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22년 민9강(16,17장)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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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 9 강
말씀 | 민수기 16,17장
요절 | 민수기 17:8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에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고라가 주도한 반역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당합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직분과 비교하면서 자기의 직분에 대해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를 높이고자 했을 때 도리어 낮아지고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택하신 증거로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일을 행하심으로 그들의 불평하고 원망하는 입을 막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람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고라의 반역 사건(16장).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지었습니다. 모세, 아론, 미리암과 고라는 사촌지간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였지만 서모와 통간을 함으로 짤리고 유다가 장자의 직분을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고핫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이웃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주 만나서 불평 컨퍼런스를 하였습니다. 이들의 불평 컨퍼런스에 250명의 지휘관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말했습니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우리가 모세와 아론보다 못 난 것이 무엇인가?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들이고, 고라의 자손들은 제사장들을 돕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내고 향로에 분향을 하고 나면 뒷정리는 자신들이 해야 했습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성물을 관리하고 언약궤를 메고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왕 노릇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자신들은 따라야만 하느냐며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도 계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기 때문에 특별이 중보자나 제사장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인도한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고라가 이스라엘 지도자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공개적으로 도전을 하자 백성들도 동조를 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말을 듣고 엎드렸습니다. 그는 감정적으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습니까?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향로 위에 향을 피우는 것은 제사장의 직분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제사장 직분을 위해서 구별하신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이지만 직분과 역할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대로 은사를 주시고 직분도 주십니다. 몸이 이동하기 위해서 발이 움직여야 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 손이 자기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번에 센터 방수 및 도색 작업을 하는데 저는 방수만 잘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보는 눈이 저보다 뛰어난 미대 출신 사모님들을 통해서 콘크리트 부분을 색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와보고 싶은 센터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각자 자기의 역할을 귀히 여기고 맡은 직분에 충성할 때 모두가 혜택을 받고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자라게 됩니다.
모세는 레위 자손들에게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다고 말합니다. 또 고라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그들에게 작은 일이겠느냐고 묻습니다. 고핫 자손들은 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상, 등잔대, 향단 등 지성물을 맡아서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게르손 자손이나 므라리 자손보다 더욱 거룩한 직무를 맡은 것입니다. 게르손 자손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힘든 기둥이나 성막을 운반하고 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맡은 일이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고라 자손이 왜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는지 그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같은 레위 지파로서 똑같이 성막에서 봉사하는데, 모세와 아론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성을 누리고 자신들은 성물만을 관리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 같은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고라 자손은 그들에게 주어진 직분이 귀하거늘 오히려 제사장 직분을 구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와 그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할 때 비교의식과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주신 자에게는 많이 구하고 적게 주신 자에게는 적게 구하십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건, 두 달란트를 받았건 맡은 바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칭찬하시고 인정해 주시고 같은 상급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평가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하기 때문에 인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주님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되십니다.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거기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노래합니다. 고라의 자손들이 조상들의 죄를 기억하고 이런 감사의 시를 지은 것 같습니다.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며 반항하였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13,14).”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돌이킨 것은 열 두령의 정탐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죄를 짓고 모세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는 뜻은 우리를 속인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심히 노하였습니다. 자신은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서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기도합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제각기 향로를 들고 그 위에 향을 얹고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향로에 향을 사르는 일은 제사장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제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얹고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회막 문에 섰습니다.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중보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모세는 백성들의 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다 동참했는데 한 사람이 범죄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회중에게 명령하여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회중이 모세의 말대로 순종했을 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섰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을 멸하시면 그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죄인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같고 그들이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이 당하는 벌과 같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거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져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였습니다. 또한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습니다. 그 향로는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거룩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회중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지휘관들의 가족들, 친척, 친구들은 고라와 지휘관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징계하셨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결과에만 관심을 갖고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였습니다. 사람이 회개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마음이 완악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때에 자기를 돌아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생각에 휩쓸려 망하게 됩니다. 그들의 원망하는 말로 인해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전염병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순식간에 멸하려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 속죄하자 전염병이 그쳤습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속죄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루터는 치사율 75%인 흑사병이 유럽을 돌고 있을 때 도시를 떠나라는 제후의 명령을 듣지 않고 비텐베르크에 남아서 말씀을 전하고 자기 집을 병원으로 만들어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가득한 때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웃 사랑을 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기도하는 일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고라의 반역은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전 생애를 헌신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였고 13권의 신약 성경을 기록했지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고15:10). 사도 바울이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늘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자이며,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를 늘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신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게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을 여러 차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는 이유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죄 많은 인간들을 품고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사탄에게 속했고,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지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
둘째,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하나님(17장).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각 지파를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여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지팡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열 두 지파의 수령들의 이름이 적힌 열 두 개의 지팡이 중에서 한 지팡이에 싹이 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참된 지도자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심으로서, 아론이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라는 것을 나타내셨을까요? 살구 열매는 본래 아몬드(히 샤케르)를 가리킵니다. 아몬드의 하얀 꽃은 순결과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또한 아몬드를 뜻하는 히브리어 ‘샤케르’는 ‘지키다’, ‘보호하다’는 동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몬드는 ‘지킴’, ‘보호’를 상징합니다. 아몬드 열매가 아론의 지팡이에 열린 것은, 하나님이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종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공동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히브리서 5:4에서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아론과 같이 하나님이 부르신 자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이 택한 제사장입니다. 아론은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2,13).” 이 말씀은 백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16,17장은 반란, 폭동, 심판, 죽음의 공포 등 혼란한 상황을 누가 수습할 수 있는가를 말해 줍니다. 이런 부정한 상태를 치유하고 속죄하는 일은 오로지 아론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대제사장을 통해서만이 죽게 되고 망하게 된 인생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서 인류의 구주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가운데 죽어가는 우리의 인생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맺히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날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찌그러진 인생이 활짝 펴지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파괴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미움과 반항, 억울함 등이 예수님을 통해서 풀립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치료의 하나님, 부활의 능력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어려운 속에서 소망을 갖습니다. 아멘.
말씀 | 민수기 16,17장
요절 | 민수기 17:8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에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고라가 주도한 반역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당합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직분과 비교하면서 자기의 직분에 대해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를 높이고자 했을 때 도리어 낮아지고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택하신 증거로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일을 행하심으로 그들의 불평하고 원망하는 입을 막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람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고라의 반역 사건(16장).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지었습니다. 모세, 아론, 미리암과 고라는 사촌지간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였지만 서모와 통간을 함으로 짤리고 유다가 장자의 직분을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고핫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이웃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주 만나서 불평 컨퍼런스를 하였습니다. 이들의 불평 컨퍼런스에 250명의 지휘관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말했습니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우리가 모세와 아론보다 못 난 것이 무엇인가?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들이고, 고라의 자손들은 제사장들을 돕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내고 향로에 분향을 하고 나면 뒷정리는 자신들이 해야 했습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성물을 관리하고 언약궤를 메고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왕 노릇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자신들은 따라야만 하느냐며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도 계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기 때문에 특별이 중보자나 제사장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인도한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고라가 이스라엘 지도자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공개적으로 도전을 하자 백성들도 동조를 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말을 듣고 엎드렸습니다. 그는 감정적으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습니까?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향로 위에 향을 피우는 것은 제사장의 직분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제사장 직분을 위해서 구별하신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이지만 직분과 역할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대로 은사를 주시고 직분도 주십니다. 몸이 이동하기 위해서 발이 움직여야 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 손이 자기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번에 센터 방수 및 도색 작업을 하는데 저는 방수만 잘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보는 눈이 저보다 뛰어난 미대 출신 사모님들을 통해서 콘크리트 부분을 색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와보고 싶은 센터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각자 자기의 역할을 귀히 여기고 맡은 직분에 충성할 때 모두가 혜택을 받고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자라게 됩니다.
모세는 레위 자손들에게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다고 말합니다. 또 고라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그들에게 작은 일이겠느냐고 묻습니다. 고핫 자손들은 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상, 등잔대, 향단 등 지성물을 맡아서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게르손 자손이나 므라리 자손보다 더욱 거룩한 직무를 맡은 것입니다. 게르손 자손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힘든 기둥이나 성막을 운반하고 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맡은 일이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고라 자손이 왜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는지 그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같은 레위 지파로서 똑같이 성막에서 봉사하는데, 모세와 아론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성을 누리고 자신들은 성물만을 관리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 같은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고라 자손은 그들에게 주어진 직분이 귀하거늘 오히려 제사장 직분을 구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와 그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할 때 비교의식과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주신 자에게는 많이 구하고 적게 주신 자에게는 적게 구하십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건, 두 달란트를 받았건 맡은 바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칭찬하시고 인정해 주시고 같은 상급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평가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하기 때문에 인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주님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되십니다.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거기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노래합니다. 고라의 자손들이 조상들의 죄를 기억하고 이런 감사의 시를 지은 것 같습니다.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며 반항하였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13,14).”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돌이킨 것은 열 두령의 정탐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죄를 짓고 모세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는 뜻은 우리를 속인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심히 노하였습니다. 자신은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서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기도합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제각기 향로를 들고 그 위에 향을 얹고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향로에 향을 사르는 일은 제사장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제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얹고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회막 문에 섰습니다.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중보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모세는 백성들의 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다 동참했는데 한 사람이 범죄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회중에게 명령하여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회중이 모세의 말대로 순종했을 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섰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을 멸하시면 그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죄인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같고 그들이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이 당하는 벌과 같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거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져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였습니다. 또한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습니다. 그 향로는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거룩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회중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지휘관들의 가족들, 친척, 친구들은 고라와 지휘관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징계하셨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결과에만 관심을 갖고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였습니다. 사람이 회개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마음이 완악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때에 자기를 돌아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생각에 휩쓸려 망하게 됩니다. 그들의 원망하는 말로 인해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전염병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순식간에 멸하려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 속죄하자 전염병이 그쳤습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속죄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루터는 치사율 75%인 흑사병이 유럽을 돌고 있을 때 도시를 떠나라는 제후의 명령을 듣지 않고 비텐베르크에 남아서 말씀을 전하고 자기 집을 병원으로 만들어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가득한 때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웃 사랑을 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기도하는 일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고라의 반역은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전 생애를 헌신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였고 13권의 신약 성경을 기록했지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고15:10). 사도 바울이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늘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자이며,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를 늘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신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게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을 여러 차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는 이유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죄 많은 인간들을 품고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사탄에게 속했고,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지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
둘째,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하나님(17장).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각 지파를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여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지팡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열 두 지파의 수령들의 이름이 적힌 열 두 개의 지팡이 중에서 한 지팡이에 싹이 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참된 지도자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심으로서, 아론이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라는 것을 나타내셨을까요? 살구 열매는 본래 아몬드(히 샤케르)를 가리킵니다. 아몬드의 하얀 꽃은 순결과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또한 아몬드를 뜻하는 히브리어 ‘샤케르’는 ‘지키다’, ‘보호하다’는 동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몬드는 ‘지킴’, ‘보호’를 상징합니다. 아몬드 열매가 아론의 지팡이에 열린 것은, 하나님이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종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공동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히브리서 5:4에서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아론과 같이 하나님이 부르신 자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이 택한 제사장입니다. 아론은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2,13).” 이 말씀은 백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16,17장은 반란, 폭동, 심판, 죽음의 공포 등 혼란한 상황을 누가 수습할 수 있는가를 말해 줍니다. 이런 부정한 상태를 치유하고 속죄하는 일은 오로지 아론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대제사장을 통해서만이 죽게 되고 망하게 된 인생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서 인류의 구주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가운데 죽어가는 우리의 인생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맺히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날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찌그러진 인생이 활짝 펴지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파괴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미움과 반항, 억울함 등이 예수님을 통해서 풀립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치료의 하나님, 부활의 능력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어려운 속에서 소망을 갖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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