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2년 신년 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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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신년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6:6-19
요절 | 누가복음 6:12,13
열둘을 택하신 예수님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떡국을 먹고 덕담을 나눕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떡국으로 먹고 새 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좋은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한 것은 열 두 제자를 양성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인류 역사에 가장 가치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행하기에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 삶을 어떻게 보내야 가치있고 복될 것인가 생각하면서 본문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였습니다.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손이 말랐기에 직장을 잡기도 어렵고 옷을 입거나 두 손으로 하는 일이 늘 불편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자신감도 없고 늘 마음이 위축되어 살았습니다. 그가 회당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시대 고통하는 사람들의 목자로 세움 받았지만 그들의 인생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뿐이었습니다. 율법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공의와 인애를 실천함으로 세계에 대해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살도록 주어졌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기초해서 율법을 지킬 때 즐거움을 누리며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이루고자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지키지 못하는 자신과 허물이 거울에 비취듯이 나타납니다. 율법은 유치원 교사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나아와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그를 죽여 없앰으로써 자기들이 왕 노릇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죄와 사탄의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율법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다가 실패를 반복하자 외식이 늘어나게 되었고 율법주의자가 되어 자기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이용하기 권위를 주장하고, 자기 수치를 가리는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사랑하셔서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자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 그가 일어나 서자 예수님이 회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는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그 말씀에 순종하자 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자를 치료하심으로 그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격적이고 실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불쌍한 이 사람을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사람과 싸우지 않고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 깊이 고민하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예수님은 인간적인 갈등을 하지 않으시고 기도의 싸움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갈까?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책임지고 먹일 목자들을 부르셔서 키우실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우리는 양을 얻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관계 전도를 통해서든, 온라인 전도를 통해서든, 길거리 전도를 통해서든 일대일 성경공부를 할 양을 얻어야 합니다. 양을 얻는 것도 혼자서 하지 말고 합심해서 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관계를 맺어가야 합니다. 밥도 사주고, 선물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후에는 요회 모임에 초청하여 사랑의 관계성을 다른 동역자들과 맺도록 합니다. 즉 얻은 양들을 혼자서 양육하지 말고 요회에서 동역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양육을 위한 수고도 함께 하고 열매를 맺는 기쁨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신 후에 3년 동안 함께 하시면서 양육하고 훈련하셨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폭풍우를 맞고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먼저 보여 주시고 이 후에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함을 가르치시고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런 후 부활승천하실 때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은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자신들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도행전으로 연결됩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로 택함 받은 열두 명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 교회를 세웁니다. 각 가정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교제하고 성경을 공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사 교회가 성장하고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와 소 아시아와 로마와 세계로 복음이 퍼져 나가 우리에게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구원 역사에 대한 원대한 비전 가운데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복음 역사에 헌신된 충성된 일꾼들에게 복음을 맡기시고 그들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맡겼습니다. 소수일지라도 열두 사도와 같이 하나님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이 있을 때 우리 모임의 장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자양성의 목적은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속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여 영적 지도자로 세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역하는 캠퍼스 목자들을 양성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년 전까지 형제들 따로, 자매들 따로 장막 생활 즉 공동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각 가정에서 부모님의 믿음을 본 받아 배우고 있습니다. 또 소감 모임을 통해서 삶을 나누고 말씀에서 받은 바 은혜를 나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가운데 특히 복음서를 매년 공부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알아가고 본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였습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베드로, 요한과 함께 수제자 반열에 오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단지 이름만 알려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있습니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있고,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오병이어 역사를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안드레, 사랑의 사도 요한, 세련된 빌립, 순진무구한 바돌로매, 세리 출신의 마태, 의심이 많은 도마, 이름만 나오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사도로 세움 받아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이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은 믿음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 이들은 인간적이고 자주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학식이나 탁월한 재능 때문에 세움 받은 것도 아닙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며, 주로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성실한 어부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평범한 대학생들, 청년들을 제자로 부른 것입니다. 사도행전 4:13,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예수님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사도로 세우신 것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만한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인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새 가죽 부대와 같은 신축성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얽매여서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사도들은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스펀지와 같이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그들은 제련되지 않은 광석 같지만 잘 양육하고 훈련하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하고 허물이 있는 자라도 장차 하나님의 종들이 될 소망 가운데 열두 명의 제자들을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셨습니다.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실에서 교육하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교육하셨습니다. 한 목자님은 자기가 일대일을 공부할 때에 목동을 옆에 두고 말씀을 공부합니다. 그러면 그 목동이 목자님이 하는 것을 몇 번 보고 나서 직접 일대일을 하도록 돕습니다. 사람은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목동을 데리고 나가서 함께 전도를 하고 섬기는 본을 보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다가 자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머리 손질을 해보고, 면도질 하는 흉내를 내고, 함께 게임을 하고 놀면서 사회생활을 배웁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본을 보여 주시며, 현장에서 교육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 가르치시거나,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거나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양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병을 고치고 도우셨습니다. 팀 체스터가 쓴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연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4:38)에서 식사하시고, 5:30에 보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다. 6:1에는 손으로 밀 이삭을 비비어 먹는 장면이 나오고, 31절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7:36에서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시고, 8장은 향유를 부은 여인이 나오는데 식사 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고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9장 에 오병이어 사건이 나오는데 이는 산에서 베푼 대형 식탁 교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장에서 열 두 제자를 전도여행 보내서 머무는 집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고 부탁하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먹고 마시고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11장에서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점심을 잡수시면서 가르치십니다. 13장은 아침에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다가 주신 말씀입니다. 14장은 바리새인의 집에서 초청을 받아 식사를 하십니다. 15장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십니다. 16장은 부자와 나사로의 집 이야기가 나오고 19장은 세리 삭개오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그 집에 구원을 선포 하십니다. 20장 46절은 잔치 자리에서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22장은 유월절 잔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24장은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 상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영적인 눈이 뜨이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하고 말씀으로 도우십니다. 누가복음 24장 중에서 16장이 먹고 마시는 이야기입니다. 즉 누가복음의 70%가 먹는 이야기입니다. 목회는 먹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으면 마음이 열리고 그 후에 말씀을 공부하거나 회의를 하면 부드럽게 진행이 됩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들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가족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을 행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면서 회개의 역사, 치유의 역사, 거듭남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에서도 성경을 공부하면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행동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와 함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는 목자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하였습니다. 더 자주 식사하기를 원했지만 코로나 상황과 시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요회 모임이 할 수 있으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2년 동안 줌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모임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 19의 어려움 가운데서 공동체를 이루며 일하신 것을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새 해에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우리가 모이기를 힘쓰면서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사랑의 공동체를 힘써 세워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새해 각 요회 가운데 제자 양성 역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6:6-19
요절 | 누가복음 6:12,13
열둘을 택하신 예수님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떡국을 먹고 덕담을 나눕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떡국으로 먹고 새 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좋은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한 것은 열 두 제자를 양성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인류 역사에 가장 가치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행하기에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 삶을 어떻게 보내야 가치있고 복될 것인가 생각하면서 본문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였습니다.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손이 말랐기에 직장을 잡기도 어렵고 옷을 입거나 두 손으로 하는 일이 늘 불편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자신감도 없고 늘 마음이 위축되어 살았습니다. 그가 회당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시대 고통하는 사람들의 목자로 세움 받았지만 그들의 인생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뿐이었습니다. 율법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공의와 인애를 실천함으로 세계에 대해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살도록 주어졌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기초해서 율법을 지킬 때 즐거움을 누리며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이루고자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지키지 못하는 자신과 허물이 거울에 비취듯이 나타납니다. 율법은 유치원 교사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나아와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그를 죽여 없앰으로써 자기들이 왕 노릇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죄와 사탄의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율법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다가 실패를 반복하자 외식이 늘어나게 되었고 율법주의자가 되어 자기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이용하기 권위를 주장하고, 자기 수치를 가리는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사랑하셔서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자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 그가 일어나 서자 예수님이 회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는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그 말씀에 순종하자 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자를 치료하심으로 그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격적이고 실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불쌍한 이 사람을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사람과 싸우지 않고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 깊이 고민하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예수님은 인간적인 갈등을 하지 않으시고 기도의 싸움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갈까?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책임지고 먹일 목자들을 부르셔서 키우실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우리는 양을 얻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관계 전도를 통해서든, 온라인 전도를 통해서든, 길거리 전도를 통해서든 일대일 성경공부를 할 양을 얻어야 합니다. 양을 얻는 것도 혼자서 하지 말고 합심해서 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관계를 맺어가야 합니다. 밥도 사주고, 선물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후에는 요회 모임에 초청하여 사랑의 관계성을 다른 동역자들과 맺도록 합니다. 즉 얻은 양들을 혼자서 양육하지 말고 요회에서 동역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양육을 위한 수고도 함께 하고 열매를 맺는 기쁨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신 후에 3년 동안 함께 하시면서 양육하고 훈련하셨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폭풍우를 맞고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먼저 보여 주시고 이 후에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함을 가르치시고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런 후 부활승천하실 때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은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자신들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도행전으로 연결됩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로 택함 받은 열두 명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 교회를 세웁니다. 각 가정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교제하고 성경을 공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사 교회가 성장하고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와 소 아시아와 로마와 세계로 복음이 퍼져 나가 우리에게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구원 역사에 대한 원대한 비전 가운데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복음 역사에 헌신된 충성된 일꾼들에게 복음을 맡기시고 그들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맡겼습니다. 소수일지라도 열두 사도와 같이 하나님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이 있을 때 우리 모임의 장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자양성의 목적은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속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여 영적 지도자로 세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역하는 캠퍼스 목자들을 양성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년 전까지 형제들 따로, 자매들 따로 장막 생활 즉 공동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각 가정에서 부모님의 믿음을 본 받아 배우고 있습니다. 또 소감 모임을 통해서 삶을 나누고 말씀에서 받은 바 은혜를 나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가운데 특히 복음서를 매년 공부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알아가고 본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였습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베드로, 요한과 함께 수제자 반열에 오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단지 이름만 알려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있습니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있고,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오병이어 역사를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안드레, 사랑의 사도 요한, 세련된 빌립, 순진무구한 바돌로매, 세리 출신의 마태, 의심이 많은 도마, 이름만 나오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사도로 세움 받아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이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은 믿음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 이들은 인간적이고 자주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학식이나 탁월한 재능 때문에 세움 받은 것도 아닙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며, 주로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성실한 어부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평범한 대학생들, 청년들을 제자로 부른 것입니다. 사도행전 4:13,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예수님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사도로 세우신 것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만한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인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새 가죽 부대와 같은 신축성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얽매여서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사도들은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스펀지와 같이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그들은 제련되지 않은 광석 같지만 잘 양육하고 훈련하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하고 허물이 있는 자라도 장차 하나님의 종들이 될 소망 가운데 열두 명의 제자들을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셨습니다.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실에서 교육하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교육하셨습니다. 한 목자님은 자기가 일대일을 공부할 때에 목동을 옆에 두고 말씀을 공부합니다. 그러면 그 목동이 목자님이 하는 것을 몇 번 보고 나서 직접 일대일을 하도록 돕습니다. 사람은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목동을 데리고 나가서 함께 전도를 하고 섬기는 본을 보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다가 자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머리 손질을 해보고, 면도질 하는 흉내를 내고, 함께 게임을 하고 놀면서 사회생활을 배웁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본을 보여 주시며, 현장에서 교육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 가르치시거나,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거나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양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병을 고치고 도우셨습니다. 팀 체스터가 쓴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연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4:38)에서 식사하시고, 5:30에 보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다. 6:1에는 손으로 밀 이삭을 비비어 먹는 장면이 나오고, 31절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7:36에서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시고, 8장은 향유를 부은 여인이 나오는데 식사 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고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9장 에 오병이어 사건이 나오는데 이는 산에서 베푼 대형 식탁 교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장에서 열 두 제자를 전도여행 보내서 머무는 집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고 부탁하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먹고 마시고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11장에서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점심을 잡수시면서 가르치십니다. 13장은 아침에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다가 주신 말씀입니다. 14장은 바리새인의 집에서 초청을 받아 식사를 하십니다. 15장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십니다. 16장은 부자와 나사로의 집 이야기가 나오고 19장은 세리 삭개오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그 집에 구원을 선포 하십니다. 20장 46절은 잔치 자리에서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22장은 유월절 잔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24장은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 상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영적인 눈이 뜨이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하고 말씀으로 도우십니다. 누가복음 24장 중에서 16장이 먹고 마시는 이야기입니다. 즉 누가복음의 70%가 먹는 이야기입니다. 목회는 먹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으면 마음이 열리고 그 후에 말씀을 공부하거나 회의를 하면 부드럽게 진행이 됩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들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가족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을 행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면서 회개의 역사, 치유의 역사, 거듭남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에서도 성경을 공부하면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행동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와 함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는 목자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하였습니다. 더 자주 식사하기를 원했지만 코로나 상황과 시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요회 모임이 할 수 있으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2년 동안 줌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모임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 19의 어려움 가운데서 공동체를 이루며 일하신 것을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새 해에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우리가 모이기를 힘쓰면서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사랑의 공동체를 힘써 세워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새해 각 요회 가운데 제자 양성 역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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