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년 요8강(6:1-21)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페이지 정보

본문
2021년 요한복음 제 8 강
말씀 | 요한복음 6:1-21
요절 | 요한복음 6:11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네 번째 표적과 다섯 번째 표적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영원히 만족하게 하실 수 있는 생명의 밥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십니다. 산에서 먹을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오천 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건너편 바다로 가고자 했습니다. 노를 저어 한 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네 시간 동안 고생을 했지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을 때 그들이 원하던 목적지에 바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만족이 없는 삶을 사느냐, 참 만족을 누리느냐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진척이 없는 삶을 살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원하는 목적지에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 하사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네 번째 표적은 제자들이 둘씩 둘씩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선교보고를 하고 쉼을 누리고자 바다 건너편으로 갔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제자들은 쉬지도 못하고 있는데 무리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는 표적을 보고 병고침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각자 자기의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셨습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 명절을 새야 하는데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무리들을 어떻게 원대로 먹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심정(2).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님은 이미 배고픈 무리들을 먹이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를 낫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먹일 마음도 있고 먹을 능력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마태복음 9:36은 말씀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돈이 없어서라거나 무슨 잘못을 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목자가 없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문제가 쌓이는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십니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그 안에서 쉼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무리들과 말씀도 나누어 주시고 먹을 것도 함께 만들어 드십니다. 병도 고쳐주십니다. 자녀들도 영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쉼을 누리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자녀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자 하는 어머니 같은 목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험에는 항상 답과 함께 함정이 있습니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면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떡을 사서”라는 시험의 함정에 걸렸습니다. 빌립은 좋은 머리로 계산을 했습니다. 4000원짜리 김밥 하나씩만 5000명에게 나누어 주려고 해도 2000만원이 드는데 자기들의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빌립과 같이 계산만 하고 있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계산만 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빌립이 믿음이 없이 계산만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험 출제자이신 예수님의 힌트는 어디였습니까? ‘어디서’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요, 여기입니다.
둘째, 안드레의 믿음(8-9).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짜왔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안드레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고,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여기에서 해답을 찾아봅시다.
첫째로, 안드레는 가능성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자신에게 없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200데나리온이 없어서 5000명을 먹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안드레는 무리를 먹이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뒤져보니 먼지만 나왔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게 돈이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는 이리 저리 먹을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면서 먹을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았습니다. 마침내 한 어린아이가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 아이를 발견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것도 아닌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리도록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아마 안드레와 어린아이가 둘 다 순진하기 때문에 마음이 잘 통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안드레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얻으러 멀리 갈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과 주일 메시지와 성경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양식을 얻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기쁨이 있으면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양식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까? 그 사람들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자녀에게 말씀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한 사모님은 친형제자매들과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그레이스 오 선교사님은 암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블로그를 만들어 말씀과 그림을 그려서 나누었습니다. 그 구독자만 4000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다가 지난 3월에 하나님 나라에 영광스럽게 입성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학생들 중에는 우울증으로 고통하는 사람, 외로움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 인생의 불확실성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둘째로, 안드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안드레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을 때 이것이 5000명을 먹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받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을 때 예수님은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감사하셨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을 때 그는 도시락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오병이어를 믿음의 표현으로 주님께 드렸습니다.
한 목자님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운동도 못하고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동화 속에서 거북이도 한 번은 이기는데 그는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였습니다. 그는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대학도 무슨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넣었습니다. 그는 할 일이 없어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자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 실력을 오병이어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가르쳐 주면서 학생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오는 양들을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양들이 왔다 갔지만 그는 충성스럽게 양들을 말씀으로 먹였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가정에서도 좋은 아빠요 남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교회에서도 좋은 믿음의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로, 안드레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이것은 예수님께 향한 안드레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5000명을 먹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을 때 그것은 안드레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드린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5000명을 원대로 먹이셨습니다. 기도하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받을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며 받은 바 은혜를 자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라는 상황 속에서 5명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된 시국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UBF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선교보고대회와 선교사 수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28일부터 선교사 수양회가 시작되고 5월 30일 11시에 세계선교보고대회를 영상으로 두 시간 동안 진행할 것입니다. 선교사 수양회에는 1750명 이상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보고대회는 전세계가 3개 권역으로 나누어 만명 이상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5월 30일 오후 8시에는 전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님들과 한국의 동역자들이 홈커밍데이로 줌으로 만나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코로나 19상황에서도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제자양성을 하고 세계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위해서 오병이어를 드리는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쓰셔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구원 역사를 줄기차게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파는 코로나 19라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전하시는 말씀이 역사하사 생명 구원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원대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10-15).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역하셨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져오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지내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작은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작은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동역하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동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동역하셨습니다. 동역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역사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을 찾는 한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다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오십 명씩 백 명씩 푸른 잔디 위에 앉아서 먹을 것을 기다렸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를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안드레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빵을 떼어주면 빵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5천명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이 장면은 시편 23편을 생각나게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제자들이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 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하나님은 안드레의 믿음을 축복하사 그 많은 무리를 원대로 먹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6:33). 지금 여기서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그 뜻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오병이어는 작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오병이어를 믿음으로 예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놀랍게 축복하십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빵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 수 없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는데 배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도 여행을 갔다가 좀 쉬러 왔다가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고 피곤했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기를 원했지만 큰 바람과 파도로 인해서 제자들은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데 앞은 어두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아시고 밤 바다를 걸어 심방을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이 함께는 인생 항해와 예수님 없는 인생 항해는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영생을 얻습니다. 참 만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곤고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찾아오십니다. 생명의 양식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세계선교보고대회와 선교사 수양회, 홈커밍데이를 넘치게 축복하사 생명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6:1-21
요절 | 요한복음 6:11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네 번째 표적과 다섯 번째 표적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영원히 만족하게 하실 수 있는 생명의 밥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십니다. 산에서 먹을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오천 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건너편 바다로 가고자 했습니다. 노를 저어 한 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네 시간 동안 고생을 했지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을 때 그들이 원하던 목적지에 바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만족이 없는 삶을 사느냐, 참 만족을 누리느냐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진척이 없는 삶을 살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원하는 목적지에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 하사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네 번째 표적은 제자들이 둘씩 둘씩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선교보고를 하고 쉼을 누리고자 바다 건너편으로 갔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제자들은 쉬지도 못하고 있는데 무리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는 표적을 보고 병고침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각자 자기의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셨습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 명절을 새야 하는데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무리들을 어떻게 원대로 먹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심정(2).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님은 이미 배고픈 무리들을 먹이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를 낫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먹일 마음도 있고 먹을 능력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마태복음 9:36은 말씀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돈이 없어서라거나 무슨 잘못을 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목자가 없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문제가 쌓이는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십니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그 안에서 쉼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무리들과 말씀도 나누어 주시고 먹을 것도 함께 만들어 드십니다. 병도 고쳐주십니다. 자녀들도 영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쉼을 누리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자녀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자 하는 어머니 같은 목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험에는 항상 답과 함께 함정이 있습니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면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떡을 사서”라는 시험의 함정에 걸렸습니다. 빌립은 좋은 머리로 계산을 했습니다. 4000원짜리 김밥 하나씩만 5000명에게 나누어 주려고 해도 2000만원이 드는데 자기들의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빌립과 같이 계산만 하고 있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계산만 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빌립이 믿음이 없이 계산만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험 출제자이신 예수님의 힌트는 어디였습니까? ‘어디서’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요, 여기입니다.
둘째, 안드레의 믿음(8-9).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짜왔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안드레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고,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여기에서 해답을 찾아봅시다.
첫째로, 안드레는 가능성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자신에게 없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200데나리온이 없어서 5000명을 먹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안드레는 무리를 먹이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뒤져보니 먼지만 나왔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게 돈이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는 이리 저리 먹을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면서 먹을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았습니다. 마침내 한 어린아이가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 아이를 발견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것도 아닌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리도록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아마 안드레와 어린아이가 둘 다 순진하기 때문에 마음이 잘 통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안드레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얻으러 멀리 갈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과 주일 메시지와 성경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양식을 얻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기쁨이 있으면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양식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까? 그 사람들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자녀에게 말씀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한 사모님은 친형제자매들과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그레이스 오 선교사님은 암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블로그를 만들어 말씀과 그림을 그려서 나누었습니다. 그 구독자만 4000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다가 지난 3월에 하나님 나라에 영광스럽게 입성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학생들 중에는 우울증으로 고통하는 사람, 외로움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 인생의 불확실성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둘째로, 안드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안드레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을 때 이것이 5000명을 먹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받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을 때 예수님은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감사하셨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을 때 그는 도시락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오병이어를 믿음의 표현으로 주님께 드렸습니다.
한 목자님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운동도 못하고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동화 속에서 거북이도 한 번은 이기는데 그는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였습니다. 그는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대학도 무슨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넣었습니다. 그는 할 일이 없어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자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 실력을 오병이어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가르쳐 주면서 학생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오는 양들을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양들이 왔다 갔지만 그는 충성스럽게 양들을 말씀으로 먹였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가정에서도 좋은 아빠요 남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교회에서도 좋은 믿음의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로, 안드레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이것은 예수님께 향한 안드레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5000명을 먹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을 때 그것은 안드레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드린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5000명을 원대로 먹이셨습니다. 기도하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받을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며 받은 바 은혜를 자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라는 상황 속에서 5명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된 시국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UBF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선교보고대회와 선교사 수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28일부터 선교사 수양회가 시작되고 5월 30일 11시에 세계선교보고대회를 영상으로 두 시간 동안 진행할 것입니다. 선교사 수양회에는 1750명 이상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보고대회는 전세계가 3개 권역으로 나누어 만명 이상이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5월 30일 오후 8시에는 전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님들과 한국의 동역자들이 홈커밍데이로 줌으로 만나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코로나 19상황에서도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제자양성을 하고 세계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위해서 오병이어를 드리는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쓰셔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구원 역사를 줄기차게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파는 코로나 19라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전하시는 말씀이 역사하사 생명 구원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원대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10-15).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역하셨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져오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지내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작은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작은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동역하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동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동역하셨습니다. 동역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역사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을 찾는 한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다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오십 명씩 백 명씩 푸른 잔디 위에 앉아서 먹을 것을 기다렸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를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안드레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빵을 떼어주면 빵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5천명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이 장면은 시편 23편을 생각나게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제자들이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 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하나님은 안드레의 믿음을 축복하사 그 많은 무리를 원대로 먹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6:33). 지금 여기서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그 뜻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오병이어는 작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오병이어를 믿음으로 예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놀랍게 축복하십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빵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 수 없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는데 배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도 여행을 갔다가 좀 쉬러 왔다가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고 피곤했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기를 원했지만 큰 바람과 파도로 인해서 제자들은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데 앞은 어두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아시고 밤 바다를 걸어 심방을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이 함께는 인생 항해와 예수님 없는 인생 항해는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영생을 얻습니다. 참 만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곤고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찾아오십니다. 생명의 양식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세계선교보고대회와 선교사 수양회, 홈커밍데이를 넘치게 축복하사 생명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