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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년 마4강(4:1-11) 다만 그를 섬기라(윤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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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0-04-26 21:59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4 강
말씀 / 마태복음 4:1-11
요절 / 마태복음 4:10

다만 그를 섬기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1절) 여기서 ‘성령에 이끌리어’ 라는 말을 주목하여 봅시다. 출발점은 성령입니다. 주도자가 성령이고, 마귀가 아닙니다. 마귀는 넘어뜨림이 목적이지만, 성령이 이끄신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시험을 하면, 시험 문제를 낸 사람이나 시험 본 사람 모두 실력을 알게 됩니다. 욥기를 보면 마귀가 욥을 시험하지만 하나님이 허용하셨습니다. 마귀가 말합니다. ‘지금은 풍족하니까 그렇죠. 다 잃어봐요. 하나님을 저주할 걸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한번 해봐. 그래도 욥은 날 저주하지 않을꺼야.’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시험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 보였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험은 자기 실력,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시험을 통해 예수님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2절) 보통은 회개하거나 절박할 때 금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회개할 일도 없습니다. 그럼 왜 금식하셨을까요? 이 시기는 예수님이 사역을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 때입니다. 뭘 해야 할지, 뭘 목표로 할지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온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절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목자라고 생각도 안하고 있는 데 ‘당신이 목자라면’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목자라는 생각을 하고 ‘목자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질문이 의미있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이 40일동안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뭘 해야하는가.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냄을 받았다, 어떻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건가,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3). 왜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 주린 것도 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는 광야입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주린 백성들에게 돌에서 물을 내어 먹이셨습니다. 만나를 먹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먹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겠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제일 먼저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 아냐?' 라고 이야기합니다. 광야에는 널린 게 돌입니다.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 수 있다면 먹을 게 흔해지고, 먹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넘어서 '먹을 것을 아주 풍요롭게, 광야에 넘치는 돌들처럼 빵을 풍성하게! 그게 하나님의 아들이 할일이지! 먹고 살기 풍족하게 해줘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는 않습니다. 다른 것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빵이 없어도 다른 것에 몰두합니다. 가난해도 굶어도 자기 것을 몰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고파도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고파도 게임을 합니다. 사람은 먹을 것만 아니라 다른 것으로도 삽니다.

 그럼 예수님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여기서 ‘모든’ 은 영어로 ‘every’ 입니다. 뭉뚱그려서 전부가 아닌 모든 ‘각각의’ 말씀입니다. 각 사람이 처한 각 상황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 때 주시는 그 말씀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해주겠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빵을 줄 수도 있지만 빵을 넘치게 하는 것으로 사람을 살리려고 하지 않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기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자 하실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을 살리려고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빵은 생존을 보장해주지만, 사람 마음 안에 있는 여러 문제는 그대로 남습니다. 미움, 낮은 자존감, 교만, 이기심 등이 그대로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살도록 하십니다. 그럴 때 사람 안에 문제가 해결되고, 자기의 본래 모습 그대로 잘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둘째. 부딪침.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5~6절) 마귀는 왜 그냥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고 ‘거룩한 성’ 의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웠을까요. 여기서 거룩함은 일반 세상과 다른, 구별된 것입니다. 죄에 전혀 물들지 않은 순수함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는 그 자체입니다. 그 거룩함의 꼭대기에 세웠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너는 이 거룩함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해 놓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뛰어 내리라.’는 본래는 ‘너를 저 아래로 던져라.’ 는 뜻입니다. 저 아래는 거룩함에 반대되는 곳입니다. 세속적이고 죄에 물든 곳입니다. 그 곳에 너를 던지라는 것은 거기에 너를 맞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게 '정치판에 너를 던져야지. 혼자 바르고 곧게 한다고 되나, 국회에서 몸싸움도 좀 해야지, 선거 나가면 다른 후보도 좀 까고 진흙탕 싸움을 해야지. 그러면 사람들이 널 인정해줄거야.' 평신도 목자님들도 직장에 가면 회사 문화가 있습니다. 요즘에 많이 바뀌긴 했지만, 술자리 음담패설에 같이 웃으며 윗사람 기분에 맞춰주라고 합니다. 하도급 업체는 부려먹고 갑질 좀 하라고 요구받기도 합니다. '회사에 왔으면 회사에 너를 던져. 그럼 회사가 널 지켜주고, 부딪치지 않게 될거야.'

 뛰어내려서 보고 싶은 게 뭘까요?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부딪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심는 것입니다. 길을 가는 데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들이 많으면 발이 돌에 부딪힙니다. 뾰족하고 험한 돌들에 부딪치면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길을 가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죄악된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예수님의 길을 가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십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려고 합니다. 사람들과 부딪침이 없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악, 불신, 적대감, 시기, 분노와 부딪칩니다. 마귀는 말합니다. ‘사람들이랑 부딪치기만 하면 어떡해, 사람들이 당신의 메시지를 듣겠어? 그렇게는 어려울 거야. 부딪치면서 어떻게 간다는 거야. 혼자 거룩한 척 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좀 맞추어 줘야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7절) 단순히 시험하지 말라 했으니까 시험하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시험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가 안 부딪치게 해주실 거야’ 라고 믿는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주’ 곧 나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하나님이 내 주인이시고 나는 종이라고 하십니다. 종으로서 예수님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부딪치더라도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부딪치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 예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서 낮고 죄악된 곳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맞추지 않으십니다.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부딪치십니다. 성전에 들어가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 예수님은 죄악을 책망하십니다.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책망하고 경고하십니다.(마 23장) 종교지도자들, 심지어 제자들과도 부딪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의 발은 돌에 부딪쳐 크게 상함을 당하십니다. 부딪침,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살고 예수님이 일하신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는 길이 아니라, 부딪치는 길을 가고자 하실까요? 부딪치지 않으려면 사람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방식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십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방식이 새로운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 안에 ‘하나님은 죄인을 멀리하는 율법적인 분이야‘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본래 모습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죄인도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생각에 맞추면 본래 하나님의 모습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맞추지 않고 부딪침으로 본래의 하나님을 나타내십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지만 사람을 진정으로 하나님께 이끄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셋째. 다만 그를 섬기라.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8~9)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문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장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겠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예수님께 시험이 되려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 이 정말 갖고 싶어야만 합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준다고 하는 게 시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천하만국과 그 영광’은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을 말합니다. 왕,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가질 왕으로 오셨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가질 왕이지만 아직 갖지는 못했습니다. 마귀는 이 모든 것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이게 다 네 것이야 절하면 내가 줄께’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단은 ‘이 모든 것들’을 먼저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먼저 이야기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내가 얻을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얻을 것을 먼저 생각하면 그것을 주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빠가 퇴근길에 치킨을 사왔는 데 아이의 눈에는 치킨만 보이고 아빠는 안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빠가 먼저입니다. 마귀는 얻고자 하는 것, 치킨에 초점을 두게 합니다. 누가 주느냐에는 신경을 안 쓰게 합니다. 이것을 덥석 물면 마귀의 꾀임에 빠지게 됩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 세상 모든 나라들, 부와 땅과 권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에 매료되면 누가 주느냐는 별로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면서 그것을 얻고자 하면 시험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이런 것들을 얻고자하면, 걸려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내게 오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모든 것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또, 예수님의 대답에는 ‘이 모든 것’, ‘천하만국과 영광’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고 하십니다. ‘내 관심은 천하만국과 영광이 아니다. 내 관심은 하나님이다.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얻을 것이 있든 없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이 나의 목적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천하만국과 그 영광보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자 하실까요? 경배한다는 것은 엎드린다는 것이고 그 분을 인정하고 그 분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오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존재 의미와 목적도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마 8:36).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를 섬기라.”

 이상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였지만, 예수님은 마귀를 이기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지키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랍니까? 풍요로움, 안전한 삶, 세상 영광을 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 세상과 부딪치는 거룩함, 모든 것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삶 자체입니다.

 우리 중에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목자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시험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빵문제를 겪어야 했습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부딪쳤습니다. 누군가는 인정해줄 거라 기대했지만 오해받고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목자란 무엇일까. 목자로서 산다는 건 뭘까. 세상에 나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런 저와 우리 목자님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시험의 때에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붙들고  목자가 되고. 어떤 분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험을 통해 어떤 분은 이름처럼 기드온과 같은 기도의 큰 용사가 되셨습니다. 세상에 우리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각 사람의 존재 가치를 두고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각 사람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시험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그 예수님이 어떤 상황에서든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를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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