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mt5(4:12-25)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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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5 강
말씀 | 마태복음 4:12-25
요절 | 마태복음 4:23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오늘 말씀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리고 치유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빛과 같아서 어두운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흑암에 앉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을 맛보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천국 복음을 새롭게 듣고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 석방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 사명을 다 한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셨다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15,16).” 예수님은 세상에서 자기의 뜻을 실현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말씀의 종으로 사셨습니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갈릴리 북부 지방은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가장 피해가 컸습니다. 죽음과 질병과 상처로 고통하고 수탈로 인해서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전쟁 피해자들로 인해서 혼혈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무시를 받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흑암에 앉아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그들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무기력하게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곳은 밝아집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빛을 비추셨습니다. 시편 119:105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빛이 비추이면 자연히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또 빛이 비추이면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갈 길이 보이게 됩니다. 빛은 우리 마음에 활력을 주고 잠을 자던 사람도 깨어나게 합니다.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요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평강과 담대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치료의 광선을 비추사 병든 자들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새 생명을 얻고 빛 가운데 나아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으로 도전하고 새 일을 성취합니다. 마음에 빛이 있는 사람은 꿈과 희망을 갖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가장 먼저 전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은 힘써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역사를 계승하여 다른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 말씀을 전했을 때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는 예수님이 천국을 가져왔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복음 역사를 시작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하고 왕이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후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가 열심히 그물을 던지며 일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평범한 어부들이었습니다.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면 행복하고,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어획량에 따라서 울고 웃는 인생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은 그의 제자가 되라는 초청입니다. 당시 스승과 제자는 도제교육을 하였습니다.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스승의 사상과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빠져서 고통과 허무의 바다 속에서 살다가 죽어갑니다. 이런 사람들을 살려내고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영적인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로 키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어떤 일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갈등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르심 받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결단이 분명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분을 사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바꾸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던 삶에서 돌이켜 사람을 낚는 어부 즉, 사명 중심의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자기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자기 영광에서 하나님 영광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삶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안드레보다는 좀 더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또 이 형제들은 아버지와 함께 그물 깁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손질하고 수선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다음날 고기잡이를 위해서 구멍을 수선해야 합니다.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다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그물을 던지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물을 깁고 수선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전도해서 양을 데려오는 사람도 필요하고, 데려온 양을 잘 돕고 양육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의 동역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세우는데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안드레는 조용하게 환경을 잘 준비하고 야고보는 불같은 열정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형제들을 부르심으로 제자양성을 시작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렸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적게 가진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버리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버리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어려울 때에 중심을 잡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무명의 갈릴리 촌놈들이었습니다. 일생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의 삶을 살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새 이스라엘 공동체의 열두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부르심을 받고 곧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용기와 결단이 그들을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들이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함께 하시며, 섬기시고,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전도훈련, 섬기는 훈련, 광풍 훈련, 믿음 훈련, 기도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본을 보이시면서 제자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빚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양성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요, 계승 역사를 이루는 길입니다. 제자 양성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많은 투자와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 양성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한 사람을 제자로 키우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지고 생명력을 유지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우리가 일생 한 명의 제자라도 세우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보다 값진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후 예수님이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며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자들을 고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과 선포와 치유의 사역을 통해서 메시아로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심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고통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죽도록 수고하고,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 복음은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런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은혜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인해 허무해 하며, 무의미한 삶을 피곤하게 반복해야 하는 인생들에게 천국 복음은 생명을 주고 희망을 주고 살아야 할 의미를 줍니다. 천국 복음은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천국 복음은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여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육체적인 질병, 정신적인 병, 무기력한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임하는 곳에는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감당해 주시고 나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4장 2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오래된 영혼의 병들을 치유해 주시고 온전하게 해 주시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십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흑암에 앉은 사람이 빛 가운데 나오게 됩니다. 죄와 사망과 어둠의 세계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의와 생명과 빛의 세계로 옮겨지게 됩니다. 우리가 코로나 19의 어두움 속에서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고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일대일, 팀 모임, 각종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가정에서도 매주 20팀의 일대일과 팀모임, 소감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각 방마다 일대일을 동시에 온라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센터를 집으로 옮겨다 놓은 기분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를 할 때 천국이 가정에 임한 것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혔지만 편지를 씀으로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옥도, 사슬도 묶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라인을 통해서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으로 한 목사가 수십만 명에게 말씀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대가 어두울수록 말씀을 전파함으로 회개의 역사, 천국이 임하는 역사가 각 가정과 이 나라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날마다 천국을 맛보고 또 천국의 전파자로서 힘 있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4:12-25
요절 | 마태복음 4:23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오늘 말씀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리고 치유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빛과 같아서 어두운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흑암에 앉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을 맛보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천국 복음을 새롭게 듣고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 석방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 사명을 다 한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셨다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15,16).” 예수님은 세상에서 자기의 뜻을 실현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말씀의 종으로 사셨습니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갈릴리 북부 지방은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가장 피해가 컸습니다. 죽음과 질병과 상처로 고통하고 수탈로 인해서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전쟁 피해자들로 인해서 혼혈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무시를 받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흑암에 앉아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그들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무기력하게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곳은 밝아집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빛을 비추셨습니다. 시편 119:105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빛이 비추이면 자연히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또 빛이 비추이면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갈 길이 보이게 됩니다. 빛은 우리 마음에 활력을 주고 잠을 자던 사람도 깨어나게 합니다.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요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평강과 담대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치료의 광선을 비추사 병든 자들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새 생명을 얻고 빛 가운데 나아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으로 도전하고 새 일을 성취합니다. 마음에 빛이 있는 사람은 꿈과 희망을 갖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가장 먼저 전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은 힘써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역사를 계승하여 다른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 말씀을 전했을 때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는 예수님이 천국을 가져왔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복음 역사를 시작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하고 왕이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후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가 열심히 그물을 던지며 일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평범한 어부들이었습니다.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면 행복하고,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어획량에 따라서 울고 웃는 인생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은 그의 제자가 되라는 초청입니다. 당시 스승과 제자는 도제교육을 하였습니다.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스승의 사상과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빠져서 고통과 허무의 바다 속에서 살다가 죽어갑니다. 이런 사람들을 살려내고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영적인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로 키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어떤 일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갈등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르심 받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결단이 분명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분을 사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바꾸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던 삶에서 돌이켜 사람을 낚는 어부 즉, 사명 중심의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자기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자기 영광에서 하나님 영광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삶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안드레보다는 좀 더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또 이 형제들은 아버지와 함께 그물 깁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손질하고 수선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다음날 고기잡이를 위해서 구멍을 수선해야 합니다.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다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그물을 던지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물을 깁고 수선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전도해서 양을 데려오는 사람도 필요하고, 데려온 양을 잘 돕고 양육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의 동역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세우는데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안드레는 조용하게 환경을 잘 준비하고 야고보는 불같은 열정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형제들을 부르심으로 제자양성을 시작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렸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적게 가진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버리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버리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어려울 때에 중심을 잡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무명의 갈릴리 촌놈들이었습니다. 일생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의 삶을 살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새 이스라엘 공동체의 열두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부르심을 받고 곧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용기와 결단이 그들을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들이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함께 하시며, 섬기시고,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전도훈련, 섬기는 훈련, 광풍 훈련, 믿음 훈련, 기도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본을 보이시면서 제자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빚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양성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요, 계승 역사를 이루는 길입니다. 제자 양성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많은 투자와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 양성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한 사람을 제자로 키우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지고 생명력을 유지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우리가 일생 한 명의 제자라도 세우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보다 값진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후 예수님이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며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자들을 고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과 선포와 치유의 사역을 통해서 메시아로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심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고통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죽도록 수고하고,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 복음은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런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은혜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인해 허무해 하며, 무의미한 삶을 피곤하게 반복해야 하는 인생들에게 천국 복음은 생명을 주고 희망을 주고 살아야 할 의미를 줍니다. 천국 복음은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천국 복음은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여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육체적인 질병, 정신적인 병, 무기력한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임하는 곳에는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감당해 주시고 나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4장 2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오래된 영혼의 병들을 치유해 주시고 온전하게 해 주시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십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흑암에 앉은 사람이 빛 가운데 나오게 됩니다. 죄와 사망과 어둠의 세계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의와 생명과 빛의 세계로 옮겨지게 됩니다. 우리가 코로나 19의 어두움 속에서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고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일대일, 팀 모임, 각종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가정에서도 매주 20팀의 일대일과 팀모임, 소감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각 방마다 일대일을 동시에 온라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센터를 집으로 옮겨다 놓은 기분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를 할 때 천국이 가정에 임한 것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혔지만 편지를 씀으로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옥도, 사슬도 묶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라인을 통해서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으로 한 목사가 수십만 명에게 말씀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대가 어두울수록 말씀을 전파함으로 회개의 역사, 천국이 임하는 역사가 각 가정과 이 나라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날마다 천국을 맛보고 또 천국의 전파자로서 힘 있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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