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마가복음 제 11 강 둘씩 둘씩 보내시며(막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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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 11 강
말씀 | 마가복음 6:1-29
요절 | 마가복음 6:7
둘씩 둘씩 보내시며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여러분 성경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66권의 책을 하나로 엮은 책입니다. 그 안에는 참으로 많은 말씀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말해 보라고 하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죄로 인해 심판받고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것과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곳을 가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고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자들의 삶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역을 계승하고 전파하기 위해 열 두 제자들을 양육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귀한 일을 하셨는데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환영하고 좋아했을까요? 그런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다같이 막6:1-3절을 읽어 봅시다. “1.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의 말씀은 어떤 랍비보다도 뛰어난 지혜로 가르치시는 말씀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위와 감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대해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습니다. 고향에 오시기 전 가버나움에 있을 때는 열 두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셨고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들은 이런 권능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라기만 할 뿐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그리스도로는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들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학교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편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면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럴리 없다고 무조건 무시하고 배척해 버립니다. 이렇게 인간의 편견은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와 예수님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는 일은 예수님에게는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고향에 오시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고 병을 고쳐주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고향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향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몇몇 사람들만 고쳐주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으면 마음이 상하고 위축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비록 고향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으셨지만 도리어 이런 그들의 무지와 편견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른 마을들로 다니시며 더욱 열심히 전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여러 마을로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면서 특별한 원칙을 정하셨습니다.
막6:7-10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정하신 특별한 원칙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을 때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고향에서 예수님도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둘씩 하다보면 서로 격려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려운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일을 효과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둘째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권능은 본래 제자들이 갖고 있는 권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위임하신 권능입니다. 제자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선포할 때 더러운 귀신들을 제어하고 좇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도는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잊지 마십시오. 전도는 사탄 마귀에게서 생명을 구원하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셋째 지팡이와 신발 한벌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날 전도여행을 할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팡이와 신발 한 켤레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전도여행을 위해 준비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준비를 잘 할려고 하다가 오히려 근심하고 도전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중요한 건 더 잘 준비하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주님,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어려요, 저는 고3이예요. 공부할게 많아요. 저는 성경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요. 저는 노래도 잘 못하고 악기도 잘 못하고 잘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돈과 재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하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변함없이 헌신할 수 있는 충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적인 준비보다 이런 영적인 준비를 잘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들은 능력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입니다.
넷째로 말을 듣지 않으면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벌리라 하셨습니다. 8절을 봅시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이는 만일 제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제자들에게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림으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심판받을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무관심한 사람, 배척하는 사람, 핍박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했다고 핑게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듣고도 초청을 받고도 받아 들이지 아니한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 났습니까? 막6:12-13을 봅시다. “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전파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전한 복음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회개하지 않고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만일 회개한 경험이 없다면 그는 아마도 거듭난 신자가 아닐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회개할 때 귀신이 쫓겨나며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육신의 병만이 병이 아닙니다. 마음에 병도 있고 정신적인 병도 있고 영적인 병도 있습니다. 저는 육신은 건강했지만 내가 누구지 몰라서 방황했고 남들보다 얼굴이 검다는 것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창세기1:31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보신 것들 가운데 저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와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절대적인 존재의미를 가진 하나님 안에서 둘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할 때 저는 이 하나님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저의 열등감을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었고 그때 제안에 열등감이 해결되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누군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면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할 때 우리 안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막6:14 전반절을 봅시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제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때 그 결과로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로인해 비로서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갈릴리를 통치하던 헤롯왕도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다가 이때서야 예수님을 알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름이 들어나는 것도, 우리의 사역이 들어나는 것도 아닌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놓고 우리의 이름이 들어나고 우리의 사역만 들어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심히 전도하고 사역을 한 후에는 반드시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시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보내셔서 전도하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길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고전1:21) 왜냐하면 전도는 이 세상을 향한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최선을 다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마음으로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나아가 전도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마가복음 6:1-29
요절 | 마가복음 6:7
둘씩 둘씩 보내시며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여러분 성경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66권의 책을 하나로 엮은 책입니다. 그 안에는 참으로 많은 말씀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말해 보라고 하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죄로 인해 심판받고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것과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곳을 가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고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자들의 삶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역을 계승하고 전파하기 위해 열 두 제자들을 양육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귀한 일을 하셨는데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환영하고 좋아했을까요? 그런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다같이 막6:1-3절을 읽어 봅시다. “1.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의 말씀은 어떤 랍비보다도 뛰어난 지혜로 가르치시는 말씀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위와 감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대해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습니다. 고향에 오시기 전 가버나움에 있을 때는 열 두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셨고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들은 이런 권능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라기만 할 뿐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그리스도로는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들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학교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편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면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럴리 없다고 무조건 무시하고 배척해 버립니다. 이렇게 인간의 편견은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와 예수님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는 일은 예수님에게는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고향에 오시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고 병을 고쳐주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고향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향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몇몇 사람들만 고쳐주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으면 마음이 상하고 위축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비록 고향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으셨지만 도리어 이런 그들의 무지와 편견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른 마을들로 다니시며 더욱 열심히 전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여러 마을로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면서 특별한 원칙을 정하셨습니다.
막6:7-10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정하신 특별한 원칙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을 때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고향에서 예수님도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둘씩 하다보면 서로 격려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려운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일을 효과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둘째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권능은 본래 제자들이 갖고 있는 권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위임하신 권능입니다. 제자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선포할 때 더러운 귀신들을 제어하고 좇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도는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잊지 마십시오. 전도는 사탄 마귀에게서 생명을 구원하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셋째 지팡이와 신발 한벌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날 전도여행을 할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팡이와 신발 한 켤레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전도여행을 위해 준비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준비를 잘 할려고 하다가 오히려 근심하고 도전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중요한 건 더 잘 준비하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주님,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어려요, 저는 고3이예요. 공부할게 많아요. 저는 성경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요. 저는 노래도 잘 못하고 악기도 잘 못하고 잘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돈과 재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하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변함없이 헌신할 수 있는 충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적인 준비보다 이런 영적인 준비를 잘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들은 능력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입니다.
넷째로 말을 듣지 않으면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벌리라 하셨습니다. 8절을 봅시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이는 만일 제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제자들에게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림으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심판받을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무관심한 사람, 배척하는 사람, 핍박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했다고 핑게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듣고도 초청을 받고도 받아 들이지 아니한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 났습니까? 막6:12-13을 봅시다. “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전파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전한 복음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회개하지 않고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만일 회개한 경험이 없다면 그는 아마도 거듭난 신자가 아닐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회개할 때 귀신이 쫓겨나며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육신의 병만이 병이 아닙니다. 마음에 병도 있고 정신적인 병도 있고 영적인 병도 있습니다. 저는 육신은 건강했지만 내가 누구지 몰라서 방황했고 남들보다 얼굴이 검다는 것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창세기1:31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보신 것들 가운데 저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와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절대적인 존재의미를 가진 하나님 안에서 둘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할 때 저는 이 하나님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저의 열등감을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었고 그때 제안에 열등감이 해결되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누군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면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할 때 우리 안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막6:14 전반절을 봅시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제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때 그 결과로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로인해 비로서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갈릴리를 통치하던 헤롯왕도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다가 이때서야 예수님을 알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름이 들어나는 것도, 우리의 사역이 들어나는 것도 아닌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놓고 우리의 이름이 들어나고 우리의 사역만 들어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심히 전도하고 사역을 한 후에는 반드시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시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보내셔서 전도하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길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고전1:21) 왜냐하면 전도는 이 세상을 향한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최선을 다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마음으로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나아가 전도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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