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강.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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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요한복음 제5강
말씀 | 요한복음 4:1-30
요절 | 요한복음 4:14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고 그의 구주가 되어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영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4절.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고자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요단강 동쪽 베뢰아를 거쳐서 가는 길, 둘째는 왕의 대로라는 해변 길로 가는 길, 셋째는 사마리아를 관통하는 길입니다. 사마리아를 관통하면 3일 정도가 걸렸는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일주일씩 걸리는 요단강 건너 편 길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고자 작정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인들이 상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특히 한 외로운 여인을 돕기를 원하셨습니다.
5,6절.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그곳에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털썩 주저 않으셨습니다. 때가 정오였기 때문에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무척이나 피곤하고 목이 말랐습니다.
중동에서 이 시간은 씨에스터라고 해서 낮잠을 자고 쉬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집이나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거리는 조용하고 한산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면 시원한 아침 일찍이나 저녁에 긷습니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정보를 나눕니다. 우물을 중심으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물을 길어 오고 가는 길이 여인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정오에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터벅터벅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이때 온 것입니다. 그녀는 부도덕한 삶으로 인해 그 사회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도리어 그녀를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말을 붙이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 사마리아 여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9절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정말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었습니다. 상종한다는 말은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두레박을 같이 써야 하는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식사도 함께 하지 아니하고 무시하며 멀리 했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요구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여인이 반응을 보일 때 상처를 받고 그만두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기보다 관심을 자신과 하나님의 선물로 돌리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여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습니다. 선물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여인은 세상의 남자들에게 많은 선물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선물과 사랑이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받기에도 지쳐버렸습니다. 허바울 목자님은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하고 30분 동안 기쁘고 다음에는 허무해졌다고 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또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세상적인 것들로는 참된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물에 한계를 느낀 여인에게 생수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1,12절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여인의 이상향 남편은 야곱이었습니다. 여인은 야곱과 같이 자기만을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다섯 명의 남자들을 만나 결혼까지 해보았지만 상처와 실망만 남았습니다. 율법적인 사회에서 다섯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이 여인은 당시 사회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회에서 왕따가 되었고 부도덕한 여인으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럼에도 여인은 여전히 형제의 사랑에 목말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야곱의 우물물은 마셔도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오늘날 야곱의 우물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인정, 사랑, 지위, 돈, 성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풍족하다고 해도 인간은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보았지만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아니면 공허와 목마름이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우리 마음은 평안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영혼에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고 말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날 때 내 속에 있는 터진 웅덩이들은 채워지지 않고 목마르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요한복음 7:37-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계속해서 솟아나는 영적인 기쁨을 공급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우리 안에 말씀의 샘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참 만족과 기쁨과 평강이 샘물처럼 솟아나 강 같이 흐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때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마름을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셨습니다. 내가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은 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 그 사랑을 마실 때 우리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에 대해서 듣자 여자의 태도가 확 달라졌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 물을 달라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갑자기 무슨 명령을 하십니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당시에 남편의 허락 없이 선물을 받아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다고 합니다. 선물을 줄 터이니 남편을 불러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여자는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여인을 영접해 주셨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17,18절.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예배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를 볼 때, 여인에게 남편은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만한 대상, 예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대상을 만나 헌신할 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느낍니다.
이에 예수님은 참된 예배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영은 성령으로, 진리는 진실하게 또는 내가 가진 삶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참된 예배는 진리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힘을 얻고 참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할 때 생명이 충만합니다. 우리가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아는데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예수님은 자신이 그녀가 기다리던 바로 구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경배의 대상, 헌신의 대상이 누구인가 궁금해하며 방황합니다. 무엇에 나의 일생을 드려야 하는가 고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나의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의 목마름이 해결되고 나의 모든 방황이 끝이 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영접하고 예수님 한분만 사랑하고 경배하고 헌신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자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여자는 남편에게서 해결 받을 수 없던 문제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생수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메세아를 만난 기쁨,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충만함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의 목마름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녀가 만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녀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녀의 외로움과 목마름과 방황과 진정한 소원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그녀의 갈한 영혼에 영생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죄와 목마름과 방황을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선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만족주지 못할 세상 것을 찾아 방황하지 말고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4:1-30
요절 | 요한복음 4:14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고 그의 구주가 되어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영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4절.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고자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요단강 동쪽 베뢰아를 거쳐서 가는 길, 둘째는 왕의 대로라는 해변 길로 가는 길, 셋째는 사마리아를 관통하는 길입니다. 사마리아를 관통하면 3일 정도가 걸렸는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일주일씩 걸리는 요단강 건너 편 길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고자 작정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인들이 상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특히 한 외로운 여인을 돕기를 원하셨습니다.
5,6절.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그곳에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털썩 주저 않으셨습니다. 때가 정오였기 때문에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무척이나 피곤하고 목이 말랐습니다.
중동에서 이 시간은 씨에스터라고 해서 낮잠을 자고 쉬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집이나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거리는 조용하고 한산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면 시원한 아침 일찍이나 저녁에 긷습니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정보를 나눕니다. 우물을 중심으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물을 길어 오고 가는 길이 여인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정오에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터벅터벅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이때 온 것입니다. 그녀는 부도덕한 삶으로 인해 그 사회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도리어 그녀를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말을 붙이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 사마리아 여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9절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정말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었습니다. 상종한다는 말은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두레박을 같이 써야 하는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식사도 함께 하지 아니하고 무시하며 멀리 했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요구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여인이 반응을 보일 때 상처를 받고 그만두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기보다 관심을 자신과 하나님의 선물로 돌리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여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습니다. 선물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여인은 세상의 남자들에게 많은 선물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선물과 사랑이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받기에도 지쳐버렸습니다. 허바울 목자님은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하고 30분 동안 기쁘고 다음에는 허무해졌다고 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또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세상적인 것들로는 참된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물에 한계를 느낀 여인에게 생수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1,12절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여인의 이상향 남편은 야곱이었습니다. 여인은 야곱과 같이 자기만을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다섯 명의 남자들을 만나 결혼까지 해보았지만 상처와 실망만 남았습니다. 율법적인 사회에서 다섯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이 여인은 당시 사회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회에서 왕따가 되었고 부도덕한 여인으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럼에도 여인은 여전히 형제의 사랑에 목말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야곱의 우물물은 마셔도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오늘날 야곱의 우물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인정, 사랑, 지위, 돈, 성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풍족하다고 해도 인간은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보았지만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아니면 공허와 목마름이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우리 마음은 평안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영혼에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고 말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날 때 내 속에 있는 터진 웅덩이들은 채워지지 않고 목마르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요한복음 7:37-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계속해서 솟아나는 영적인 기쁨을 공급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우리 안에 말씀의 샘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참 만족과 기쁨과 평강이 샘물처럼 솟아나 강 같이 흐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때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마름을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셨습니다. 내가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은 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 그 사랑을 마실 때 우리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에 대해서 듣자 여자의 태도가 확 달라졌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 물을 달라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갑자기 무슨 명령을 하십니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당시에 남편의 허락 없이 선물을 받아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다고 합니다. 선물을 줄 터이니 남편을 불러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여자는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여인을 영접해 주셨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17,18절.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예배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를 볼 때, 여인에게 남편은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만한 대상, 예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대상을 만나 헌신할 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느낍니다.
이에 예수님은 참된 예배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영은 성령으로, 진리는 진실하게 또는 내가 가진 삶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참된 예배는 진리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힘을 얻고 참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할 때 생명이 충만합니다. 우리가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아는데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예수님은 자신이 그녀가 기다리던 바로 구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경배의 대상, 헌신의 대상이 누구인가 궁금해하며 방황합니다. 무엇에 나의 일생을 드려야 하는가 고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나의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의 목마름이 해결되고 나의 모든 방황이 끝이 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영접하고 예수님 한분만 사랑하고 경배하고 헌신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자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여자는 남편에게서 해결 받을 수 없던 문제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생수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메세아를 만난 기쁨,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충만함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의 목마름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녀가 만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녀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녀의 외로움과 목마름과 방황과 진정한 소원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그녀의 갈한 영혼에 영생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죄와 목마름과 방황을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선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만족주지 못할 세상 것을 찾아 방황하지 말고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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