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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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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20-11-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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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란 무엇인가?

가정교회란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입니다. 가정교회는 개척 교회와 같습니다. 요회를 인도하는 분들을 우리는 목자와 사모라고 부릅니다. 사모는 보통 목사의 부인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는 목자의 부인을 사모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이런 명칭으로 부를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고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즉 그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칼빈은 이를 만인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평신도들이 제사장이요 목자요 성경 선생으로서 목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신약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로마서 16:3,5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골 4:15을 보십시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도 가정교회입니다. 빌레몬서 1:2을 보십시오.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여기서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도 가정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23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온 교회’는 연합가정교회로서 우리의 주일 예배에 해당이 됩니다. 가정교회는 남녀가,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백석대학교의 홍인규 교수는 바울신학의 대가인데 가정교회를 이해하지 못하면 바울 신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홍인규, 「바울신학사색」(킹덤북스 2016). p.487.
 

2. 가정교회는 잠정적인 형태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꿈꾸셨던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셨던 교회 공동체는 가족공동체였습니다. 마태복음 12:49-50을 보십시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그의 친 어머니요 형제들이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삼으신 후에 이들을 통해 가정교회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부르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정교회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46-47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5천명, 여자와 어린이까지 합하면 만명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200여 가정교회로 이루어진 가족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목자였던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디모데전서 5:1-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사도 바울은 교인들 간에 가족과 같은 관계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성도들에게 아주 친밀한 가족과 같은 문안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정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런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가정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세 축과 네 기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가정교회의 3축(지정의)

1) 주일 예배는 가정 교회 연합 모임입니다. 주일에 모든 가정교회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각자 받은 바 은사를 발휘하여 예배를 섬깁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하여 각 가정교회들의 하나됨을 힘써 이룹니다. 주일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 가지를 삶에 적용하고자 결단을 하고 한 주 동안 순종하기를 힘씁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는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이 자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헌신과 결단입니다. 예배는 은혜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은혜를 받고 헌신을 결단하는 자리입니다.

2) 가정 교회는 매주 주중에 각 가정에서 돌아가면서 모임을 합니다. 가정교회의 핵심은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에서는 성경공부가 주가 아니라 한 주간의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상처 받은 자, 우는 자, 고난당하는 자를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 사랑 때문에 비신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믿기로 결심합니다. 가정교회는 지정의 중에서 ‘정’에 강조점을 둡니다. 가정교회는 본을 보여줍니다. 삶이 변화되려면 본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교회 모임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정교회는 섬기는 본, 사랑하는 본, 영적 투쟁의 본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서로 아픔과 기쁨을 나누면서 배우는 장입니다.

3) 삶 공부 : 주중에는 그룹이나 개인적으로 성경 공부를 합니다. 성경공부는 우리의 지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신과 사람에 대해서 깊이 배웁니다. 성경공부를 삶 공부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경을 통해서 삶을 배우고 변화되자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소감을 써서 발표합니다. 이를 통해서 배운 바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고자 투쟁해왔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귀납법적으로 관찰, 해석 적용하면서 삶의 변화를 추구해왔습니다. 또한 성경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적용을 했는가 말로 본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본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들은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본대로 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배운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내가 좋은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본을 보면서 우리는 자라납니다. 불신자는 먼저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제가 12월 16일부터 생명의 삶이라는 기초적인 공부를 13주에 걸쳐서 할 예정입니다. 이때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합니다. 그 후에 구원을 확신하도록 또 영적인 성장과 훈련을 위해서 일대일 또는 그룹으로 성경을 공부합니다. 이에 대한 소개는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

2. 가정 교회 4 기둥
1) 교회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마태 28:19~20) 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교회의 사명은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사명을 예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예배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2) 방법은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3) 영혼 구원하여서 제자를 만드는 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입니다.

2) 예수님의  제자 훈련 방식은 무엇입니까? “(마가 3:14~15)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의 제자양성 방법은 함께 있으면서 본을 보이고, 전도하며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1) 지식 전달보다는 능력 배양이었습니다.
(2) 교실 강의보다는 현장 실습이었습니다.
(3) 가르쳐서 제자 만들려 하기 보다는 보여서 제자를 만들려 하였습니다
(가) 예수님은 본을 보여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나) 바울도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다) 베드로도 장로에게 본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3) 성경적인 사역 분담입니다. “(에베소 4:11~12)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 목회자의 사역은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가) 사역을 할 수 있게 훈련해 줍니다.
(나) 사역할 수 있도록 사람은 적소에 임명해 줍니다.
(2) 성도의 사역은 목양을 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외에 목회자는 기도와 말씀을 전하고 (행 6:2~4),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4. 섬기는 리더십(막 10:45)
  (1) 인생의 목적은 섬김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3) 이웃의 종이 된다는 것은 이웃을 성공시켜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4) 영적인 권위는 섬김에서 나옵니다 최영기, 일일세미나 강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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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가정교회 모임을 가정에서 주중에 하려고 하였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안으로 주일에 센터에서 하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 19로 비대면 예배를 드림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하던 금요 기도모임도 가정교회 모임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가정교회를 해 나가도록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주중에 줌으로 가정교회 모임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평신도 지도자가 되어 가정집에서 6-12명이 매주 한 번 이상씩 모여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 즉 예배, 교육, 교제, 전도와 선교를 다하는 공동체’입니다. Ibid. p. 29.
 가정 교회는 또한 그 구성원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한 가족임을 깊이 느낄 수 있는 현장입니다. 가정교회 구성원들은 가정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를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 자매임을 체험합니다. 함께 식사하고, 삶을 나누고, 생명력 있는 말씀을 공부하고, 함께 예배드리고 받은 은사대로 일하면서 주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가정 교회 안에서 서로 지체의식을 가지고 있어 안정감과 소속감이 강해집니다. 이러한 평안과 소속감은 사역과 전도의 폭발력을 배가시키는 에너지원이 됩니다. 가정교회는 장소와 규모의 제한을 받지 않고 무한대로 확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적 제한 또한 없습니다. 구성원들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역을 감당할 만한 토양만 갖추어진다면 장소로 인한 곤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꿈꾸시던 교회, 신약교회의 회복, 건강하고 활력있는 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더욱 많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있을 것이고 환란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길은 가정교회가 대안입니다. 로마제국초기의 300년간 엄청만 핍박을 이기고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가정교회였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의 밀란 칙령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당 건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교회당은 소외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직사각형의 건물로, 회중석과 성직자의 좌석이 있는 성소로 분리되었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구별되고 예배는 성직자 중심인 의식으로 전환되고 평신도는 수동적인 관람객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에서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교회는 가족공동체의 특성을 상실하고 개인주의가 교회 안에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홍인규, 「바울신학사색」(킹덤북스 2016). p. 52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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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는 가정교회를 했기에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고,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생명력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써 신약교회를 회복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일을 감당함으로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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