 속에서  많은 고통을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열등하고 쓸모없다고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 그녀는 성경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고 싶었습니다. 창세기 12:2 말씀이 그녀의 마음에 임했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어…너는 복이 될지라.” 그녀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 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그녀는 열정은 많았지만 목자의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막6:34” 이 말씀을 통해 그녀는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죄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녀가 목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자 학생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복음을 영접한 학생들을 제자로 양성하는데 헌신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질병으로 여러 차례 뇌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죽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희망이 없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 안에서 산소망을 찾았습니다. 산 소망에 힘을 얻은 그녀는 회복되어, 학생 역사를 다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넘치게 축복하셔서 교수 목자들, 가정 교회들, 선교사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여러 나라로 파송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산 소망을 가진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부요보다 더 귀중한 하늘의 유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3b-4은 하늘의 유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셋째, 우리의 생활양식 -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1:5-9; 13-16; 22-2:3). 지금까지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늘의 관점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산 소망은 우리에게 기쁨이 가득하고 희생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천국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냉정한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은 서신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천해야 할 실제적인 권고를 들려줍니다. 몇 가지 핵심적인 가르침에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첫째로, 고난을 기뻐하라(1:6-9). 우리는 고난을 본성적으로 싫어합니다. 가능한 한 고난을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산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소망이 제하여지고 우리의 마음은 순결해집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진실되고 순전하여지며 강해집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인내, 연단, 소망 안에서 성장합니다(로마서 5:3-4).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나타납니다(4:13).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고난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볼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영광스러운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기쁨에 힘을 얻어, 우리는 고난을 한결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거룩하라(1:15-16). 1:15-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저는 성탄연합예배 장소인 한 대학 캠퍼스가 더럽혀진 광경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이 땅을 이렇게 더럽혀 놓았구나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자로서 우리가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거룩한 삶은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고 축복 받은 삶입니다.

  셋째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1:22). 거룩함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도 성장합니다. 진정한 신자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신뢰하는 데서 성장해 갑니다. 1:22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신뢰할 때에 아름다운 영적인 가족 즉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반면 세상은 ‘적자생존’의 전쟁터와 같습니다. 질투, 증오, 중상모략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사람들은 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찾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이 있는 기독교 공동체를 발견하면, 그들은 기꺼이 그 공동체에 합류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할 때,  예수님을 증거하는 우리의 증거가 강력하고 효과적이 됩니다.

  넷째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1:23-2:3). 거룩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롬 12:9).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우리를 다음과 같이 격려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3). 갓난아기는 생사를 걸고 젖을 갈망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갈망하며, 영적으로 성장합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소망을 바라보며 새 해를 힘차게 출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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