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mt9(6:19-24)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페이지 정보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9 강
말씀 | 마태복음 6:19-34
요절 | 마태복음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해서 직장을 잃고 사업이 어려워지고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코로나 19 속에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대학생들을 만나기 어려운 가운데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 양성을 어떻게 할까 염려합니다. 살다 보면 끊임없이 염려 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염려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19-24).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합니다. 과거에는 옷이 비쌌습니다. 집에서 직접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매우 비쌌습니다. 부자들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비싼 비단 옷도 낡아지고 좀이 먹습니다. 또 사람들은 금고를 만들어 돈을 보관합니다. 그러나 돈도 동록이 슬어버립니다. 또 돈이 많으면 사기꾼들이 냄새를 맡고 유혹을 합니다. 지난 주에는 고소득을 미끼로 전주 중앙시장과 모래내 전통시장에서 대부업을 하던 대표가 300억원을 들고 잠적했습니다. 시장 상인 절반이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라임 자산 운영에 돈을 맡겼다가 환매 중단사태를 맞았습니다. 자산 운용을 맡은 회사가 –100% 손실을 봤기 때문에 돈을 맡겼지만 한 푼도 돌려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억 단위로 돈을 맡겼기 때문에 그 피해가 큽니다. 단기적으로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돈을 맡겼다가 이런 피해를 본 것입니다. 잠언 23:5에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 가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를 두 번씩 강조하시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에 투자를 해야 잘 하는 것인지 알려 주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이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것,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에 남는 보물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관심은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예수님을 얻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얻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드림으로 그의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양들을 위해서 식사 서빙을 하고 선교를 위해서 드리는 일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한 것은 타버릴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들은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5:58). 디모데전서 6:17-19 말씀을 다 같이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2,23절을 보십시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은 몸에서 등불 역할을 합니다. 고대인들은 눈의 상태에 따라서 세상이 밝아지거나 어두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좋으면 온 몸이 밝아지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집니다. 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건전한 혹은 정결한 상태를 말합니다. 눈이 성해야 온 몸이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성한 눈은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은 올바른 관점,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영원히 남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탐욕으로 인해서 눈이 성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 땅에 보물을 쌓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재물’은 아람어로 맘몬(Mammon)인데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재물 신의 이름입니다. 맘몬은 인간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위장합니다. 그러나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복된 가정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선물은 살 수 있지만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운동 기구를 살 수 있지만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두 주인을 섬기고자 해도 자연스럽게 한 주인을 중히 여기고 한 주인을 경히 여기게 됩니다. 인간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을 취하시면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가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과 시간과 인생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25절부터는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였습니다. 25-34절에 염려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 헬라어에서 ‘염려’는 마음이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나친 근심걱정 때문에 마음이 나뉘는 것입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염려의 95%가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가 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몸을 주신 하나님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과 의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연을 통해서 시청각 교육을 하십니다. 26-29절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들과 산에 때를 따라 물을 주시어 식물들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 식물들을 동물들이 먹고 자라납니다. 사람은 그 식물과 동물들을 먹고 살아갑니다. 식물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는 활발한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새와 동물들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먹을 것을 구합니다. 사람도 일을 하면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을 받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안정되고 나은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굶어 죽어야 합니까? 무료 급식을 하는 밥퍼공동체의 표어는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입니다. 더 나아가 “아픈 사람은 누구나 치료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로 기독교 최초 무료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은 염려하는 것이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7은 말씀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도울 준비를 다 해 놓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의 인생 길을 인도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고 싸우고 죄도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먹고 입는 문제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재물을 신으로 섬기며 헌신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재물이 없으면 염려하고(25,31), 재물이 있으면 더 쌓아놓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녀는 물질이 있을 때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20), 없을 때에는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셋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방인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3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강조점은 먼저입니다. ‘먼저’라는 말씀은 삶의 우선순위를 뜻합니다. 물론 신자도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땅에 살면서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우리 마음이 먼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 그를 왕으로 섬기며 경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가정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섬기게 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라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인애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죄사함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탄이 죄와 죽음으로 다스리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나라를 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면서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와 의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어두움의 권세자들과 영적인 싸움을 싸움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배우는 삶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구하게 되면, 하늘 아버지께서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친히 해결해주십니다. 이 말씀은 천지 창조 때에 주셨던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으로 사명을 주시고 나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을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욱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한 목자님은 의사고시를 준비하느라 바쁜데 양과 일대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많은 고민이 되었지만 먼저 양과 일대일을 하고자 결심을 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는 전국의사고시에서 수석을 하였습니다. 찍은 것도 다 맞았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서울지구 성탄연합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탄극과 댄싱과 합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때가 학생들에게는 기말고사 기간이기 때문에 매우 바빴습니다. 그런데 먼저 성탄연합예배 준비에 자신을 드리며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학생들이 더욱 깨어 시험을 준비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 학생은 위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댄싱을 하면서 병도 낫고 지금은 선교사로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34).” 우리는 불필요한 염려 대신에 매일 매일 믿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또 내일이라는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일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염려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힘써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또한 주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제가 기도에 더욱 헌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주님과 교제하는 일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제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중심을 잡고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6:19-34
요절 | 마태복음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해서 직장을 잃고 사업이 어려워지고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코로나 19 속에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대학생들을 만나기 어려운 가운데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 양성을 어떻게 할까 염려합니다. 살다 보면 끊임없이 염려 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염려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19-24).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합니다. 과거에는 옷이 비쌌습니다. 집에서 직접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매우 비쌌습니다. 부자들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비싼 비단 옷도 낡아지고 좀이 먹습니다. 또 사람들은 금고를 만들어 돈을 보관합니다. 그러나 돈도 동록이 슬어버립니다. 또 돈이 많으면 사기꾼들이 냄새를 맡고 유혹을 합니다. 지난 주에는 고소득을 미끼로 전주 중앙시장과 모래내 전통시장에서 대부업을 하던 대표가 300억원을 들고 잠적했습니다. 시장 상인 절반이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라임 자산 운영에 돈을 맡겼다가 환매 중단사태를 맞았습니다. 자산 운용을 맡은 회사가 –100% 손실을 봤기 때문에 돈을 맡겼지만 한 푼도 돌려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억 단위로 돈을 맡겼기 때문에 그 피해가 큽니다. 단기적으로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돈을 맡겼다가 이런 피해를 본 것입니다. 잠언 23:5에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 가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를 두 번씩 강조하시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에 투자를 해야 잘 하는 것인지 알려 주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이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것,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에 남는 보물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관심은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예수님을 얻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얻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드림으로 그의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양들을 위해서 식사 서빙을 하고 선교를 위해서 드리는 일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한 것은 타버릴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들은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5:58). 디모데전서 6:17-19 말씀을 다 같이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2,23절을 보십시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은 몸에서 등불 역할을 합니다. 고대인들은 눈의 상태에 따라서 세상이 밝아지거나 어두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좋으면 온 몸이 밝아지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집니다. 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건전한 혹은 정결한 상태를 말합니다. 눈이 성해야 온 몸이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성한 눈은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은 올바른 관점,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영원히 남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탐욕으로 인해서 눈이 성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 땅에 보물을 쌓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재물’은 아람어로 맘몬(Mammon)인데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재물 신의 이름입니다. 맘몬은 인간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위장합니다. 그러나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복된 가정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선물은 살 수 있지만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운동 기구를 살 수 있지만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두 주인을 섬기고자 해도 자연스럽게 한 주인을 중히 여기고 한 주인을 경히 여기게 됩니다. 인간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을 취하시면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가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과 시간과 인생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25절부터는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였습니다. 25-34절에 염려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 헬라어에서 ‘염려’는 마음이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나친 근심걱정 때문에 마음이 나뉘는 것입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염려의 95%가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가 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몸을 주신 하나님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과 의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연을 통해서 시청각 교육을 하십니다. 26-29절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들과 산에 때를 따라 물을 주시어 식물들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 식물들을 동물들이 먹고 자라납니다. 사람은 그 식물과 동물들을 먹고 살아갑니다. 식물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는 활발한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새와 동물들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먹을 것을 구합니다. 사람도 일을 하면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을 받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안정되고 나은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굶어 죽어야 합니까? 무료 급식을 하는 밥퍼공동체의 표어는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입니다. 더 나아가 “아픈 사람은 누구나 치료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로 기독교 최초 무료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은 염려하는 것이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7은 말씀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도울 준비를 다 해 놓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의 인생 길을 인도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고 싸우고 죄도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먹고 입는 문제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재물을 신으로 섬기며 헌신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재물이 없으면 염려하고(25,31), 재물이 있으면 더 쌓아놓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녀는 물질이 있을 때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20), 없을 때에는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셋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방인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3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강조점은 먼저입니다. ‘먼저’라는 말씀은 삶의 우선순위를 뜻합니다. 물론 신자도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땅에 살면서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우리 마음이 먼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 그를 왕으로 섬기며 경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가정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섬기게 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라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인애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죄사함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탄이 죄와 죽음으로 다스리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나라를 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면서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와 의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어두움의 권세자들과 영적인 싸움을 싸움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배우는 삶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구하게 되면, 하늘 아버지께서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친히 해결해주십니다. 이 말씀은 천지 창조 때에 주셨던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으로 사명을 주시고 나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을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욱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한 목자님은 의사고시를 준비하느라 바쁜데 양과 일대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많은 고민이 되었지만 먼저 양과 일대일을 하고자 결심을 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는 전국의사고시에서 수석을 하였습니다. 찍은 것도 다 맞았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서울지구 성탄연합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탄극과 댄싱과 합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때가 학생들에게는 기말고사 기간이기 때문에 매우 바빴습니다. 그런데 먼저 성탄연합예배 준비에 자신을 드리며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학생들이 더욱 깨어 시험을 준비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 학생은 위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댄싱을 하면서 병도 낫고 지금은 선교사로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34).” 우리는 불필요한 염려 대신에 매일 매일 믿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또 내일이라는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일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염려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힘써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또한 주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제가 기도에 더욱 헌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주님과 교제하는 일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제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중심을 잡고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
2020마태복음-9m.hwp (22.5K)
0회 다운로드 | DATE : 2020-05-31 14:27:3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