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6강 "네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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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제 6 강
말씀 | 신명기 10:12-11:32
요절 | 신명기 10:13
네 행복을 위하여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것을 마치 주님을 위해서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는 목자님을 위해서 일대일을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양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한 것임을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존경을 뜻합니다. 우리 자신이 왕들의 왕이자 주들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깊은 존경에서 우러나는 찬송과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경외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2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예배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오직 그분만 경배하고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에게 의지한다는 말의 원어는 다바크인데 이는 들러붙다, 착 달라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 친근히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말씀을 지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도덕과 기준을 만들고 개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닦아 놓으신 길을 가면 됩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법도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윤리와 법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인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요. 자기 신념의 문제요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일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주의 백성을 선택하실 만큼 먼저 사랑하신 것에 대해서 올바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충성과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말씀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의 인생은 환난과 곤고가 있고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선을 행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강이 있고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부담을 주거나 짐을 지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쉼과 만족을 주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 옵니다. 의로운 것을 하고 즐거운 것을 할 때 옵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선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참으로 선을 행할 수 있고 진정한 만족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경외하는 것을 인생의 큰 방향으로 삼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지난 주에 우린 3.1절을 보냈습니다. 그냥 단순한 날짜인 3월 1일은 우리에게 참으로 뜻깊은 날중의 하나입니다. 삼일절!! 하면 유관순열사님를 맨 처음 떠울리게 됩니다! 물론 김마리아님이나 김구선생님등 많은 의로운 열사님들이 계셨기에 대한민국이 있고 저희들이 독립된 나라에서 편히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하고 외쳤던 그때 그분의 나이가 여리디 여린 17세였답니다! 지금의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이지요~
3.1절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로 평가받습니다. 이는 3•1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인 의의 때문입니다. 이 점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제의 철통같은 무단통치를 뚫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명한 거부와 문화적, 역사적 민족 개념에 기반한 이상적 국가 건설이라는 지향이 한국 민족 개개인에게 뿌리 내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비록 3•1운동을 통해 일제 식민 통치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3•1운동은 비로소 한국 민족을 한국 민족으로 각성시켰던 것입니다.(출처; 한국세시풍속사전)
3.1운동은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면서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자신의 고향인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퍼지게 한 인물로 유관순 열사를 기억합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했던 어린소녀들을 주축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 의의가 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그리고 순국열사 중에 최연소라는 점도 큰 이목을 받습니다. 건장한 신체를 가진 남성들도 버티기 힘든 고문들을 겪어냈고 그러한 일제의 압박에도 학생신분으로 뜻을 굽히지 않은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관순열사는 1902년에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 고등과 1년생이었던 유관순은 만세시위에 참가하였고, 연이어 3월 5일의 서울 만세시위에도 참가하였습니다. 그 뒤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임시휴교령을 내려 휴교를 하자 3월 8일 열차편으로 천안으로 돌아와 천안과 인근 도시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관옥(寬玉)을 만났습니다. 그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1920년 옥사하였습니다. 18세의 나이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1996년 5월 이화여고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옥중 고문에 관한 기록은 너무도 참혹하고 믿기 힘든 내용이어서 도저히 이 글에 옮길 수 없습니다. 2013년 11월에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打殺)"로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녀의 사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방광파열이라 하는데 그 녀의 시신에는 고문의 흔적으로 코와 귀도 없었다고 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는 아래와 같이 역설하였다고 합니다.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 왜 제 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는 것이 죄가 되느냐? 왜 평화적으로 아무런 무기를 갖지 않고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해대어 아버지,어머니를 비롯하여 무고한 수많은 목숨을 저리도 무참하게 빼앗을 수 있느냐? 죄가 있다면 불법적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으며,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이 지옥같은 식민지 지배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냐? 자유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며,누구도 이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무슨 권리로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느냐? 나는 죄인이 아니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순간까지 죽는 한이 있더라고 만세를 부를 것이오. 나는 대한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당신들이 나를 죄인으로 몰고 있을 뿐이오. 나는 도둑을 몰아내려 했을 뿐이오. 당신들이 남의 나라를 빼앗았는데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눈을 감기 전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도 이런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물을 주셨습니다. 즉 그를 믿을 때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몸이 구속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애굽에서 구원 얻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죄로 멸망한 사건을 예시하며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고전 10:12). 어떤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 나라를 맛보았지만 죄를 짓고 믿음을 배반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얻은 값비싼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보장되었다고 되는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긴다면 감사함과 두려움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이 에발 산처럼 황량한 곳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늘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불꽃의 온도를 살피며 말씀 사랑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순종을 명하신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나를 택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에 순종함으로 응답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신명기 10:12-11:32
요절 | 신명기 10:13
네 행복을 위하여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것을 마치 주님을 위해서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는 목자님을 위해서 일대일을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양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한 것임을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존경을 뜻합니다. 우리 자신이 왕들의 왕이자 주들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깊은 존경에서 우러나는 찬송과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경외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2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예배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오직 그분만 경배하고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에게 의지한다는 말의 원어는 다바크인데 이는 들러붙다, 착 달라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 친근히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말씀을 지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도덕과 기준을 만들고 개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닦아 놓으신 길을 가면 됩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법도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윤리와 법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인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요. 자기 신념의 문제요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일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주의 백성을 선택하실 만큼 먼저 사랑하신 것에 대해서 올바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충성과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말씀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의 인생은 환난과 곤고가 있고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선을 행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강이 있고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부담을 주거나 짐을 지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쉼과 만족을 주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 옵니다. 의로운 것을 하고 즐거운 것을 할 때 옵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선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참으로 선을 행할 수 있고 진정한 만족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경외하는 것을 인생의 큰 방향으로 삼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지난 주에 우린 3.1절을 보냈습니다. 그냥 단순한 날짜인 3월 1일은 우리에게 참으로 뜻깊은 날중의 하나입니다. 삼일절!! 하면 유관순열사님를 맨 처음 떠울리게 됩니다! 물론 김마리아님이나 김구선생님등 많은 의로운 열사님들이 계셨기에 대한민국이 있고 저희들이 독립된 나라에서 편히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하고 외쳤던 그때 그분의 나이가 여리디 여린 17세였답니다! 지금의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이지요~
3.1절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로 평가받습니다. 이는 3•1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인 의의 때문입니다. 이 점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제의 철통같은 무단통치를 뚫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명한 거부와 문화적, 역사적 민족 개념에 기반한 이상적 국가 건설이라는 지향이 한국 민족 개개인에게 뿌리 내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비록 3•1운동을 통해 일제 식민 통치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3•1운동은 비로소 한국 민족을 한국 민족으로 각성시켰던 것입니다.(출처; 한국세시풍속사전)
3.1운동은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면서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자신의 고향인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퍼지게 한 인물로 유관순 열사를 기억합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했던 어린소녀들을 주축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 의의가 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그리고 순국열사 중에 최연소라는 점도 큰 이목을 받습니다. 건장한 신체를 가진 남성들도 버티기 힘든 고문들을 겪어냈고 그러한 일제의 압박에도 학생신분으로 뜻을 굽히지 않은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관순열사는 1902년에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 고등과 1년생이었던 유관순은 만세시위에 참가하였고, 연이어 3월 5일의 서울 만세시위에도 참가하였습니다. 그 뒤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임시휴교령을 내려 휴교를 하자 3월 8일 열차편으로 천안으로 돌아와 천안과 인근 도시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관옥(寬玉)을 만났습니다. 그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1920년 옥사하였습니다. 18세의 나이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1996년 5월 이화여고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옥중 고문에 관한 기록은 너무도 참혹하고 믿기 힘든 내용이어서 도저히 이 글에 옮길 수 없습니다. 2013년 11월에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打殺)"로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녀의 사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방광파열이라 하는데 그 녀의 시신에는 고문의 흔적으로 코와 귀도 없었다고 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는 아래와 같이 역설하였다고 합니다.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 왜 제 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는 것이 죄가 되느냐? 왜 평화적으로 아무런 무기를 갖지 않고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해대어 아버지,어머니를 비롯하여 무고한 수많은 목숨을 저리도 무참하게 빼앗을 수 있느냐? 죄가 있다면 불법적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으며,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이 지옥같은 식민지 지배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냐? 자유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며,누구도 이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무슨 권리로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느냐? 나는 죄인이 아니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순간까지 죽는 한이 있더라고 만세를 부를 것이오. 나는 대한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당신들이 나를 죄인으로 몰고 있을 뿐이오. 나는 도둑을 몰아내려 했을 뿐이오. 당신들이 남의 나라를 빼앗았는데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눈을 감기 전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도 이런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물을 주셨습니다. 즉 그를 믿을 때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몸이 구속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애굽에서 구원 얻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죄로 멸망한 사건을 예시하며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고전 10:12). 어떤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 나라를 맛보았지만 죄를 짓고 믿음을 배반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얻은 값비싼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보장되었다고 되는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긴다면 감사함과 두려움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이 에발 산처럼 황량한 곳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늘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불꽃의 온도를 살피며 말씀 사랑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순종을 명하신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나를 택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에 순종함으로 응답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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