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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mt13(8:18-34)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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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0-06-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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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13 강
말씀 | 마태복음 8:18-34
요절 | 마태복음 8:26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우리는 지난 주 질병을 짊어지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해주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희생이 따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해 주신 예수님을 깨달을 때 우리도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제자도와 광풍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 귀신들린 자 둘을 고치신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제자도(18-22).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서 장모를 고쳐주시고 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인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요구나 인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사셨습니다.

  이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아뢰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19).” 서기관은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아왔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했을까요? 그는 예수님께서 가르친 산상수훈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의 정신을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 예수님을 따라가면 자신의 장래가 활짝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기관이 예수님이 제자가 된다면 예수님의 사회적 위치는 더 견고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어떤 도전적인 말씀을 하십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서기관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성경을 완전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적인 성취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종교적인 성공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머리 둘 곳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제자들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따르려면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데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예수님께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지만 먼저 아버지를 장사를 지낸 후에 그리하겠다고 합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들로서 부모에 대한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먼저 무엇을 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앞에서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뒤에 죽은 자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우선순위는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정을 극복하고 가정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4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제자는 예수님을 배우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좋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 일에 대해서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매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그가 누구시기에(23-27).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이 따랐습니다. 제자들 중에 일곱은 전직 어부였습니다. 그들에게 갈릴리 바다는 추억이 서린 곳이요 손바닥을 내려다보듯이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그들이 자신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뱃노래를 부르며 노를 젓고 있는데 구름이 몰려들고 바람이 점점 세어졌습니다. 금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와중에서 배 뒷머리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일하시고 섬겨야 할 일들이 많아서 충분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갈 때 잠깐 잠깐 주무셨습니다. 단잠을 주무시는 예수님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습니다. 성난 파도가 깊이 잠든 예수님을 깨울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들의 모든 실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파도가 높아지고 배에 물이 차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경험과 지식과 기술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환난 앞에 우리의 지식도, 경험도, 돈과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님께 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때가 있습니다.
 
  욥은 갑자기 닥친 환난을 통해서 재산도 잃고 자녀들도 다 잃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3-6).” 욥은 환난을 통해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깊이 발견하였습니다. 그가 죄를 지어서 환난을 받았다는 친구들의 고소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친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지만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욥은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1-22).” 욥은 환난을 통해서 정금 같은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욱 거룩하고 신령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환난을 이긴 후에 두 배의 재산과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다시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잃은 열 자녀를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아픔 가운데서도 그는 환난을 통해서 눈으로 주를 뵈옵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면서 죄악된 나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셨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깜빡 잠이 들어 미안하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리어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명령에 순종하여 배를 탔습니다. 또한 배 안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행하십니다. 제자들은 이제까지 많은 기적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위협 앞에서는 예수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에 한계를 그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믿음이 작은 것이라며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듯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바다에 수장시킴으로 구속 역사를 끝장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훼방하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의 말씀 한 마디에 미친 듯이 널뛰던 파도가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는 역사를 이루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바람과 바다가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세계뿐만 아니라 질병의 세계, 자연계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광풍을 잠잠하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경외심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셋째, 돼지 2000마리를 희생하면서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28-32). 예수님이 광풍을 잠잠하게 하신 후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광풍을 겪고 나서 혼비백산이 된 상태인데 또 다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자 둘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지르고 그 앞에서 벌거벗은 채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귀신들은 더러운 영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더러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 귀신은 거짓의 영이요 생명을 해치는 영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눈빛과 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나 소름이 끼쳤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간구했습니까? 29-31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하니” 귀신들린 자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때가 이르기 전에 자신들을 심판하러 오셨는지 묻고 있습니다. 귀신들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아 무저갱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심판 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마침 그 주변에 돼지 떼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귀신들린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영적 권세로 인해서 귀신들은 더 이상 사람들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을 살리고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귀신의 속성은 생명을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귀한 성품을 파괴하고 영혼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합니다. 죄에 매여서 살아가도록 역사합니다. 이런 귀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수많은 영혼들이 죽임을 당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N번방 사건을 일으킨 학생들을 보면 앳된 청소년들입니다. 그들 속에 더럽고 악한 생각이 가득할 때 음란물 영상을 만들고 유포시켰습니다. 자극적인 변태 행위를 통해서 돈을 벌고 피해자들의 생명을 파괴하였습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요즘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해지는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내팽개쳐진 채 사이버상에서 게임 등을 하며 성장하다 보니 정상적인 인격형성의 기회를 놓쳐 버린다. 이것이 가학적인 영상을 유포하고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갈수록 가족과의 따뜻한 관계, 정상적인 친구관계를 맺지 못하다보니 사탄의 똘마니들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음란중독, 알콜중독, 분노조절장애 등등 우리 사회는 미쳐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귀신들을 제압하시고 그들에게 사로잡힌 영혼들을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게 해 주시는 거죠.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말씀의 권세를 통해서 귀신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돼지 2000마리를 희생하셨습니다. 이는 시가로 6억 원에 해당이 됩니다. 집 두 채를 희생하더라도 한 영혼을 살린 것입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루더라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희생 없이는 생명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했습니다. 온 시내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나음 받은 사람을 데가볼리에 남겨두심으로 전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이 데가볼리에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자도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자연계와 영적 세계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코로나 19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발견하고 겸손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회개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과 환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며 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학생연합모임을 이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 방학 기간에도 말씀공부와 제자양성에 힘을 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인생 항해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 깊이 알아가며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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