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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년 잠10강(20:1-22:16)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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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1회 작성일 24-11-24 13:07

본문

2024년 잠언 제 10 강
말씀 | 잠언 20:1-22:16
요절 | 잠언 21:2,3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잠언 10:1-22:16은 솔로몬의 잠언입니다. 다음 강의는(22:17-24:22) 지혜자의 서른 가지 교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여러 가지 주제의 교훈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주제들을 다 다룬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주로 강조하고 있는 절제에 대한 말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내용과 자녀 교육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절제의 미덕(20장). 20장에서 강조하는 미덕 중의 하나가 절제입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새벽에 교회에 오다보면 술에 취해서 큰 소리로 떠들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대로변에 누워있는 청년들을 보게 됩니다. 술에 취하게 되면 감각이 없어지기 때문에 때려도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술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한 해 5천 여 명, 하루 14명이라고 합니다. 술로 인해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로 인해서 왕과 같이 힘 있는 자 앞에서 분별력을 잃고 잘못 행하다가 그를 노하게 하여 화를 입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술 때문에 다툼이 생깁니다. 술에 취하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이 말 저 말 절제가 안 되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술에 빠지다 보면 게을러지고 직장도 구하지 않고 노숙자가 되어 빈궁한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8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절제의 미덕은 죄악된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합니다. 절제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식욕, 성취욕, 명예욕, 성욕, 수면욕 등이 있습니다. 욕망이 사라지면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입니다. 욕망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누리도록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욕망이 죄성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는 죄된 욕망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술뿐만 아니라 분노의 감정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급하게 화를 내다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언어생활의 절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자기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뒷수습을 하기 바쁩니다. 미련한 사람이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집니다(17:28).

  우리가 지혜롭게 행하려면 자기의 마음을 잘 알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우리가 인간관계를 잘 맺고 의사소통을 잘 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나의 마음도 잘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경 공부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처음에 성경을 공부하면서 누구나 죄로 고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나만 죄로 인해서 고통하고, 인생의 허무로 인해서 힘들어 하는 줄 알았는데 형제자매들의 소감을 들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기세계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람 자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사람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과 같습니다. 모략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마음의 동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모략, 음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 속 깊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명철한 자는 깊은 물처럼 보이지 않는 그것을 길어 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그가 지혜를 얻었을 때에 한 아이로 인해 싸우는 두 여자의 마음을 길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말씀으로 가득차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상담자는 90% 듣고 10% 말을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에도 피상적으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 이면에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마음 깊이에 있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에 맺힌 것을 깊이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눈물이 터집니다. 속이 다 후련해집니다. 거기서 마음의 상처가 치료됩니다.

  의사소통에서 메리비안의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에 언어적 요소(말하기)는 7%, 비언어적 요소(목소리)가 55%, 얼굴 표정을 통해서 38%를 전달한다고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사람이 말로만이 아니라 그 동작으로 그 속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말하면서 표정과 행동을 읽고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치료받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잘 관리할 때에 우리는 충성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6,7).” 스스로 자신이 신의가 있다, 성실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충성된 자, 정말 믿을만한 사람을 누가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정말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충성된 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귀합니까? 충성된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될 때에 자신과 후손이 복을 받고 그런 사람이 있는 공동체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공동체를 복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듣고 잘 살펴야 지혜롭게 될 수 있고 경영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입니다(12).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시고 모든 행동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운행하시는 일, 사람을 구원하는 일, 사람을 인도하는 일, 가르치는 일, 징계하고 훈련하는 일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경영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8절을 보십시오.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경영이 성취되려면 혼자 독단으로 하면 안 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의논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독단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논의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찍 부해지고자 하는 욕심도 절제를 해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속히 잡은 산업’은 ‘서둘러, 재촉하여 받은 유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유산을 너무 빨리 주면 결국은 복이 되지 않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처럼 유산을 가지고 방탕하며 탕진할 수도 있습니다. ‘속히 잡은’이라는 말은 ‘탐욕스럽다’는 뜻이 있는데, 유산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부모에게 악한 짓을 벌이기도 합니다. 자녀에게 유산을 주는 데는 정말 지혜가 필요합니다. ‘산업’은 성경에 주로 ‘기업’이라는 말로 많이 나오는데,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 뿐 아니라 ‘재산’이라는 넓은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쉽게 얻은 재산은 행복하게 끝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땀 흘리며 수고를 통해서 얻은 재산이 오래 갑니다.

  우리는 복수하는 것도 자제를 해야 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악에 대하여 내가 직접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또 다른 악을 행하게 되고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소망을 가지고 바라본다,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받은 것을 생각하기 전에 그에게 받은 은혜, 감사제목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원수 갚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7-21).”
 
  서원하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 사람의 걸음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길을 계획하고 예상해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나의 길을 맡기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을 때 조바심과 두려움에 섣불리 서원을 하고 후에 살피면 그 서원은 덫이 됩니다. 지키지도 못하고, 안 지키면 하나님께 죄가 되니 마음에 죄책감을 갖고 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감찰하십니다(21:1-15). 21:1,2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왕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군대가 움직이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권세가 있습니다. 뉴스의 중심에는 왕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왕이 하는 것 같은데  왕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까지도 임의로 하십니다.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그래서 잘 꾸미고자 화장도 하고 머리도 하고 어울리는 옷을 입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동기, 의도를 알고 계십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눈초리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요셉은 보디발 여사와 단 둘이 있었을 때에 그녀가 동침하자고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였습니다. 그는 음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 입니다(4).”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은 진정한 형통이나 풍요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일 뿐이기 때문에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이 풍부함에 이르게 됩니다(21:5). 히브리어 원문은 “결의가 굳은 자의 경영이 풍부함에 이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의가 굳은 자들은 목표에 집중합니다. 조급한 마음은 부지런한 것과 비슷하지만 아주 다릅니다. 조급한 자는 지혜가 없습니다. 신중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가 많고 비는 데가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실패로 연결됩니다. 조급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기 마음이 앞서는 것입니다. 조급한 자는 자기감정을 주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나 빨리 재물을 모으려고 하다가 망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조급한 자는 불려다니는 안개와 같이 곧 사라져 버립니다. 악인의 강포는 강해 보이지만 결국 자기를 소멸시킵니다. 이는 정의를 행하기를 싫어하는 결과입니다.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습니다. 부지런하고, 정의를 행하며 깨끗한 자의 길을 가는 자의 경영이 진정으로 풍부에 이르게 됩니다. 9절은 가정 경영에 대한 것입니다. 바깥 일에서 경영을 잘하고 풍부함에 이르러 큰 집에서 산다 해도 다투는 여인과 산다면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움막에서라도 혼자 마음 편히 사는 게 낫습니다. 다투지 않는 여인을 아내로 얻든지, 아내가 싸움을 걸어오지 않게 가정 경영을 잘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악인을 망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의인에게는 복으로 갚아 주시지만 악인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21장 13절을 읽겠습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기 괴로우니까 ‘귀를 틀어막고’ 모르는 체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 욕심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는 게 악인들의 모습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마5:7).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자에게 긍휼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약2:13). 내 주위의 가난한 자, 고통에 부르짖는 자의 소리를 듣고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14절은 정의를 왜곡하는 또 하나의 악인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악인들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은 외면하면서 자신의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은밀한 선물’, ‘뇌물’ 공세는 열심히 합니다. 죄를 짓고도 뇌물공세로 분을 누그러뜨리고 사면을 받습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세상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난한 자들은 불의를 당하며 부르짖지만 도움을 얻지 못하고, 악인들은 은밀한 선물과 뇌물로 자신들의 불의를 덮고 목적을 달성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시행될 때 의인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죄인(악인)에게는 패망이 됩니다(15). 이처럼 우리는 정의가 시행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힘써야 합니다.

  셋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합니다(22:1-16). 22:6을 보십시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다섯 살 때까지 아이의 성품이 결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격이 형성되는 유아기 때부터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기질에 맞게 관계성을 맺고 그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 줄 때 아이는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고유한 기질과 성격 특성에 맞추어 양육하되 건강하지 않은 기질은 온정적인 양육태도와 아이의 기질에 맞추어 주면서 변화시켜야 할 것은 바꾸도록 도와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좋지 않은 부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부모는 꾸준히 노력하며 배우며,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나와 다른 기질을 가진 자녀라 하더라도 “쟤는 왜 저런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듯이 자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질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두 귀와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정성을 다해 관찰하고, 자녀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게으름, 정욕, 탐욕과 무자비함, 이기심 같은 미련한 것들이 인간의 마음에 얽혀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 이런 미련한 것들은 어릴 때 잘 교정해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교정이 어렵습니다. 어릴 때 징계하는 회초리가 이런 미련한 것들을 멀리 쫓아내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현재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 인해 자녀들이 겪는 무게감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들의 특성을 알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배우고 올바로 양육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초리를 의식하면서 살 때에 욕망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할 때에 당장 손해를 볼지언정 정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나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의와 정의를 행함으로 복된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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