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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년 잠7강(14,15장) 집을 세우는 자, 집을 허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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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4-10-2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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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7강
말씀 | 잠언 14장,15장
요절 | 잠언 14:1

집을 세우는 자, 집을 허무는 자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오늘 말씀은 집을 세우는 것을 주제로 지혜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집을 세우는 자는 지혜자요, 세운 집을 허무는 자는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입니다. 본문의 앞뒤로 집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14:1, 11 15:25,27). 우리는 저마다 집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자신의 집을 세워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크고 튼실하고 아름답고 멋진 집을 지어가는 인생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지혜로운 여인은 룻기의 주인공인 룻과 같은 여인입니다. 룻기 4장 15절에 룻을 가리켜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라고 말합니다. 룻은 젊은 시절 남편이 죽었지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모셨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 왕의 할아버지를 낳았습니다. 집안을 일으킨 것입니다.

  반대로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세운 집을 허물어버립니다.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자기 집안을 몰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작은 성공으로 마음이 교만해지고, 과도한 욕심을 부림으로 자기 손으로 그 집을 허물어 버립니다. 에스더서에 하만이 그와 같았습니다. 그는 총리의 위치에 오르자 교만하여 모르드개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를 높은 나무에 달아 죽이고자 하다가 자신도 죽고 그 가문도 다 멸절을 당했습니다. 

  14장 2-7절은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을 정직과 거짓말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정직하게 행합니다. 집은 실제적인 안식처일 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 관계로 맺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의 관계를 잘 맺어서 서로 힘을 주고 격려하고 치료하고 번성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덧입어서 이웃과의 관계도 잘 만들어 갑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입술로 자기를 보전합니다. ‘지혜자의 입술’이란 겸손한 입술로, 신중한 사고 속에 타인을 배려하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언어생활도 남다름을 보여줍니다. 

  지혜로운 자는 구유가 좀 지저분하고 더럽지만 소를 잘 키웁니다.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소는 달구지를 끌고, 쟁기질을 합니다. 사람이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소를 활용해서 일을 하면 몇 배의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 배설물은 퇴비로 쓰고 소가 송아지를 낳아서 기르면 부가 증폭됩니다. 소는 고기로도 먹고 그 후에는 가죽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가 7대 축산 강국이 된 것도 미국 헤퍼 재단에서 가난한 이 나라를 돕기 위해서 6.25 전쟁이 끝나고 젖소 천 마리를 공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헤퍼코리아에서 얼마 전에 101마리의 젖소를 네팔에 보내서 은혜를 갚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는 조그마한 것을 희생해서 큰 유익, 기쁨을 얻습니다. 작은 유익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많으면 집안이 늘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것으로 인해서 즐거움과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가만히 있으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그 집안이 잘 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습니까?

  미련한 여인이 집을 허무는데 언어생활이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합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거짓말을 마구 내뱉는 거짓증인으로 이웃과 공동체의 집을 허물어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오해하는 말, 뒤틀린 말, 가짜 뉴스 등으로 쓸데없이 힘을 뺍니다. 거만한 자는 교만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자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합니다(6). 그러므로 7절은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날 것을 명합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악인으로 살 것을 고집하기에 이런 자와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자와 공존하면 함께 파멸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압니다. 슬기로운 자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와 가는 길을 압니다. 자기의 한계와 분수를 알고 지킵니다. 이것은 인생의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면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지를 모르면서 열심히 달리는 선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인생이 어떠하겠습니까? 의미가 없이 죽도록 고생만하다가 삶을 마치게 되는 허무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무엇을 위해 왔는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정하고 달리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삶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인생 목적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죄의 근본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인생 목적을 정하고 자기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움과 미련함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죄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 같이 14장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깁니다. ‘심상히 여긴다’는 것은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인생과 신앙, 공동체의 집을 지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죄입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데, 죄가 대수인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죄로 인해 집이 완전히 파괴되고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 슬기로운 자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압니다. 그래서 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회개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합니다(9). 죄로 인한 고통과 사죄의 은혜에서 오는 즐거움은,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고통과 즐거움으로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친밀감을 줍니다(10).
 
  11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장막보다 집은 더 안정적이고, 보기에도 좋고 튼튼합니다. 집은 잘 무너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의 집은 제 아무리 튼튼하고 좋아보여도 한 번에 망합니다. 악한 자는 아무리 집을 잘 지어도, 금과 보석으로 아방궁을 지어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한 방에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의 장막은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고, 아슬아슬해 보여도 무너지지 않고 갈수록 흥합니다. 우리는 다 인생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정직하고 좀 가난하여도 서로 사랑하고 즐거움이 있는 집을 짓기를 기도합니다. 15장 16,1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요즈음 비건주의자들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데 옛날에는 가난한 자의 식사가 그러하였습니다. 살진 소를 먹는 것은 큰 부자나 할 수 있었고 고기는 사치품이었습니다. 우리의 식사가 정성을 드리면 적은 돈을 가지고도 사랑과 기쁨을 누리는 잔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밥을 먹는 집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움이 흘러넘치겠습니까? 한우 갈비를 뜯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식사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런 집을 세우는데 필요한 것은 돈보다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함이요 사랑입니다.
 
  12-19절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사람이 보기에는 바른 것처럼 보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의 윤리와 생활 태도는 무언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멸망의 길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삶은 웃을 때에도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이 굽어 있어서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습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다 믿습니다. 그는 주관이 없습니다. 철학이 없습니다. 말에 무게와 깊이가 없습니다. 결국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습니다. 그러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일을 할수록 문제만 일으킵니다. 이런 자는 일을 하는 것보다 가만있으면 주변 사람이 덜 피곤합니다.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립니다. 미련한 자는 이기적인 자,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을 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결과를 보고 행동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행동을 삼갑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서 죄 짓기를 두려워하고 악을 떠나서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자는 분노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믿기에 그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그는 분노 후에 생길 결과를 알기에 참고, 참고, 또 참습니다. 참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을 얻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가난한 이웃을 어떻게 대합니까?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습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사람들에게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됩니다. 반면 부요한 자는 선의의 친구도 있지만 돈 냄새를 맡고 따라온 친구들이 더 많습니다. 어쨌든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웃을 업신여기는 대신에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깁니다. 신명기에서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늘 구제하고 기부하는 일에 힘을 씁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복을 받습니다. 그는 인자와 진리로 선을 도모하기에 힘을 씁니다. 지혜로운 자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따르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배우는 고난, 사랑의 수고를 합니다. 그러니 늘 풍성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입니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멋있게 잘 쓰는 참으로 지혜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공장을 운영하며 그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는 돈을 사람의 생명의 구원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기본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은 매우 안정적입니다. 또한 그의 집은 자녀들에게까지 피난처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요 상급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으로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공급받습니다. 집을 잘 세우고 짓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자의 집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무엇일까요? 15:1-7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유순하게 대답함으로 분노를 쉬게 합니다. 지혜자의 집은 조용합니다. 화 낼 일이 거의 없습니다. 부드럽고 순진한 말로 대화를 하기에 정감이 넘칩니다. 지혜자의 집은 지식을 선히 베풀기에 그와의 대화는 금싸라기를 줍는 것과 같습니다. 워린 버핏과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서 내는 돈은 자선을 목적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경매를 붙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그와의 한 끼 점심 식사비는 4,567,888달러(한화63억원)이었습니다. 시바 여왕은 지혜의 왕 솔로몬과 식사하며 대화를 하기 위해서 엄청난 보석을 낙타에 싣고 왔습니다. 우리는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큰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얼마나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 합니다. 그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지혜, 시간을 초월하는 지식을 배웁니다. 그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말씀은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갖도록 회복해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다스림을 받을 때 생명을 살리는 말, 따스한 말, 격려의 말,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유순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과 공동체를 잘 경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5장 22절을 보십시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지혜로운 조언자가 많을수록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집단 지성의 힘을 사용할 때 한 사람의 지도자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개인은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반드시 지혜자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의논과 경영은 필요한데 거기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때에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23)” ‘때에 맞는 말’이란 시간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늘 변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충만한 삶을 살 때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를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무십니다. 교만한 자의 집이 허물어지는 것은 그가 세운 집이 온갖 거짓과 탐욕과 폭력으로 세워진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약자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가 밀고 들어오는 경계를 멈추게 하고, 과부의 지계를 정하셔서 보호하고 지켜주십니다(25b). 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십니다.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합니다. 눈 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입니다. 돈 몇 푼 때문에 형제간에 싸우기보다 손해보고 형제우애와 평화를 얻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집안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잘 되는 집을 보면 형제간에 사랑하여 서로 희생하고자 합니다. 잘 되는 교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충성되고 헌신된 분들로 인해서 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져 갑니다.

  15:33은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집의 결론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면 지혜를 얻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 존귀를 얻습니다. 집을 잘 세우고 유지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겸손함’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언어생활부터 유순합니다.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로서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아름답고 튼튼한 집, 멋진 집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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