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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22년 출15강(25-27장) 내가 거할 성소를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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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1회 작성일 22-02-20 12:49

본문

2022 출애굽기 15 강
말씀 | 출애굽기 25-27장
요절 | 출애굽기 25:8

내가 거할 성소를 만들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지난 주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식을 체결하는 장면을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신부로 삼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렘 31:32).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신랑과 신부가 함께 살 집을 아름답게 꾸며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 축복을 깊이 묵상하며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출애굽기 25-40장까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거할 신혼집, 즉 성막에 관한 말씀입니다. 25:1-31:18은 성막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사항이고, 35:1-40:38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어떻게 완성했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1-9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하여 예물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 예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해야 합니까?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사는 성소를 짓기 위해서 바치는 예물은 기쁜 마음 즉, 즐거운 마음으로 내야 한다고 합니다.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함께 하기를 원하는 영원한 언약인데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를 싫어하는 자가 있다면 본인도 괴롭고 하나님도 괴롭지 않겠습니까?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내셔서 영원한 자기 백성, 신부로 삼아주시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면 마땅히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 장막을 마련하는 일에 예물을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물이 어떻게 마련 된 것입니까? 출애굽기 12:35-36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이집트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이집트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할 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구하자 금은 패물과 의복을 구하는 대로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는 10가지 재앙으로 다 죽게 되었는데 재물이 대수이겠습니까? 그래서 빨리 나가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은혜로 받은 재물을 기쁨으로 바쳐서 성막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것을 가지고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기쁜 마음으로 낼 것을 말씀하신 후에 그 예물의 종류를 말씀 해 주십니다. 3-7절을 보면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입니다. 이 예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할 성소를 자신이 보이신 모양대로 지으라고 하십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양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이 모든 규격과 모양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무언가 잊혀지지 않는 방식으로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3-4에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천상의 장막이 진짜 하나님의 장막입니다. 히브리서 9:23-26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모형은 처음부터 ‘개혁할 때까지’, 곧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도록 계획되었습니다. 히브리서 9:9-10을 보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모형들은 실체가 오면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막의 기능과 상징했던 바를 모두 성취하신 원형이 되십니다. 곧 예수님이 참 성전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2:19-22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참 성전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 성전이 되심으로 구약에서 모형으로 보여 주셨던 건물로써의 성전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사역을 다 이루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마 27:51).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5:13을 보면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약속의 땅을 처소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백성을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17-18을 보면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는 구속받는 백성을 주의 처소로 삼으시고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십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나와서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야 하는데 이들이 온전한 처소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성전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시니 성령이 임한 자가 성전이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 임한 자가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이것은 영원 전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었습니다(엡 3:9).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시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인데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비밀을 다 알려주십니다. 에베소서 2:11-22에 보면 우리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과 함께 한 새 사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한 새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이 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

  사도행전 2:40-47에 보면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오순절 사건 바로 다음 날에 3120명의 성도들이 이집 저집에 모였습니다. 한 집에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312개의 가정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정교회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집에서 떡을 떼며”, 즉 애찬의 축제를 시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규칙적으로 했습니다. 이 작은 모임에는 비신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믿는 사람들끼리 함께 떡을 떼며 잔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두 날개를 가진 교회라고 말합니다. 한 날개는 주일 예배로 전체가 모이는 형태의 예배요, 또 한 날개는 소그룹으로 몇몇 사람들이 가정에서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회모임을 가정공동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 요회모임을 집에서 이루며 식사, 찬양, 감사 나눔, 말씀 나눔, 삶을 나누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개인이 마음을 터놓고 고민, 문제를 이야기하고, 삶의 모든 부분을 깊이 있게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모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며 치유가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제자들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10-22절은 언약궤의 모양입니다. 증거판을 언약궤 속에 두라고 합니다(16). 십계명을 쓴 두 돌판이 언약증서이기 때문에 언약궤 안에 넣어두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십계명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막에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는데, 이 지성소에 유일하게 들어가는 것이 언약궤입니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도 하나님과의 언약의 말씀이 새겨져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을 마음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헛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 중심에 있을 때 마음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와 깊이 만나주시고 내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가득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17절을 보면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라고 합니다. 언약궤의 크기와 똑같이 속죄소를 만들라고 합니다. 속죄소를 언약궤 위에 얹고 증거판을 그 궤 속에 넣으라고 합니다(21). 22절에 보면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속죄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속죄제물의 피를 뿌려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회중의 죄를 속하는 곳입니다. 죄인이 드나들어 부정하게 된 성소도 속죄소에 피를 뿌려 정결하게 했습니다. 속죄소가 없다면 죄 사함도 없고, 성막 자체가 부정해서 제사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소에서 중보자인 모세와 만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말씀하십니다. 희생제물의 피가 뿌려진 속죄소 때문에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만남이 가능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계시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 뿌린 뚜껑 없이 증거판을 내려 보신다면 아무도 율법의 정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없이는 아무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5:9을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23-30절은 진설병을 두는 떡 상과 부속 기구들의 양식입니다. 진설병은 제사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두는 빵’ 혹은 ‘하나님 앞의 인간의 현존을 상징하는 빵’이라고 해서 ‘현존의 빵’이라고 부릅니다. 이 빵은 하나님이 드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먹는 점에서 하나님 안에서의 교제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빵을 항상 있게 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분이심과 백성이 왕의 식탁에 참여함을 보여줍니다(30). 신약의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시며(요 6:35), 성도들은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 하여 주님과 더불어 먹는 것입니다(계 3:20).

  31-40절 말씀은 성소를 밝힐 등잔대와 부속기구들의 양식입니다. 등잔대를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아몬드 꽃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아몬드 나무는 봄에 가장 빨리 꽃이 피며 열매도 가장 빨리 맺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몬드 나무(샤퀘드)와 유사한 발음으로 “지켜보아(쇼케드)”라는 뜻의 언어 유희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등장대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지켜보고 계심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등잔대의 목적은 ‘앞을 비추게’하는 것입니다. 이 빛으로 갈 길을 바르게 조명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즉 등잔대는 생명의 빛을 비추는 역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0에 보면 이 일곱 촛대를 일곱 교회의 상징으로 해석 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40절을 보면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40).”고 명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보이신 양식대로  만들어야 합니까? 그것은 그 양식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백성 중에 거하고 만나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산꼭대기에 올라갈 길이 많은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갈 길도 다양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께서 보이신 방법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26장 1-14절은 성막을 덮는 휘장들의 양식이고, 15-30절은 성막의 기둥들의 양식이며, 31-35절은 내부 커튼의 양식이며, 36-37절은 외부 커튼의 양식입니다. 27장 1-8절은 번제단에 관한 양식입니다. 번제단이 위치하는 곳은 성막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곳입니다. 번제단 다음에 물두멍이 있고 그 다음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막 안 성소의 기구들은 다 금으로 만들어지는데 반해 성소 밖의 기구들 곧 번제단과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왜 성막에 들어가는 처음 장소에 이런 번제단이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죄가 처리되지 않고서는 성소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죄의 역할을 하는 제단에서 짐승의 피 흘림과 불에 태워짐을 통하여 심판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번제단을 놋으로 만들게 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놋은 성경에서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제단에 희생제물이 불에 살라진다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용납하실 때에 대신 심판 당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용서를 이야기 하지만 자신이 정말 놋 제단에서 불로 태워지는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정말 자신이 심판을 받아야 마땅함을 알고 그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셨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가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 탄식하면서 주를 바라볼 것입니다.

  9-19절 말씀은 성막의 뜰 곧 성막 뜰 울타리에 관한 양식입니다. 외부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뜰 안에 들어와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됩니다. 성막의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가 있습니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뜰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것은 늘 제단에서 제물이 불 태워지는 모습입니다. 놋 제단에 제물이 희생됨으로써 속죄와 화목이 일어나게 됩니다.
 
  20-21절은 등불의 기름에 관한 규례입니다. 성막 안은 이 등불로 늘 밝혀져야 합니다. 등대와 성막이 다 성도라면 성도에게 늘 기름이 공급되어야 밝히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성막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까? 구약은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성막의 양식을 보여 주시고 그대로 만들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될 참된 성전을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말씀하시며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에덴이 회복되는 은총을 덧입게 된 것입니다. 죄 때문에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자들이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가 주일 예배와 가정예배와 요회모임을 하면서 이 은혜와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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