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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세기1강 천지를 창조하시 하나님(창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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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170회 작성일 19-03-24 08:16

본문

2019 창세기 제1강 (JBF)
말씀 | 창세기 1:1-25
요절 | 창세기 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기원에 관한 책입니다. 창세기에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 인류와 문화 문명의 기원, 그리고 인류 가운데 들어온 죄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기원 등 모든 기원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세기에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들과 믿어야할 것들의 기초적인 진리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창세기 공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천지 창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천지 창조와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가설들이 있습니다. 자연발생설이 있고 물, 불, 공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 빅뱅성, 진화론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들도 시작과 기원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또한 그들이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만물은 물론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세계의 기원에 대해서도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그들이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수소와 같은 원소는 어디서 왔는지, 빅뱅 당시의 거대 덩어리인 옐름은 누가 만들었는지, 그 옐름을 폭발시킨 에너지는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합니다. 진화론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중간단계의 화석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좀 더 과학적이고 설명이 가능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믿거나 말거나”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지만물과 우주의 기원에 대해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을 읽어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태초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해 봅시다. ‘태초’란 ‘맨 처음’이라는 뜻인데, ‘시간이 시작되던 때’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태초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시간도 없고 존재도 없었던 때를 ‘영원’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영원의 때부터 계셨고, 그가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비로소 시간이 시작되고 존재가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이 하나님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포’할 뿐입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리이까?’ 그때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출3:14)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이요,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믿건 믿지 않건, 그는 스스로 계신 분이요 온 세상의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상의 시간과 모든 존재들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가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창조’란 기본적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물질을 이용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거나 이미 있던 사물을 새로 조성하여 다른 물건을 만드는 것을 창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 창조는 ‘바라’라고 하는데 창세기에서 ‘바라’는 창세기1:1, 1:21, 1:27에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바라’는 태초의 창조와 생명을 창조할 때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를 믿을 때 그는 우리의 삶에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의 삶에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당신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가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1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드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궁창을 만드셨고, 궁창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뭍을 드러나게 하셨는데, 이 뭍을 땅이라 칭하셨고 물을 바다라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과일과 채소 등의 식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 등의 천체를 만드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하늘의 새와 바다의 고기들을 만드셨습니다. 여섯째 날은 창조역사의 절정이었는데, 이 날에 하나님은 육축과 짐승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들을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창조 역사를 이루어 나가심에 따라 혼돈하던 세상에 질서가 생겼고 공허하던 세상이 생명이 넘쳐났고 어둡던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조직과 질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빛을 만드셨습니다. 만일 천체들을 만드시기 전에 빛을 만드시지 않으셨다면 그 천체들은 모두가 돌멩이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들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그들이 살 수 있는 환경, 즉 하늘과 바다를 먼저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뭍을 드러나게 하신 일도 생각해 보면 놀랍습니다. 지구 위에 땅은 3분의 1이고, 3분의 2가 바다입니다. 만일 이 비율이 조금 달라져서 바다가 지금보다 많다면 수증기가 너무 많이 생겨서 지구는 늪지대가 되고, 반대로 땅의 비율이 조금 더 많으면 지구는 사막이 되고 맙니다. 또 하나님은 천체를 만드실 때도 아무렇게나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아주 적절한 거리( 1월초 최단 1억 4700만Km~7월초 최장 1억 5200만Km)에 설치해 두셨습니다. 만일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먼 거리에 있다면 지구에는 수많은 빙산지대가 생길 것이며, 반대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셨다면 수많은 곳이 사막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꼭 알맞은 거리에 태양을 설치하셔서 지구 위의 모든 생물들이 적절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세계를 치밀하고 질서 있게 만드실 뿐 아니라 다양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셋째 날에 만드신 채소를 봅시다. 시장에 가면 배추, 무우, 상추, 시금치, 미나리, 부추, 오이, 당근 등의 수많은 채소들이 우리의 식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과일을 봅시다. 봄에는 자두  앵두 딸기, 여름에는 수박 참외 살구, 가을에는 사과 배 감 밤 대추가 나옵니다. 아프리카에는 여기에 없는 바나나도 있고, 파인애플, 파파야, 망고가 있고, 망고의 종류만도 50여종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계절과 지역에 따라 꽃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고, 짐승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날까지 발견된 식물이 23만종, 동물은 100 만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모양, 크기, 색깔, 향기 등이 다 다릅니다. 사람도 얼굴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습니다. 쌍둥이도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고 또 한 사람의 얼굴도 오른쪽 모습과 왼쪽 모습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참 다양하고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Kelvin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분히 그리고 깊이 생각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과학적인 입장에서 아니 믿지 못하리라.” 그런데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상은 하나님 없이 맘대로 살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시편 14편의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또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위대하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까? 1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대…” 라는 말씀이 일곱 번이나 반복됩니다(3,6,9,11,14,20,24). 그리고 그 뒤에는 곧 “그대로 되니라” 는 말이 따라 나옵니다(7,9,11,14,20,24). 하나님이 이르시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 말씀 그대로 모든 물들이 우르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오직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하게 됩니다. 사람이 크고 좋은 꿈을 가졌지만 좌절하고 마는 것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주 죄에 빠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늙어서 모든 꿈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도 버리고, 그저 안일하게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17:1). 또 사라가 나이 늙어 아이 낳기를 체념하고 쓴웃음만 짓고 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18:14).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바위에서 물이 솟고 마른 막대기에서 꽃이 핍니다. 문둥이가 깨끗해지고, 38년 된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단순히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사람의 인격을 감화시키고 그 본성을 변화시키는 감동력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세리가 변화되고, 방황하던 사마리아 여자가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런 기사를 읽을 때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불가능에 도전하여 승리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사람 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씀도 많고, 지키기에 어려운 말씀도 많습니다. 그러나 순종하고자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능력을 덧입어 힘찬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창세기 1:1을 다시 읽어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 인생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필연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무엇을 만들 때 거기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실 때에도 완벽한 계획과 필연적인 뜻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파리나 바퀴벌레를 귀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파리나 바퀴벌레를 다 없애버리면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 한 번은 참새가 농사짓는데 방해가 된다면서 전부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참새가 없어지자 참새의 먹이인 벌레들이 기승을 부려 농사가 더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존재해야 할 필연적이 뜻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명적인 것도 없고 허무한 것도 없고, 쓸모 없는 것이 없습니다. 꽃 한 송이나 풀 한 포기에도, 그리고 그 어떤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야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필연적인 뜻 가운데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운명의 노예가 되어서 슬픔을 삼키며 누워있거나, 쾌락적 허무주의에 빠져 인생을 내동댕이치듯 살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필연적인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이 생기고, 삶의 의미가 생깁니다. 그리함으로써 역경을 이겨낼 수 있으며, 열매 맺는 삶을 살며,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필연적인 뜻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될 때 나에게 두신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창세기 공부를 하는 동안에 우리 각자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적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으며, 필연적인 뜻을 두고 계시다는 것만은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함부로 내던지지 않고 소중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자신의 뜻대로만 살지 말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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