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22년 민2강(3,4장) 레위인을 택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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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 2 강
말씀 | 민수기 3:1-4:49
요절 | 민수기 3:11,12
레위인을 택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2장은 이스라엘을 종족대로 하나님의 군대를 조직하고 행군 순서를 정하였습니다. 오늘 공부할 3,4장은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규례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있도록 거룩하게 하는 것이 레위인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올바르게 맺을 것인가? 여기에 인간의 행불행이 달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 시대에 레위인이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구별된 레위인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자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입니다.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 받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해서 백성들이 드린 제물을 손에 채워서 가지고 나가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법대로 섬겨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직분이 영광스럽고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나답과 아비후는 번제단에서 점화된 불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불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킹제임스 버전은 이상한 불로, 엔아이뷔(NIV) 버전은 신성하지 않은 불, 공인되지 않은 불로 번역을 했습니다. 레위기 10:1에서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한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불이라고 다 같은 불이 아닙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왜 다른 불로 분향을 했을까요?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그들이 술에 취해서 망령된 행동을 했다고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알지만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이 망령된 자세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대로, 성경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시고 내가 예배하는 것과 그 마음까지 살피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피곤하고 졸린 눈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되고 깨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날 일찍 자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올 때 수레에 싣고 옮겼습니다. 언약궤는 반드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하는데 그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웃사가 언약궤에 손을 댔다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선한 의도로 언약궤를 옮겨오고자 했고 웃사가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지만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큰 영광이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이성과 전통과 체험이 필요하지만 최종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세 그룹으로 나누시며 역할을 분담하게 하십니다.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레위인이 하는 일은 제사장 아론을 시종하는 것입니다. 시종하는 것은 옆에서 보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제사장 아론이 제단에서 제사드릴 때 옆에서 섬기는 일을 합니다. 8절에 보면 레위인은 또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서 지키는 일을 합니다. 성막에 많은 기구가 있습니다. 휘장, 기둥, 말뚝, 번제단, 등대, 분향단, 떡상, 증거궤 등등.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옮기고 설치하는 일을 레위인이 맡습니다. 제사장이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릴 때 짐승의 껍질을 벗기고 피를 받아 뿌리고, 내장을 꺼내서 씻고, 각을 뜨고 태우는 일들을 레위인들이 합니다. 내장에 남아있는 배설물도 다 레위인들이 씻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번씩 제사를 드리고 나면 레위인들은 온 몸이 짐승의 피와 오물들로 범벅이 됩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모든 저주를 뒤집어쓰는 자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고 정결케 하기 위해, 백성들의 온갖 수치와 더러운 것들을 다 뒤집어 써야 하는 존재가 레위인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이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레위인의 고귀한 소명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도에 담겨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동시에 섬기는 종입니다. 우리는 나눔과 희생과 섬김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와 모든 성직을 대표하는 중보자입니다. 그는 성별된 의복을 입고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며 제사장들을 감독하며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성소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레위인을 대표해서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후손들로서 제단 중심의 사역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기도를 드리고 제의를 집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하고, 재판관의 임무를 맡기도 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레위인은 광야 진군에서 성막을 관리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단에서 섬기는 사역을 부여 받았고, 레위인은 성막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함으로 혼란이나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위치와 직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간에 불만과 갈등이 생겨서 분쟁하기 쉽습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핫 자손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이 일어납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인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레위인은 금송아지 사건 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렸습니다. 그 결과 200만이 죽어야 했지만 3000명이 죽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여호와께 헌신하였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영원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 편에 서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재판도하고, 속죄사역을 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충성했을 때 이스라엘은 번성하고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들을 잘 대우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나라는 쇠퇴해졌습니다. 레위인의 헌신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먹을 것을 책임지고 그들로 인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서 섬기는 사람들로 인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의 생후 1개월된 숫자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게르손, 고핫, 므라리였습니다. 게르손 자손이 7500명, 고핫 자손이 8600명, 므라리 자손이 6200명, 총 22,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각 지파의 장자의 수는 22,273명이었습니다. 273명이 더 많았습니다. 레위인들이 각 지파의 장자를 대표했는데 273명의 장자를 대신할 레위인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각 사람당 5세겔을 내도록 해서, 총 1365세겔의 물질을 대신 내도록 했습니다. 당시 5세겔은 보통 노동자 6개월분에 해당하는 임금과 맞먹는 돈입니다. 한 사람의 노예를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합니다. 속전으로 치르게 되는 돈은 한 생명에 비하면 적은 액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것은 큰 값을 치르고서야 이루어진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기도 할 수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후반부에는 믿음으로 살다가 고생만 한 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살 때 승리도 있지만 손해와 희생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런 삶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게르손 자손은 회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 문장과 뜰의 휘장과 성막과 제단 사방에 있는 뜰의 휘장 문과 그 모든 것에 쓰는 줄을 관장했습니다. 고핫 자손은 증거궤, 상, 등대와 제단과 성소에서 봉사하는데 필요한 기구와 휘장과 거기에 딸린 것들을 관리했습니다. 므라리 자손이 맡은 것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들입니다. 천막의 골격에 해당하는 가장 무거운 것을 책임지고 살피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7장에서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드린 헌물을 레위 자손들에게 나누어줄 때,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고,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줍니다(7:7,8). 므라리 자손들이 포장하고 날라야 하는 것들은 훨씬 무겁고 방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므라리 자손들은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직분이 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직분을 비교하지 않고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서는 어느 직분은 귀하고 어떤 직분은 천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막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옮기는 일이든,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자체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군대에는 병과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따라서 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을 자발적으로 헌신할 때 은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믿음으로 참여하고 헌신할 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주인의식을 갖게 됩니다. 사역의 열매가 있을 때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30세부터 일을 했습니다. 제사장은 종신직입니다. 레위인은 30-50세까지 천막을 거두고, 기둥을 옮기고, 성물을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30세가 될 때까지는 내면이 성숙하지 못하고 혈기가 많아서 실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반면에 50세 이상이 되면 내면이 성숙하고 인생의 경험은 풍부하지만 힘이 약해져서 직무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내면이 성숙하고 인생의 경험도 있고 섬길 수 있는 힘이 있는 30세부터 50세까지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에 하나님을 위한 일에 땀을 흘리도록 복무 기간을 정하셨습니다. 레위인은 20-25세에 성막에 들어와서 견습생으로 섬기는 법을 배우고 30세부터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민 8:24). 5년 동안 인턴 생활을 하고 30세가 되어서야 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일은 신중함과 성숙함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알고 능숙하게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이가 차서 은퇴한 이후는 여러 가지 일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13절에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이 나옵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함이라(딤전3:2-7).”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장자 대신에 레위인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을까요?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열두 명의 아들들을 불러서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에게만은 두 번씩이나 축복 대신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창49:5-7). 그 예언대로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유일하게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레위가 이렇게 저주를 받은 것은 그의 기질이 분과 혈기가 많아서 쉽게 분을 내고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기질 때문에 레위인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인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허리에 칼을 차고 하나님께 범죄한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3000명이나 죽였습니다. 레위인의 칼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레위인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졌습니다. 민수기 25장에서 한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 여인을 이스라엘 진영에 데리고 와서 음행했습니다. 이를 본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마음에 영적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창을 들고 막사에 들어가서 음행하는 두 남녀를 한 번에 찔러 죽였습니다. 그러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습니다. 이와 같이 레위인은 잔인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잔인한 기질을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이 받은 저주가 도리어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치고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다가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땅을 기업으로 받지는 못했지만 성막에서 봉사함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기업이 되셔서 먹을 것, 입을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았든지, 우리의 기질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주인으로 영접하고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요 종으로 삼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헌신할 때 심히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레위인으로 구별하여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자녀들과 양들에게 가르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각자 받은 바 은사로, 사랑의 수고와 기도로 섬길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맡은 직분을 감당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도 있고, 징계가 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민수기 3:1-4:49
요절 | 민수기 3:11,12
레위인을 택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2장은 이스라엘을 종족대로 하나님의 군대를 조직하고 행군 순서를 정하였습니다. 오늘 공부할 3,4장은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규례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있도록 거룩하게 하는 것이 레위인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올바르게 맺을 것인가? 여기에 인간의 행불행이 달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 시대에 레위인이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구별된 레위인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자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입니다.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 받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해서 백성들이 드린 제물을 손에 채워서 가지고 나가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법대로 섬겨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직분이 영광스럽고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나답과 아비후는 번제단에서 점화된 불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불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킹제임스 버전은 이상한 불로, 엔아이뷔(NIV) 버전은 신성하지 않은 불, 공인되지 않은 불로 번역을 했습니다. 레위기 10:1에서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한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불이라고 다 같은 불이 아닙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왜 다른 불로 분향을 했을까요?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그들이 술에 취해서 망령된 행동을 했다고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알지만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이 망령된 자세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대로, 성경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시고 내가 예배하는 것과 그 마음까지 살피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피곤하고 졸린 눈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되고 깨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날 일찍 자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올 때 수레에 싣고 옮겼습니다. 언약궤는 반드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하는데 그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웃사가 언약궤에 손을 댔다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선한 의도로 언약궤를 옮겨오고자 했고 웃사가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지만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큰 영광이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이성과 전통과 체험이 필요하지만 최종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세 그룹으로 나누시며 역할을 분담하게 하십니다.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레위인이 하는 일은 제사장 아론을 시종하는 것입니다. 시종하는 것은 옆에서 보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제사장 아론이 제단에서 제사드릴 때 옆에서 섬기는 일을 합니다. 8절에 보면 레위인은 또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서 지키는 일을 합니다. 성막에 많은 기구가 있습니다. 휘장, 기둥, 말뚝, 번제단, 등대, 분향단, 떡상, 증거궤 등등.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옮기고 설치하는 일을 레위인이 맡습니다. 제사장이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릴 때 짐승의 껍질을 벗기고 피를 받아 뿌리고, 내장을 꺼내서 씻고, 각을 뜨고 태우는 일들을 레위인들이 합니다. 내장에 남아있는 배설물도 다 레위인들이 씻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번씩 제사를 드리고 나면 레위인들은 온 몸이 짐승의 피와 오물들로 범벅이 됩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모든 저주를 뒤집어쓰는 자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고 정결케 하기 위해, 백성들의 온갖 수치와 더러운 것들을 다 뒤집어 써야 하는 존재가 레위인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이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레위인의 고귀한 소명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도에 담겨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동시에 섬기는 종입니다. 우리는 나눔과 희생과 섬김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와 모든 성직을 대표하는 중보자입니다. 그는 성별된 의복을 입고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며 제사장들을 감독하며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성소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레위인을 대표해서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후손들로서 제단 중심의 사역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기도를 드리고 제의를 집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하고, 재판관의 임무를 맡기도 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레위인은 광야 진군에서 성막을 관리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단에서 섬기는 사역을 부여 받았고, 레위인은 성막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함으로 혼란이나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위치와 직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간에 불만과 갈등이 생겨서 분쟁하기 쉽습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핫 자손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이 일어납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인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레위인은 금송아지 사건 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렸습니다. 그 결과 200만이 죽어야 했지만 3000명이 죽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여호와께 헌신하였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영원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 편에 서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재판도하고, 속죄사역을 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충성했을 때 이스라엘은 번성하고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들을 잘 대우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나라는 쇠퇴해졌습니다. 레위인의 헌신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먹을 것을 책임지고 그들로 인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서 섬기는 사람들로 인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의 생후 1개월된 숫자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게르손, 고핫, 므라리였습니다. 게르손 자손이 7500명, 고핫 자손이 8600명, 므라리 자손이 6200명, 총 22,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각 지파의 장자의 수는 22,273명이었습니다. 273명이 더 많았습니다. 레위인들이 각 지파의 장자를 대표했는데 273명의 장자를 대신할 레위인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각 사람당 5세겔을 내도록 해서, 총 1365세겔의 물질을 대신 내도록 했습니다. 당시 5세겔은 보통 노동자 6개월분에 해당하는 임금과 맞먹는 돈입니다. 한 사람의 노예를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합니다. 속전으로 치르게 되는 돈은 한 생명에 비하면 적은 액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것은 큰 값을 치르고서야 이루어진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기도 할 수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후반부에는 믿음으로 살다가 고생만 한 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살 때 승리도 있지만 손해와 희생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런 삶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게르손 자손은 회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 문장과 뜰의 휘장과 성막과 제단 사방에 있는 뜰의 휘장 문과 그 모든 것에 쓰는 줄을 관장했습니다. 고핫 자손은 증거궤, 상, 등대와 제단과 성소에서 봉사하는데 필요한 기구와 휘장과 거기에 딸린 것들을 관리했습니다. 므라리 자손이 맡은 것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들입니다. 천막의 골격에 해당하는 가장 무거운 것을 책임지고 살피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7장에서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드린 헌물을 레위 자손들에게 나누어줄 때,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고,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줍니다(7:7,8). 므라리 자손들이 포장하고 날라야 하는 것들은 훨씬 무겁고 방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므라리 자손들은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직분이 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직분을 비교하지 않고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서는 어느 직분은 귀하고 어떤 직분은 천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막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옮기는 일이든,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자체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군대에는 병과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따라서 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을 자발적으로 헌신할 때 은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믿음으로 참여하고 헌신할 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주인의식을 갖게 됩니다. 사역의 열매가 있을 때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30세부터 일을 했습니다. 제사장은 종신직입니다. 레위인은 30-50세까지 천막을 거두고, 기둥을 옮기고, 성물을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30세가 될 때까지는 내면이 성숙하지 못하고 혈기가 많아서 실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반면에 50세 이상이 되면 내면이 성숙하고 인생의 경험은 풍부하지만 힘이 약해져서 직무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내면이 성숙하고 인생의 경험도 있고 섬길 수 있는 힘이 있는 30세부터 50세까지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에 하나님을 위한 일에 땀을 흘리도록 복무 기간을 정하셨습니다. 레위인은 20-25세에 성막에 들어와서 견습생으로 섬기는 법을 배우고 30세부터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민 8:24). 5년 동안 인턴 생활을 하고 30세가 되어서야 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일은 신중함과 성숙함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알고 능숙하게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이가 차서 은퇴한 이후는 여러 가지 일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13절에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이 나옵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함이라(딤전3:2-7).”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장자 대신에 레위인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을까요?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열두 명의 아들들을 불러서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에게만은 두 번씩이나 축복 대신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창49:5-7). 그 예언대로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유일하게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레위가 이렇게 저주를 받은 것은 그의 기질이 분과 혈기가 많아서 쉽게 분을 내고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기질 때문에 레위인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인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허리에 칼을 차고 하나님께 범죄한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3000명이나 죽였습니다. 레위인의 칼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레위인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졌습니다. 민수기 25장에서 한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 여인을 이스라엘 진영에 데리고 와서 음행했습니다. 이를 본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마음에 영적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창을 들고 막사에 들어가서 음행하는 두 남녀를 한 번에 찔러 죽였습니다. 그러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습니다. 이와 같이 레위인은 잔인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잔인한 기질을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이 받은 저주가 도리어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치고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다가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땅을 기업으로 받지는 못했지만 성막에서 봉사함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기업이 되셔서 먹을 것, 입을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았든지, 우리의 기질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주인으로 영접하고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요 종으로 삼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헌신할 때 심히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레위인으로 구별하여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자녀들과 양들에게 가르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각자 받은 바 은사로, 사랑의 수고와 기도로 섬길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맡은 직분을 감당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도 있고, 징계가 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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