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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 3 강 물을 포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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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15-06-1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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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 3 강
말씀 요한복음 2:1-22
요절 요한복음 2:9
물을 포도주로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이 나옵니다. 이 표적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들어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말씀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 중에 첫 번째 표적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은 누구신지 그리고 이 땅에 무슨 일을 하러 오셨는지를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첫째, 우리의 모자람을 채워주시는 예수님(1-3)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가나의 결혼잔치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결혼은 인간의 행복과 번성을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결혼의 의미는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함을 의미하고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결혼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최근에는 사람들의 외모나 경제력을 보고 결혼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믿음을 보고 결혼해야 되겠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JBF 친구들을 모두 믿음의 결혼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혼은 인류지대사이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합니다. 이스라엘은 결혼식을 일년전부터 준비했다고 합니다. 요즘에 결혼식하고 뷔페에서 밥 먹고 나면 끝나지만 당시에는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서 일주일 동안 잔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결혼잔치에는 풍성한 음식과 노래와 춤, 악기연주와 시낭송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결혼잔치는 고단한 일상의 삶을 내려놓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기쁨의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기쁘고 즐거워야할 가나의 결혼잔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결혼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 것입니다. 당시 결혼잔치에 포도주는 빠질 수 없는 필수 품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손님들이 불평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쁨과 축복이 가득해야할 결혼잔치의 분위기를 망치게 됩니다. 당시는 결혼잔치를 소홀이 준비한 것 때문에 고발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결혼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 것은 시급히 해결되어야할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가나의 결혼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모자람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초에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자, 운동을 하자, 다이어트를 하자, 부모님께 잘 하자, 성경일 일독하자 등등..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초에 가졌던 열정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연초에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도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연초에 잡은 계획에 턱없이 모자란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는데 막상 시험을 볼 때 집중하지 못해서 실수로 틀리고 혹은 답안을 밀려 써서 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중력이 모자랐던 것입니다. 직장에도 실력이 모자라면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돈이 떨어지면 항상 쓸 것이 모자라 문제가 됩니다. 의욕이 떨어지면 삶이 무기력해집니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매사에 부정적이 됩니다. 메르스도 지식이 부족해서 초기에 대응을 잘 못하는 바람에 급속히 확산된 것입니다. 그로인해 한국경제에 휘청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모자람의 문제는 우리의 현실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모자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3절을 다시한번 봅시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예수님께 들어나아 갔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예수님께 들고 갈 것이 아니라 연회장이나 신랑 신부측에 들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는 예수님께 들어나간 것입니까? 왜냐하면 이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린다 해도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 많은 포도주를 살 곳이 없고 그렇다고 당장 어디서 빌리거나 만들어 올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년 이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셔야 하는 일이라 믿었고 또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첫 번째 표적은 이렇게 마리아 한 사람의 주인의식과 기도를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직장에서 집중력이 부족해 자꾸 반복해서 실수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피고 일을 한 것 같은데 제가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저의 직장상사나 사장님이 발견하게 될 때 저는 불려가 혼이 나게 됩니다. 그렇게 혼이 나고 나면 마음이 상하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저는 이 문제를 주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모자람의 문제가 있나요?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마리아와 같이 그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모자람을 채워주시는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나아갈 때 그는 우리의 모자람이 채워주시고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변화의 능력자 되신 예수님(4-11)
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언제나 셋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는 Yes, 둘째는 No, 셋째는 Wait입니다. 그러면 방금 예수님의 대답은 어디에 해당될까요? 우리가 얼핏 들으면 예수님의 대답은 No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지 듣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대답을 Yes로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하인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5절을 봅시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그녀는 예수님이 지금 일하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그대로 할 수 있는 하인을 준비한다면 예수님이 일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인에게 무슨 말씀을 하던지 그대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는 아무리 기도해도 예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때는 어느 때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하겠다고 결심하는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작정 기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무슨 말씀을 하던 듣겠다고 하는 순종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과연 마리아가 믿음으로 하인을 준비시키자 예수님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참으로 독특합니다. 6~8절을 봅시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정결예식에 쓰는 물을 담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수돗물을 틀어서 채우면 되지만 그 당시는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어 채워야 합니다. 이는 섬길 일이 많고 바쁜 하인들에게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항아리에서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는 말씀은 연회장에게 혼이 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욱 순종하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9~10절을 봅시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하인이 연회장에게 물을 건넨 후에 그 물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포도주 맛이 좋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난지를 알지 못하고 다만 물을 떠온 하인들만 알았습니다.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사건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한 하인들의 순종이 낳은 표적입니다. 요한은 그 현장에 있었던 제자로서 그들의 순종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인들은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대충 채운 것이 아니라 아귀까지 채웠다고 했습니다. 이는 완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는 말씀에 연회장에서 혼날 수도 있고 해고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릎 쓰고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완전한 순종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인들의 순종을 통해 예수님은 가나의 결혼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변화의 능력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난다는 것과 온전한 순종을 위해선 신뢰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티핑 포인트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 순간에 상황 변화를 일으키는 극적인 지점을 일컫는 말인데 티핑포인트에 이르기 전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티핑포인트에 이르면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티핑포인트는 물을 아귀까지 채웠을 때가 아니라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때입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변화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어 순종할 때 응답되지 않는 현실로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의 티핑포인트가 있음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자의 삶에 역사하시는 변화의 능력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이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을 통해 나타내신 예수님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이를 통해 창조주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물과 포도주는 완전히 다른 물질입니다. 물은 화학식으로 하면 H2O이고 포도주는 C2H5OH입니다. 포도주에 물에는 없는 C2가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창조주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변화시키셨듯이 우리의 삶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고기잡는 어부 베드로를 사람낚는 어부로, 이기적인 세리 마태를 성마태로, 의심많던 도마를 확신에 찬 순교자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의 삶도 변화됩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티핑포인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JBF 친구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새 성전 되신 예수님(12-22)
그 후에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이 와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는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이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이 말씀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결예식을 위해 쓰일 물이 율법을 상징한다면 포도주는 우리의 죄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우리는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이상 성전의 제사가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성전제사를 폐하시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표적과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모자람을 채워주시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변화의 능력자가 되심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에 모자람이 채워지고 새롭게 변화되는 티핑포인트는 바로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그 때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위해선 말씀에 대한 신뢰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마리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모자람의 들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 하인들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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