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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mt17(11:1-30)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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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0-07-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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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17 강
말씀 | 마태복음 11:1-30
요절 | 마태복음 11:28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날 코로나 감염증으로 모임과 활동이 제약됨으로 인해서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4일 그저께 6시부터 교회 소모임에 대한 금지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해 왔지만 더욱 기쁜 마음으로 일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주시는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라고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진정한 쉼을 누리며 새 힘을 덧입고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셨습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지 일년이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자기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는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심판을 하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불의한 헤롯의 죄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는데 예수님은 헤롯을 심판하고 자기를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말씀을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내가 예수님께 기대하고 있던 일들이 빨리 성취되지 않으면 마음이 피곤합니다. 언제까지니이까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힘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4-6).”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로서 그에 합당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세례 요한이 실족하지 않는 길은 처음에 받은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말씀을 주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25년 동안 땅과 자손을 주시지 않고 기다리셨지만, 그가 힘들어 할 때마다 처음에 주신 말씀을 기억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그 한 말씀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했을 때 약속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당할 때에 나를 부르실 때 받은 그 한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기초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를 볼 수 있어야 소망 가운데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어떠하였습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의구심으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갈대와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세상 영광이나 사람들의 관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나 세상 권력자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반석처럼 굳게 서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심지가 굳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보다 나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입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했지만, 신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보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메시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까지 목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 가운데 임하는 놀라운 체험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천국이 시작되기 이전 시대에 속한 사람입니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한다’는 것은 ‘습격해서 탈취한다’, ‘강탈한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한 강도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였습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으로 침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덤덤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테니 춤을 추며 놀자.” 그러나 그들은 춤추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 장례놀이 하고 놀자. 우리가 슬피 울테니 너희는 가슴을 치고 상여를 메고 나가.” 그러나 그들은 가슴을 치지 않았습니다. 손바닥도 같이 쳐야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먹고 마시자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왜 힘들게 금식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을 세대를 생각할 때 즐겁게 먹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오셨고, 혼인 집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셨습니다. 21-24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가버나움과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이적들과 말씀을 직접 듣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볼 때 화가 나셨습니다. 그들의 하늘까지 높아진 교만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부족하였습니까? 그 말씀에 지혜와 감동이 부족하였습니까? 그들의 덤덤한 마음, 굳어버린 마음, 교만한 마음이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한편 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처할 사람들입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 아이들같이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버지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초청하십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한다’는 것은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지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는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인해서 심령이 짓눌린 사람입니다. 다윗은 시편 38편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죄를 짓고 나서 뼈가 쇠하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기도도 되지 않았습니다. 심령이 막혔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도록 울었습니다. 그러나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깊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7,8).”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혜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진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통로, 은혜의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게 합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시 119:2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무덤덤한 사람들, 멸망으로 치닫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말씀을 받을 때 죄사함을 받고 마음이 쉼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쉰다’는 것은 멈추는 것입니다. 수고를 멈추는 것이요, 염려와 근심을 멈추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한계를 잘 알고 짐을 주님께 맡길 때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68:19절은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짐을 날마다 지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주님께 염려와 짐을 맡겨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쉼을 누려야 합니다. 내가 무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나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주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고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쉬는 날입니다. 일을 멈추고 쉬어도 하나님은 내가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갖고 안식일에 쉬어야 합니다. 참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쉼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28-31).”

  29,30절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이 대비가 됩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으로서 연약한 사람이라도 부드럽게 감싸주십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통해서 새 힘을 공급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게라도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굳이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하려고 하지도 않고 권리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말, 따뜻한 말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 사람들을 진정시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온유’라는 단어는 곪은 상처를 치료하고 고통을 진정시키는 연고(ointment)를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무거운 짐, 율법의 멍에와 짐을 대신 짊어주십니다. 죄와 허물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율법의 짐을 내려놓고, 죄책감과 죽음의 심판과 죄의 통치에서 벗어나서 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수고를 멈추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후에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멍에를 메지 않고 쉬기만 하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멍에’는 일을 하기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일을 쉽게 하는 도구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쉽다는 것은 내 몸에 딱 맞는다는 뜻입니다. 옷이 몸에 딱 맞을 때 매우 편하고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능력과 은사와 형편을 잘 아시고 그에 맞게 멍에를 메도록 하십니다. 또 예수님이 함께 멍에를 메어 주십니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해줍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를 배우는 삶을 살 때, 선한 열매,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를 따를 때만이 진정으로 쉼이 있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쉼을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쉼을 누리며 복된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내 삶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보고 배우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분들에게 진정한 쉼과 행복을 넘치게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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