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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22년 민 12 강(21장)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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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2-06-19 14:37

본문

2022년 민수기 제 12 강
말씀 | 민수기 21:1-35
요절 | 민수기 21:9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제까지 배운 민수기 11-20장은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방황하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판을 받고 죽는 내용으로 매우 절망적입니다. 오늘 배울 21장부터는 광야세대로의 전환점을 이룹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정복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여러 환난과 어려움으로 낙담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나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호르마를 점령함(1-3).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다림 길이란 ‘정탐 길’이란 뜻입니다. 아랏 왕이 지난 번에 이스라엘이 정탐한 길로 들어서자 자기들을 점령하려는 줄 알고 선수를 친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습니다.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그들의 성읍을 멸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믿음으로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아랏 왕의 성읍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진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습니다. ‘호르마’란 ‘진멸하다’는 뜻입니다.

  이곳은 38년 전 가나안 정탐 사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나아갔다가 패배하여 도망친 곳입니다(14:39-45).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불순종하고 올라갔다가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절망이 바뀌어 소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작은 승리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에 대한 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모임 중에 기도의 응답을 나눔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년 4월부터 기도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과 기도한 날짜와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을 적었습니다. 현재 76가지의 기도제목 중에 39가지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일상에서 소소한 것들, 또 병든 분들을 위한 기도, 여름수양회를 위한 강사 선정과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을 볼 때마다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가운데서 일하고 계심을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둘째, 놋뱀을 쳐다 본 즉 모두 살더라(4-9).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앞 장에서 모세가 에돔 왕에게 그들의 길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 금방입니다. 그러나 에돔 왕이 거절하자 그들은 홍해 길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길은 걷기 힘든 바위 산이었습니다. 마음이 상하였다는 원어의 뜻은 짧아졌다는 뜻입니다. 새번역은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람이 여유가 있으면 길게 생각하고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어지고 마음이 뒤집어져버렸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들의 원망은 늘 똑 같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입에 붙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이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이 만나를 먹으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으면서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물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감사는 없고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사야 30:6에 보면 “남쪽 네게브는 위험하고 거친 곳이다. 그곳은 수사자와 암사자가 가득하고 독사와 날아다니는 뱀이 가득한 땅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힘든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과 각종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행군했습니다. 연약한 여자들과 아이들은 힘들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에돔 왕이 허락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힘든 길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힘들 때 힘든 소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시험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도 담겨져 있습니다(신8:1-3).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6). 불뱀은 독이 있는 뱀입니다. 불뱀은 태운다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이 뱀에 물리면 피부가 타서 새까맣게 되었습니다. 뱀의 독은 피를 굳게 만듭니다. 피가 순환이 되지 않으니까 피부가 까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불신으로 인해서 원망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원망하는 말은 뱀의 독과 같이 우리 영혼을 무서운 고통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불평하는 말은 사탄의 도구가 되어서 관계를 파괴합니다. 관계를 파괴하면 분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 영적 죽임이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 육적 죽임이요,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이 사회적 죽음입니다. 지금 우리 중에서 이런 원망의 말을 하고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에게 돈이 없다, 장래도 없다, 나에게 사랑이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내 마음이 어떻습니까? 반대로 “너는 능력이 없어.” “너는 지혜가 없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그 사람 마음이 어떨까요? 힘이 빠지게 합니다. 소망을 죽입니다. 이런 말이 마음에 비수와 같이 꽂히면 사람의 가능성을 죽입니다. 원망의 말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이스라엘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심히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불뱀들을 보내자  불뱀들이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면서 원망하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들을 물어버렸습니다. 이사야서에서 날아다니는 뱀이라고 한 것을 보니 원망하는 입도 물어버렸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런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뱀을 피해 달아나게 됩니다. 또 뱀에 물리면 빨리 독이 심장으로 퍼지지 않도록 다리를 묶고 독을 빼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모세에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자신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7)” 사람들은 원망이 자신들을 죽게 하는 죄임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이 뱀들이 떠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뱀들을 떠나게 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방법으로 살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놋뱀은 구리뱀으로서 색깔이 붉습니다.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고 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이 구원의 방법이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살아난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쳐다보는 것은 미련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뱀이 여전히 있어도, 심지어 불뱀에 물린 자라도 장대 위에 단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쳐다본다는 원어는 ‘열심히 바라보다, 골똘히 바라보다’입니다. 이 말씀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몸이 사는 것보다 믿음의 회복이 더욱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많은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직 큰 경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의 요구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가장 빨리, 누구나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1:18,21).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가를 시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순종이 사람을 살립니다. 순종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3:14-15은 말씀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하시며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믿을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있는 죄의 독을 해독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의 가정을 회복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사랑을 받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함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회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생하도록 계속해서 생명을 부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불뱀에 물려 있습니까? 삶의 고난과 환란으로 원망과 쓴뿌리가 있습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께 눈을 고정하고 그를 계속해서 바라봅시다(히 12:1). 주님께서 상한 그 마음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우물물아 솟아나라(16-18). 16,17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브엘은 ‘우물’, ‘샘’이라는 뜻인데 그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시고 그들에게 물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공급 받았던 경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을 하면서 물을 구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여진 후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물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와 다른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구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서 물을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우물물아 솟아나라 감사함으로 노래했습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우물물이 솟아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기도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들이 감사함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어찌 가만히 계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우물물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물을 마셨고 그 물 맛은 갑절이나 더 달콤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장대에 놋뱀이,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듯이, 이 샘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임하시며 우리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요 7:38).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팠습니다(18). 하나님께서는 지휘관들이 판 구멍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솟아나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을 주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물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땅을 파고 구멍을 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면서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탁월한 능력은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 안에 거하시면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주십니다. “누구든지 목이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고 하셨습니다. 또한 생수는 말씀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암 8:11, 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수입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마 4:4). 우물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요 4:13, 14). 이 물이 곧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의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수입니다(요 4:14).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또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함 사람은 말씀으로 충만합니다. 그 말씀은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합니다. 말씀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게 됩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시혼과 옥을 진멸하고 그 성읍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21-35).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의 땅을 차지하고, 바산 왕 옥의 땅을 점령합니다. 이스라엘이 사신을 아모리 왕 시혼에게 보내어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혼이 자기 백성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이 땅이 전에는 모압의 소유였는데 아모리인의 왕 시혼이 빼앗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할 때 모세가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았습니다. 그들이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 바산은 매우 비옥하여 바산의 암소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한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을 진멸하고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요단 동쪽 지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사는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먼저 공격해왔기 때문에 그들을 물리치고 그곳 땅을 얻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 길로 우회할 때 너무나 힘들고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곧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가?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도 물리치고, 바산 왕 옥도 물리치고, 요단강 동쪽 땅을 얻고 나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 귀한 땅까지 정복하도록 하시고자 우회하게 하셨구나. 그렇게 깊은 뜻이!”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길을 갈 때 빨리 직선코스로 가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 멀리 돌아가게 하시면 속이 상하고 힘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빨리 직선코스로 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좀 오래 걸리고 돌아서 가더라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구두수선공이자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삯바느질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잘 생기지 못해서 무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가 성경을 읽어주며 상상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안데르센이 어떻게 그처럼 감동적인 동화들을 쓸 수 있었는가 물었습니다. 안데르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다락방에 누워서 상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가난했기에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새끼>를 쓸 수 있었습니다. 여인들에게 거절을 많이 당했기에 <인어공주>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현실은 광야와 같이 거칠고 험했지만 그는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적인 상상력을 주셔서 불후의 동화들을 쓰게 하셨습니다. 험난한 그의 인생길이 깊이 있는 동화작품을 쓰게 한 귀한 자산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며 소망을 주십니다. 황무지와 같은 미래를 개척하고 정복하는 복된 인생을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지속적인 승리와 성공을 경험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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