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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21년 요6강(4:27-54) 말씀을 믿고 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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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1-04-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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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6 강             
말씀 | 요한복음 4:27-54
요절 | 요한복음 4:50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오늘 말씀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비교되어 나옵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갈릴리 사람들과 다만 말씀을 듣고 믿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왕의 신하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가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데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영접하고 이틀을 머물며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틀이 지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갈릴리인들이 그를 환영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골목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손 마른 사람을 고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청소한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갈릴리 가나에 다시 오셨습니다. 왕의 신하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 왕의 고위 관리가 가버나움에서 34Km를 달려와서 예수님께 청하였습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그의 아들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외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책을 마련했지만 진전이 없자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그의 간구는 간절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보이신 반응이 무엇입니까? 4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거절처럼 보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영생을 얻고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 나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향 갈릴리에 왔는데 그들은 말씀보다는 기적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29).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은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포함해서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데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많은 표적을 보았으면서도 믿음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표적을 구하는 것은 신앙의 목적이 이기적이고 음란하고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실망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요청하였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그는 아이가 죽으면 다 소용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그 정도인 것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어떤 도전적인 말씀을 하셨습니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왕의 신하 편에서 보면 얼마나 황당합니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간 것입니다. 그가 하루 밤을 거기서 지내고 아침에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길에서 그 종들을 만났습니다. 종들이 오다가 주인을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신하는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었습니다.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즉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입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두 번째 표적은 예수님에 관해서 무엇을 알려주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주관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그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죄로 병든 사람들이 치유함을 받고 온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합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는 34km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했을 때, 34km나 떨어진 가버나움에 있던 왕의 신하의 아들이 그 말씀대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2000년 전에 팔레스틴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날 우리가 듣고 믿을 때 성령께서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게 하십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서 우리가 거듭나고 죽어가던 영혼이 소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왕의 신하의 믿음은 참 놀랍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을 갖는 시작입니다. 이 믿음은 영생을 얻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75세가 되도록 자녀가 생기기 않았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믿기에 정말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그는 아들 하나도 없는데 그의 자녀들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무 환상적으로 들립니다. 이 말씀은 자식 하나 없이 운명적으로 늙어가는 아브라함에게 정상적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갔는데 10년이 지나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실망하며 따졌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에 그가 100세가 되어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때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8:34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자 할 때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보다 조금 앞세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기까지 나의 죄악된 교만을 억제해야 합니다.

  나아만은 아람 군대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왕 앞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포로로 잡아온 소녀 하나가 그 아내의 수종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여주인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고 말하였습니다. 나아만이 아람 왕의 편지를 들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나아만 장군을 엘리사에게 보냈습니다. 엘리사는 대머리였는데 문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나아만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서 몸을 입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이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노하였습니다. 그는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기까지 그의 교만을 꺾고 마음 속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존심을 꺾고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는 성질이 불같이 뜨거운 바다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내렸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몹시 지치고 허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너무 피곤해서 다시 헛된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몬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베테랑 어부이고 예수님은 목수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가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져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두 배에 고기를 채우매 배가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이야기는 참된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백부장이 종을 고친 이야기와 어느 정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경우에 일어난 서로 다른 기적입니다. 로마 백부장이 있었습니다(마 8:5-13). 로마 백부장은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로마 장교였습니다. 하루는 그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장교답지 않게 그는 긍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인을 자기 아들과 같이 사랑했습니다. 그의 아들 같은 하인이 병으로 괴로워하며 숨이 넘어가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장교의 동정심에 감동하여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답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이만한 믿음을 보고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가 그의 말씀을 믿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히브리서 4:2은 말씀합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 자매님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 때부터 어머니가 매우 아프셔서 어머니를 대신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 자매는 아침 일찍 밥을 짓고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안쓰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중학교는 집에서 8Km 떨어져 있어서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수업료를 제 때에 내지 못하여서 수업 시간 중에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녀는 학교 친구들 앞에서 매우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가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점점 말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누가 물으면 예, 또는 아니오가 전부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자는 되지 않을지언정 가난해서 괴로움은 당하지 말자”는 것을 삶을 좌우명으로 삼고 돈 버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졸업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간호보조원으로 독일에 가기로 결정하고 간호보조원양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독일에서의 삶은 외로움과 슬픔이었습니다. 삶다운 삶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절망하며 방황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기향 선교사님과 창세기 1장을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하고 뛸 뜻이 기뻤습니다. 그 후 스위스 여름수양회에서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이 빛이라” 말씀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후 사명인으로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독일 대학생들을 성경 말씀으로 섬기고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주일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또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할 때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닥쳤을 때는 지혜를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주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이 지시하시는 일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종이 주인의 음성을 듣지 않고 종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어떤 심적 부담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 부담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각을 심어 주십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면 일단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했을 때 일이 잘 풀리는 것을 체험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점점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함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분이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분임을 알려 줍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하시면서 남겨놓으신 것이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 자신을 만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행하신 일들을 계속해서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영적 생활의 기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속이 시원하게 하시고 힘이 나게 하십니다. 죄사함을 주시고 생명의 풍성함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며 교제할 때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딥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동행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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