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년 부활특강(마28:1-20)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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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활절 특강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6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특히 부활은 이 세상 어느 종교에도 없고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고,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오늘은 부활절로서 기쁘고 감격적인 날인데 코로나 19로 인해서 함께 모여 마음껏 축하하고 즐거워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이 시간 주님의 부활의 증거들을 살펴보고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빈 무덤(1-8).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나 그를 따르던 여인들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였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빌라도에게 청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그 무덤을 삼일 동안 굳게 지켰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삼일 만에 살아난다면 이전보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부활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인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고대 유적은 대부분 무덤들입니다. 이집트 왕들의 무덤인 피라미드, 메카에 있는 마호메트 무덤, 진시황제의 무덤, 조선시대 왕릉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레닌의 무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거룩한 무덤 교회)가 예수님의 무덤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붉고 넓적한 돌이 있고 무덤도 있는데 물론 비어 있습니다. 이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명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이곳도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듭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결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두 눈을 뜨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부활의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몹시 싫어했습니다.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제자들은 여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찾아가서 무덤에 시체가 없어진 것과 세마포를 보았습니다. 머리를 쌓던 수건과 세마포를 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순교하기까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죄없는 그 분이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를 죽음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서 그의 죽음이 대속적인 죽음이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는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사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자기 죄로 인해서 고통하다가 죽을 인생들을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이기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어떤 사명을 주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여인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천사에게 들었습니다. 여자들은 빈 무덤과 천사의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빨리 달려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첫 증인으로 여자들을 택하셨을까요? 오늘날이야 여자들의 말이 세지만 옛날에는 여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 법정에서 여인들의 증언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막달라 마리아는 일찍이 귀신들렸던 여인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은 이런 여인들을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꾸며낸 이야기라면 여인들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 유명한 사람을 증인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여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부활의 증인은 위대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된 사람이면 족한 것입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심(9-15).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셨습니다. “평안하냐?” “샬롬!” 예수님은 무서워하는 여자들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자들이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여자들이 나아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발을 붙잡는 행위는 높은 사람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애통해 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여인들은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마음에 남아 있던 모든 슬픔과 어둠과 죽음의 권세가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기쁨과 감격과 경외심이 샘솟았습니다. 사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소식을 듣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을 느꼈고 지금도 그 은혜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감격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여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이 두려움에 잡혀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시며 거기서 예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고향이며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갈릴리에서 만나 사랑하시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말씀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을 다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거짓말을 넣어 주었습니다. 13-15절을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부활을 은폐하고자 했습니다. 제자들이 밤에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갔다는 말을 군인들이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자기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문책을 받고 군인으로서 명예도 실추가 됩니다. 로마 군병은 당대 최강 정예병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도 기를 쓰고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철통같은 경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힘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시간, 공간, 물질이라는 삼차원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인해서 도망을 가고 숨어 있었는데 어찌 감히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할 용기가 있었겠습니까?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여 이 말이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졌지만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거짓임을 알게 됩니다. 거짓과 불의가 잠시 득세해도 결국에는 진리가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지상 명령(16-20). 16,17절을 보면 예수님과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연약한 제자들에게 어떤 명령을 하셨습니까?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온 우주를 통치하는 만왕의 왕으로서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이처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서 주동사는 ‘제자를 삼으라’입니다. 이를 위해서 ‘가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그를 배우고 닮아서 그처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열 한명의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그를 닮은 제자가 되도록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열한 제자들에게만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된 모든 부활의 증인들에게 주시는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을까요? 먼저는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야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고 말씀만 공부하는 것으로는 결코 제자를 삼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있을 때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제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란 예수님과의 연합을 뜻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런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그 말씀이 진리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복음 역사는 계승 발전되고 모든 민족에게 전파됩니다. 예수님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비전을 가지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한 삶의 방향이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20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마무리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생명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우치고 인도하십니다.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해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은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고 있고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전세계에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불신입니다. 코로나 19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인해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무증상 감염에 대한 의심, 놀라운 전파력, 급격한 병의 악화 등으로 인해서 경제 활동이 위축되었습니다. 항공 산업 종사자, 자영업과 소상공인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정 예배를 드린 지가 벌써 7주째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죽음을 이긴 예수님의 부활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가져옵니다. 부활의 복음을 듣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면 이런 우리의 생각과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삶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잠과 같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잠시 사는 인생이라도 더 이상 허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죽어도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수고한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말할 수 없는 영광이 따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라도 잠시 이별의 슬픔은 있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위로를 받습니다.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실패를 회복하고 부활 신앙을 새롭게 덧입었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믿고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약해진 공동체성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에 힘써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어떻게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할지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지금도 동일하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6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특히 부활은 이 세상 어느 종교에도 없고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고,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오늘은 부활절로서 기쁘고 감격적인 날인데 코로나 19로 인해서 함께 모여 마음껏 축하하고 즐거워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이 시간 주님의 부활의 증거들을 살펴보고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빈 무덤(1-8).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나 그를 따르던 여인들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였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빌라도에게 청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그 무덤을 삼일 동안 굳게 지켰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삼일 만에 살아난다면 이전보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부활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인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고대 유적은 대부분 무덤들입니다. 이집트 왕들의 무덤인 피라미드, 메카에 있는 마호메트 무덤, 진시황제의 무덤, 조선시대 왕릉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레닌의 무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거룩한 무덤 교회)가 예수님의 무덤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붉고 넓적한 돌이 있고 무덤도 있는데 물론 비어 있습니다. 이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명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이곳도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듭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결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두 눈을 뜨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부활의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몹시 싫어했습니다.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제자들은 여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찾아가서 무덤에 시체가 없어진 것과 세마포를 보았습니다. 머리를 쌓던 수건과 세마포를 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순교하기까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죄없는 그 분이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를 죽음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서 그의 죽음이 대속적인 죽음이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는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사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자기 죄로 인해서 고통하다가 죽을 인생들을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이기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어떤 사명을 주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여인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천사에게 들었습니다. 여자들은 빈 무덤과 천사의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빨리 달려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첫 증인으로 여자들을 택하셨을까요? 오늘날이야 여자들의 말이 세지만 옛날에는 여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 법정에서 여인들의 증언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막달라 마리아는 일찍이 귀신들렸던 여인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은 이런 여인들을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꾸며낸 이야기라면 여인들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 유명한 사람을 증인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여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부활의 증인은 위대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된 사람이면 족한 것입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심(9-15).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셨습니다. “평안하냐?” “샬롬!” 예수님은 무서워하는 여자들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자들이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여자들이 나아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발을 붙잡는 행위는 높은 사람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애통해 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여인들은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마음에 남아 있던 모든 슬픔과 어둠과 죽음의 권세가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기쁨과 감격과 경외심이 샘솟았습니다. 사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소식을 듣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을 느꼈고 지금도 그 은혜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감격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여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이 두려움에 잡혀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시며 거기서 예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고향이며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갈릴리에서 만나 사랑하시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말씀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을 다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거짓말을 넣어 주었습니다. 13-15절을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부활을 은폐하고자 했습니다. 제자들이 밤에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갔다는 말을 군인들이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자기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문책을 받고 군인으로서 명예도 실추가 됩니다. 로마 군병은 당대 최강 정예병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도 기를 쓰고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철통같은 경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힘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시간, 공간, 물질이라는 삼차원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인해서 도망을 가고 숨어 있었는데 어찌 감히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할 용기가 있었겠습니까?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여 이 말이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졌지만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거짓임을 알게 됩니다. 거짓과 불의가 잠시 득세해도 결국에는 진리가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지상 명령(16-20). 16,17절을 보면 예수님과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연약한 제자들에게 어떤 명령을 하셨습니까?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온 우주를 통치하는 만왕의 왕으로서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이처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서 주동사는 ‘제자를 삼으라’입니다. 이를 위해서 ‘가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그를 배우고 닮아서 그처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열 한명의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그를 닮은 제자가 되도록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열한 제자들에게만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된 모든 부활의 증인들에게 주시는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을까요? 먼저는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야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고 말씀만 공부하는 것으로는 결코 제자를 삼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있을 때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제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란 예수님과의 연합을 뜻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런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그 말씀이 진리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복음 역사는 계승 발전되고 모든 민족에게 전파됩니다. 예수님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비전을 가지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한 삶의 방향이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20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마무리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생명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우치고 인도하십니다.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해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은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고 있고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전세계에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불신입니다. 코로나 19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인해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무증상 감염에 대한 의심, 놀라운 전파력, 급격한 병의 악화 등으로 인해서 경제 활동이 위축되었습니다. 항공 산업 종사자, 자영업과 소상공인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정 예배를 드린 지가 벌써 7주째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죽음을 이긴 예수님의 부활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가져옵니다. 부활의 복음을 듣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면 이런 우리의 생각과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삶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잠과 같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잠시 사는 인생이라도 더 이상 허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죽어도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수고한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말할 수 없는 영광이 따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라도 잠시 이별의 슬픔은 있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위로를 받습니다.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실패를 회복하고 부활 신앙을 새롭게 덧입었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믿고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약해진 공동체성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에 힘써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어떻게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할지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지금도 동일하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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