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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mt7(5:17-48)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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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0-05-17 13:34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7 강
말씀 | 마태복음 5:17-48
요절 | 마태복음 5:48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는 지난 주 천국 백성의 행복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은 천국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준 높은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차원이 너무 높아서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망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지녀야 할 성숙한 내면성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하게 한다는 말씀은 본래의 의미를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고자 하셨습니다.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어떠합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적인 순종에 힘을 썼지만 제자들은 율법의 정신을 파악하고 지키게 되면 더 나은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창시자요 수여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율법을 해석하신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율법 해석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첫째, 살인하지 말라. 21,22절을 보십시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딘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거나 머리가 텅 빈자라는 뜻의 욕인 라가라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살인으로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미움과 시기가 발전하여 증오가 되고 이것이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인의 뿌리가 되는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를 회개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쏟아내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8은 말씀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23,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한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형제가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 대응할 생각만 합니다. 내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되면 형제의 마음에 미음과 원망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적극적으로 형제와 화목하기를 힘씀으로 생명을 풍성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계명을 실천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풍성하도록 배려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형제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의 적극적인 순종은 생명을 보존하고 풍성하게 하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도로에 횡단보도를 만들고, 코로나 19에 감염되면 즉시 신고하여 검사를 받고 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의 적극적인 조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이 이태원에 다녀온 것을 병원에 신고하여 병의 확산을 막았습니다. 반대로 한 학원 강사는 이태원에 다녀온 것을 속여서 병의 확산을 초래하였습니다.

  또 나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고 하십니다. 고발을 당하면 재판을 받게 되고 옥에 갇히고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거기서 나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최후의 심판을 받기 전, 즉 살아 있을 때 형제를 용서하고 화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둘째, 간음하지 말라. 27,28절을 보십시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혼하거나 결혼한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음행은 결혼이란 테두리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서로 간에 맺은 결혼 서약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불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드라마의 주제도 갈수록 도를 넘고 있습니다. 직장인의 1/3이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에 간음죄가 폐기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안목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가입하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도 이미 간음을 행한 것입니다. 대개 남자들은 육체적 성관계를 갖는 것만 간음으로 여기고, 반면 여자들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만나는 것까지 불륜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음에 품은 음욕까지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음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싸워야 합니까?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29,30).” 지옥의 고통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눈을 빼고 손목을 자를 각오로 음란의 죄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김유신이 자신을 기생집으로 인도하던 말의 목을 잘라버린 것 같이 단호한 각오가 없이는 죄를 끊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n번방 문제를 일으킨 한 가해자도 죄의식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유서를 써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n번방을 운영했던 사람은 그것이 나쁜 악마의 짓인지 알면서도 스스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습니다. 손에 수갑을 채워서 멈춰줘야 비로서 그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체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무서운 것이고, 악마는 인간을 끌고 다니며 온갖 추한 죄를 짓도록 만듭니다. 골로새서 3:5,6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그러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죄의 세력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시편 119:11절을 다 같이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죄에 끌려다니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암송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모세 당시 이혼은 전적으로 남편의 권한에 속하였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천대하였고 별 사유 없이 아내를 버렸습니다. 버림받은 여자들은 전 남편에 묶인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이혼하는 것을 막고, 이혼당한 여인들이 재혼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혼 증서를 써주도록 했습니다. 이혼증서는 전 남편과 결별했기 때문에 재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었습니다.
 
  셋째, 맹세에 대한 가르침. 구약에서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십니다. 물론 염색을 할 수 있지만 곧 돌아옵니다. 오직 우리 말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고 하십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또한 진실한 삶을 통해서 맹세를 하지 않아도 말과 행동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원수도 사랑하라. 또 모세는 율법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기 말씀은 보복으로 인해서 남을 해치는 것을 미리 막을 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대 맞으면 열 대를 때려주고 싶은 것이 본성입니다.  보복을 한다고 해서 악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보복을 하면 원한만 더욱 깊어집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할 때 악인이 부끄럽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미움과 증오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의 내면에 역사하는 악은 공의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한한 용서와 사랑만이 내면에 역사하는 죄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유다 벤허는 메살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마음에 칼을 갈며 살았습니다. 그는 전차 경기에서 메살라를 짓밟아주었습니다. 그래도 미움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벤허에게 네가 메살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벤허가 십자가에 달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는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마음에서 복수의 칼이 제거됨을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받을 때 그의 내면에 역사하던 미움과 증오심이 사라졌습니다.

  원수에 대한 옛 계명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릅니까? 43,44절을 보십시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웃조차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 백성 된 제자들에게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과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도 참 부족합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너무나 수준이 높아 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죽이려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기적이고 사랑없는 자신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배울 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이 자라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을 때만 가능합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인간적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신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 되었던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파멸해 가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하다는 말은 본바탕이 흠이 없고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선하십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십니다. 이런 온전하신 하나님처럼 제자들도 온전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갈수록 예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 자녀들의 특권이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쓰신 네덜란드의 코리텐 붐(Corrie Ten Boom 1882-1983)여사가 있습니다. 이 분은 세계 제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독일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그 곳에서 부모와 형제들이 고문 때문에 죽었습니다. 갖은 고문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온 후 평생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고자 결단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기도할 때 어느날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코리야, 너는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거라.” 이때 코리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가라시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그러나 독일만은 못 가겠습니다. 그들은 우리 부모님과 가족들을 죽인 나라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는 나를 저주하고 욕하고 침뱉는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을 기억해라. 네가 내 딸이라면 독일에 가서 사랑의 복음을 전하거라.” 코리는 겨우 순종을 해서 독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회에서 설교를 하고 내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악수를 하기 위해서 서 있었습니다. 그 줄에는 한 허름한 외투를 입은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 때 수용소에서 온갖 추잡한 방법으로 자기 형제자매들을 고문하고 추행했던 바로 그 자였습니다. 코리는 그를 본 순간 심장이 멎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코리가 부르르 떨고 있는 사이에 그 남자가 다가와서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코리는 도저히 손을 내밀 수 없어서 순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하늘에서 이 사람에게 저주의 벼락이 내리기 전에는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나를 조롱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십자가에 못 받아 죽인 자들을 용서했단다. 너도 그를 용서하거라” 코리는 다시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성령의 능력을 베푸셔서 손을 내밀게 하셨습니다. 그때 하늘의 평강이 임하였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코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인 당신이 우리 독일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해 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제가 죄 사함 받고 새사람이 되기 위해 나왔으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 순간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의 사랑이 코리의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그때 모든 미움이 눈 녹듯이 녹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코리 여사는 전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로서 전쟁의 아픔과 상처로 고통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함을 덧입고 화해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사람들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덧입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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