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21년 출애굽기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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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서론
요절 |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는 “애굽에서의 탈출기”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70인의 가족을 애굽으로 보내시면서 이 가족을 한 나라로 창성하게 하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하나님 없는 백성들 밑에서 훈련하심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지도자와 그런 사람들 아래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게 하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해서 애굽과 광야에서 강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70인의 가족을 결코 적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가족이 장차 전 세계에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될 위대한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쓰사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와서 한 나라로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와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1. 출애굽기는 어떤 책인가?
히브리어 출애굽기는 처음에 “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이다”로 시작합니다. 즉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의 두 번째 책입니다. 모세 오경을 한 책으로 보면 창세기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 출애굽기는 구속, 레위기는 예배, 민수기는 광야의 행진과 투쟁,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세기가 한 가족사를 다룬다면 출애굽기는 한 민족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해서 이스라엘은 200만명이 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번성하고 창대하게 되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왕 바로는 그들을 노예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노동력을 얻고 국고성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노예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을 시키십니다. 그들을 구원해서 세계 만민에게 복이 되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출1:1-7).
이 세상에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하는 열 가지 재앙들과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바로가 이 세상의 창조질서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창조세계의 보전과 파괴를 주관하는 분이심을 뚜렷이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칠일 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출애굽기의 후반부는 그 안식에로의 동참을 요구하십니다. 그 안식에로의 동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성막 건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건축할 것을 지시하시는 장면에서(출25-31장)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6일 동안 머물고, 칠일 째 되는 날 모세를 부르시며(출 24:15-18) 성막 건축에 관한 상세한 설계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칠일 째 되는 날의 의미가 바로 창조의 완성 후 안식에로의 동참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창조의 완성임과 동시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의 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요 4:2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두 가지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매일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먹는 훈련과 안식일을 지키는 훈련입니다. 매일의 삶이 안식일을 향하고 안식일이 또한 일상으로 향한다는 것은 삶의 예배,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의미합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안식과 평안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항상 주위의 모든 적이나, 문제들로부터 해방되고, 마침내 안식을 누리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에 그 안식은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섬김의 예배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구원을 통해 이루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고 인간을 위해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인간이 우상을 섬기며 살 때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한 민족 이스라엘을 이루시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이를 통해 온 인류와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기까지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그 구원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출발선은 하나님의 구원의 체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이 세상의 창조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롬 8:19-23).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때 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작을 열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은 누구의 소유인가?
“이스라엘은 누구의 소유인가?” 소유권에 대한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하기 위한 백성인가?”라는 존재 목적에 대한 질문과 동일한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전반부는 두 거대한 세력의 대결이 그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애굽의 바로 왕의 대결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한 우주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의 맞상대는 이 땅에서 위력이 만만치 않은 존재로 최고의 신이라 숭배되는 태양신 레의 아들로 고대 근동에서 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만물을 주관한다고 큰소리치는 자칭 성육신한 신격체였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이 만든 신인 바로 왕, 이 두 신격체의 대결인 것입니다. 이 두 존재가 이스라엘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팽팽한 싸움을 벌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출5:1)’이라 부르시며 숭고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보내라고 하시니, 바로 또한 이스라엘을 ‘백성’이라 칭하며 이들을 자신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노예화’시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신격체를 자신들의 왕으로 섬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 출애굽기는 이 두 존재의 특징을 자세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바로 왕이 어떤 특징을 가진 존재인지를 알아보면, 출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출 5: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애굽의 바로 왕은 언제나 “아무 것도 모른다”라는 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안다’라는 히브리어 ‘야다’는 지식의 차원보다는 관계성의 차원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자신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의 과거의 근본도 모르고, 미래의 비전도 모르는 주인을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출 1:13,14).”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2:23)”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과 관계없는 일을 할 때 소명의식도, 기쁨도 누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왕 밑에서 노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기뻐서 자원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성막을 지을 때 그대로 드러납니다(출 25:1,2; 35:21,22)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머물러 고된 노동의 신음 가운데 거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으로 가야 할 존재들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즉 이스라엘이 걸어가야 할 미래를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아시기에 이들을 바르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왕의 특징은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다면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특징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라는 극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늘 “기억하시고, 돌아보시고, 아신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과거를 아십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태초부터 이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결정체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입니다. 출애굽기 전체의 긴장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바로의 종이 되어 고역의 노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섬김과 예배의 공동체가 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혹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고역의 의미없는 노동이 되기도 하고, 또 생명이 넘치는 살아 있는 관계를 뜻하는 예배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특성과 운명이 어디에 또 누구에게 소속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좌우 되듯이, 한 민족 또한 어느 편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은 그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구별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일들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 즉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의식으로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짓는 가운데 기쁨으로 일을 하는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성막 건축의 본질은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성막을 짓고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해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습니다(출35:21).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넉넉하여 오히려 남음이 있어 막아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출36:4-7). 성막 건축을 하나님께서 일곱 번 말씀하시고(출 25-31장),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일곱 번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루는 것으로 완성됩니다(출 35-40장).
예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우리가 듣는 것이며, 그 들은 말씀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긴밀한 영적 교제가 있었던 에덴동산의 이상이 그대로 축소되어 인간의 삶 속에 주어진 것이 바로 성막이요 성전입니다. 예배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원대한 꿈을 같이 꾸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잃어버린 그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통한 예배의 이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신실하게 듣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야만 그 뜻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출 19:5-6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은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들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게 대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십계명(출 20장)을 필두로 그 십계명을 구체화하여 살아 갈 수 있게 주어진 세세한 율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21-23장).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정신으로 함축됩니다(마 22:34-40).
“제사장 나라”는 “목자의 나라”, 또는 “목자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전세계에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성경 선생이나 목자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목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출애굽기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18장은 이스라엘은 바로 왕 밑에서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서 방향 전환을 이룹니다. 19-24장은 시내산 언약법으로서 예배의 구체적인 내용, 살아야 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배자라는 정체성과 명령대로 행하는 예배를 실행하기 위해서 시내산 언약법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대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25-40장은 성막 건축을 하는 내용인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배하는 존재로서 말씀대로 행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 나라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출애굽기 공부를 마음으로 깊이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절 |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는 “애굽에서의 탈출기”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70인의 가족을 애굽으로 보내시면서 이 가족을 한 나라로 창성하게 하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하나님 없는 백성들 밑에서 훈련하심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지도자와 그런 사람들 아래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게 하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해서 애굽과 광야에서 강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70인의 가족을 결코 적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가족이 장차 전 세계에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될 위대한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쓰사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와서 한 나라로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와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1. 출애굽기는 어떤 책인가?
히브리어 출애굽기는 처음에 “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이다”로 시작합니다. 즉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의 두 번째 책입니다. 모세 오경을 한 책으로 보면 창세기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 출애굽기는 구속, 레위기는 예배, 민수기는 광야의 행진과 투쟁,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세기가 한 가족사를 다룬다면 출애굽기는 한 민족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해서 이스라엘은 200만명이 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번성하고 창대하게 되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왕 바로는 그들을 노예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노동력을 얻고 국고성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노예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을 시키십니다. 그들을 구원해서 세계 만민에게 복이 되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출1:1-7).
이 세상에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하는 열 가지 재앙들과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바로가 이 세상의 창조질서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창조세계의 보전과 파괴를 주관하는 분이심을 뚜렷이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칠일 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출애굽기의 후반부는 그 안식에로의 동참을 요구하십니다. 그 안식에로의 동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성막 건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건축할 것을 지시하시는 장면에서(출25-31장)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6일 동안 머물고, 칠일 째 되는 날 모세를 부르시며(출 24:15-18) 성막 건축에 관한 상세한 설계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칠일 째 되는 날의 의미가 바로 창조의 완성 후 안식에로의 동참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창조의 완성임과 동시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의 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요 4:2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두 가지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매일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먹는 훈련과 안식일을 지키는 훈련입니다. 매일의 삶이 안식일을 향하고 안식일이 또한 일상으로 향한다는 것은 삶의 예배,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의미합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안식과 평안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항상 주위의 모든 적이나, 문제들로부터 해방되고, 마침내 안식을 누리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에 그 안식은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섬김의 예배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구원을 통해 이루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고 인간을 위해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인간이 우상을 섬기며 살 때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한 민족 이스라엘을 이루시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이를 통해 온 인류와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기까지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그 구원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출발선은 하나님의 구원의 체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이 세상의 창조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롬 8:19-23).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때 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작을 열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은 누구의 소유인가?
“이스라엘은 누구의 소유인가?” 소유권에 대한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하기 위한 백성인가?”라는 존재 목적에 대한 질문과 동일한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전반부는 두 거대한 세력의 대결이 그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애굽의 바로 왕의 대결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한 우주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의 맞상대는 이 땅에서 위력이 만만치 않은 존재로 최고의 신이라 숭배되는 태양신 레의 아들로 고대 근동에서 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만물을 주관한다고 큰소리치는 자칭 성육신한 신격체였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이 만든 신인 바로 왕, 이 두 신격체의 대결인 것입니다. 이 두 존재가 이스라엘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팽팽한 싸움을 벌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출5:1)’이라 부르시며 숭고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보내라고 하시니, 바로 또한 이스라엘을 ‘백성’이라 칭하며 이들을 자신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노예화’시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신격체를 자신들의 왕으로 섬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 출애굽기는 이 두 존재의 특징을 자세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바로 왕이 어떤 특징을 가진 존재인지를 알아보면, 출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출 5: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애굽의 바로 왕은 언제나 “아무 것도 모른다”라는 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안다’라는 히브리어 ‘야다’는 지식의 차원보다는 관계성의 차원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자신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의 과거의 근본도 모르고, 미래의 비전도 모르는 주인을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출 1:13,14).”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2:23)”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과 관계없는 일을 할 때 소명의식도, 기쁨도 누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왕 밑에서 노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기뻐서 자원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성막을 지을 때 그대로 드러납니다(출 25:1,2; 35:21,22)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머물러 고된 노동의 신음 가운데 거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으로 가야 할 존재들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즉 이스라엘이 걸어가야 할 미래를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아시기에 이들을 바르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왕의 특징은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다면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특징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라는 극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늘 “기억하시고, 돌아보시고, 아신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과거를 아십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태초부터 이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결정체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입니다. 출애굽기 전체의 긴장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바로의 종이 되어 고역의 노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섬김과 예배의 공동체가 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혹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고역의 의미없는 노동이 되기도 하고, 또 생명이 넘치는 살아 있는 관계를 뜻하는 예배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특성과 운명이 어디에 또 누구에게 소속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좌우 되듯이, 한 민족 또한 어느 편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은 그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구별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일들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 즉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의식으로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짓는 가운데 기쁨으로 일을 하는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성막 건축의 본질은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성막을 짓고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해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습니다(출35:21).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넉넉하여 오히려 남음이 있어 막아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출36:4-7). 성막 건축을 하나님께서 일곱 번 말씀하시고(출 25-31장),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일곱 번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루는 것으로 완성됩니다(출 35-40장).
예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우리가 듣는 것이며, 그 들은 말씀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긴밀한 영적 교제가 있었던 에덴동산의 이상이 그대로 축소되어 인간의 삶 속에 주어진 것이 바로 성막이요 성전입니다. 예배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원대한 꿈을 같이 꾸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잃어버린 그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통한 예배의 이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신실하게 듣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야만 그 뜻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출 19:5-6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은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들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게 대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십계명(출 20장)을 필두로 그 십계명을 구체화하여 살아 갈 수 있게 주어진 세세한 율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21-23장).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정신으로 함축됩니다(마 22:34-40).
“제사장 나라”는 “목자의 나라”, 또는 “목자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전세계에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성경 선생이나 목자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목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출애굽기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18장은 이스라엘은 바로 왕 밑에서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서 방향 전환을 이룹니다. 19-24장은 시내산 언약법으로서 예배의 구체적인 내용, 살아야 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배자라는 정체성과 명령대로 행하는 예배를 실행하기 위해서 시내산 언약법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대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25-40장은 성막 건축을 하는 내용인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배하는 존재로서 말씀대로 행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 나라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출애굽기 공부를 마음으로 깊이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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