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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mt16(10:1-42) 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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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20-07-19 13:08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16 강
말씀 | 마태복음 10:1-42
요절 | 마태복음 10:7,8

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지난 주 우리는 예수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하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어 전도 여행을 보내십니다. 제자들을 추수할 일꾼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열 두 사도에게 권능을 주어 전도 여행을 보내심(1-15).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권적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제자들의 인격적인 결단과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심으로 부르셨고,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와 안드레에게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비전을 주시며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와 일꾼들과 배를 버리고 따랐습니다. 이 부르심은 제자들의 인생에 놀라운 전환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 성령의 권능이 임함으로 메시아 사역을 힘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권능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고 또 우리에게 성령이 임할 때 주어집니다(행1:8). 권능은 지위에서 오는 힘입니다. 그들이 제자로써 일을 할 때 이런 권능이 나타남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힘 있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적 싸움입니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냄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신음하고 고통합니다. 사람들의 연약함을 감당하고 치료함으로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구원과 변화의 역사는 사랑과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다스릴 수 없습니다. 구원은 더 강한 자가 와서 강한 자를 결박하고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믿는 자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권능과 재능과 은사를 주셔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필요한 권능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합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상응하는 새 이스라엘의 열두 사도를 부르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이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함께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이때까지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분의 인격과 삶과 사역을 보고 배웠습니다. 이런 그들이 이제는 세상에 나가 열두 명의 작은 예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공동체를 이루고 이들과 함께 일을 하심으로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을 양성하셨기 때문에 복음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크고 아름다운 건물보다 제자를 키우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제자를 키우는 일에 전심전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내보내시며 어디로 가라고 하셨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먼저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선민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에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한 후에 이방인들에게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략을 가지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집이요, 이스라엘의 율법이 있는 집입니다. 그 집의 잃은 양이라면 이스라엘 집의 모든 것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집은 안전과 보호, 양식이 있고 쉼이 있는 곳입니다. 집은 가장 좋은 곳입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집을 나간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는 집을 나가자 허랑방탕하게 되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가나안 신자들입니다. 또 하나님을 떠나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목자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황과 형편을 잘 아시고 그들에게 익숙한 유대 땅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먼저 가까이에 있는 잃어버린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양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소홀히 하는 양들을 찾아보면 한두 명은 있습니다. 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19시대이지만 한 명의 양을 얻어 일대일 말씀 공부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가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천국이 가까이 왔다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그들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도와줌으로서 전인구원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입니다. 육신이 병들고 아프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슬픕니다. 반대로 우울해지면 또 몸이 아프고 쇠약해집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몸을 갖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파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알고 자유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며 사회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제도개선도 해 나가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회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을 때 외적인 변화까지 일으킵니다. 이는 복음이 누룩과 같이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복음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주신 것, 말씀을 주신 것이 나의 노력이나 의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공짜로 주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구원을 받기에는 너무나 구원이 값비싸고 나는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과 목자님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거저 주어야 합니다.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음껏 누리다가 모든 것을 다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줄 수 있을 때 빨리 주고, 이왕 줄 것 기쁨으로 주어야 합니다. 베풀 힘이 있을 때 베푸는 것이 지혜요, 영원히 남는 것이요, 복된 인생입니다. 42절을 보면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작은 자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주님이 상급을 주실 일인가 알게 됩니다. 한 명의 양을 치기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분들에게 주님의 넘치는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힘들다고 낙심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감당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는 돈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입니다. 복음의 일꾼이 먹고사는 일에 얽매이면 복음역사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물질적인 지원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의 종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 돈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일꾼이 돈이나 사람에 얽매이면 돈의 종이 되거나 사람의 종이 되기 쉽습니다. 돈과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추수할 일꾼으로 보내는 분이 하나님이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러야 합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십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제자가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제자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원수 사이에 평안을 가져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이런 평안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평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만약 누구든지 제자들을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그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발의 먼지를 떨어 버려야 합니다.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둘째, 제자들이 받게 될 어려움(16-33). 16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제자들은 양과 같고 그들이 상대할 세상은 이리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리들을 양과 같이 만들라고 보내십니다. 제자들이 세상을 상대할 때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뱀은 냉혈동물입니다. 제자들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상황 판단을 신중하게 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힘없는 양이 이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뱀처럼 차갑게 이성적으로 이리들을 연구해서 이리의 약점을 찾아내고 이리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이리 같은 죄인을 양처럼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비둘기 같은 순결로 이리 같이 이기적이고 사나운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요? 순결은 하나님께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순결한 힘으로 이리 같은 죄인들을 감동감화 시킬 수 있습니다. 지혜와 순결은 검보다 권력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은 사람들을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갈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정치적인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왕들과 총독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됩니다. 교회는 핍박을 통해서 깨어 있고 성장해왔습니다.

  제자들은 감옥에 갇히고 법정에서 송사를 할 때에 두렵지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할 말을 주실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지혜와 지식의 영이시며, 변호사이시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제자들 안에 내주하시면서 할 말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입니다. 이슬람권에서, 힌두교권에서, 공산주의 치하에서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에도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신자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또 이 동네에서 핍박을 받으면 저 동네로 피해야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29-31절을 보십시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당시 참새는 시장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양식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라면 한 봉지를 사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하찮은 참새까지도 하나님은 살펴보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참새같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자의 삶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고난만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가난하게 살고 사업이 실패하고 질병으로 고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떨어지는 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참새보다 얼마나 더욱 귀합니까? 우리가 떨어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기 때문에 보호해주시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도 끝까지 예수님을 시인하게 되면 예수님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인정해주십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면 예수님도 심판의 날에 그 사람을 부인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제자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은 다른 사람을 살릴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살립니다. 말씀을 전하며 살 때 삶이 활기차고, 모임도 신선한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셋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34-42).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검은 살을 베고 피를 흘리고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 합당하지 아니합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분명한 우선순위가 서게 됩니다. 안암 센터의 한 목자님이 예수님을 믿자 그 어머니가 센터에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믿음을 버리던지 내가 죽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며 옥상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믿음을 지켰고 나중에 스탭목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훌륭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디모데 목자님도 예수님을 믿으니 아버지가 낫을 들고 목에 대셨습니다. 네가 믿음을 버리던지 죽던지 결단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디모데 목자님은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나갔고 많은 믿음의 열매를 남겼습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죄악된 자신을 죽임으로 새롭게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은 꽃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죽여야 사는 길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날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는 오직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이 길을 끝까지 인내하며 갈 수 있도록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상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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