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서론(남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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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서론 본 누가복음 서론은 대럴 벅의『누가복음』과 『누가신학』을 참고해서 전개했다.
남다윗(공릉)
그리스도와 이 모든 일의 증인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6-48).
들어가며
제1장. 저자와 독자, 기록목적
1. 저자
2. 기록연대와 장소
3. 독자
4. 기록목적
제2장. 누가복음의 구조
1. 구조
제3장. 주제
1.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
2. 제자 공동체 : 교회
3. 역전의 복음
나가며
들어가며 :
누가복음은 공관복음서 중에서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누가복음은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길다. 네슬-알란이 편집한 헬라어 성경에서 마태복음은 87쪽이다. 마가복음은 60쪽이다. 요한복음은 73쪽이다. 누가복음은 96쪽이나 된다. 절들을 비교해보아도 비슷하다. 마태복음은 1071절, 마가복음은 678절, 요한복음은 869절이다. 누가복음은 1151절이다. 둘째, 누가복음만이 자신의 복음서에 이어지는 이야기, 곧 사도행전을 가지고 있다. 누가는 예수님과 예수님 사역에 대해서 소개할 뿐만 아니라 또한 초대 교회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한 복음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도 알려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누가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셨는지,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전파했는지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선교했는지 설명해준다.
누가는 역사가이면서 신학자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 시대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전한다. 누가는 구속의 이야기를 통해 데오빌로에게 그가 알고 믿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그 복된 역사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제1장. 저자와 독자, 기록목적
1. 저자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인가? 전통적인 견해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누가라는 주장이다. 누가복음의 저자를 누가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우리’ 구절은 누가복음이 사도 바울과 같이 여행한 일행이 기록했음을 암시한다. 동행했던 사람 중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가이다(골4:14, 몬24, 딤후4:11).
둘째로, 초대 교회 기독교 저술가들은 누가가 이 두 책의 저자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저자에 관해 말한 가장 이른 시기의 분명한 진술은 무라토리안 정경(170-180년경)이다. 이레나이우스도 (175-195년경) 누가가 누가복음의 저자이며 바울의 추종자라고 했다. 누가복음에 대한 ‘반마르키온주의자 서문(175년경)에 의하면 누가는 84세까지 살았고 의사였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아가야에서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보이오티아에서 죽었다고 전해준다.
신약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과 관련되어 있으며 예수가 행한 일들을 직접 보았던 사람은 아니었고 이방인들을 위해 누가복음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다음 견해는 신약성경에서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은 것이다. 곧 누가는 수리아 지역에서 왔으며 바울의 복음을 선포했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녀가 없었으며 오래 살다가 죽었다는 점이다. 누가복음에 관련된 전승은 누가가 세 번째 복음의 저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2. 기록연대와 장소
기록연대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주요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60년대 중반, 70년대 초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이다.
① 누가가 마가복음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초로 저술했고 마가복음이 나온 직후에 기록했다면 그 기록 시기는 60년대 중반,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이 처형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누가복음은 이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처형이 있은 65년 이전으로 본다.
② 누가가 주후70년 예루살렘이 무너진 후에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기록한 누가의 진술이 실제 사건들을 접하고 얻은 지식을 토대로 기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멸망이 예언적 형태로 나타난다(막13:14). 누가복음은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1:20). 따라서 누가복음의 기록연대는 70년 이후로 간주한다.
③ 누가는 바울 서신의 모음집이 출판된 시기인 1세기 말 이전에 기록한 듯이 보인다. 바울 서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이를 토대로 누가행전의 기록 연대를 가장 빠르게 잡으면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으로 본다.
이처럼 기록연대는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마가복음과는 달리 임박한 종말론의 경향이 완화되어 나타나고(19:11, 21:8, 막13:6), 박해요소도 약하게 나타나는(9:23) 것으로 보아 많은 학자들은 기록연대를 예루살렘 멸망후로 본다.
누가의 저술 장소는 저술 시기에 따라 결정된다. 저술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가이사랴(60년대), 로마(60년대 또는 80년대), 안디옥(어느 시기든 가능), 그리스(어느 시기든 가능) 등 여러 가능성이 등장한다.
3. 독자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데오빌로에게 보내기 위해서’ 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문제는 데오빌로가 누가인가? 데오빌로는 각하라는 칭호를 볼 때 총독과 같은 로마 고위 관료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데오빌로는 로마 사회 상류층에 속한 특정한 인물이다. 누가복음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데오빌로 한 개인이다. 그런데도 누가는 데오빌로와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공동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일까? 그들은 이방인이며, 아직 영적으로 어린 신자이다. 그들은 대부분 바울의 전도를 받아 로마 세계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모든 신자들, 이방인 개종자이다. 이들은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믿고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들이 받은 복음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필요한 가운데 있다.
4. 기록목적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작목적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 왜 예수가 다시 오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다((H. Conzelmann)
-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다(Haenchen)
- 바울에 대해서 로마 정부에게 변호하는 것이다(Matill)
- 바울에 대해서 신앙공동체에게 변호하는 것이다(Jervell)
-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Tallbert)
- 복음 전파를 위해서 쓴 것이다(O' Neill)
-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Van Unnik)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변증하는 신정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Tiede)
-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사회학적으로 정당화하며, 또한 새로운 공동체가 로마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는 것이다(Esier)
- 유대교와 화목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은 유대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Brawley)
-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문서이며, 또한 유대인들에게 대한 전적인 거부를 드러내는 문서다(J. T. Sanders)
제2장. 누가복음의 구조
1. 누가복음 구조
누가복음은 대체로 지리적인 단위로 구분되어 있다.
1) 누가의 서문과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2) 사역을 위한 준비 :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음(3:1-4:13)
3) 갈릴리 사역 : 예수의 계시(4:14-9:50)
4) 예루살렘 여행 : 유대인들의 배척과 새로운 길(9:51-19:44)
5) 예루살렘 : 죽임당하고 부활한 무죄한 자(19:45-22:53)
Ⅰ. 누가의 서문과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서문 : 누가는 이전 자료를 주의 깊게 살핀다(1:1-4) 사복음서 저자 중 유일하게 서문을 기록하고 있다.
B. 탄생 내러티브 : 선구자와 성취(1:5-2:40) 탄생기사에 세 개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마그니피카트(마리아의 노래), 베네딕투스(사가랴의 노래), 눈크 디미티스(시므온의 노래). 세 노래는 누가복음에 전개될 구원 이야기의 주제 음악과 같다.
C. 예수의 자기 이해에 대한 계시(2:41-52)
Ⅱ. 사역을 위한 준비 :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음(3:1-4:13)
A. 세례요한 : 앞에 오는 자(3:1-20)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아온 이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는 데, 구체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도전한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암시해주고 있다.
B. 예수 : 뒤에 오는 자(3:21-4:13)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연결시키면서 예수님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만민과 관련 있음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시험받는 기사에서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내용이 맨 뒤에 배치되어 있다. 누가복음이 성전중심임을 말해주고 있다.
Ⅲ. 갈릴리 사역 : 예수의 계시(4:14-9:50) 이 단원의 핵심적인 이슈는 “예수는 누구인가?”이다.
A. 예수의 사역 개관(4:14-44)
B. 제자들의 부름과 논쟁들(5:1-6:16)
C. 예수의 가르침(6:17-49)
D. 믿음을 향한 첫 번째 움직임들과 기독론적인 질문들(7:1-8:3)
E. 믿음으로의 초대, 기독론적 계시, 질문들(8:4-9:17)
F. 기독론적 고백과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9:18-50)
Ⅳ. 예루살렘 여행 : 유대인들의 배척과 새로운 길(9:51-19:44) 이 단원의 49%에 해당하는 내용은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대 가운데 제자도가 제시된다. 이 단원에 수록된 열일곱 개의 비유 중에 열다섯 개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A. 결단의 복 : 우선순위, 선교, 특권(9:51-10:24)
B. 제자도 : 이웃, 말씀, 기도(10:25-11:13)
C. 논쟁, 교정, 화 선포(11:14-54)
D. 제자도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12:1-48)
E. 시대 분별 : 하나님 나라 참여할 자(12:49-14:24)
F. 제자도 : 모든 소유 버림(14:25-35)
G. 죄인들을 찾으심 : 잃은 자를 찾는 기쁨(15:1-32)
H. 관대함 : 돈과 소유를 다루는 것(16:1-31)
I. 용서, 섬김, 감사(17:1-19)
J. ‘이미’, ‘아직’의 하나님의 나라(17:20-18:8)
K. 하나님의 나라 합당한 자 : 회개한 세리, 어린아이, 제자들(18:9-30)
L. 예루살렘을 향함(18:31-19:44)
Ⅴ. 예루살렘 : 죽임당하고 부활한 무죄한 자(19:45-22:53)
A. 예루살렘에서의 논쟁(19:45-21:4)
B.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21:5-38)
C. 배반과 고별(22:1-38)
D. 예수의 체포, 재판, 죽음(22:39-23:56)
E. 예수의 부활과 승천(24:1-53)
제3장. 주제
1.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
1) 하나님의 계획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원의 계획 곧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돌아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길을 말한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의 메시지, 사가랴, 마리아의 노래, 선지자 시므온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이야기한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임할 구원,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 예수님이 겪어야 할 고난,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날 이스라엘의 나누어짐 등 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많은 구절들은 ‘반드시 ~해야 한다’ 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동사 ‘데이’(δεί)는 101번 나온다. 그 가운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40번이나 사용된다. 예수님은 반드시 자신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눅2:49), 예수님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4:43), 예수님은 반드시 사탄에 의해서 고통당하며 매여 있는 여인을 풀어주어야 한다(13:36). 어떤 사건들은 종말이 오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17:25, 21:9). 예수님은 반드시 불법자들과 한 패로 여겨져야 한다(24:7), 인자는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 한다(9:22), 죄 사함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가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24:43-47).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들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할 때 누가복음 24장 44-49절은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이 성취되신 사건이다. 희년의 성취이고, 새 언약의 성취다. 하나님은 로마제국이라는 그 역사현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누가는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현해준다.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2) 예수님의 정체성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인자, 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천사는 마리아를 통해 나실 예수님에 대해 큰 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다윗의 후손, 구주, 그리스도 주라고 말한다. 세례 받을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시편2편 시2:7-8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과 이사야 42장사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음성이 들려온다. 예수님은 열두 살 때 성전에 머물며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는가 부모에게 반문하셨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인정하시면서 인자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변화산에서 구름 속에서 다시 한 번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크신 분이다(9:7-9). 예수님은 그리스도다(9:20).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다. 눅22장69절에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주로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주이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이 선포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이 치료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쫓겨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한다. 예수님의 권위는 모든 범위에 미친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해서 행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
3) 예수님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세워져 간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완성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와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이 자신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쫓아낼 때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왔다(눅10:9).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한다(11:20-23).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다(17:21).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인 특성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측면을 보완한다. 하나님 나라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나머지 약속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다시 올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오면 신자들에게 영원한 복이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은 희년의 배경 속에서 속박으로부터 놓임을 받고 온갖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수님은 식사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여 교제하는 것을 묘사해준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식사시간은 사람의 허기를 충족시키는 필요를 훨씬 능가하는 의미를 지닌 사회적 사건이었다. 식탁동료는 자신의 확대가족에 속하는 것처럼 대우받았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계층구조, 수용과 배척, 경계와 경계선을 넘는 것에 대한 메시지로 표현되었다.
. 예수님은 비유와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단지 사람들을 하늘로 데려가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가르치실 뿐 아니라 이적을 행하신다. 이적 사건들은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입증해준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다양한 이적 사건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역사하는지 보여준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신다. 악한 영들을 쫓아낸다. 열병, 문둥병, 중풍병을 고쳐주신다. 마른 손을 온전하게 해주며 간질과 혈루증을 고쳐주신다. 눈먼 사람이 보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신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주신다. 거친 바람과 파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행사한다. 이런 이적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이와 같은 이적들을 행했다.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계속해서 역사한다.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누가는 특별히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분임을 강조했다 존 스토트, 신약의 메시지, 김동규 옮김, 서울: 아바서원, 2013.p106
. 세례 받고 기도하실 때 성령께서 임하셨다(3:21).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5:16),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기 전에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6:12). 예수님은 장차 닥칠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언하기 전에 따로 기도하셨다(9:28-29).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11:1).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22:32).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다(22:44-45).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다(22:34).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기도를 드리셨다(23:46).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스테픈 바르튼은 예수님과 기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엘B. 그린, 누가복음신학, 왕인성 옮김, 서울: CLC, 2020.p110
.
“습관을 따라 아버지와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특히 그 분의 일생 가운데 주요한 순간 혹은 결정의 순간 혹은 시험의 순간에 기도의 사람으로서 예수에 대한 묘사는 그 분의 제자들에게 따라야 할 모범을 제공하는 누가복음 내러티브에서 지워질 수 없는 부분이다.”
4) 예수님의 죽음, 부활 및 승천
누가복음에서 십자가 사건보다 예수님이 높임 받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영적인 구원을 가져준다는 것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모범을 보여준다고 이해한다(Pilgrim). 박해를 받고 있는 교회를 위해서 예수님의 죽음은 모범적인 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윤리적이며 역사적인 기능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의인이지만 고난을 받는다. 예수님의 죽음은 새 언약을 세운다(22:20).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산다(행20:28).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새 언약이 체결되며 또한 구속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지만 생명을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약속하셨고 승천하신다.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누가복음24장과 사도행전 1장을 연결한다. 부활 및 승천하신 구세주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도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는 입증된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세워져간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고 죄를 용서하며 성령을 선물로 보낸다. 또한 미래에 완전히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며 제자들이 헌신적이며 신실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실현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졌으며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졌다. 새 언약이 세워지고 성령을 주신다는 소망도 이루어졌다.
5) 성령
구속사건과 관련해서 성령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례요한과 그의 부모는 성령에 충만하고(1:15, 41, 67),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으로 묘사된다(2:25-27). 무엇보다 예수님이 성령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고(1:35),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3:22, 4:1, 14, 18), 성령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신다(3:16). 예수님은 아버지가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고(11:13), 성령을 모독하는 자를 경고하며(12:10), 성령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12:12) 부활한 후에 성령을 약속하셨다(24:49).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감독이요, 연출자이다. 성령은 또한 예수님의 영이다. 성령이 와서 임재함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으며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입증한다. 비록 메시아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겉으로 보기에 이 땅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활 및 승천하신 메시아는 자신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여전히 존재하신다.
그러면 이 복에 누가 참여하는가? 누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가? 새로운 공동체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2. 제자 공동체 : 교회
1) 새로운 구성원
새로운 공동체는 열두 사도들, 72명의 제자들이 언급된다. 사도행전에서는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된 사람들을 제자들이라고 불렀다. 안디옥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누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여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한다. 누가는 특별히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과 세리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또한 이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누가가 언급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적인 측면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다. 구약시대에 사람들에게 학대받았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복을 받는다. 죄인들,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미움 받던 세리들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에 참여한다. 누가는 여인들이 예수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묘사한다. 예수님을 많이 사랑한 죄 많은 여인,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마리아, 마르다,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 부활을 증언한 여인들(눅7:36-50, 8:1-3, 48, 10:38-42, 13:10-17, 24:1-12)이다. 누가는 여인들뿐만 아니라 과부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주후1세기 사회에서는 여인들이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여있었지만 누가복음의 이야기에서는 한 가운데 있다. 때때로 여인들은 남성들과 함께 짝을 이루어 소개된다.(눅2:25-28, 4:25-27, 8:40-56, 11:31-32, 13:18-21, 15:4-10, 17:34-35). 누가복음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해서 쓰인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와 함께 누가는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둔다. 시므온은 예수님에 대해 이방인을 비추는 빛이라고 했다.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가 보냄 받았는데 그 혜택은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과부가 아니라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이고, 엘리사에게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다. 이방인 백부장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보지 못한 믿음을 나타내 보였다. 유대 제사장, 레위인도 외면한 강도만난 사람을 돌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셨지만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한 이는 사마리아 나병환자 한 사람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특별히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사람들이 이 소망의 메시지에 가장 잘 반응한다.
2) 구성원이 되려면 : 회개와 믿음
누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것을 묘사하는데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곧 회개와 돌이킴과 믿음이다. 회개(메타노이아)는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회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대체로 ‘슈브’인데 ‘돌아오다, 돌이키다’ 를 뜻한다.
회개(메타노이아), 헬라어에서 회개는 마음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곧 회개는 어떤 사람의 관점이 새롭게 또는 올바르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해서 회개는 그 계획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회개에 맞추는 것이다. 누가는 회개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회개는 자신의 가치관이 변화된 것을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회개는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에게 오듯이 회개하는 사람은 영적인 치유와 복을 위해 하나님에게로 나아오는 것이다(눅5:31-32).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눅15장). 고개를 들지 못하고 기도한 세리와 같은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눅18:9-14) 삭개오와 같이 반응하는 것이다.
돌아오다(에피스트레포)는 용어는 주로 사도행전에 나타난다(행3:19, 9:35, 11:21, 14:15, 26:18-20, 28:27). 누가복음에서는 드물게 사용된다(1:17, 17:4, 22:32). 이 단어는 근본적인 방향의 변화와 멀리 떠나가 있던 상태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26장에는 회개하다, 돌이키다, 믿는다 는 단어들이 모두 나타나며 연결되어 있다(행26:20, 27)
믿음(피스티스)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혜와 도움을 주신다. 중풍병자와 친구들, 어떤 이방인 백부장,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을 통해 믿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나병환자와 맹인의 믿음에 근거해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맹인의 시력을 낫게 하셨다. 신앙은 믿고 동시에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믿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과 약속이 실현되는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이 죄 사함과 구원과 도우심을 베푸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새로운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복이 주어진다. 누가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죄 사함 또는 자유(눅1:77, 4:18, 24:47, 행2:38, 5:31, 10:43, 13:38), 생명 또는 영생(눅10:25, 12:15. 12:21, 18:29-30), 평안 또는 평강 및 평화(눅1:79, 2:14, 10:5-6, 행10:36), 하나님 나라와 성령이다.
3) 요구되는 자세 : 제자도
① 전적인 헌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신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눅9:23, 57-62, 14:25-35, 18:28-30).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께 오는 자는 자기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누가는 버려야 할 목록에 아내(처)까지 포함하고 있다. 14:16, 18:29(비교 막10:29, 마19:29).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왜 이런 자기 소유의 포기를 요구하시는가? 이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자기와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자로, 진멸당해야 할 자였다. 죄인이요, 잃어버린 자요, 죽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찾아진바 되었고 살아났다. 진멸당해야 할 자가 진멸당하지 않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아났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다. 자기 목숨과 자기 소유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아니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② 절대적인 의존 : 기도, 성령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절대적인 의존하는 삶을 살도록 도전하신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두 가지 태도는 기도요, 성령께 의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늘 기도하라고 권면하셨다(눅11:1-13, 18:1-8, 9-14, 22:40) 한맺힌 과부의 기도(18:1-8),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18:9-14)
.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히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이셨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 충만을 받으셨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다(4:1). 성령의 권능으로 일하셨다.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좋은 분은 성령이시다. 성자이신 예수님이 성부께 기도로 의논하셨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버지께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③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본적인 계명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본질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누가 내 이웃인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는 제한이 없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주는 삶이다(6:27-38).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셨듯이 모든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돌봄과 동정심은 인종, 성별, 사회적인 계층을 뛰어넘는다.
④ 재물의 선용
누가복음에서 소유는 많이 논의되는 주제다.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경고와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8:14, 12:13-21, 16:1-15, 19-31, 18:18-25), 반면 긍정적인 예들도 언급된다(눅8:1-3, 19:1-10, 21:1-4, 행4:36-37) 제자들은 재물을 선용해야 한다.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는 예수님을 따를 때 동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제자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해있고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고 구제할 수 있다.
⑤ 증언과 증인
모든 신자는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자로 부름 받았다. 교회 공동체는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자기만을 위해 닫혀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공동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⑥ 기쁨과 찬송
누가복음은 찬양의 복음이다(Leon Morris) 데이빗 웬함·스티브 월튼, 성경이해1 복음서와 사도행전, 박대영 옮김, 서울 :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p383
. 탄생 이야기부터 찬양,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1:46-55, 68-79, 2:30-32). 예수님은 우는 자를 웃게 하러 오셨으며(6:21), 예수님의 사역에는 천사의 기쁨이 뒤따른다(2:13-14, 15:10). 회개는 기쁨을 불러일으킨다(15:7, 10, 23, 32, 19:6).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큰 기쁨을 경험하고 늘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24:52-53). 누가가 묘사하는 예수님은 기쁨을 불러일으키시는 주님이시다. 복음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예수님을 따르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삶도 이러할 것이다.
3. 역전의 복음
누가복음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가시는 그리스도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이다. 그리스도는 이곳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으신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 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시던 대로 죽으셨다. 성전이 아닌 성전 밖에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달고 죽으셨다. 선지자요, 왕이요, 유대를 속량할 자로 여겼던 분이 죽으셨다. 선지자, 종,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분, 모세와 같은 지도자, 왕으로 알려진 이 분이 죽으셨다. 성전이 아닌 집에서 죄 사함을 선언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못 듣는 자를 듣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분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고 죽으셨다. 도대체 이 분은 누구신가? 이 분의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가? 죄 사함의 선포, 이적을 행함으로 사람들을 구원해내셨던, 특히 가난한 자들, 죄인들, 여자들, 어린아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했던 이 분의 초청은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은 거짓이고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셨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높이심으로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 분의 죽음은 성경의 약속을 이루는 죽음이다. 이 분의 죽음으로 새 언약이 세워졌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선포된다. 이제 성전이 아닌 이 분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다. 율법을 통해서 의로움을 받지 못했던 데서 이 분을 힘입어 의로움을 받는다. 이제 이 분의 이름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다. 이 분의 이름을 통해 치유가 일어난다. 이 분의 이름을 통해 귀신이 쫓겨나간다. 곧 이 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이 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린다. 이 분을 통해 현재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 분이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다윗의 후손이지만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신다. 가장 부유한 분이지만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셨다 가난하여서 말구유에 나셨고. 가난하여서 그 부모는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희생제물인 비둘기를 드렸다. 사역하실 때 다른 사람들의 지원에 의존하셨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동안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금욕주의자는 아니셨다. 예수님은 잔치에 참여하셨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는 말을 듣기까지 하셨다.
. 힘이 있지만 힘없는 자처럼 죽으셨다. 가장 높은 분이지만 가장 낮은 자가 되셨다. 부유하시지만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백성들은 구원받는다. 그들의 인생은 역전된다. 일찍이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를 듣고 그 분을 통하여 일어날 역전을 노래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부끄러운 자가 기뻐하는 자가 된다. 비천한 자가 가장 복된 자가 된다. 구주 탄생의 복된 소식이 비천한 중의 하나인 목자에게 전해진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미움을 받는 자가 복 있는 자가 된다.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 어른이 아닌 어린 아이, 남자가 아닌 여자,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반대로 부유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에게 화가 있다.
그 시대에 인정받는 자는 힘 있는 자, 부자, 남자, 어른들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으며 살아간다. 반대로 약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 죄인들은 주리고 울며 고통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역전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역이 된다. 어린 아이와 같은 제자들이 주역이 되고 여자들이 주역이 된다. 죄인과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 이방인,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그 민족과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다.
가난한 자들에게만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자들, 권세자들,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에게도 역전이 일어난다. 부자에게 분명 화가 있다. 그런데 이 부자들은 왜 화가 있는가? 불의하게 부를 축적했는가? 그렇지 않다. 정당하게 부를 축적한 이도 있을 것이다 눅12장 비유에 나오는 부자나, 16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불의하게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언급되지 않는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처럼 부를 축적하는 데 불의함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부자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부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 그러면 그 부로 불의한 일을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 부를 쌓아놓고 자기만 즐겼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은 것, 가난한 자, 거지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다. 누가는 부자에게도 역전이 일어남을 말하고 있다. 일을 잘 못해서 해고통보를 받은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자의 채무를 깎아주는 것을 보고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시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시며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것이라고 하셨다. 부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 재물을 쌓아두고 자신만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다. 그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동료를 먹인다면 그는 지혜로운 부자다.
누가는 부자였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 인생이 역전된 자들을 말하고 있다. 세리장 삭개오, 그리고 자기 재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여자들 중에 부유한 이들이 있었다. 결국 부자들에게도 복음은 역전의 복음이다. 그들에게 진정한 부와 생명을 주는 복음이다. 종교지도자들에게도 복음은 역전의 복음이다. 외식하던 바리새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진실한 제자들이 된다. 외식하지 않고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신자가 된다. 입술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된다. 누가는 바리새인들을 지적하지만 다른 저자에 비해 다소 온건하게 지적한다 6장에 나오는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준 후에 바리새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마가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다고 한 반면에 누가는 예수를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했다고 기록했다(눅6:11, 마12:14, 막3:6)
.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많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제사장들도 마찬가지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 병자들, 죄인들뿐만 아니라 부자들, 권세자들에게도 역전을 이룬다. 데오빌로와 같은 지도자들도 복음을 통한 역전의 삶으로 누가는 초청한다. 바울을 심문하는 아그립바, 총독들에게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것 외에 다 나와 같은 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누가복음은 누구에게나 역전의 복음이다.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되고 부자는 가난하게 된다. 겸손한 자를 높이고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 비천한 자를 높이고 권세 있는 자를 낮춘다.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유한 자가 되게 하신다. 부자는 가난하게 된다. 자신에게 있는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재물의 청지기로 살아가게 된다. 재물의 종이 아닌 진정한 자유한 부자가 된다.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복음 안에서 진정한 구원과 자유와 생명을 누리게 한다. 그 안에서 참된 기쁨을 맛보고 찬송하게 한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역전 시키는 복음이다.
나가며 :
가이사 아구스도가 통치하던 때에 식민지 백성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가르치신 예수님, 그리고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승천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이 분을 통해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가장 부유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낮아지심으로 인해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인해 세상 가운데 놀라운 구원,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가이사 아구스도 시대처럼 지금 이 시대 사람들도 부와 권력, 명예를 추구한다. 특히 부를 노골적으로 추구한다. 부자가 되면 생명을 얻고 행복을 누리고 기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부를 얻을 길이 없어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난한 자가 탄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자들의 탐욕과 그 소유는 한이 없지만 행복하지 않다. 이 시대에 가난한 자들, 특히 절망하는 청년들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을 통해 완성된 복음이 이들을 구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게 하시고 이들에게 자유, 생명, 기쁨을 주신다.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도 자기의 소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에 있는 진정한 구원, 자유, 기쁨과 찬송의 세계로 초청한다.
돌아보면 누가복음은 나를 구원한 말씀이요, 가정교회를 세울 때 기초가 된 말씀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말씀을 통해 구원을 받았고 결혼할 때 받은 요절 말씀이 누가복음 2:12 이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나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받은 말씀이 누가복음이다. 누가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말씀이 있는가? 생각에 목자님이 전한 메시지를 그대로 다 옮겨 적고 소감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목자가 되어 지난 30여년간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요, 증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예수님은 누구시며,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자인가 질문 앞에 선뜻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인 적이라도 있었던가 라는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예수님의 제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기 소유권이 없는 자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다. 그러기에 가난하지만 가장 부요한 자들이고, 부요할지라도 자기 소유가 하나도 없는 자다. 가난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부요하다고 군림하지 않는다. 없는 자는 있는 자처럼, 있는 자는 없는 자처럼 살아간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다. 이런 삶에 진정한 구원과 생명, 자유와 기쁨과 찬송이 있다.
마리아의 노래(눅1:46-55)에 대해 시인 토머스 존 칼라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엘B. 그린, 누가복음신학, 왕인성 옮김, 서울: CLC, 2020.p19
.
우리의 지겹도록 한없는 위난 앞에서
우리는 무시하기로 선택한다
그녀의 노래의 천둥과 같은 울림을
그리고 그 노래의 혁명적인 비트를
가장 강력한 시대인 로마시대에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에게 들려주었던 그 복음, 이와 동시에 가장 부유한 자들, 권력을 가진 자들을 경고했던 그 복음, 마리아가 노래한 천둥과 같은 울림이 있는 복음을 자본주의가 가장 강력한 이 시대에 다시 듣기를 소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시대 가난한 자들, 특히 청년들, 그리고 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대 사람들에게도 이들을 구원하고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는 복음임을 믿는다. 누가복음 공부를 통해 이 확신을 얻고 제자, 사도, 증인의 길을 힘 있게 그리고 기쁘고 즐겁게 찬송하며 갈수 있기를 기도한다.
≪참고 도서≫
대럴 벅, 누가복음, 신지철 옮김, 서울 : 부흥과 개혁사, 2013.
대럴 벅, 누가신학, 강대훈 옮김, 서울 : 부흥과 개혁사, 2016.
조엘B. 그린, 누가복음신학, 왕인성 옮김, 서울: CLC, 2020.
존 스토트, 신약의 메시지, 김동규 옮김, 서울: 아바서원, 2013.
데이빗 웬함·스티브 월튼, 성경이해1 복음서와 사도행전, 박대영 옮김, 서울 :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남다윗(공릉)
그리스도와 이 모든 일의 증인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6-48).
들어가며
제1장. 저자와 독자, 기록목적
1. 저자
2. 기록연대와 장소
3. 독자
4. 기록목적
제2장. 누가복음의 구조
1. 구조
제3장. 주제
1.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
2. 제자 공동체 : 교회
3. 역전의 복음
나가며
들어가며 :
누가복음은 공관복음서 중에서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누가복음은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길다. 네슬-알란이 편집한 헬라어 성경에서 마태복음은 87쪽이다. 마가복음은 60쪽이다. 요한복음은 73쪽이다. 누가복음은 96쪽이나 된다. 절들을 비교해보아도 비슷하다. 마태복음은 1071절, 마가복음은 678절, 요한복음은 869절이다. 누가복음은 1151절이다. 둘째, 누가복음만이 자신의 복음서에 이어지는 이야기, 곧 사도행전을 가지고 있다. 누가는 예수님과 예수님 사역에 대해서 소개할 뿐만 아니라 또한 초대 교회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한 복음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도 알려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누가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셨는지,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전파했는지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선교했는지 설명해준다.
누가는 역사가이면서 신학자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 시대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전한다. 누가는 구속의 이야기를 통해 데오빌로에게 그가 알고 믿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그 복된 역사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제1장. 저자와 독자, 기록목적
1. 저자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인가? 전통적인 견해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누가라는 주장이다. 누가복음의 저자를 누가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우리’ 구절은 누가복음이 사도 바울과 같이 여행한 일행이 기록했음을 암시한다. 동행했던 사람 중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가이다(골4:14, 몬24, 딤후4:11).
둘째로, 초대 교회 기독교 저술가들은 누가가 이 두 책의 저자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저자에 관해 말한 가장 이른 시기의 분명한 진술은 무라토리안 정경(170-180년경)이다. 이레나이우스도 (175-195년경) 누가가 누가복음의 저자이며 바울의 추종자라고 했다. 누가복음에 대한 ‘반마르키온주의자 서문(175년경)에 의하면 누가는 84세까지 살았고 의사였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아가야에서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보이오티아에서 죽었다고 전해준다.
신약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과 관련되어 있으며 예수가 행한 일들을 직접 보았던 사람은 아니었고 이방인들을 위해 누가복음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다음 견해는 신약성경에서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은 것이다. 곧 누가는 수리아 지역에서 왔으며 바울의 복음을 선포했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녀가 없었으며 오래 살다가 죽었다는 점이다. 누가복음에 관련된 전승은 누가가 세 번째 복음의 저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2. 기록연대와 장소
기록연대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주요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60년대 중반, 70년대 초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이다.
① 누가가 마가복음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초로 저술했고 마가복음이 나온 직후에 기록했다면 그 기록 시기는 60년대 중반,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이 처형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누가복음은 이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처형이 있은 65년 이전으로 본다.
② 누가가 주후70년 예루살렘이 무너진 후에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기록한 누가의 진술이 실제 사건들을 접하고 얻은 지식을 토대로 기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멸망이 예언적 형태로 나타난다(막13:14). 누가복음은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1:20). 따라서 누가복음의 기록연대는 70년 이후로 간주한다.
③ 누가는 바울 서신의 모음집이 출판된 시기인 1세기 말 이전에 기록한 듯이 보인다. 바울 서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이를 토대로 누가행전의 기록 연대를 가장 빠르게 잡으면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으로 본다.
이처럼 기록연대는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마가복음과는 달리 임박한 종말론의 경향이 완화되어 나타나고(19:11, 21:8, 막13:6), 박해요소도 약하게 나타나는(9:23) 것으로 보아 많은 학자들은 기록연대를 예루살렘 멸망후로 본다.
누가의 저술 장소는 저술 시기에 따라 결정된다. 저술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가이사랴(60년대), 로마(60년대 또는 80년대), 안디옥(어느 시기든 가능), 그리스(어느 시기든 가능) 등 여러 가능성이 등장한다.
3. 독자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데오빌로에게 보내기 위해서’ 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문제는 데오빌로가 누가인가? 데오빌로는 각하라는 칭호를 볼 때 총독과 같은 로마 고위 관료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데오빌로는 로마 사회 상류층에 속한 특정한 인물이다. 누가복음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데오빌로 한 개인이다. 그런데도 누가는 데오빌로와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공동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일까? 그들은 이방인이며, 아직 영적으로 어린 신자이다. 그들은 대부분 바울의 전도를 받아 로마 세계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모든 신자들, 이방인 개종자이다. 이들은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믿고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들이 받은 복음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필요한 가운데 있다.
4. 기록목적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작목적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 왜 예수가 다시 오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다((H. Conzelmann)
-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다(Haenchen)
- 바울에 대해서 로마 정부에게 변호하는 것이다(Matill)
- 바울에 대해서 신앙공동체에게 변호하는 것이다(Jervell)
-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Tallbert)
- 복음 전파를 위해서 쓴 것이다(O' Neill)
-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Van Unnik)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변증하는 신정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Tiede)
-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사회학적으로 정당화하며, 또한 새로운 공동체가 로마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는 것이다(Esier)
- 유대교와 화목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은 유대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Brawley)
-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문서이며, 또한 유대인들에게 대한 전적인 거부를 드러내는 문서다(J. T. Sanders)
제2장. 누가복음의 구조
1. 누가복음 구조
누가복음은 대체로 지리적인 단위로 구분되어 있다.
1) 누가의 서문과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2) 사역을 위한 준비 :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음(3:1-4:13)
3) 갈릴리 사역 : 예수의 계시(4:14-9:50)
4) 예루살렘 여행 : 유대인들의 배척과 새로운 길(9:51-19:44)
5) 예루살렘 : 죽임당하고 부활한 무죄한 자(19:45-22:53)
Ⅰ. 누가의 서문과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서문 : 누가는 이전 자료를 주의 깊게 살핀다(1:1-4) 사복음서 저자 중 유일하게 서문을 기록하고 있다.
B. 탄생 내러티브 : 선구자와 성취(1:5-2:40) 탄생기사에 세 개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마그니피카트(마리아의 노래), 베네딕투스(사가랴의 노래), 눈크 디미티스(시므온의 노래). 세 노래는 누가복음에 전개될 구원 이야기의 주제 음악과 같다.
C. 예수의 자기 이해에 대한 계시(2:41-52)
Ⅱ. 사역을 위한 준비 :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음(3:1-4:13)
A. 세례요한 : 앞에 오는 자(3:1-20)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아온 이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는 데, 구체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도전한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암시해주고 있다.
B. 예수 : 뒤에 오는 자(3:21-4:13)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연결시키면서 예수님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만민과 관련 있음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시험받는 기사에서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내용이 맨 뒤에 배치되어 있다. 누가복음이 성전중심임을 말해주고 있다.
Ⅲ. 갈릴리 사역 : 예수의 계시(4:14-9:50) 이 단원의 핵심적인 이슈는 “예수는 누구인가?”이다.
A. 예수의 사역 개관(4:14-44)
B. 제자들의 부름과 논쟁들(5:1-6:16)
C. 예수의 가르침(6:17-49)
D. 믿음을 향한 첫 번째 움직임들과 기독론적인 질문들(7:1-8:3)
E. 믿음으로의 초대, 기독론적 계시, 질문들(8:4-9:17)
F. 기독론적 고백과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9:18-50)
Ⅳ. 예루살렘 여행 : 유대인들의 배척과 새로운 길(9:51-19:44) 이 단원의 49%에 해당하는 내용은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대 가운데 제자도가 제시된다. 이 단원에 수록된 열일곱 개의 비유 중에 열다섯 개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A. 결단의 복 : 우선순위, 선교, 특권(9:51-10:24)
B. 제자도 : 이웃, 말씀, 기도(10:25-11:13)
C. 논쟁, 교정, 화 선포(11:14-54)
D. 제자도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12:1-48)
E. 시대 분별 : 하나님 나라 참여할 자(12:49-14:24)
F. 제자도 : 모든 소유 버림(14:25-35)
G. 죄인들을 찾으심 : 잃은 자를 찾는 기쁨(15:1-32)
H. 관대함 : 돈과 소유를 다루는 것(16:1-31)
I. 용서, 섬김, 감사(17:1-19)
J. ‘이미’, ‘아직’의 하나님의 나라(17:20-18:8)
K. 하나님의 나라 합당한 자 : 회개한 세리, 어린아이, 제자들(18:9-30)
L. 예루살렘을 향함(18:31-19:44)
Ⅴ. 예루살렘 : 죽임당하고 부활한 무죄한 자(19:45-22:53)
A. 예루살렘에서의 논쟁(19:45-21:4)
B.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21:5-38)
C. 배반과 고별(22:1-38)
D. 예수의 체포, 재판, 죽음(22:39-23:56)
E. 예수의 부활과 승천(24:1-53)
제3장. 주제
1.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
1) 하나님의 계획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원의 계획 곧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돌아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길을 말한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의 메시지, 사가랴, 마리아의 노래, 선지자 시므온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이야기한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임할 구원,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 예수님이 겪어야 할 고난,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날 이스라엘의 나누어짐 등 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많은 구절들은 ‘반드시 ~해야 한다’ 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동사 ‘데이’(δεί)는 101번 나온다. 그 가운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40번이나 사용된다. 예수님은 반드시 자신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눅2:49), 예수님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4:43), 예수님은 반드시 사탄에 의해서 고통당하며 매여 있는 여인을 풀어주어야 한다(13:36). 어떤 사건들은 종말이 오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17:25, 21:9). 예수님은 반드시 불법자들과 한 패로 여겨져야 한다(24:7), 인자는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 한다(9:22), 죄 사함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가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24:43-47).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들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할 때 누가복음 24장 44-49절은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이 성취되신 사건이다. 희년의 성취이고, 새 언약의 성취다. 하나님은 로마제국이라는 그 역사현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누가는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현해준다.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2) 예수님의 정체성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인자, 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천사는 마리아를 통해 나실 예수님에 대해 큰 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다윗의 후손, 구주, 그리스도 주라고 말한다. 세례 받을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시편2편 시2:7-8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과 이사야 42장사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음성이 들려온다. 예수님은 열두 살 때 성전에 머물며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는가 부모에게 반문하셨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인정하시면서 인자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변화산에서 구름 속에서 다시 한 번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크신 분이다(9:7-9). 예수님은 그리스도다(9:20).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다. 눅22장69절에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주로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주이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이 선포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이 치료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쫓겨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한다. 예수님의 권위는 모든 범위에 미친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해서 행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
3) 예수님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세워져 간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완성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와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이 자신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쫓아낼 때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왔다(눅10:9).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한다(11:20-23).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다(17:21).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인 특성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측면을 보완한다. 하나님 나라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나머지 약속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다시 올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오면 신자들에게 영원한 복이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은 희년의 배경 속에서 속박으로부터 놓임을 받고 온갖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수님은 식사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여 교제하는 것을 묘사해준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식사시간은 사람의 허기를 충족시키는 필요를 훨씬 능가하는 의미를 지닌 사회적 사건이었다. 식탁동료는 자신의 확대가족에 속하는 것처럼 대우받았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계층구조, 수용과 배척, 경계와 경계선을 넘는 것에 대한 메시지로 표현되었다.
. 예수님은 비유와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단지 사람들을 하늘로 데려가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가르치실 뿐 아니라 이적을 행하신다. 이적 사건들은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입증해준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다양한 이적 사건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역사하는지 보여준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신다. 악한 영들을 쫓아낸다. 열병, 문둥병, 중풍병을 고쳐주신다. 마른 손을 온전하게 해주며 간질과 혈루증을 고쳐주신다. 눈먼 사람이 보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신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주신다. 거친 바람과 파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행사한다. 이런 이적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이와 같은 이적들을 행했다.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계속해서 역사한다.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누가는 특별히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분임을 강조했다 존 스토트, 신약의 메시지, 김동규 옮김, 서울: 아바서원, 2013.p106
. 세례 받고 기도하실 때 성령께서 임하셨다(3:21).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5:16),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기 전에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6:12). 예수님은 장차 닥칠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언하기 전에 따로 기도하셨다(9:28-29).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11:1).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22:32).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다(22:44-45).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다(22:34).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기도를 드리셨다(23:46).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스테픈 바르튼은 예수님과 기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엘B. 그린, 누가복음신학, 왕인성 옮김, 서울: CLC, 2020.p110
.
“습관을 따라 아버지와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특히 그 분의 일생 가운데 주요한 순간 혹은 결정의 순간 혹은 시험의 순간에 기도의 사람으로서 예수에 대한 묘사는 그 분의 제자들에게 따라야 할 모범을 제공하는 누가복음 내러티브에서 지워질 수 없는 부분이다.”
4) 예수님의 죽음, 부활 및 승천
누가복음에서 십자가 사건보다 예수님이 높임 받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영적인 구원을 가져준다는 것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모범을 보여준다고 이해한다(Pilgrim). 박해를 받고 있는 교회를 위해서 예수님의 죽음은 모범적인 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윤리적이며 역사적인 기능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의인이지만 고난을 받는다. 예수님의 죽음은 새 언약을 세운다(22:20).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산다(행20:28).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새 언약이 체결되며 또한 구속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지만 생명을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약속하셨고 승천하신다.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누가복음24장과 사도행전 1장을 연결한다. 부활 및 승천하신 구세주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도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는 입증된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세워져간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고 죄를 용서하며 성령을 선물로 보낸다. 또한 미래에 완전히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며 제자들이 헌신적이며 신실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실현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졌으며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졌다. 새 언약이 세워지고 성령을 주신다는 소망도 이루어졌다.
5) 성령
구속사건과 관련해서 성령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례요한과 그의 부모는 성령에 충만하고(1:15, 41, 67),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으로 묘사된다(2:25-27). 무엇보다 예수님이 성령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고(1:35),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3:22, 4:1, 14, 18), 성령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신다(3:16). 예수님은 아버지가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고(11:13), 성령을 모독하는 자를 경고하며(12:10), 성령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12:12) 부활한 후에 성령을 약속하셨다(24:49).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감독이요, 연출자이다. 성령은 또한 예수님의 영이다. 성령이 와서 임재함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으며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입증한다. 비록 메시아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겉으로 보기에 이 땅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활 및 승천하신 메시아는 자신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여전히 존재하신다.
그러면 이 복에 누가 참여하는가? 누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가? 새로운 공동체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2. 제자 공동체 : 교회
1) 새로운 구성원
새로운 공동체는 열두 사도들, 72명의 제자들이 언급된다. 사도행전에서는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된 사람들을 제자들이라고 불렀다. 안디옥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누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여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한다. 누가는 특별히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과 세리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또한 이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누가가 언급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적인 측면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다. 구약시대에 사람들에게 학대받았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복을 받는다. 죄인들,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미움 받던 세리들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에 참여한다. 누가는 여인들이 예수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묘사한다. 예수님을 많이 사랑한 죄 많은 여인,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마리아, 마르다,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 부활을 증언한 여인들(눅7:36-50, 8:1-3, 48, 10:38-42, 13:10-17, 24:1-12)이다. 누가는 여인들뿐만 아니라 과부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주후1세기 사회에서는 여인들이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여있었지만 누가복음의 이야기에서는 한 가운데 있다. 때때로 여인들은 남성들과 함께 짝을 이루어 소개된다.(눅2:25-28, 4:25-27, 8:40-56, 11:31-32, 13:18-21, 15:4-10, 17:34-35). 누가복음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해서 쓰인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와 함께 누가는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둔다. 시므온은 예수님에 대해 이방인을 비추는 빛이라고 했다.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가 보냄 받았는데 그 혜택은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과부가 아니라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이고, 엘리사에게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다. 이방인 백부장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보지 못한 믿음을 나타내 보였다. 유대 제사장, 레위인도 외면한 강도만난 사람을 돌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셨지만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한 이는 사마리아 나병환자 한 사람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특별히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사람들이 이 소망의 메시지에 가장 잘 반응한다.
2) 구성원이 되려면 : 회개와 믿음
누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것을 묘사하는데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곧 회개와 돌이킴과 믿음이다. 회개(메타노이아)는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회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대체로 ‘슈브’인데 ‘돌아오다, 돌이키다’ 를 뜻한다.
회개(메타노이아), 헬라어에서 회개는 마음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곧 회개는 어떤 사람의 관점이 새롭게 또는 올바르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해서 회개는 그 계획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회개에 맞추는 것이다. 누가는 회개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회개는 자신의 가치관이 변화된 것을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회개는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에게 오듯이 회개하는 사람은 영적인 치유와 복을 위해 하나님에게로 나아오는 것이다(눅5:31-32).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눅15장). 고개를 들지 못하고 기도한 세리와 같은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눅18:9-14) 삭개오와 같이 반응하는 것이다.
돌아오다(에피스트레포)는 용어는 주로 사도행전에 나타난다(행3:19, 9:35, 11:21, 14:15, 26:18-20, 28:27). 누가복음에서는 드물게 사용된다(1:17, 17:4, 22:32). 이 단어는 근본적인 방향의 변화와 멀리 떠나가 있던 상태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26장에는 회개하다, 돌이키다, 믿는다 는 단어들이 모두 나타나며 연결되어 있다(행26:20, 27)
믿음(피스티스)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혜와 도움을 주신다. 중풍병자와 친구들, 어떤 이방인 백부장,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을 통해 믿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나병환자와 맹인의 믿음에 근거해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맹인의 시력을 낫게 하셨다. 신앙은 믿고 동시에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믿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과 약속이 실현되는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이 죄 사함과 구원과 도우심을 베푸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새로운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복이 주어진다. 누가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죄 사함 또는 자유(눅1:77, 4:18, 24:47, 행2:38, 5:31, 10:43, 13:38), 생명 또는 영생(눅10:25, 12:15. 12:21, 18:29-30), 평안 또는 평강 및 평화(눅1:79, 2:14, 10:5-6, 행10:36), 하나님 나라와 성령이다.
3) 요구되는 자세 : 제자도
① 전적인 헌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신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눅9:23, 57-62, 14:25-35, 18:28-30).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께 오는 자는 자기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누가는 버려야 할 목록에 아내(처)까지 포함하고 있다. 14:16, 18:29(비교 막10:29, 마19:29).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왜 이런 자기 소유의 포기를 요구하시는가? 이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자기와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자로, 진멸당해야 할 자였다. 죄인이요, 잃어버린 자요, 죽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찾아진바 되었고 살아났다. 진멸당해야 할 자가 진멸당하지 않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아났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다. 자기 목숨과 자기 소유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아니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② 절대적인 의존 : 기도, 성령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절대적인 의존하는 삶을 살도록 도전하신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두 가지 태도는 기도요, 성령께 의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늘 기도하라고 권면하셨다(눅11:1-13, 18:1-8, 9-14, 22:40) 한맺힌 과부의 기도(18:1-8),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18:9-14)
.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히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이셨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 충만을 받으셨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다(4:1). 성령의 권능으로 일하셨다.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좋은 분은 성령이시다. 성자이신 예수님이 성부께 기도로 의논하셨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버지께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③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본적인 계명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본질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누가 내 이웃인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는 제한이 없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주는 삶이다(6:27-38).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셨듯이 모든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돌봄과 동정심은 인종, 성별, 사회적인 계층을 뛰어넘는다.
④ 재물의 선용
누가복음에서 소유는 많이 논의되는 주제다.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경고와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8:14, 12:13-21, 16:1-15, 19-31, 18:18-25), 반면 긍정적인 예들도 언급된다(눅8:1-3, 19:1-10, 21:1-4, 행4:36-37) 제자들은 재물을 선용해야 한다.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는 예수님을 따를 때 동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제자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해있고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고 구제할 수 있다.
⑤ 증언과 증인
모든 신자는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자로 부름 받았다. 교회 공동체는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자기만을 위해 닫혀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공동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⑥ 기쁨과 찬송
누가복음은 찬양의 복음이다(Leon Morris) 데이빗 웬함·스티브 월튼, 성경이해1 복음서와 사도행전, 박대영 옮김, 서울 :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p383
. 탄생 이야기부터 찬양,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1:46-55, 68-79, 2:30-32). 예수님은 우는 자를 웃게 하러 오셨으며(6:21), 예수님의 사역에는 천사의 기쁨이 뒤따른다(2:13-14, 15:10). 회개는 기쁨을 불러일으킨다(15:7, 10, 23, 32, 19:6).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큰 기쁨을 경험하고 늘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24:52-53). 누가가 묘사하는 예수님은 기쁨을 불러일으키시는 주님이시다. 복음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예수님을 따르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삶도 이러할 것이다.
3. 역전의 복음
누가복음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가시는 그리스도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이다. 그리스도는 이곳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으신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 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시던 대로 죽으셨다. 성전이 아닌 성전 밖에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달고 죽으셨다. 선지자요, 왕이요, 유대를 속량할 자로 여겼던 분이 죽으셨다. 선지자, 종,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분, 모세와 같은 지도자, 왕으로 알려진 이 분이 죽으셨다. 성전이 아닌 집에서 죄 사함을 선언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못 듣는 자를 듣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분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고 죽으셨다. 도대체 이 분은 누구신가? 이 분의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가? 죄 사함의 선포, 이적을 행함으로 사람들을 구원해내셨던, 특히 가난한 자들, 죄인들, 여자들, 어린아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했던 이 분의 초청은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은 거짓이고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셨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높이심으로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 분의 죽음은 성경의 약속을 이루는 죽음이다. 이 분의 죽음으로 새 언약이 세워졌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선포된다. 이제 성전이 아닌 이 분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다. 율법을 통해서 의로움을 받지 못했던 데서 이 분을 힘입어 의로움을 받는다. 이제 이 분의 이름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다. 이 분의 이름을 통해 치유가 일어난다. 이 분의 이름을 통해 귀신이 쫓겨나간다. 곧 이 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이 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린다. 이 분을 통해 현재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 분이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다윗의 후손이지만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신다. 가장 부유한 분이지만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셨다 가난하여서 말구유에 나셨고. 가난하여서 그 부모는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희생제물인 비둘기를 드렸다. 사역하실 때 다른 사람들의 지원에 의존하셨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동안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금욕주의자는 아니셨다. 예수님은 잔치에 참여하셨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는 말을 듣기까지 하셨다.
. 힘이 있지만 힘없는 자처럼 죽으셨다. 가장 높은 분이지만 가장 낮은 자가 되셨다. 부유하시지만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백성들은 구원받는다. 그들의 인생은 역전된다. 일찍이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를 듣고 그 분을 통하여 일어날 역전을 노래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부끄러운 자가 기뻐하는 자가 된다. 비천한 자가 가장 복된 자가 된다. 구주 탄생의 복된 소식이 비천한 중의 하나인 목자에게 전해진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미움을 받는 자가 복 있는 자가 된다.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 어른이 아닌 어린 아이, 남자가 아닌 여자,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반대로 부유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에게 화가 있다.
그 시대에 인정받는 자는 힘 있는 자, 부자, 남자, 어른들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으며 살아간다. 반대로 약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 죄인들은 주리고 울며 고통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역전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역이 된다. 어린 아이와 같은 제자들이 주역이 되고 여자들이 주역이 된다. 죄인과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 이방인,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그 민족과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다.
가난한 자들에게만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자들, 권세자들,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에게도 역전이 일어난다. 부자에게 분명 화가 있다. 그런데 이 부자들은 왜 화가 있는가? 불의하게 부를 축적했는가? 그렇지 않다. 정당하게 부를 축적한 이도 있을 것이다 눅12장 비유에 나오는 부자나, 16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불의하게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언급되지 않는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처럼 부를 축적하는 데 불의함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부자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부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 그러면 그 부로 불의한 일을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 부를 쌓아놓고 자기만 즐겼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은 것, 가난한 자, 거지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다. 누가는 부자에게도 역전이 일어남을 말하고 있다. 일을 잘 못해서 해고통보를 받은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자의 채무를 깎아주는 것을 보고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시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시며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것이라고 하셨다. 부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 재물을 쌓아두고 자신만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다. 그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동료를 먹인다면 그는 지혜로운 부자다.
누가는 부자였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 인생이 역전된 자들을 말하고 있다. 세리장 삭개오, 그리고 자기 재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여자들 중에 부유한 이들이 있었다. 결국 부자들에게도 복음은 역전의 복음이다. 그들에게 진정한 부와 생명을 주는 복음이다. 종교지도자들에게도 복음은 역전의 복음이다. 외식하던 바리새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진실한 제자들이 된다. 외식하지 않고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신자가 된다. 입술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된다. 누가는 바리새인들을 지적하지만 다른 저자에 비해 다소 온건하게 지적한다 6장에 나오는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준 후에 바리새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마가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다고 한 반면에 누가는 예수를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했다고 기록했다(눅6:11, 마12:14, 막3:6)
.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많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제사장들도 마찬가지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 병자들, 죄인들뿐만 아니라 부자들, 권세자들에게도 역전을 이룬다. 데오빌로와 같은 지도자들도 복음을 통한 역전의 삶으로 누가는 초청한다. 바울을 심문하는 아그립바, 총독들에게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것 외에 다 나와 같은 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누가복음은 누구에게나 역전의 복음이다.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되고 부자는 가난하게 된다. 겸손한 자를 높이고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 비천한 자를 높이고 권세 있는 자를 낮춘다.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유한 자가 되게 하신다. 부자는 가난하게 된다. 자신에게 있는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재물의 청지기로 살아가게 된다. 재물의 종이 아닌 진정한 자유한 부자가 된다.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복음 안에서 진정한 구원과 자유와 생명을 누리게 한다. 그 안에서 참된 기쁨을 맛보고 찬송하게 한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역전 시키는 복음이다.
나가며 :
가이사 아구스도가 통치하던 때에 식민지 백성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가르치신 예수님, 그리고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승천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이 분을 통해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가장 부유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낮아지심으로 인해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인해 세상 가운데 놀라운 구원,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가이사 아구스도 시대처럼 지금 이 시대 사람들도 부와 권력, 명예를 추구한다. 특히 부를 노골적으로 추구한다. 부자가 되면 생명을 얻고 행복을 누리고 기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부를 얻을 길이 없어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난한 자가 탄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자들의 탐욕과 그 소유는 한이 없지만 행복하지 않다. 이 시대에 가난한 자들, 특히 절망하는 청년들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을 통해 완성된 복음이 이들을 구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게 하시고 이들에게 자유, 생명, 기쁨을 주신다.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도 자기의 소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에 있는 진정한 구원, 자유, 기쁨과 찬송의 세계로 초청한다.
돌아보면 누가복음은 나를 구원한 말씀이요, 가정교회를 세울 때 기초가 된 말씀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말씀을 통해 구원을 받았고 결혼할 때 받은 요절 말씀이 누가복음 2:12 이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나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받은 말씀이 누가복음이다. 누가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말씀이 있는가? 생각에 목자님이 전한 메시지를 그대로 다 옮겨 적고 소감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목자가 되어 지난 30여년간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요, 증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예수님은 누구시며,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자인가 질문 앞에 선뜻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인 적이라도 있었던가 라는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예수님의 제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기 소유권이 없는 자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다. 그러기에 가난하지만 가장 부요한 자들이고, 부요할지라도 자기 소유가 하나도 없는 자다. 가난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부요하다고 군림하지 않는다. 없는 자는 있는 자처럼, 있는 자는 없는 자처럼 살아간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다. 이런 삶에 진정한 구원과 생명, 자유와 기쁨과 찬송이 있다.
마리아의 노래(눅1:46-55)에 대해 시인 토머스 존 칼라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엘B. 그린, 누가복음신학, 왕인성 옮김, 서울: CLC, 2020.p19
.
우리의 지겹도록 한없는 위난 앞에서
우리는 무시하기로 선택한다
그녀의 노래의 천둥과 같은 울림을
그리고 그 노래의 혁명적인 비트를
가장 강력한 시대인 로마시대에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에게 들려주었던 그 복음, 이와 동시에 가장 부유한 자들, 권력을 가진 자들을 경고했던 그 복음, 마리아가 노래한 천둥과 같은 울림이 있는 복음을 자본주의가 가장 강력한 이 시대에 다시 듣기를 소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시대 가난한 자들, 특히 청년들, 그리고 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대 사람들에게도 이들을 구원하고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는 복음임을 믿는다. 누가복음 공부를 통해 이 확신을 얻고 제자, 사도, 증인의 길을 힘 있게 그리고 기쁘고 즐겁게 찬송하며 갈수 있기를 기도한다.
≪참고 도서≫
대럴 벅, 누가복음, 신지철 옮김, 서울 : 부흥과 개혁사, 2013.
대럴 벅, 누가신학, 강대훈 옮김, 서울 : 부흥과 개혁사, 2016.
조엘B. 그린, 누가복음신학, 왕인성 옮김, 서울: CLC, 2020.
존 스토트, 신약의 메시지, 김동규 옮김, 서울: 아바서원, 2013.
데이빗 웬함·스티브 월튼, 성경이해1 복음서와 사도행전, 박대영 옮김, 서울 :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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