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년 요9강(6:22-71) 생명의 양식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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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9 강
말씀 | 요한복음 6:22-71
요절 | 요한복음 6:35
생명의 양식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저는 떡을 참 좋아하는 ‘떡보’입니다. 떡이 좋은 이유는 은근한 맛과 먹고 나면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떡의 종류도 참 많습니다. 백설기, 가래떡, 송편, 인절미, 한 입에 쏙 들어가는 동글동글 경단, 자꾸만 또 먹고 싶게 달콤한 꿀떡, 몸에 좋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약식, 꽃잎으로 수를 놓은 화전, 소리만 들어도 구수한 찹쌀 떡, 영광의 모시 떡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떡보다는 빵을 더 좋아합니다. 생명의 빵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주식이 밥이기 때문에 생명의 밥이라고 해야 합니다. 떡, 빵, 밥이 다 양식이기에 오늘 말씀의 제목을 생명의 양식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생명의 양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생명의 양식과 대조되는 것이 썩을 양식입니다. 썩을 양식은 먹어도 죽습니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입니다. 죽음이 관계의 단절이라면 생명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됩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풍성해진다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영생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생명의 양식을 먹으러 가볼까요?
첫째, 썩을 양식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들(22-27). 예수님께서 안드레가 드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되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영적인 의미를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아 빵 문제를 해결받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양식을 얻기 위한 수고나 장래 안정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만한 데를 밤새도록 찾다가 가버나움에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빵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해주실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이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들은 영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다시 왔습니다. 예수님의 축복을 맛 본 후에 그들은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차원에서 육적인 차원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한 끼만 먹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빵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람들이 더 영적인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게 될까요?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국민소득이 일만 불을 넘어서면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적극적으로 이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받은 바 복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께 받은 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빵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합니다. 창세기 3:17을 보면 썩을 양식을 위해서만 사는 삶은 저주 받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거룩한 사명을 위해서 살도록 먹을 것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타락 후에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잃어버렸을 때 하루 세끼, 썩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평생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더 이상 저주 받은 삶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썩을 양식’이란 육신을 배부르게 하는 양식으로서 먹고 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먹지 않고 쌓아두어도 썩어 없어지는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했을 때 이틀 치 양식을 많이 거두었지만 다음 날에는 벌레가 나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썩을 양식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남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직장에도 다니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것에 인생의 소망과 목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영원한 생명을 존속케 하는 양식이란 뜻입니다. 생명을 주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양식입니다. 생명은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재생산을 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35).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죄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요 3:16).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영생은 필요 없고 당장 양식을 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영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힘을 쏟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려면 일생 동안 성장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28-34).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사람들은 빵 문제만 해결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고 감사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29절에서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정말로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은 하나님이 40년간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신실하게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만나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떡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한 주제인데 왜 그렇게 길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질문하고 대답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0,31).” 예수님은 이제까지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다른 표적을 구한 속 마음은 예수님을 믿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 조상들을 만나로 먹여준 것처럼 공짜로 그들을 먹여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그들의 생각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적인 빵, 썩을 양식만 생각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35-71).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에는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이성의 사랑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사람의 인정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주림과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아 고통하며 살아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갑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피곤하고 지쳐 있을까요?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께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1:28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6:33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빵이 인생 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는 다 그에게로 올 것이요 그에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기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39, 40절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 받은 사람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들은 빵이 인생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빵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돈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빵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빵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자 예수님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42).” 예수님은 그들에게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시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그에게로 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심령 안에 말씀의 가르침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이끄십니다(참조 렘31:31-34; 겔36:24-26).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예수님께 나오도록 하십니다.
47,48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51절도 보십시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만나는 광야에서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했지만 영생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떡이기 때문에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만나가 아닌 자신의 살과 피를 통해서 영생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죄인들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그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십니다(5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배부름과 만족을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이 필요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의 성품을 일생 닮아가고 그가 하신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63절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믿는 것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영으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주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영에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듣게 하시고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렵다며 대부분이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열 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신 것을 보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답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생명을 떡을 먹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거스틴은 “믿으라. 그러면 당신은 먹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영생을 얻고 누리길 기도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6:22-71
요절 | 요한복음 6:35
생명의 양식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저는 떡을 참 좋아하는 ‘떡보’입니다. 떡이 좋은 이유는 은근한 맛과 먹고 나면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떡의 종류도 참 많습니다. 백설기, 가래떡, 송편, 인절미, 한 입에 쏙 들어가는 동글동글 경단, 자꾸만 또 먹고 싶게 달콤한 꿀떡, 몸에 좋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약식, 꽃잎으로 수를 놓은 화전, 소리만 들어도 구수한 찹쌀 떡, 영광의 모시 떡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떡보다는 빵을 더 좋아합니다. 생명의 빵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주식이 밥이기 때문에 생명의 밥이라고 해야 합니다. 떡, 빵, 밥이 다 양식이기에 오늘 말씀의 제목을 생명의 양식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생명의 양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생명의 양식과 대조되는 것이 썩을 양식입니다. 썩을 양식은 먹어도 죽습니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입니다. 죽음이 관계의 단절이라면 생명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됩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풍성해진다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영생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생명의 양식을 먹으러 가볼까요?
첫째, 썩을 양식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들(22-27). 예수님께서 안드레가 드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되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영적인 의미를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아 빵 문제를 해결받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양식을 얻기 위한 수고나 장래 안정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만한 데를 밤새도록 찾다가 가버나움에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빵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해주실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이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들은 영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다시 왔습니다. 예수님의 축복을 맛 본 후에 그들은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차원에서 육적인 차원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한 끼만 먹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빵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람들이 더 영적인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게 될까요?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국민소득이 일만 불을 넘어서면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적극적으로 이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받은 바 복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께 받은 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빵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합니다. 창세기 3:17을 보면 썩을 양식을 위해서만 사는 삶은 저주 받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거룩한 사명을 위해서 살도록 먹을 것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타락 후에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잃어버렸을 때 하루 세끼, 썩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평생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더 이상 저주 받은 삶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썩을 양식’이란 육신을 배부르게 하는 양식으로서 먹고 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먹지 않고 쌓아두어도 썩어 없어지는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했을 때 이틀 치 양식을 많이 거두었지만 다음 날에는 벌레가 나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썩을 양식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남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직장에도 다니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것에 인생의 소망과 목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영원한 생명을 존속케 하는 양식이란 뜻입니다. 생명을 주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양식입니다. 생명은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재생산을 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35).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죄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요 3:16).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영생은 필요 없고 당장 양식을 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영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힘을 쏟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려면 일생 동안 성장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28-34).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사람들은 빵 문제만 해결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고 감사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29절에서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정말로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은 하나님이 40년간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신실하게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만나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떡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한 주제인데 왜 그렇게 길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질문하고 대답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0,31).” 예수님은 이제까지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다른 표적을 구한 속 마음은 예수님을 믿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 조상들을 만나로 먹여준 것처럼 공짜로 그들을 먹여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그들의 생각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적인 빵, 썩을 양식만 생각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35-71).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에는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이성의 사랑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사람의 인정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주림과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아 고통하며 살아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갑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피곤하고 지쳐 있을까요?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께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1:28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6:33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빵이 인생 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는 다 그에게로 올 것이요 그에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기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39, 40절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 받은 사람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들은 빵이 인생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빵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돈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빵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빵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자 예수님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42).” 예수님은 그들에게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시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그에게로 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심령 안에 말씀의 가르침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이끄십니다(참조 렘31:31-34; 겔36:24-26).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예수님께 나오도록 하십니다.
47,48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51절도 보십시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만나는 광야에서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했지만 영생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떡이기 때문에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만나가 아닌 자신의 살과 피를 통해서 영생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죄인들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그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십니다(5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배부름과 만족을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이 필요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의 성품을 일생 닮아가고 그가 하신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63절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믿는 것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영으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주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영에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듣게 하시고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렵다며 대부분이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열 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신 것을 보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답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생명을 떡을 먹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거스틴은 “믿으라. 그러면 당신은 먹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영생을 얻고 누리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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