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년 요3강(2:1-25)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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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3 강
말씀 | 요한복음 2:1-25
요절 | 요한복음 2:9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봄이 되니 여기저기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습니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정결예식에 쓰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이 결혼을 축복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첫 표적입니다. 그 표적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가나, 혼례식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친척이나 제자 중 하나가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일주일 동안 잔치가 계속되었습니다. 험한 세상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결혼식과 잔치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오랜 만에 잔치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제자들이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랬는지,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는 결혼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음료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여기저기서 불평이 나오고 혼주는 당황하고 곤란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가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아니, 포도주가 떨어지면 연회장에게 가서 상황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리아는 왜 이 문제를 연회장에게 가져가지 않았을까요? 연회장에게 가져가 봐야 포도주를 구해 올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에게 문제를 가져가 봐야 부담만 주고 잔치 분위기만 썰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는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지혜를 주셔서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기도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내가 해결하거나 다룰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걱정만 하던지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너무나 교만해서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기도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해 주시기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예수님께 나아가 도움을 구했을 때 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니 어머니에게 “여자여!”라니, 좀 서먹서먹하지 않습니까? 이는 ‘귀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때부터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립하였습니다. 자신이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였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는 거절처럼 보입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와 계획을 따라서 사셨습니다. 복음서 저자들도 예수님의 때에 대해서 말을 했고 저자 요한도 예수님의 ‘때’와 ‘시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7:6,8;12:23;17:1). “내 때”는 요한복음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12:23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내 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면서 시간을 게으르게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한 일정표가 있으셨던 것처럼, 우리 각자를 위한 하나님의 일정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요청을 예수님이 거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기도를 했는데 당장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잔소리를 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리아는 포도주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연회장이나 혼주를 책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다루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마리아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배울 것이 더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녀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식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염려되는 일들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고자 덤비면 절망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게으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만 낭비하게 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엇이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인들과 예수님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인들 입장에서 예수님은 손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인들이 예수님께 순종하기를 왕에게 하듯이 철저히 순종하도록 준비를 시켰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 영적인 권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음으로 하인들의 아름다운 순종을 살펴보겠습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항아리 하나에는 2리터짜리 생수통 50개의 물을 채워야 하는 양입니다. 그러니까 생수통 300개의 양입니다. 우리가 대개 6개로 묶여진 2리터짜리 생수통을 배달하려면 힘이 드는데 그런 것을 50개 운반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결코 작은 양이 아닙니다. 지금 하인들은 왕 같은 손님들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매우 바쁩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다 정결예식을 행하고 나서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하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는 목수요 30대의 청년입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을 듣고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들이 물을 채우되 적당히 하지 않고 아귀까지 채운 것을 볼 때 마음을 다해서 순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종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순종은 기꺼운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순종으로는 아귀까지 채울 수 없습니다. 한 80~90%를 채우고 다 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순종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120%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손발을 씻는 물을 손님들을 섬기기 위해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물이 포도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발 씻는 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손님들은 예수님이 만든 포도주를 즐겼습니다. 연회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습니다. 그는 포도주가 이전 것보다 좋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종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변화시키십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각종 우상을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이주를 합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지 못하고 이집트 왕에게 죽음을 당할까봐 아내를 누이로 속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의 수가 하늘의 별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을 아내로 맞아 이스마엘을 낳고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가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는 인생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또한 작은 믿음으로 거친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죽을 뻔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교회의 반석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 가두는 핍박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가 이방나라에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로 쓰임을 받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누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손이나 발을 씻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낮고 천한 우상숭배자, 어부,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도 믿음의 조상으로, 교회의 반석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첫 표적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아무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각자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교만과 열정에 사로잡혀 살았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탄의 종에서 예수님의 종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하인들의 순종은 예수님의 순종을 희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왕 되신 예수님이 희생제물인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실 수가 있습니까?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른 것 같이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그는 구원의 샘물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5:8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죄악된 인간은 자연적으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천지창조 사건이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해하는 책이 아닙니다. 믿으라고 주신 책입니다. 믿고 보니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의 비밀입니다. 또 우리는 힘들어도 순종합시다. 하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순종할 때 그들이 채운 양만큼 맛있는 포도주를 얻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또 내 마음이 상해도 순종합시다. 하인들은 주인과 연회장의 분부를 받아 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들을 불러서 예수가 당신들을 불러 무엇을 시키면 그대로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연회장과 주인이 있는데 아무 관계가 없는 손님으로 온 예수의 말을 듣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닙니다. 손발을 씻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여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의 영광’이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 1:3). 그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첫 표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결예식에 쓰는 물로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로 씻는 정결예식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요, 옛 종교입니다. 실체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가 만들어 주신 포도주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기고 새 사람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면 죄 씻음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은 물(H2O)를 포도주 (C2H5OH)로 만드셨습니다. 탄소가 창조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는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새 피조물로 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고 아버지와 자녀,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기쁨을 얻고 새 사람이 됩니다.
12-25절은 예수님이 참 성전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받고 죄사함을 받습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문제가 생길 때 염려하기보다 예수님께 들고 나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되 인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감당함으로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죄 씻음을 받고 새 피조물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변화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2:1-25
요절 | 요한복음 2:9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봄이 되니 여기저기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습니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정결예식에 쓰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이 결혼을 축복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첫 표적입니다. 그 표적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가나, 혼례식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친척이나 제자 중 하나가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일주일 동안 잔치가 계속되었습니다. 험한 세상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결혼식과 잔치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오랜 만에 잔치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제자들이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랬는지,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는 결혼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음료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여기저기서 불평이 나오고 혼주는 당황하고 곤란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가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아니, 포도주가 떨어지면 연회장에게 가서 상황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리아는 왜 이 문제를 연회장에게 가져가지 않았을까요? 연회장에게 가져가 봐야 포도주를 구해 올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에게 문제를 가져가 봐야 부담만 주고 잔치 분위기만 썰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는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지혜를 주셔서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기도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내가 해결하거나 다룰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걱정만 하던지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너무나 교만해서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기도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해 주시기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예수님께 나아가 도움을 구했을 때 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니 어머니에게 “여자여!”라니, 좀 서먹서먹하지 않습니까? 이는 ‘귀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때부터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립하였습니다. 자신이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였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는 거절처럼 보입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와 계획을 따라서 사셨습니다. 복음서 저자들도 예수님의 때에 대해서 말을 했고 저자 요한도 예수님의 ‘때’와 ‘시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7:6,8;12:23;17:1). “내 때”는 요한복음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12:23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내 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면서 시간을 게으르게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한 일정표가 있으셨던 것처럼, 우리 각자를 위한 하나님의 일정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요청을 예수님이 거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기도를 했는데 당장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잔소리를 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리아는 포도주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연회장이나 혼주를 책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다루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마리아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배울 것이 더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녀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식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염려되는 일들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고자 덤비면 절망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게으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만 낭비하게 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엇이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인들과 예수님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인들 입장에서 예수님은 손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인들이 예수님께 순종하기를 왕에게 하듯이 철저히 순종하도록 준비를 시켰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 영적인 권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음으로 하인들의 아름다운 순종을 살펴보겠습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항아리 하나에는 2리터짜리 생수통 50개의 물을 채워야 하는 양입니다. 그러니까 생수통 300개의 양입니다. 우리가 대개 6개로 묶여진 2리터짜리 생수통을 배달하려면 힘이 드는데 그런 것을 50개 운반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결코 작은 양이 아닙니다. 지금 하인들은 왕 같은 손님들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매우 바쁩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다 정결예식을 행하고 나서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하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는 목수요 30대의 청년입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을 듣고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들이 물을 채우되 적당히 하지 않고 아귀까지 채운 것을 볼 때 마음을 다해서 순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종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순종은 기꺼운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순종으로는 아귀까지 채울 수 없습니다. 한 80~90%를 채우고 다 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순종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120%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손발을 씻는 물을 손님들을 섬기기 위해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물이 포도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발 씻는 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손님들은 예수님이 만든 포도주를 즐겼습니다. 연회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습니다. 그는 포도주가 이전 것보다 좋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종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변화시키십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각종 우상을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이주를 합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지 못하고 이집트 왕에게 죽음을 당할까봐 아내를 누이로 속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의 수가 하늘의 별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을 아내로 맞아 이스마엘을 낳고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가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는 인생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또한 작은 믿음으로 거친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죽을 뻔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교회의 반석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 가두는 핍박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가 이방나라에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로 쓰임을 받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누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손이나 발을 씻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낮고 천한 우상숭배자, 어부,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도 믿음의 조상으로, 교회의 반석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첫 표적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아무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각자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교만과 열정에 사로잡혀 살았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탄의 종에서 예수님의 종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하인들의 순종은 예수님의 순종을 희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왕 되신 예수님이 희생제물인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실 수가 있습니까?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른 것 같이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그는 구원의 샘물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5:8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죄악된 인간은 자연적으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천지창조 사건이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해하는 책이 아닙니다. 믿으라고 주신 책입니다. 믿고 보니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의 비밀입니다. 또 우리는 힘들어도 순종합시다. 하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순종할 때 그들이 채운 양만큼 맛있는 포도주를 얻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또 내 마음이 상해도 순종합시다. 하인들은 주인과 연회장의 분부를 받아 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들을 불러서 예수가 당신들을 불러 무엇을 시키면 그대로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연회장과 주인이 있는데 아무 관계가 없는 손님으로 온 예수의 말을 듣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닙니다. 손발을 씻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여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의 영광’이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 1:3). 그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첫 표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결예식에 쓰는 물로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로 씻는 정결예식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요, 옛 종교입니다. 실체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가 만들어 주신 포도주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기고 새 사람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면 죄 씻음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은 물(H2O)를 포도주 (C2H5OH)로 만드셨습니다. 탄소가 창조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는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새 피조물로 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고 아버지와 자녀,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기쁨을 얻고 새 사람이 됩니다.
12-25절은 예수님이 참 성전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받고 죄사함을 받습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문제가 생길 때 염려하기보다 예수님께 들고 나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되 인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감당함으로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죄 씻음을 받고 새 피조물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변화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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