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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 7 강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막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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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66회 작성일 18-05-0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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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 7 강
말씀 | 마가복음 4:1-20
요절 | 마가복음 4:20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예수님이 공생에 동안 하신 일을 요약하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둘째는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셋째는 열두 제자를 양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사람들은 서기관들과는 달리 말씀의 권위를 느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친 서기관들과는 달리 말씀의 본질을 가르치셨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실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비유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입니다. 비유는 추상적인 진리를 그림을 그리듯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해가 쉽고 오래 기억되어 묵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유는 그를 공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가리고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의 말씀은 모든 말씀의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은 자들이 왜 모두 구원받지 못하는지 또한 왜 어떤 사람은 열매맺고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비유를 깨닫는 자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을 봅시다. “1.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큰 무리가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미는 바람에 예수님은 바다에 빠질 지경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떠 있는 한 배에 올라앉으시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탁 트닌 바다를 배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바닷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그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무리들 그리고 바닷가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의 은빛 물결이 넘실대는 이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가르치신 비유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3-9절을 읽어 봅시다. “3.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들으라” 하시고 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두 번이나 “들으라”고 하시면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비유는 너무나 쉽네. 실망인데 별로 건질만하게 없어.” 라고 하며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비유의 의미를 알고자 예수님께 나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1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과 열두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받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11-13절을 봅시다. “11.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너희에게는 주고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적인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지 말씀에 대한 열매가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일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은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비유에서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이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자는 죄사함과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씀을 듣고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고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우리의 마음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우리의 마음을 네 가지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첫째는 길가입니다.  길가는 밭과 밭 사이에 나 있는 길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 길가로 다니다 보니 길가는 바닥이 딱딱합니다. 그렇기에 길가에 떨어진 씨는 흙에 묻히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다가 이를 발견한 새에게 먹히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서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사탄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빼앗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때 하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때 사탄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을 들은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인 아담을 설득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이렇게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대적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능력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능히 도우시며 구원하십니다.

둘째는 돌밭입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금방 싹을 틔웁니다. 그러나 해가 나면 금방 말라버립니다. 이는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기쁨으로 받으나 그 말씀으로 인해 환란과 핍박을 당할 때 넘어지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는 돌밭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죽는데까지 그를 따르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시던 날 밤 어린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환란을 이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뿌리가 깊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그 후로 그는 수제자로서 초대교회를 굳건히 하고 예수님을 위해 순교할 만큼 담대한 믿음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실패를 했지만 그 사건을 통해 그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그의 믿음의 뿌리를 더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환란과 핍박도 이기게 하는 힘의 근원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어떠한 환란과 시련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가시밭입니다. 가시밭은 땅 자체는 좋은 땅입니다. 그래서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금방 싹이 나고 자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씨가 나서 자랄 때 가시도 함께 자란다는 것입니다. 가시는 씨보다 더 빨리 더 무성하게 자라서 씨의 기운을 막아 버립니다. 그래서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잎만 무성하고 쭉정이 열매만 맺습니다. 이는 말씀에 대한 소원은 많으나 그 마음에 있는 세상의 근심과 재물에 대한 욕심과 기타 욕심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한 점의 근심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바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아무생각이 없기 때문에 근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들은 근심을 합니다. 그러면 근심은 무엇입니까? 근심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근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요14:1)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렇습니다. 우리는 근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심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 근심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근심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심을 맡아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근심이 생길 때 욕심이 생길 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근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할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근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근심의 들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 기도를 하나님께 나아가 세 번을 하신 후에 십자가를 십자가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셨습니다. 여러분, 근심되는 일이 있습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넷째는 좋은 밭입니다. 좋은 밭은 결실하는 밭인데 30배, 60배, 100배의결실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을 뿐 아니라 말씀의 열매를 맺기까지 인내로서 기다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좋은 밭의 대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을 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녀를 얻기까지 25년을 인내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주실 것을 믿고 막벨라굴을 사서 아내 사라를 장사하고 그 자신도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땅은 여호수아에 의해 그의 후손이 땅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것은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반드시 30배나 60배나 100배의 수확을 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0배의 수확은 확실히 좋은 수확입니다. 60배의 수확도 큰 것입니다. 그런데 100배는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수확입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수확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맺는 열매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 우리의 기대 그 이상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다. 그는 그를 믿는 자들을 반드시 구원하시며 결코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는 그를 믿는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듣고 받아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첫째로 사탄이 말씀을 빼앗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믿음을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 깊이 뿌리내려야하겠습니다. 셋째로 근심하기보다 기도해야하겠습니다. 넷째로 우리가 받은 말씀에 순종하되 열매를 맺기까지 인내해야하겠습니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구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항상 가까이하는 복된 삶,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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