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선교 역사보고(2002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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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패요 큰 상급되신 하나님
"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6)
1.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시절
저는 1968년 11월 인천시 만석동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신 후 무일푼으로 무작정 인천으로 상경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하였으나 아버지의 근면하심으로 저희들은 끼니굶는 일없이 잘 자라게 되었습니다. 유교사상이 투철하신 아버지는 제게 매우 엄하셨고 장남으로서의 임무를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항상 내게 돌아오는 것은 그 것밖에 못하냐는 꾸지람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씨쓰기 숙제를 하고 아버지께 자신있게 보여드렸습니다. 저는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공책에 빽빽이 쓴 글자 중 한 글자를 짚어 보이시며 그것도 글자라고 썼냐고 화를 내시고는 그 공책을 내 앞에서 찢어버리셨습니다. 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다음부터는 아버지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가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동료학생들의 음담패설과 잡지 등을 듣고 보며 정욕의 종이 되어갔습니다. 수치심으로 인해 드러내게 죄를 짓지는 못하였지만 늘 마음으로 간음하며 결국은 동네 어린 여자아이들의 몸을 만지고 심지어는 잠자는 여동생의 몸을 더듬는 추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주역책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원숭이띠요, 또 나는 원숭이같이 나무에서 까불다가 결국은 떨어져 죽을 팔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나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고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산업기술시간에 한번은 선생님이 목뒤에 점이 있는 사람은 맞아 죽을 운명이라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왜냐면 제 목 뒤에 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 점은 커서 나는 맞아 죽어도 한 두 명이 아닌 여러 명에게 죽사발나게 맞아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이상한 운명주의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반기독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도 기독교인들을 이유없이 미워하며 무시하였습니다. 고3때 강원구라는 친구에게는 그에게 침을 뱉으며 “예수는 이 땅에서 꺼져버리라고 그래”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87년 홍대에 입학하였습니다. 막연한 동경과 기대로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대학생활은 내게 비참함을 주었습니다. 세상 저만 잘난 줄 알고 교만했던 제가 전국에서 모인 똑똑하고 잘생기고 부자인 정말로 잘난 아이들을 보며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빠졌고, 대학이 주는 무한대의 자유는 나를 방탕아가 되게 하였습니다. 바둑에 심취하여 밤새도록 바둑을 두고, 술집과 당구장을 전전하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여자친구들을 사귀고 서로의 몸을 더듬는 자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마음껏 행복한척 하였으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운명주의와 허무주의는 나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왜 이 땅에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저는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급기야 저는 매일 죽기를 소원하는 자가 되었고 죽는 꿈을 꾸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상 중에 정말로 저승사자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괴로워서 한번은 홍대 불타버린 강당에 밤에 혼자 올라가서 “내가 누구냐”하고 악을 쓰며 외쳤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Ⅱ. 하나님의 원수를 이방의 빛으로
그때 하나님께서 88년 천마산 여름수양회에 이 죄인을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제가 하나님의 형상과 뜻대로 창조되었으나 나의 교만과 정욕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가인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이라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더러 세상에서 꺼져버리라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위에서 죄인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며 죄인을 위해서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 앞에 저는 과거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함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88년 여름수양회 후 장막생활을 하며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인생이며, 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맞아죽는다면 그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인생인가 알게 하심으로 맞아죽을 운명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대학교 3학년 때 가정의 핍박으로 아버지가 낫으로 위협하며 “너 이 낫에 죽을래, 아니면 예수 믿는것 포기할래?” 하실 때도 믿음으로 목을 쭉 내밀고 목을 치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목을 칠까봐 매우 겁이 났지만 믿음으로 목을 내밀었을 때 내 목숨도 건지고 도리어 불신자이신 아버지에게 믿음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졸업과 함께 사도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아브라함 목자님은 저를 사도로 세우시며 예수님의 고난에 적극 동참하는 삶을 살라는 뜻의 훈련명으로 ‘고난’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이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난에 적극 동참하고자 노력 하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을 돌리고 양식과 기도모임에 참석하며 열심히 역사를 섬겼습니다. 약 1년 동안 역사섬긴 후 91년 11월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군에서 서재영, 김종열, 김시영 형제들을 깊이 도우며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군 시절 동안 논산에서 부산으로 또 강원도로 움직이면서도 나와 함께 하셨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똑똑히 보게 되었고 나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세상 어느 곳이든 나와 함께 하여 주시며 나를 지켜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선교사 실습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군 제대 무렵 허리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군 제대 후에도 허리를 여전히 아파서 그냥 앉아있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센타에서는 후배 형제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난리였습니다. 졸업 후에 백수되고 제대 후에 허리환자 되어서 방에 드러누워 있으려니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1995년 12월 말경, 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남은 인생을 정리하고자 지방행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려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강호야,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을 간절히 찾으시던 그 주님께서 이제 그 간절한 음성으로 저를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죽어도 센타에서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센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센타에 돌아와 보니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계셨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이엘리야 목자님을 통해서 내가 대사관 직원으로서 나이지리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이미 다 열어 두시고 센타목자님들이 저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신비한 사건 앞에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시며 도리어 내가 주님을 버리더라도 끝까지 믿어주고 내 인생을 지켜주실 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 감격하였습니다.
96년 1월 선교훈련을 기쁨으로 받는 중, 1월 중순쯤 결혼방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시 결혼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같은 자와 결혼한 자매는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부족한 제게 가장 베스트의 동역자를 주셨습니다. 내 몸의 연약함을 아시고 당시 센타에서 가장 건강했던 정안나 자매님을 동역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선교훈련을 받으며 2주일만에 결혼준비를 다 마치고 결혼식 올린 후 일주일만에 저는 나이지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Ⅲ. 나이지리아에서 방패요 상급이 되어주신 하나님
나이지리아는 약 100여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아래 있다가 1961년 10월 1일 독립한 이래 잔재해 있던 노예근성과 계속된 군부정권의 부패로 인해서 비전과 소망을 잃어가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1억 2천만이 넘는 인구가 있고 또 세계 제7대 산유국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나라이지만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특권층들의 부패로 말미암아 전기, 통신, 교통 시설 등 기간산업이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많은 젊은 영혼들이 비전을 잃고 죄악 가운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1990년 박베드로 선교사님이 나이지리아 개척역사를 시작한 이래 사무엘 목자가 서고 뒤를 이어 아브라함, 빅토, 죠나단, 고죠, 제임스 형제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윤안드레 선교사님께서 동역 역사를 섬기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부족한 자에게 영육간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곳 양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 못하는 영어로 제가 버벅거리며 말씀전하는 것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들어주었고, 도리어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기존에 있던 학생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또 새롭게 캠퍼스에 도전하여 양을 치면서 양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팠던 허리도 많이 강건케하사 센타 형제들과 같이 탁구와 축구를 하며 스포츠 Fellowship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단을 허리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심고 내 인생에서 소망을 빼앗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연단하신 후 이렇게 축복해 주심으로 하나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시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97년부터 사단은 이런 죄인을 시기하여 여러 가지 환란을 통해서 죄인을 넘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97년도에 센타에 예배드리러 가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안나 동역자가 실신되고 한 아이가 다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이 교통사고를 통해서 3개월 동안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98년 하나님께서 그 교통사고의 고통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죄인에게 아브라함 형제 한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수학과 2년이었던 이 형제는 미남이요, 능력많은 형제로서 말씀을 사랑하는 형제였습니다. 주 중에도 두세 번씩 심방하여 말씀주고 사랑의 관계성을 맺었고, 어떤 때는 밤 12시가 넘기까지 이 형제와 영혼의 대화를 하였습니다. 저는 이 형제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영혼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밤에 캠퍼스로 양들을 찾아 심방하는 과정에서 2차례에 걸쳐서 깡패들을 만나서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5인조 무장강도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업무 후 가족이 수양회 기도모임 참석차 센타 가던 중 5인조 강도들이 칼을 들고 덮쳐서 모든 물건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 후에 센타에서 한 번, 또 다른 길거리에서 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브라함 형제가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깊은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이러다가 제자양성의 열매도 맺지 못하고 이방 땅에서 객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내안에 몰려 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브라함 형제를 찾아 다니다가 쿤레 형제를 만났습니다. 이 형제는 화학과 1년 형제였는데, “깊은 데로 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을 받고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는 다른 나이지리아인과는 달리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자기가 말한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자였습니다. 이 형제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후 레칸, 임마누엘, 데지 형제님들이 꾸준히 일대일을 하며 성장하게 되었고, 죄인에게 제자양성의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2001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윤안드레 선교사님과 같이 야바텍 chapter를 새롭게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개척역사를 섬기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부장이신 윤안드레 선교사님 가정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센타 구입하는 것이 처음부터 문제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섬기고자 한 야바텍 캠퍼스가 교수들의 데모로 인해서 약 5개월 정도 휴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한 해 이렇다 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새 센타와 장막 정리하는 문제로 일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큰 싸인을 보내 주셨습니다. 센타 바로 옆 가장 베스트의 장소에 자매 장막을 얻게 하시고 자매 중 리타, 페이스 자매들이 장막생활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야바텍 캠퍼스의 휴교로 인해서 새 양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지만 기존 리더들, 특히 리타, 페이스, 부미 자매님들 가운데 많은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 나이지리아에서 부활절 수양회를 3.29-31까지 가졌습니다. 이번 부활절 수양회를 준비하며 저희들은 막막하였습니다. 학교가 휴교상태라서 초청할 양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선교사님들과 또 리더들이 부활신앙을 배우도록 방향잡았습니다. 하나님은 보리떡 같은 저희들의 수고를 받아주시고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양회를 위해 새벽기도를 결단하였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대사관에서 센타로 가서 기도를 드린 후 7시 전에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와서 출근하였습니다. 원래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 마음이 두려웠으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눈동자같이 지켜주셨고, 새벽기도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새벽기도 기간 중 창세기 15:1-6절 말씀 “디모데야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통해서 제게 하나님의 비전과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 통해서 한국에서부터 현재까지 나의 방패가 되사 곰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이분은 제가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계속 나의 방패가 되실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큰 상급이 바로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이지리아 가운데 하늘의 뭇별과 같은 영적 자손들을 허락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쿤레 형제 한사람을 중심으로 레캉, 펠릭스 형제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들이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이들을 통해서 나이지리아를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로 변화시킬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역사 가운데 이 부족한 종을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야바텍 센타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안드레 목자님의 매주 권세있는 메시지와 건강 위해
2. 35명 주일예배 참석, 40팀 일대일 역사, 20명 성경선생 양성
3. 야바텍 양들을 얻고, 제자 세우는 역사
4. 기존 리더들이 성경선생으로 굳게 서도록
제 개인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윤안드레 선교사님의 좋은 동역자로서 야바텍 역사를 잘 섬길 수 있도록
2. 새벽기도, 양식, 소감 등 기본적인 영적투쟁 절대적으로 감당하도록
3. 주 7팀의 일대일 감당
4. 쿤레, 레캉, 펠릭스 형제들이 성경선생으로 굳게 서도록
5. 대사관업무 승리, 영어정복, 건강위해, 안나 동역자 건강 회복위해
한마디 : 하나님은 나의 방패요, 큰 상급이 되십니다.
"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6)
1.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시절
저는 1968년 11월 인천시 만석동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신 후 무일푼으로 무작정 인천으로 상경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하였으나 아버지의 근면하심으로 저희들은 끼니굶는 일없이 잘 자라게 되었습니다. 유교사상이 투철하신 아버지는 제게 매우 엄하셨고 장남으로서의 임무를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항상 내게 돌아오는 것은 그 것밖에 못하냐는 꾸지람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씨쓰기 숙제를 하고 아버지께 자신있게 보여드렸습니다. 저는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공책에 빽빽이 쓴 글자 중 한 글자를 짚어 보이시며 그것도 글자라고 썼냐고 화를 내시고는 그 공책을 내 앞에서 찢어버리셨습니다. 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다음부터는 아버지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가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동료학생들의 음담패설과 잡지 등을 듣고 보며 정욕의 종이 되어갔습니다. 수치심으로 인해 드러내게 죄를 짓지는 못하였지만 늘 마음으로 간음하며 결국은 동네 어린 여자아이들의 몸을 만지고 심지어는 잠자는 여동생의 몸을 더듬는 추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주역책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원숭이띠요, 또 나는 원숭이같이 나무에서 까불다가 결국은 떨어져 죽을 팔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나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고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산업기술시간에 한번은 선생님이 목뒤에 점이 있는 사람은 맞아 죽을 운명이라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왜냐면 제 목 뒤에 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 점은 커서 나는 맞아 죽어도 한 두 명이 아닌 여러 명에게 죽사발나게 맞아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이상한 운명주의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반기독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도 기독교인들을 이유없이 미워하며 무시하였습니다. 고3때 강원구라는 친구에게는 그에게 침을 뱉으며 “예수는 이 땅에서 꺼져버리라고 그래”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87년 홍대에 입학하였습니다. 막연한 동경과 기대로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대학생활은 내게 비참함을 주었습니다. 세상 저만 잘난 줄 알고 교만했던 제가 전국에서 모인 똑똑하고 잘생기고 부자인 정말로 잘난 아이들을 보며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빠졌고, 대학이 주는 무한대의 자유는 나를 방탕아가 되게 하였습니다. 바둑에 심취하여 밤새도록 바둑을 두고, 술집과 당구장을 전전하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여자친구들을 사귀고 서로의 몸을 더듬는 자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마음껏 행복한척 하였으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운명주의와 허무주의는 나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왜 이 땅에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저는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급기야 저는 매일 죽기를 소원하는 자가 되었고 죽는 꿈을 꾸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상 중에 정말로 저승사자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괴로워서 한번은 홍대 불타버린 강당에 밤에 혼자 올라가서 “내가 누구냐”하고 악을 쓰며 외쳤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Ⅱ. 하나님의 원수를 이방의 빛으로
그때 하나님께서 88년 천마산 여름수양회에 이 죄인을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제가 하나님의 형상과 뜻대로 창조되었으나 나의 교만과 정욕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가인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이라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더러 세상에서 꺼져버리라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위에서 죄인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며 죄인을 위해서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 앞에 저는 과거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함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88년 여름수양회 후 장막생활을 하며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인생이며, 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맞아죽는다면 그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인생인가 알게 하심으로 맞아죽을 운명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대학교 3학년 때 가정의 핍박으로 아버지가 낫으로 위협하며 “너 이 낫에 죽을래, 아니면 예수 믿는것 포기할래?” 하실 때도 믿음으로 목을 쭉 내밀고 목을 치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목을 칠까봐 매우 겁이 났지만 믿음으로 목을 내밀었을 때 내 목숨도 건지고 도리어 불신자이신 아버지에게 믿음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졸업과 함께 사도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아브라함 목자님은 저를 사도로 세우시며 예수님의 고난에 적극 동참하는 삶을 살라는 뜻의 훈련명으로 ‘고난’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이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난에 적극 동참하고자 노력 하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을 돌리고 양식과 기도모임에 참석하며 열심히 역사를 섬겼습니다. 약 1년 동안 역사섬긴 후 91년 11월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군에서 서재영, 김종열, 김시영 형제들을 깊이 도우며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군 시절 동안 논산에서 부산으로 또 강원도로 움직이면서도 나와 함께 하셨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똑똑히 보게 되었고 나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세상 어느 곳이든 나와 함께 하여 주시며 나를 지켜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선교사 실습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군 제대 무렵 허리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군 제대 후에도 허리를 여전히 아파서 그냥 앉아있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센타에서는 후배 형제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난리였습니다. 졸업 후에 백수되고 제대 후에 허리환자 되어서 방에 드러누워 있으려니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1995년 12월 말경, 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남은 인생을 정리하고자 지방행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려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강호야,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을 간절히 찾으시던 그 주님께서 이제 그 간절한 음성으로 저를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죽어도 센타에서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센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센타에 돌아와 보니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계셨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이엘리야 목자님을 통해서 내가 대사관 직원으로서 나이지리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이미 다 열어 두시고 센타목자님들이 저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신비한 사건 앞에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시며 도리어 내가 주님을 버리더라도 끝까지 믿어주고 내 인생을 지켜주실 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 감격하였습니다.
96년 1월 선교훈련을 기쁨으로 받는 중, 1월 중순쯤 결혼방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시 결혼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같은 자와 결혼한 자매는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부족한 제게 가장 베스트의 동역자를 주셨습니다. 내 몸의 연약함을 아시고 당시 센타에서 가장 건강했던 정안나 자매님을 동역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선교훈련을 받으며 2주일만에 결혼준비를 다 마치고 결혼식 올린 후 일주일만에 저는 나이지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Ⅲ. 나이지리아에서 방패요 상급이 되어주신 하나님
나이지리아는 약 100여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아래 있다가 1961년 10월 1일 독립한 이래 잔재해 있던 노예근성과 계속된 군부정권의 부패로 인해서 비전과 소망을 잃어가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1억 2천만이 넘는 인구가 있고 또 세계 제7대 산유국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나라이지만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특권층들의 부패로 말미암아 전기, 통신, 교통 시설 등 기간산업이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많은 젊은 영혼들이 비전을 잃고 죄악 가운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1990년 박베드로 선교사님이 나이지리아 개척역사를 시작한 이래 사무엘 목자가 서고 뒤를 이어 아브라함, 빅토, 죠나단, 고죠, 제임스 형제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윤안드레 선교사님께서 동역 역사를 섬기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부족한 자에게 영육간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곳 양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 못하는 영어로 제가 버벅거리며 말씀전하는 것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들어주었고, 도리어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기존에 있던 학생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또 새롭게 캠퍼스에 도전하여 양을 치면서 양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팠던 허리도 많이 강건케하사 센타 형제들과 같이 탁구와 축구를 하며 스포츠 Fellowship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단을 허리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심고 내 인생에서 소망을 빼앗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연단하신 후 이렇게 축복해 주심으로 하나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시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97년부터 사단은 이런 죄인을 시기하여 여러 가지 환란을 통해서 죄인을 넘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97년도에 센타에 예배드리러 가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안나 동역자가 실신되고 한 아이가 다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이 교통사고를 통해서 3개월 동안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98년 하나님께서 그 교통사고의 고통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죄인에게 아브라함 형제 한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수학과 2년이었던 이 형제는 미남이요, 능력많은 형제로서 말씀을 사랑하는 형제였습니다. 주 중에도 두세 번씩 심방하여 말씀주고 사랑의 관계성을 맺었고, 어떤 때는 밤 12시가 넘기까지 이 형제와 영혼의 대화를 하였습니다. 저는 이 형제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영혼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밤에 캠퍼스로 양들을 찾아 심방하는 과정에서 2차례에 걸쳐서 깡패들을 만나서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5인조 무장강도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업무 후 가족이 수양회 기도모임 참석차 센타 가던 중 5인조 강도들이 칼을 들고 덮쳐서 모든 물건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 후에 센타에서 한 번, 또 다른 길거리에서 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브라함 형제가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깊은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이러다가 제자양성의 열매도 맺지 못하고 이방 땅에서 객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내안에 몰려 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브라함 형제를 찾아 다니다가 쿤레 형제를 만났습니다. 이 형제는 화학과 1년 형제였는데, “깊은 데로 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을 받고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는 다른 나이지리아인과는 달리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자기가 말한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자였습니다. 이 형제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후 레칸, 임마누엘, 데지 형제님들이 꾸준히 일대일을 하며 성장하게 되었고, 죄인에게 제자양성의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2001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윤안드레 선교사님과 같이 야바텍 chapter를 새롭게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개척역사를 섬기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부장이신 윤안드레 선교사님 가정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센타 구입하는 것이 처음부터 문제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섬기고자 한 야바텍 캠퍼스가 교수들의 데모로 인해서 약 5개월 정도 휴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한 해 이렇다 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새 센타와 장막 정리하는 문제로 일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큰 싸인을 보내 주셨습니다. 센타 바로 옆 가장 베스트의 장소에 자매 장막을 얻게 하시고 자매 중 리타, 페이스 자매들이 장막생활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야바텍 캠퍼스의 휴교로 인해서 새 양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지만 기존 리더들, 특히 리타, 페이스, 부미 자매님들 가운데 많은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 나이지리아에서 부활절 수양회를 3.29-31까지 가졌습니다. 이번 부활절 수양회를 준비하며 저희들은 막막하였습니다. 학교가 휴교상태라서 초청할 양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선교사님들과 또 리더들이 부활신앙을 배우도록 방향잡았습니다. 하나님은 보리떡 같은 저희들의 수고를 받아주시고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양회를 위해 새벽기도를 결단하였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대사관에서 센타로 가서 기도를 드린 후 7시 전에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와서 출근하였습니다. 원래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 마음이 두려웠으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눈동자같이 지켜주셨고, 새벽기도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새벽기도 기간 중 창세기 15:1-6절 말씀 “디모데야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통해서 제게 하나님의 비전과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 통해서 한국에서부터 현재까지 나의 방패가 되사 곰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이분은 제가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계속 나의 방패가 되실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큰 상급이 바로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이지리아 가운데 하늘의 뭇별과 같은 영적 자손들을 허락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쿤레 형제 한사람을 중심으로 레캉, 펠릭스 형제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들이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이들을 통해서 나이지리아를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로 변화시킬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역사 가운데 이 부족한 종을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야바텍 센타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안드레 목자님의 매주 권세있는 메시지와 건강 위해
2. 35명 주일예배 참석, 40팀 일대일 역사, 20명 성경선생 양성
3. 야바텍 양들을 얻고, 제자 세우는 역사
4. 기존 리더들이 성경선생으로 굳게 서도록
제 개인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윤안드레 선교사님의 좋은 동역자로서 야바텍 역사를 잘 섬길 수 있도록
2. 새벽기도, 양식, 소감 등 기본적인 영적투쟁 절대적으로 감당하도록
3. 주 7팀의 일대일 감당
4. 쿤레, 레캉, 펠릭스 형제들이 성경선생으로 굳게 서도록
5. 대사관업무 승리, 영어정복, 건강위해, 안나 동역자 건강 회복위해
한마디 : 하나님은 나의 방패요, 큰 상급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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