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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mt8m(6:1-18)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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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0-05-24 20:01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8 강
말씀 | 마태복음 6:1-18
요절 | 마태복음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추구해야 할 경건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경건 생활 중 기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셨습니다. 금식도 기도에 포함한다면 더욱 기도에 강조점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생활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대한 깊은 경외심과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구제(1-4) :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의를 행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면 과장하거나 꾸미게 됩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위해서 의를 행하게 되면 마음이 점차로 부패하게 됩니다. 우리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하고 진실되고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사람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제를 하고 사람의 영광을 받으면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구제해야 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의를 행할 때 은밀하게 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은밀한 구제는 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또 구제에 따른 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지식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구제는 단순히 가난한 자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영혼을 위해서 말씀을 주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카운슬링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인생을 살 때 오히려 자신의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또한 구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구제할 때 천국에서 상급이 큽니다.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제는 하나님과 나만 아는 믿음의 비밀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 기도(5-15) : 기도에 관한 구절이 경건생활에 관한 말씀에서 가장 긴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기도가 경건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골방은 어떤 곳입니까? 골방은 창고나 다락방처럼 밀폐된 공간입니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골방은 세상으로 향한 문이 닫히고 하나님께만 문이 열린 은밀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한적한 곳에 가서 하나님께만 집중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사랑과 신뢰를 고백합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깊어집니다.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기도할수록 우리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뜨거워지고 성령에 붙들린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한결 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을 덧입게 됩니다. 기도할 때 자기부인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7,8절을 보십시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중언부언’은 마법의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같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알고 계시기 때문에 반복해서 중얼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 적당한 때에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아도나이 즉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근하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알려주십니다. 아들이나 딸이 아버지에게 나아가 친밀하게 구하듯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단순히 공간적으로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치 높은 망대 위에서 사방을 샅샅이 살피듯이 하늘 위에서 세상을 온전히 살펴보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감격이 됩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며 섬긴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또한 하나님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들의 필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대접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온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주인이며 왕이십니다. 모든 피조물로부터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아담 때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며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대놓고 하나님을 욕하는 망령된 자들도 있고, 하나님 대신에 각종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스타들의 이름이 우상이 되어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는데 가수나 스타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세상이 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영광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들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요 존재 목적입니다.

  두 번째로, 나라가 임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역사를 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죄와 죽음 권세 아래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의한 일, 억울한 일, 원통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공의와 인애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왕이 되어 주관하는 이 마음에 하나님이 왕으로 임하사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모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음란 왕국, 게임 왕국, 도박 왕국, 마약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바뀌도록 기도합니다. 내 마음에, 우리 가정에, 캠퍼스에, 이 나라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이 세상은 좀 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집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불순종하고 반발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서 반역과 불순종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얻는 것이요,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씀에 계시되어 있고 양심과 이성을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좁고 낮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크고 높은 뜻을 따라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구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항상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합니다. 또한 잘 살게 되면 자신이 잘 났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평생 먹고 살기 위해서 죽도록 수고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 하나님이 신실하게 공급해주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때마다 공급해주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그날 하루 먹을 양식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과하게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매일의 삶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삶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양식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 문제, 건강 문제, 결혼 문제, 자녀 문제 등 실제적인 문제가 있으면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광의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빌4:19).

  다섯째는 용서와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매일 밥 먹듯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매일 발을 씻듯이 죄를 씻어야 합니다. 육신에 양식이 필요하듯이 영혼에는 죄사함이 필요합니다.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파스칼은 죄인은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희망이 없는 죄인과 희망이 있는 죄인입니다. 희망이 없는 죄인은 죄를 범하고도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죄인은 죄를 범하고 죄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서는 죄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구하기 전에 선행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는데 90%가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가 준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받은 상처만 생각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판단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형제의 작은 허물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의 죄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의 빚을 다른 사람에게 갚아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의와 사랑과 용서입니다. 회개하고 용서하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여섯째,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13).” 우리는 연약함으로 인해서 늘 죄를 짓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 확신, 자기 신뢰로 인해서 기도하지 않다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시험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식할 때에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신자의 경건생활은 은밀한 중에 해야 합니다. 구제, 기도, 금식이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해질 때 그의 상급을 받습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은 한 순간 뿐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상은 현세적으로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과 기쁨을 주고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성숙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맺고 자랍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가 주시는 복을 누리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더 잘 알고 사랑하는 데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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