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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22년출18강(32,33장) 모세의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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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2-03-1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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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출애굽기 18 강
말씀 | 출애굽기 32,33장
요절 | 출애굽기 32:31,32

모세의 중보기도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마치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을 가기도 전에 외도를 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파괴되어 이혼할 지경에 이른 부부와 같습니다. 이런 위기의 때에 모세의 중보기도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중보기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요청합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피로 언약을 맺었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굳건하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도자 모세가 없어지자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희미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개인 신앙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없으면 그를 대리해서 일을 하고 있는 아론을 신뢰하고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빨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무리수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청합니다. 아론은 이런 요청에 대해서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격려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향한 백성들의 마음을 붙잡고 싶었는지 백성들의 요청을 수락합니다. 아론은 자신이 리더십을 쥐고 뭔가 백성들에게 영광을 받고 싶은 인간적인 야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서 환심을 사고 인기를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인본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말하고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아론은 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을까요? 이집트 멤피스(Memphis) 지역에서 소를 숭배했는데, ‘아피스(Apis)’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태양신이 ‘아피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우상을 여호와를 대신하는 신으로 만들었고, 그 신에게 장래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송아지 형상을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뜻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맺었던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언약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속히 타락한 조상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론이 백성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뛰놀았다.’라는 말은 ‘남녀 사이의 애무’, ‘성적 유희’를 뜻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인데도 이방 사람처럼 송아지 형상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십니다. “너는 내려가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부패했다는 것은 병균이 침투하여 본래의 특성이 없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났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송아지 우상과 연합되어 혈육관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진노하여 진멸해 버리고자 합니다. 진멸은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요 약속의 땅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부패해버린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보시니 목이 뻣뻣하다고 하십니다. 목이 뻣뻣하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세우고 세계 만민을 구원하는데 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요를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광야 생활의 고단함이 클수록 그런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기다릴 줄 압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게 일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닥치는 대로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닥치는 대로 도움을 받고자 하다 보니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부패하여 쓸모없는 백성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의 이 말씀은 모세의 귀를 솔깃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첫 번째 중보기도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인도해 놓고 죽이시면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하여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렵니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에 기초해서 기도합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모세는 자기가 한 나라의 조상이 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욕을 먹고 하나님의 언약이 파손되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고 그 백성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 막아 선 한 사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진멸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중보자가 해야 할 일은 백성 편에서 서서 하나님의 분노를 달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백성들이 문제이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백성을 변호하는 자가 진정한 중보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을 변호했지만,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노했습니까?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영적인 분노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 깨졌음을 상징합니다. 백성이 언약을 어겨서 그 언약 관계를 더는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백성에게 마시게 했습니다(20). 금을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리면 붉은 포도주 같은 색깔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피를 상징하는 속죄를 위해 이 물을 마시게 한 것입니다. 또한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가슴 깊이 새기도록 이렇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아론을 어떻게 꾸짖습니까? 21절입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모세는 아론의 죄를 지적 합니다. 그런데 아론은 목자다움은커녕 ‘영혼 없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난 그저 백성이 요구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송아지가 나와 버렸다(22-24).”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했습니다(25).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갔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였습니다. 삼천 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200만 명이 죽어야 할 터인에 3천명으로 끝을 냈습니다. 모세는 레위 사람들이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레위인들이 자기 형제를 치는 일을 하나님은 헌신으로 보셨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잘 감당하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적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제사장직을 잘 감당하도록 복을 주십니다(29).

  모세는 그 백성을 두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분노를 전달함으로 그들로 회개에 이르도록 돕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백성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죄에 대한 분노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대신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우상을 들여 놓고자 하는 욕망이 항상 존재합니다. 이것을 방치하면 어디까지 부패할지 모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 섹스, 권력, 성공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반드시 허무와 환멸을 가져옵니다.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모시고 영적인 질서를 회복할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내가 만든 신, 가짜 신, 우상을 섬기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이런 가짜 신, 우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매일 매순간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신6:5).

  모세의 두 번째 중보기도. 30-32절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가 앞에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중보했고, 이제는 죄를 사해 주시도록 중보하고 있습니다. 멸망을 막을 때는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에 기초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죄를 위해서 중보할 때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제하여 버리시옵소서.” 그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은 죄 지은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그 책에서 지워버리신다면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세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라고 하는 것은 자기도 백성과 같은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모세는 자기를 백성과 동일시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자기와 백성을 동일시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 편에서도 백성은 사실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비난했습니다. 모세는 그런 백성이 부담스럽고 싫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부담스럽던 백성이 결국 금 송아지 신까지 만들어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보고 정말 그들이 싫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백성의 용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는 왜 그렇게 자기와 백성, 그것도 하나님께 큰 죄를 지은 백성을 동일시했을까요? 왜 백성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면 자기도 끊어지기를 원했을까요? 모세는 그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았습니다. 그 백성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을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모세 자기를 통해서 얼마나 큰일들을 하셨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을 향해 쏟으신 하나님의 열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 모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런 백성이 한 번의 큰 죄로 인해 이대로 진멸당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만일 이대로 진멸된다면 그 때까지 행한 하나님의 모든 일들은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모세는 그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였고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목숨을 건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중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에서 구원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33,34).” 하나님은 예정대로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사자를 앞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적들도 물리쳐 주시고, 땅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시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상 죄에 대해서 돌파하시면 뒷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들이 이쁜 구석이 있어서 봐 주신 것이 아니라 조상들과의 언약 때문에 멸망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여행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별거 상태와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성막은 텅 빈 성막으로만 남게 됩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방향에 따라 구체적인 회개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장신구에 여러 가지 우상들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떼어냈습니다.

  모세의 세 번째 중보기도(33:7-23).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였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진 안에 거하셨는데 그들의 죄로 인해서 진 밖으로 회막을 옮기셨습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친밀한 관계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가 회복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중보자의 영성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평소에 하나님과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평소에 친한 사람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다시 아룁니다.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임을 강조하면서 내게 주를 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주님의 속마음을 알려달라는 뜻입니다.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십시오. 이 백성을 받아 주세요. 관계회복을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받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시 함께 하고자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합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16,17).”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선한 것을 그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그 앞에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또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하시면서 “그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면서 가장 바라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요를 얻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여호와께서 나의 영원한 길동무가 되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그 주변에서 어려워하는 이웃들의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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