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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22년 민14강(25-27장)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한 비느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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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2-07-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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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 14 강
말씀 | 민수기 25-27장
요절 | 민수기 25:11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한 비느하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막으셨습니다. 도리어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면서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계책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미인계였습니다. 스스로 무너질 수 있도록 속임수를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음행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 멸절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이때 한 사람 비느하스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배웁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나 한 사람의 거룩한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싯딤은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곳으로 강 건너로 여리고 성이 보이는 곳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신명기 말씀을 듣고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합니다. 갱신한 언약을 모압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그  일이 있기 전에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모압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하였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의 성적 유혹에 넘어가서 범죄한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발람의 꾀를 따라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려고 작정하고 달려들어서 범죄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적들이 계획적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꾸민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지휘한 여인이 고스비였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아름답고 날씬한 여인들을 선발했습니다. 예쁜 옷과 비싼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색조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렸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먹을 물이 부족하기에 샤워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38년 동안 똑 같은 옷차림이었습니다. 힘든 광야생활에서 생존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이런 여인들만 보다가 모압 여인들이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를 부르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식사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며 잔치 자리에 초청했습니다. 그 잔치는 바알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자리였습니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하였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서 곡식의 결실과 가축의 생산을 돕는 농업의 신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아스다롯은 다산의 신입니다. 모압인들은 두 신이 성행위를 함으로서 비를 내려주고 농사를 풍요롭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두 신의 성행위를 자극하기 위해서 신전에서 음란행위를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알 신전에는 창녀들이 가득했습니다. 예배의식에 음행이 포함되었고(25:2), 예배 후에는 음란한 축제가 벌어졌습니다(신23:17,18; 왕상14:22-24). 이런 예식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청받아 함께 먹고 즐기며 음행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했다”는 것은 함께 멍에를 졌다는 뜻입니다. 멍에란 달구지나 쟁기 등을 끌 때에 마소의 목에 가로 얹는 둥그렇게 구브러진 막대를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14에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결혼은 함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즉 결혼은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멍에를 같이 메고 일을 하면 얼마나 든든합니까? 저와 같이 공부하는 한 선교사님은 일년 전에 아내를 암으로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지금 혼자서 모든 일을 하려니 힘이 없고 허전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멍에를 같이 매면 좋으나 싫으나 모든 일을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행한 모압 여인들과 함께 멍에를 진 것처럼 브올 지역의 주인인 바알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와 멍에를 함께 지고 가게 된 것처럼 이제 이스라엘은 바알과 함께 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백성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서 그들을 심판하고자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진멸해야 할 그들과 함께 멍에를 메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신부가 신랑을 두고 다른 남자와 동침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목매어 달게 하고 염병으로 24,000명의 백성들을 치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백성의 지도자들이 죽어갈 때 이스라엘의 회중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 울음은 죄에 대한 탄식이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죄를 회개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온 회중이 보는데도 미디안 여자 하나를 데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진으로 들어왔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는 시므온 지파의 한 지도자 살루의 아들, 시므리였습니다.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였습니다. 이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대낮에 버젓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특히 음행의 죄에 대해서는 갈수록 사람들의 인식이 관대해집니다. 음행은 되새김을 할수록 절망만 쌓이고 충족이 없습니다. 또 채운다고 해도 허탈함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음란에 목마른 것일까요? “우리의 전 존재가 본질상 하나의 거대한 결핍입니다(C.S. 루이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할 때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마음에 결핍이 채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리 결핍을 채우고자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 속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들은 음행의 죄를 미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란 듯이 방송에 나와서 낯 뜨거운 사생활을 자랑합니다. 또 그런 사람을 향해 박수를 칩니다. 동성애를 소수의 인권으로 옹호하고 로마서 1장을 없애버린 성경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죄는 분명히 죄입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회중 가운데 영향력이 있는 시므리의 죄에 대해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난 자가 있었습니다.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였습니다. 그는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음행하고 있는 두 남녀의 배를 꿰뚫어서 죽여 버렸습니다. 비느하스는 음행의 죄에 대해서 철저히 응징한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창은 단지 두 남녀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죄의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사탄의 염통을 찌른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때 염병으로 이스라엘은 전멸할 위기에서 24000명이 죽음으로 그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질투란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미움의 감정입니다. 질투는 깊은 사랑과 관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심이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사랑과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결혼한 신랑 신부처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히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바알브올을 섬겼습니다.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인 시므리가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이스라엘 진영에 데려와서 음행까지 하자, 하나님의 진노는 불같이 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느하스가 음행하는 두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킨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두 남녀가 이스라엘 진영에서 음행할 때 하나님이 분노하신 것처럼 비느하스도 분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질투하는 비느하스를 보시고 속이 시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로 인해 위로를 받으시고 진노를 누그러뜨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느하스를 어떻게 축복하십니까?12,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평화의 언약을 통해서 비느하스와 그의 자손들이 보복과 위험에서 보호를 받으며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보장해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평화를 보장해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비느하스의 14대손인 에스라였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에스라가 하루종일 말씀을 가르치자 모든 백성들이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특히 에스라는 이방여인과 결혼한 자들을 책망하고 분명한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이방여인을 끊어버리라(스10:11).” 이처럼 에스라가 과감하게 영적인 개혁의 칼을 빼들었을 때 많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순종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 에스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포로귀환 후에 혼란기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에스라가 어디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비느하스와 맺은 평화의 언약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울수 있습니다.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만한 6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비느하스 한 사람은 대단히 작습니다. 그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비느하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질투심을 품고 음행하는 두 남녀를 창으로 죽였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진정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시대의 죄악으로 인해서 탄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시고 진노를 돌이키십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도 하디 선교사의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의 거룩한 생활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수천만의 타락한 생활보다 더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위험이 빠뜨리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음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집요하게 공격하여 죄에 넘어지게 하고 그 죄의 영향력이 전염병처럼 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죄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순수성과 정결함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할 때 영적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면에 역사하는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죄가 우리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죄에 넘어져도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다시 일어나서 싸워야 합니다. 이런 삶을 반복하면서 점점 죄로부터 멀어지고 경건에 이르게 되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미디안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속임수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여 브올의 일과 고스비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이때 발람도 죽임을 당합니다(민 31:8). 염병 후에 하나님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때 인구조사를 하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브올의 음행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심으셨습니다. 인구조사 결과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습니다. 전체는 1차 인구 조사와 변함이 없는데 시므온 가문이 63%가 줄어서 22200명이었습니다. 이는 시므리의 영향이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느하스와 시므리를 통해서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과 악한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또 역사의식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모세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연을 들으셨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모세에게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로 인해서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여자들도 비록 아들이 없는 경우이지만, 상속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업을 잇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배우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부동산과 같이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사역의 개념입니다. 기업으로 받은 땅에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 가문의 존재 목적입니다. 한 마디로 사명을 이루는 기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으로 받은 땅은 가문의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기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이 땅에서 살면서 감당해야할 사명입니다. 우리의 기업을 잇기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의 계승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죽을 때가 이른 것을 하나님께 들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후계자를 세워주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도록 백성들의 목자를 세워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백성들의 안위를 더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온 회중 앞에 세우고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계승 역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이 기한이 있음을 알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저도 이 직분을 잘 계승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하나님께서 합당한 분을 세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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